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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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덕구라는 외침에 불현듯 떠오른 장면.
‘백화가 양파를 먹고 죽을뻔했다 살아난 날, 어둠 속에서 누님의 개와 우리 덕구가 뜨겁게 엉겨서···. 서, 설마?’
보통 개의 임신 기간은 58일에서 68일 사이.
백화가 그때 바로 새끼를 가졌으면, 맹희 누님이 겨울에 제갈가를 방문했다고 했으니, 누님과 헤어지고 대여섯 달 지난 시기.
대충 계산해보면 강아지가 두세 달 정도 되었을 시기였던 것.
인절미와 백설기가 한창 꼬물거리며 귀여울 때였을 것이 분명했다.
장인의 말을 살펴보아도 아이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고 했지, 그것이 명확하게 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식구라는 표현도 야수궁에서는 개에게 흔히 쓰는 표현이니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아내의 말이 맞는다면 강아지가 태어났으니, 아비인 덕구에게 보여주려고 왔거나. 한 마리쯤 나에게 주려고 온 것 같은데···.’
개를 식구로 표현할 정도로 끔찍하게 아끼는 야수궁이니, 강아지가 태어났다면 당연히 아비 개에게도 어느 정도 권리가 있을 것이기에, 내가 애견인이라고 가장하고 상황을 대입해보자 맹희 누님이 왜 찾아오셨는지 촉이 움직였다.
“장인어른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혹시 맹희 소저가 강아지를 데려오지는 않았습니까? 한 요만한 정도였을 것 같은데?”
손으로 인절미와 찹쌀떡의 크기를 대충 만들어 보여주자, 내 물음에 입을 삐쭉거린 장인이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자네의 장인인가! 흥! 그 뭐, 강아지 두 마리를 꼭 안고 다니긴 했지. 그래, 저 누런 놈과 같은 녀석 한 마리와 흰 강아지였던가?”
역시나!
장인의 대답에 아내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장인을 향해 되물었다.
“아버님,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혹시. 맹희 소저가 집적 노공의 아이를 가져, 노공을 뵈어야겠다고 했습니까? 아니면 아이 아버지를 찾아왔다며, 노공을 찾은 것입니까?”
그러자 아직 자기편을 안 들어주는 아내에게 서운했던지 장인이 다시금 입을 삐쭉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뭐 굳이 말하면 두 번째랄까?”
“그러면 맞는 것 같군요?”
“맞긴 뭐가 맞는단 말이냐? 나는 사위가 좀 맞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니라.”
‘저 양반이!’
주먹을 꼭 쥐고 부르르 떠는 장인에게 아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대답했다.
“아버님, 남만야수궁에서는 개를 식구라 칭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당황하는 장인에게 아내가 설명하기 위해 덕구를 호출했다.
“덕구, 여기 의자에 앉아보세요.”
-월!
냉큼 대답하고 의자에 올라앉는 덕구.
“덕구, 영영 언니가 누구지요?”
-척.
앞발을 들어 영영이를 가리키는 덕구.
아내가 잘했다는 듯 칭찬하기 위해서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여러 가지를 지시하기 시작했다.
“소소, 언니는요?”
“그러면 제 어머니는?”
“안에 가서 식모를 좀 불러다 주겠습니까?”
덕구 새끼, 요즘은 손 같은 것을 시키면 나에게는 귀찮은 듯 뒷발을 올려놓고, 아내의 지시에는 빠릿빠릿 천재견처럼 움직였다.
아내의 지시대로 소소와 북해 장모님을 가리키거나 옷자락을 물어 식모를 데려오거나.
그러자 놀란 목소리로 감탄하는 사람들.
송 시대에 저런 개쇼는 쉬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당연히 감탄할만했다.
“허허, 뭔 개가 저리 사람처럼 말을 알아듣는 것이냐? 설마 저것도 남만야수궁의 개인 것이냐? 운남에서 가끔 마주친 야수궁 사람들의 개도 저리 똑똑하진 않았는데.”
“사위, 저런 개는 대체 어디서 난 것인가? 멍청한 사람보다 낫구만.”
“저 개가 저리 똑똑한 개였다니, 청아 이 어미도 이런 것은 처음 보는구나.”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자 덕구가 신이 났는지, 턱을 한껏 치켜뜬 모습으로 의자에 올라앉았다가, 백 텀블링을 해서 내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개 쇼가 끝이 났다.
그 모습에 세 가문의 어른들이 손뼉까지 치며 기뻐하고, 그렇게 덕구 쇼가 끝나자 아내가 어르신들을 향해 설명했다.
“노공께서 남만야수궁에 갔을 때, 야수궁에 은혜를 베푼 일이 있었습니다. 약왕께서도 몇 달동안 고치지도 원인도 알아내지 못하시던 괴질에 시달려 죽어가는 개들이 죽는 원인을 알아내시고, 치료 방법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이지요. 그래서···.”
그때였다.
아내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급발진하시는 의조부 독왕과 당가 장인.
두 분이 대 폭소하시며 말씀하셨다.
“뭐라!? 약쟁이 놈도 못 고치던 괴질의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 방법의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그러면 그놈을 완전히 ‘이긴’ 것이 아니더냐? 청운아, 그런 것은 제일 먼저 이야기했어야지! 이 의조부가···. 아니지. 아니지. 이제 우리 가문 사위이니, 호칭에 조심해야지.
그래, 이 할아비가 잠시 고민하지 않았느냐. 그래, 약왕을 이길 그 정도 사내라면 여인 서넛이 대수겠느냐? 껄껄! 아이고 시원해라!”
“하하하. 역시 청운이가 아닙니까?”
“가주! 혹시라도 데릴사위가 안 된다면, 영영이를 가문에 내 쳐서라도 저놈 주게! 크하하하하! 약쟁이 늙은이를 이겼으면 당연히 상을 받아야 하고말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신이 난 두 부자.
그러고 보니 약왕이랑 내기하면서 한 번도 못 이기셨다고 들었는데, 그런 약왕을 내가 이겼다니, 내가 사위가 되면 결국 당문이 이긴 것이 되니까 나를 얼른 영입하고 싶으신 모양이셨다.
까탈스러웠던 좀 전과는 다르게 이제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대답.
심지어 영영이를 도매가격으로 판매하려 하셨다.
아니, 어쩌면 떨이나 사은품?
“지, 진짜지요? 할아버지 고마워요! 그러면 저 가문에서 얼른 내쳐주세요!”
“그래, 영영아 잘했다! 그래? 그냥 오늘 바로 내쳐줄까?”
“좋아요! 꺄르르르.”
그 할아버지에 그 손녀.
영영이가 신이 나서 자기 할아버지에게 매달려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그런 번잡한 상황에서 아내가 제갈 장인에게 설명하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남만야수궁에서는 노공을 가족들의 괴질을 치료해 준 은인이라 생각해, 노공의 개에게 대법을 펼쳐, 이리 똘똘하고 강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공의 개와 맹희 언니의 개가 짜, 짝을 맺었는데···. 아마도 그 강아지들의 아비인 덕구를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그게 무슨.”
아내의 설명에 당황한 얼굴로 멈춰선 제갈 장인.
장인은 아내의 설명에 뭔가를 한참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잠시 후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떨었다.
무척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것같은 느낌.
당연히 부끄럽고 당황스러울 것이었다.
똘똘한 제갈가 사람이, 그런 바보같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것도 모자라 멀쩡한 사위를 비난했으니.
‘정말 청이의 아버지만 아니면···.’
헛똑똑이 장인을 향해 속으로 구시렁거릴 때, 아내의 물음이 다시 들려왔다.
“아버님, 그러면 맹희 언니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집에 돌려보내셨습니까? 점창파를 피해서 잘 돌아가셨으려나? 노공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오해해서, 혹 매몰차게 대하신 것은 아니지요? 아, 혹시 해산을 기다린다고 세가에 모셔두었으려나?”
그러자 장인이 자기 입을 가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내가···. 무, 무슨 짓을···.”
‘뭐지?’
아무리 부끄럽고 당황스러워도 장인의 변죽이면, ‘크흠! 내. 오, 오해를 했구만, 미, 미안하네. 사위.’ 정도로 뭉개려고 할 텐데 말이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할 때 장모님께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장인에게 물으셨다.
“천, 대체 무슨 큰일을 친 것이지요?”
“무, 무슨 말이요! 그, 그것이! 크, 큰일이라니. 아, 아무 일도 안쳤소.”
“큰일?”
아내가 북해 장모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장모님이 손가락으로 장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지금 저 표정은 분명 네 아버지가 큰일을 쳤을 때의 표정이니라. 이십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다니. 아마 지금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있겠지?”
-휭!
그리고 장모님의 손끝에서 지풍이 쏘아지더니, 장인이 도적놈처럼 하관을 가리고 있던 천을 날려버리셨다.
그러자 장모님의 말씀대로 드러난, 벌름거리는 양쪽 콧구멍.
그러나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콧구멍 따위가 아니라 장인의 입과 입 주변이었다.
오리주둥이처럼 부어올라 툭 튀어나온 입과 시뻘겋고 얼룩덜룩하게 물든 입 주변, 그리고 목덜미.
장인도 아내처럼 알레르기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사람들이 장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 물었다.
“아니, 천, 자네 입이 어째서?”
“제, 제갈 가주 중독이라도 된 것인가? 이, 이리 와보게. 내 봐줄 테니. 아니, 중독된 것이면 말을 해야지.”
“아니, 저것은 중독이라기보다는 뭔가가 빨린?”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것이 무슨 연유로 생겨났는지.
‘저, 저것은 그러니까 쪼···. 크흠.’
이십 년을 참은 팔왕급 고수인 장모님의 흡입력.
사람들의 물음에 장모님을 살짝 볼을 붉히며 말씀하셨다.
“아, 아차! 저것은 벼, 별것 아니니 다른 분들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그리고 천 어서 말하지 못해요? 대체 무슨 큰일을 친 것입니까?”
“아, 아니오! 저, 절대 아니오!”
“빨리 말하지 못해요? 콧구멍이 크게 벌름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수습 못 할 일을 친 것이 분명한데?
”아, 아니라도 그러네.“
분명 뭔가 큰 사고를 치신 것 같은데, 대답하지 않으려고 하는 느낌.
장인이 눈을 굴려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 양반 혼 좀 내야지, 안 되겠구만.’
“미미, 얼른 가서 내 처소로 가서 급을 좀 가져다주시겠소?”
“네, 낭군님.”
미미가 재빠르게 달려가 처소에서 급을 가지고 오고, 급에서 아직 한 번도 못 써보고 양이 줄기만 하는, 모든 중년의 염라대왕 회생환을 한 알 꺼내 탁자 위로 올렸다.
중년 남자를 겁박하는 데는 이 회생한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팽가주를 통해 드러난 상태니까 말이다.
-탕!
그리고 장인을 향해 물었다.
“장인어른, 무슨 일인지 말씀 안 하시면, 이것을 장모님께 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식탁 위에 올린 회생환의 정체가 궁금한지 눈을 빛내며 식탁 위를 바라보고, 장인이 빠질 것같이 커진 눈알로 달려와 나를 붙들었다.
“이, 이 사람이! 지, 지금 내 꼴을 보고도! 정녕 나를 죽일 셈인가!”
그러자 어느새 접근하신 장모님이 내 팔을 붙잡은 장인을 떼어내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물으셨다.
“물러나세요. 천! 사위님, 그게 뭔데 이 사람이 이리 놀라는 것인가요?”
사람들이 많으니 장모님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크흠. 밤에 남자의 기운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약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장인에게 한 알 드렸는데, 효험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서, 설마? 그러면 첫날 이후에 기운이 없던 것이?]
끄덕끄덕.
내가 장인에게 악동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장모님께서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오셨다.
“혹시 한 알 더 없나요?”
왜 없겠나.
장인 고생 좀 해보라고 아깝긴 해도 두 알을 더 식탁 위로 올렸다.
-탕! 탕!
그러자 들려오는 패배감에 젖은 항복하는 자의 목소리.
“내, 내가 잘못했네. 다, 다 말하겠네! 부, 부인 다 말하겠소! 이 사람 두 알은 치우게!”
승리감에 도취해 장모와 둘이 장인을 바라보자, 장인의 입이 벌어지며 재미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호, 혼담을 넣었소···.”
“혼담이요?”
“혼담 말입니까?”
난데없는 혼담이라는 말에 뇌에 방어기제가 작동하는지 브레이크가 걸리고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만이 떠오르는데 들려오는 아내의 외침.
“서, 설마! 남만야수궁에 호, 혼담을 넣으셨단 말입니까!?”
아내의 물음에 장인의 고개가 두 번 끄덕여지고, 브레이크가 걸려 지성이 사라진 머리로 덕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야···. 덕구야 너 장가가겠구나?”
그러자 아내가 혼례를 홀리고 처음으로 나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더, 덕구가 아니고 노공과 맹희 언니의 혼담이란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장인은 맹희 누님과 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상황.
혼담이 덕구의 혼담이 아니고 내 혼담인 모양이었다.
지성이 사라진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으니까 편해.’
***
남만야수궁주의 딸에게 혼담을 넣었다는 이야기는 삼합회에 대파국을 가져왔다.
천하 삼분지계가 성립하려면 다리가 셋 다 튼튼해야 세 다리로 천하를 지탱하는 법.
하지만 장인이 트롤링을 해 자기의 입지를 깎아버렸으니, 다른 두 개의 다리가 곧바로 남은 하나의 다리인 장인을 물어뜯었다.
“허허, 그러면 제갈 가주께서 오해로 남만야수궁에 혼담을 넣었단 말입니까? 이거 남만야수궁은 점창파와의 문제도 있어서···.”
“천아, 남만야수궁이라니. 같은 사천에 있는 점창파이기에 우리도 좀 조심스럽구나.”
“에잉, 큰일이구먼. 점창 그놈들이 남만야수궁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인데.”
그냥 다른 가문이 엮여있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같은 배인 청운호를 타고 입는 처지에서 현재 정실의 부인 가문에서 트롤링을 해버렸으니, 그로서 찾아오는 결과는 다 같이 맞이해야 했던 것.
“할아버님, 혼담을 취소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아마도 모욕당했다고 생각하고 제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니라. 에잉. 거참 왜 애한테 먼저 물어보지도 않고 먼저 그런 일을···. 우리 청운이를 얼마나 못 믿었으면. 우리 청운이 너무 서운해 말거라.”
“예, 의조부님. 크흑.”
못마땅한 녀석에서 이젠 우리 청운이.
혼담 취소 의견도 나왔지만, 독물을 구하러 남만에 가끔 들리시는 의조부 독왕의 의견으로는 절대 그것은 안 된다고.
모욕당한 제갈가로 야수궁이 벌떼같이 몰려오면, 의동생의 가문을 그냥 둘 수 없는 당문의 입장에서도 그건 악수(惡手).
“그, 그것이···.”
“그냥 조용히 하고 계세요! 중원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더니, 사람이 안 본 사이에 왜 이리 멍청해졌는지!”
장인이 뭔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장모에게 면박만 당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거 이러면 이합회(二合會)로 해야 하나···. 아니면 위치를 조금 조정하는 것도···.”
이혼하던지 정실 자리를 내놓으라는 남궁 장인의 은근한 압박.
아내 탄핵안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말에 아내의 안색이 파리하게 물들고, 아내가 이대로 실각해야 하나 싶었는데, 미미가 조용하게 나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낭군님,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대로라면 청이가 너무 불쌍해지니, 차라리 저를 사용하세요. 제 정체를 알리시면, 당분간은 조용해질 것이에요.]
“?······!”
생각해보니 그거 아주 괜찮은 묘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