소설리스트

다섯 (246/344)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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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회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생에서 삼합회라면 홍콩과 대만을 거점으로 하는 거대한 범죄조직. 

원래는 청 시대 반청복명(反淸復明) 조직인 천지회(天地會)에서 시작한 단체이다. 

만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한족을 부흥시키자는 단체에서 시작했지만, 변질하여 범죄조직이 된 단체. 

내가 살던 전생에는 중원의 범죄 조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이름을 날리는 단체였던 것. 

‘중원 조폭이라고 자꾸 불렀더니, 이제 정말로 조폭들이 되려는 모양이구나.’ 

사람이 태어나 역사에 한 줄을 남긴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에 가깝지만, 역사도 역사 나름.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역사면 모르겠지만, 저대로 두면 나는 중원 흑역사의 한 줄로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중원의 삼합회가 한 한심한 요리사의 여성 편력으로 시작되었다는 흑역사로 말이다. 

「중원의 악명높은 범죄조직 삼합회는 송나라 무림인들의 가문인 당가, 제갈가, 남궁가 세 가문의 연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세 가문의 여자를 모두 아내로 맞은 바람둥이 요리사 류청운이라는 자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역사책에 오를 구절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이건 반드시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 어르신들. 사, 삼합회도 좋지만, 더 좋은 이름도 마, 많지 않겠습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니 시간을 들여서 좀 더 생각해보심이···.” 

그러나 이미 삼합회라는 이름에 단단히 꽂힌 것으로 보이는 남궁가와 당가의 어른들. 

내 말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되물었다. 

“청운아, 삼합회보다 더 좋은 이름도 있더냐?” 

“입에 짝 붙는 것이 아주 좋은 이름인데, 이보다 좋은 것이 있단 말인가 사위?” 

“그럼 네 녀석이 이름을 말해보거라. 삼합회 딱 좋구만.” 

‘뭐, 뭐라고 하지?’ 

머릿속에서 삼합회보다 더 좋은 이름을 떠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슴까지 뛸 정도.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할 때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어르신들 말씀은 좋은 의견이나, 한 아이의 가문이 빠졌는데 그리할 수 있겠나요?” 

‘아 장모님 당신의 그저 빛···.’ 

등롱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반짝이는 장모님의 머리카락처럼 정말 빛 같은 도움이었다. 

미미의 정확한 신분을 알고 계신 장모님이 미미를 저대로 둘 수 없어서 나서신 모양이었다. 

지금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무림에서의 배분은 미미도 독왕이나 검왕 급은 되니까 말이다. 

지원 사격이 들어왔으니 밀어붙여야 했다. 

“그, 그렇지요. 미미도 저의 여인인데, 삼합회로 하면 아무래도 그녀가 서,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남궁 장인과 당가 장인이 나서 대답하셨다. 

“제식, 안타까운 일이긴 한데, 저 소저의 가문이 없으니, 회에 누군가를 넣으려 해도 불가능한 것을 어쩌겠소.” 

“사위, 소저가 혈혈단신이니 자네가 좀 더 챙겨주시게. 사람도 넣지 않고 사합회로 하기에는 좀 그렇기도 하니.” 

“거 삼합회가 어떻다고 자꾸 그러는 게냐. 어째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서 안달 난 놈처럼.” 

‘정녕 길은 없는 것인가?’ 

이대로 중원 흑역사에 한 줄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고민이 들 때. 

처소 쪽으로 난 입구에서 들려오는 약간 화난 목소리. 

“사위. 사위가 삼합회라는 이름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다른 것일 텐데,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나타나셔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 들려오는 망발에 입구 쪽을 바라보자, 거기 서 있는 것은 제갈 장인. 

그런데 모습이 좀 희한했다. 

눈이 퀭하게 들어간 것이야 장모님께 시달리고 있어서라고 쳐도, 무슨 강도처럼 하관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던 것. 

“제갈 가주 병환이 깊다더니···. 그 모습은 대체···.” 

“천아? 이 어찌 된 일이냐? 네 몰골이···.” 

“아니, 도적도 아니고···” 

제갈 장인의 등장에 다들 그를 알아보고는 아는 척을 해왔고, 장인이 그 둘의 인사를 슬쩍 포권을 해 흘리더니, 나를 향해 꾸짖듯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세 분. 제대로 된 인사는 나중에 하고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짚고 넘어갈 일?” 

“청운이 내 하나는 이해하였는데···. 또한 자네에게 잘못한 마음도 있어, 내 자네를 위해 단자와 첨자까지···. 그런데 영영이와 남궁가의 딸에 또 다른 여인까지! 다섯을 어찌 딸아이를 둔 아비가 이해하란 말인가!” 

딸바보인 장인은 넷이라는 숫자가 용납되지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장모님으로 인한 병환이 깊어 숫자를 잘 세시지 못하는 느낌. 

분명 넷인데 왜 다섯이라고 하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자, 장인이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내, 다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다섯은 아니니, 이 기회에 다 말하겠소! 청운이 저놈 아이와 숨겨둔 여인이 또 있소이다!” 

“뭐라!” 

“뭬야!?” 

“무, 무슨 소리냐 그것이? 천아?” 

“천, 그게 무슨?” 

“예에!?” 

장인의 폭탄 발언에 식당 안의 모든 사람이 시선이, 모두 나를 추궁하고 있었다. 

‘아니,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너무 억울했다. 

이제 간신히 하늘을 한번 봤을 뿐이니까. 

그리고 상황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꾸 꼬이고만 있었다. 

이젠 빌리지도 않은 빚이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으니까. 

‘왜 자꾸 상황이 나락으로···.’ 

*** 

지난겨울 첫눈이 내린 날. 

제갈가의 가주 제갈천은 이른 겨울 가주전에서 따듯한 차를 음미하는 중이었다. 

-호르륵. 

그가 마시는 차의 이름은 일주차(日铸茶), 이번에 새로이 황실 진상품에 오른 차였다. 

당나라 때부터 유명했던 전통적인 명차인 고저자순(顾渚紫笋), 양이차(阳羡茶)를 밀어내고 진상품에 오른 일주차. 

차를 마시는 그의 입가에서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차 한잔에 이리 기뻐하는 것은 일주차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제갈가이기 때문이었다. 

절강에서 이름 봄 막 피기 시작하는 찻잎을 낮에 수확해, 밤에 두 시진 정성스레 볶아내고 건조해 만든 명차. 

일주차(日铸茶)라는 이름도 제갈천이 직접 붙인 이름이었다. 

“좋구나···.” 

원래 황실 진상품에 오른 것은 어떻게 보면 크게 기뻐할 일은 아니다. 

황실 진상품에 오른 순간 황실을 제외하고 다른 이에게는 판매할 수 없기 때문. 

만약 판매하다가 걸리면 그대로 목이 달아나 버리는 것.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하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고, 황실 진상품을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은 것이 돈을 가진 자들의 마음. 

이미 황실 진상품에 올랐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절강성의 차점(茶店)에서 행복한 비명이 가득 담긴 서찰을 보내온 터였다. 

물론 일주차를 그대로 팔면 대역죄가 되니, 월주차(月铸茶)라는 이름으로 살짝 이름을 바꿔서 팔 테지만. 

‘어찌 모든 일이 이리 막힘이 없이 잘 진행이 되는지, 신기할 지경이구나.’ 

요즘 제갈천이 하는 일들은 모두 유례없이 순풍에 돛을 단 듯 막힘이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주차부터 시작해서 강남 쪽에 사들였다가 가격이 오르지 않아 포기했던 땅마저 강남 개발로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는 상황. 

다른 소소한 일들도 생각보다 좋은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청운이 하나 잘 들였다고 가문의 일들이 이리 막힘이 없다니.’ 

생각해보면 이것은 분명 그의 사위인 류청운 때문임이 분명했다. 

원래 새로운 사람을 가문에 들이고 우환이 끊이질 않거나, 반대로 새로운 사람을 들이고 가문이 이리 번창한다면, 모두 가문에 새로 들인 사람이 원인인 것이 보통이니까. 

그런데 최근에 제갈가에 새로 들인 사람이라면 자기의 사위밖에 없었으니, 이 모든 일들이 사위를 잘 들인 것이 원인인 것이 분명했다. 

정말 복덩이가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고놈 참···. 집안의 복덩이가 아니라 할 수 없구나.’ 

생각만 해도 미소가 떠오르는 사위 류청운. 

사위와의 첫 만남이 떠오른 제갈천의 얼굴에 일주차를 마실 때보다 더 큰 미소가 떠올랐다. 

제갈천이 최근에 가장 잘한 일이라면 딸아이와 사위의 혼례를 올리게 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딸아이의 괴질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외간 남자가 몸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재주가 신기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둘의 혼례를 조금 다급하게 결정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보물이 없었던 것. 

무공은 하나도 모르는 요리사의 몸으로 의형의 집인 사천당가에 인사를 보냈더니 떡하니 식룡이라는 별호를 얻어내질 않나, 또 자기 혼례에서는 건방진 사마세가 놈을 혼쭐 내주기까지. 

그뿐인가? 

원래대로라면 제갈천 자신이 딸을 데리고 중원을 유랑하며 딸을 고치기 위해서 고생해야 할 테지만, 혼례를 올리고 나자 자기 사람이라고 저리 애틋하게 챙기는 것을 보면, 잘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위인 청운이를 생각하거나 일주차를 마실 때마다 즐거울 수밖에, 

-호르륵. 

다시 한번 들이켜는 일주차의 향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차의 향과 복덩이 사위 생각에 기분 좋은 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제갈가의 우내총관 허적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와 외친 것은. 

“가, 가주님! 가주님!” 

평소에도 별로 놀라는 법이 없는 우내총관 허적인데, 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놀란 얼굴. 

예도 어기고 무작정 가주전으로 뛰어 들어온 허적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가, 가주님. 바, 밖에!”“이 사람 무슨 일이기에 이리 놀란 얼굴인가? 진정하고 이야기해 보게.” 

“바, 밖에! 어, 얼른. 헥헥···.” 

무작정 자기의 팔을 잡아끌고 밖으로 향하자는 우내총관. 

우내총관이 이런다면 뭔가 큰일이 난 것이 분명한 것이라는 생각에 제갈천은 재빨리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 어딘가!? 급한 일인 것 같으니, 그러면 가면서 이야기하세!” 

그렇게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가 방향을 묻자, 우내총관이 가리키는 곳은 제갈가의 구진문 쪽. 

“구진문에? 습격이란 말인가!?” 

가문의 구진문에 무명의 고수나 누군지 알지 못하는 습격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갈천은 먼저 급하게 무사들을 소집하기 위해서 소리치려 입을 열었다. 

“게 아무도! 커흡!” 

그러나 곧바로 틀어막히는 입. 

깜짝 놀라 허적을 바라보자, 그가 제갈천의 입을 틀어막고 맹렬히 고개를 저었다. 

‘습격이 아니라고?’ 

허적의 표정과 행동을 보아 이것은 많은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되는 일. 

제갈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적을 끌고 구진문으로 향했다. 

가문에 누가 되거나 치부가 될 수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한다는 말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가 새파랗게 질려 자신을 찾은 것일 테니까. 

그렇게 허겁지겁 경공을 펼쳐 도착한 제갈가의 구진문 앞은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눈밭이었다. 

그리고 구진문 앞에는 어떤 사람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응?” 

제갈천이 아무도 보이는 않는 구진문 밖의 모습에 당황해 번을 서던 무사들을 바라보자, 두 무사의 시선이 구진문 한쪽 구석을 향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망! 망망!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자, 눈 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인가. 

제갈천이 그것에 안력을 집중하자 눈 위에 웅크린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 

“잠깐만 기다려. 청운이네 집에 다 왔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고개를 들어 제갈천을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친 것은 여인. 

딸인 청이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여인이었는데, 같은 무게의 황금과 같다는 설표(雪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무릎이 드러나는 치마와 설표의 머리 가죽을 그대로 뒤집어써, 머리 위에 솟아오른 설표의 귀. 

당황스러운 모습. 

하얀 설표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기에 눈 위에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자기를 헐레벌떡 찾은 원인이 눈앞의 여인임이 맞냐는 듯 우내총관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소저?” 

설표의 가죽으로 몸을 감싼 여인에게 말을 걸자, 얼른 몸을 일으킨 여인. 

그녀가 제갈천을 보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다! 사람이 다시 왔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시오.” 

밝고 명랑한 의형의 딸인 영영이가 생각나는 여인.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했다. 

“아, 이렇게 인사하면 안 된다고 했지. 중원식으로 어찌하더라? 아, 그렇지!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남만야수궁의 궁주이신 맹겸님의 외동딸인 맹희라고 합니다.” 

“야, 야수궁!” 

남만야수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고 만 제갈천. 

왜 우내총관이 그리 놀란 얼굴로 자기를 찾았는지 알 수 있었다. 

남만야수궁의 사람 그것도 궁주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인이 제갈가의 구진문 앞에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던 것. 

이십 년 전 점창파를 멸문으로 몰고 갈뻔했던 새외혈사는 아직도 간간이 무림에서 회자하고 있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야수궁의 사람은 절대 혼자 움직이는 법이 없으니, 짐승들을 데리고 왔을 것이 뻔했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여인. 

제갈천의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곧 그녀가 웅크리고 있던 눈밭에서 흰 개가 같이 몸을 일으켰다. 

“인사가 틀렸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말에 제갈천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아니오. 나는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 천이라고 합니다. 그래, 소저께서는 어찌 제갈가를 찾으셨소이까?” 

그러자 남만야수궁의 외동딸이라는 여인이 믿지 못 할 말을 내뱉었다. 

“아! 그걸 말 안 했구나. 아이의 아버지를 찾으러 왔습니다.” 

“아, 아이의 아버지?” 

갑자기 아이 아버지를 찾는다는 그녀의 물음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되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약간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고는 말이다. 

“처, 청운이 있지요?” 

이어진 그녀의 말에 찾아온 충격. 

분명 사위에게 남만야수궁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제갈천의 머리에서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들로 하나의 결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남만야수궁을 찾은 사위가. 

아니, 사위 놈이. 

큰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그것도 남만야수궁주의 딸과. 

‘처, 청운이 이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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