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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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짜장면에 사용하는 중면 정도의 면발을 익히는 시간은 3분에서 4분.
이번에 준비한 것도 이백쉰여섯 가닥의 중면이니, 면 요리를 하며 익혔던 시간 감각으로 펄펄 끓고 있는 면발을 시간에 맞춰 대나무 채반으로 건져냈다.
-촤르르륵.
면발을 건져 올리자 면발에서 흘러내린 국물이 냄비로 되돌아가며 맑은 소리를 냈고.
건져낸 면발은 곧바로 찬물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이어진 찬물 세척.
손가락을 살짝 세워 손으로 뭔가를 할퀴는 모양으로 만들고, 면발을 빗어낸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촥! 촥! 촥!
면을 씻어주는 이유는 뜨거운 열기로 면이 더 익어 퍼지는 것은 방지하고, 혹시나 익히는 과정에서 붙어버린 면발을 떼어내기 위한 것.
물론 이 과정에서 쫄깃함도 더해진다.
-촤르륵.
그렇게 잘 씻어 찬물에서 건져낸 면을 채반 위로 올리자 드러나는 탱글탱글한 면발.
-탁! 탁!
채반을 털어 면의 물기를 깨끗하게 제거했다.
면에 물기를 제거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데, 면이 물기를 머금고 있으면, 육수를 부었을 때 간이 싱거워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물로 코팅된 면발이 육수를 흡수 못해 면과 육수가 따로 놀 수 있기 때문.
그리고 곧바로 물기를 제거한 수타면 특유의 탱글거리는 면발을, 송 시대 어느 집에나 있는 큰 대접 모양의 면기에 가지런히 담아 도마 위에 정렬시켰다.
-탁. 탁. 탁. 탁. 탁. 탁.
여섯 번의 소리와 함께 가지런히 정렬된 면기.
그 안에 탱글탱글한 면이 윤기를 내며 부드럽게 똬리를 튼 채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제 면이 준비되었으니, 서둘러야 했기에 아까부터 생강의 향을 은은하게 흘려내는 육수를 살펴보았다.
늦어질수록 면은 불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부글부글.
‘어디 보자 얼마나 우러났나?’
끓어오르는 냄비 속.
진한 조기의 국물은 이미 뽀얀 유백색의 사골처럼 변해있었다.
‘오랜만에 조기 국물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는 구만.’
오랜만에 뽀얀 조기 국물을 대하자 전생의 기억이 살짝 떠올랐다.
조기라는 생선은 아주 풍부한 풍미를 자랑한다.
그 때문에 전생의 어머니께서는 작은 냄비에 조기 한두 마리와 반 컵의 물과 마늘, 파만을 넣고 하얀 조기찜을 해주시곤 했는데.
별다른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잠시만 끓어도 자작자작한 국물은 뽀얗게 변하고, 그 고기와 함께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한 그릇 뚝딱.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
지금 끓고 있는 황어 국물도 딱 어머니가 해주셨던 조기찜의 그 향이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갑자기 떠오른 예전 생각에 잠시 멈칫하자, 요리를 구경하고 있던 비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비연이 직접적 경험은 없지만, 유사 연애는 스킬이 만렙이라 그런지, 내가 멈칫할 때 감정을 알아챈 모양.
‘저 여자 아무튼 눈치는 빨라 가지고.’
모른 척하고 요리를 이어갔다.
“아. 잠시 딴생각을. 자 그럼 남은 작업을 해볼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소금 간을 한 조기 육수를 각자의 그릇에 따라주었다.
-쪼르륵. 쪼륵.
육수의 높이는 면이 삼 할 정도 드러날 정도의 높이.
육수에 모두 잠긴 상태보다 면이 삼 할 정도 드러나는 것이, 시각적으로 요리를 먹는 사람의 만족도를 높이고,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육수를 따르는 작업이 모두 끝나자, 그릇들에서 뜨거운 김과 함께 뿜어지는 진한 조기 육수의 향이 주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은은한 생강 향이 비린내를 잡아주었기에, 풍부한 조기 육수의 진한 향이 향긋한 생강을 머금고, 여섯 개의 그릇에서 아주 고소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
“흐응. 향이 너무 좋습니다. 가가.”
“류공자님 요리는 오랜만에 먹어보는데 아주 기대가 됩니다.”
“저도 낭군님 요리를 제대로 먹는 것은 어찌 보면 처음이군요.”
다들 진한 육수의 향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내 요리를 제대로 먹는 것이 처음이라는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미미를 바라보았다.
‘처음이라고? 잠깐만···.’
잠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미미가 먹은 내가 해준 음식은 식은 토끼고기, 이것저것 넣은 흰 쌀죽.
거기에 혼자 오해하느라 먹다 만 전가복 정도.
“참, 그러고 보니 그랬군요. 미미, 조금만 기다리시오.”
“예, 낭군님.”
여섯 개의 그릇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김으로 가득 찬 부엌에서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육수를 부어준 이상 뒤는 없었다.
이제 초 단위의 싸움.
빠른 손놀림으로 아까 먹기 좋게 잘라 튀겨놓은 조기를 대여섯 조각씩 예쁘고 가지런하게 그릇 위로 올렸다.
-탁탁탁탁.
그리고 싱싱한 쪽파를 바로 썰어 그릇 위로 살살.
마지막 작업이 끝나자, 흰 도자기 그릇 안에 담긴 뽀얀 유백색 육수와 그 가운데 머리를 내민 탱글탱글한 면발.
그리고 그 면발에 몸을 기댄 갈색의 생선튀김 대여섯 개와 한가운데 뿌려진 향긋한 녹색의 쪽파.
이것이 황어면(黃魚麵)!
먹음직하게 완성된 한 그릇을 들고 다섯을 향해 말했다.
“자! 다 되었소. 라면(납면)으로 만든 황어면(黃魚麵). 다들 하나씩 받으시오.”
“이, 이것이 황어면. 은공 정말 맛있어 보입니다.”
“맛있어 보입니다. 노공.”
다섯의 손에 각각 그릇과 젓가락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영영이의 물음이 튀어나왔다.
“어? 여기서 먹나요? 가가.”
“아, 노점에서 팔 것이라서 노점같이 서서 먹어보라는 뜻 아닐까요?”
“소소 언니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소소의 생각이 맞았다.
내 처소는 너무 멀고 손님이 왔을 때 접대하는 접객당으로 가서 먹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면은 나온 순간 바로 먹는 것이, 면이 불지 않게 먹는 최고의 방법.
‘라면 불으면 맛 없잖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다섯의 입에서, 경쟁하듯 면발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후루룩. 쪼옵.
-후룩. 쪽.
-후룹. 퐁.
살아있는 뱀장어처럼 다섯의 입 끝에 매달려 사방으로 꼬리치는 면, 탄력 있는 면발의 끝이 다섯의 콧잔등, 볼, 턱을 후려쳤다.
그리고 동그랗게 모은 여인들의 입속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후려치며 마지막 저항을 이어가던 면발은, 마지막 저항도 무색하게 개미가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첫 면을 흡입하는 소리가 끝이 나고, 이어서 들려오는 다섯의 감탄한 목소리.
맛있는 음식을 접한 감탄이 앞다투어 흘러나왔다.
“마, 맛있습니다! 노공. 면발이 아주 뭐랄까? 지금까지 먹어본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류공자님 정말 맛있어요! 어쩜 이리 맛있죠? 국물도 훌륭하지만, 면발도 대단합니다. 마치 뭐랄까? 지금까지 먹어본 면은 전부 이것의 아래인 듯한 느낌.”
-쪼옥.
“캬! 국물이 너무 맛있어. 가가, 짜장면도 맛있지만, 이것도 그것만 못지않은 것 같아요. 특히 면이 너무 맛있어요!”
“면발이 작경(嚼劲 쫄깃쫄깃) 합니다!”
아주아주 만족한 목소리.
금방 뽑은 수타면과 진한 육수의 조합은 청, 소소, 미미, 영영이 그리고 비연을 만족시키기 충분한 듯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다섯이 먹은 면이라고 해봐야 소면, 압면, 절면등의 비교적 탄력이 떨어지는 면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다섯의 만족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시식을 시켰으면 반응을 확인해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떻소? 노점에서 팔아도 괜찮겠소?”
“···”
그러나 내가 예상했던 극찬과 대답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면발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만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후루룩. 쪼옵.
-후룩. 쪼옥.
-후룹. 쪽쪽.
면발 끝에 매달려 나도 빨려들고 싶었다.
***
이틀 후 놀러 왔던 비연과 함께 모두 데리고 복주로 향했다.
비연에게 부탁했던 객잔이나 요릿집 자리 몇 군데가 매물로 나와 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요릿집이나 객잔뿐만 아니라 인테리어가 준비되는 기간에 장사할 노점의 위치라든지, 아니면 가판 같은 것에 대해서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복주.
“어떻습니까? 류 공자님.”
“글쎄. 건물은 훌륭한데···. 교 루주, 여긴 좀 위치가 애매하군요.”
비연을 대신하는 화화루의 바지사장 교송지를 데리고 벌써 다섯 번째 건물.
마음에 드는 건물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금액이야 세 가문에서 지원해주니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건물이 마음에 들면 위치가 너무 외각이고, 위치가 마음에 들면 건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구조가 불편하거나 식당으로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뭔가 다들 하나의 하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에 교 루주가 미안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류공자께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긴 했습니다. 한데 매물이 워낙 적어서 말입니다.”
“화화루가 있는 주변은 당연히 자리가 없겠지요?”
나온 건물이 없으니 소개해주지 않을 것이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화화루가 위치하는 곳은 번화가에서 살짝 해변 쪽에 치우친 위치.
엄청나게 좋은 위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저자와 항구로 가는 길목에 가깝고 아침에는 일출을 볼 수 있는 괜찮은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저녁에는 해변을 구경나오는 사람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지금은 서시설 때문에 2위가 되어버린 화월루도 바로 근처에 있어 여러모로 나쁘지 않은 위치였던 것.
“예, 그렇지 않아도 루주님 말씀이. 공자님께서 가까이 계시면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을 거라고 하셔서, 아무래도 제일 먼저 화화루 주변을 확인했는데. 나온 가게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비연도 우리가 근처에 있으면 서로 시너지를 받을 수 있으니 자기 기루 근처를 제일 먼저 살피라 한 모양인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몇군데 더 돌아보아도 마땅한 자리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기에 교송지에게 지금과는 다른 식으로 자리를 찾아달라 부탁하기로 했다.
“그러면 일단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제가 몇 군데를 찍어 드릴 테니. 그 주변에서 웃돈을 받고 건물을 팔 사람을 찾아보는 것으로 말이죠.”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지 못할 것은 드물다.
다만 가격이 안 맞을 뿐이지.
‘예산을 조금 더 신청하더라도 빨리 문을 열어야 하니까 말이지.’
이미 첫 장사에서 도박에 미친 놈에게 가게를 산 경험이 있으니, 현 주인들에게 적당한 금액만 제시한다면 현재 장사하는 가게들도 흥미를 보일 터.
교송지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확실히. 그 방법이면 나쁘지 않겠군요.”
“예, 시세의 두 배까지도 준다고 이야기해 보시죠.”
“알겠습니다. 공자님 맡겨만 주십시오.”
***
교송지와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아주 할 일이 많았다.
가구방(家具坊) 그러니까 송대의 가구공장이자 목공소를 찾아 사 구짜리 화로를 사용할 수 있는 노점용 수레를 계약하고, 식반행(食飯行)과 주행(酒行)에도 들러야 했다.
‘이럴 때는 아주 사람다운 나인데, 왜 여자만 엮이면···. 나사 빠진 놈처럼. 그래서 여난인가?’
한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철저한 준비 과정.
멋도 모르고 장사하다가 한번 혼쭐이 날뻔했었으니, 식반행과 주행에 먼저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할 것이니 약간의 약주는 필수였고, 음식을 팔 것이라면 식반행 가입은 의무니까 말이다.
그렇게 두 군데 모두 가입하고 나서 향한 곳은 송 시대 세무서인 상세원(商稅院).
세금 신고를 어찌해야 하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상세원에서는 세무신고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송나라에서는 노점인 탄(攤)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데, 노점의 세금 징수는 수레를 끌고 세금 징수원들이 근무하는 곳을 지나며, 2퍼센트의 과세(過稅)와 3퍼센트의 주세(住稅)를 합쳐 5퍼센트의 세금만을 내면 누구라도 장사 오케이였던 것.
그렇게 모든 행정 절차가 끝나고 닷새째.
집에서 여러 가지 고민 속에 빠져있는데, 청이가 달려와 서찰이 도착했다고 전해주었다.
“노공, 비연이 화화루 앞에 저희가 주문한 것이 도착했다고 연락해 왔습니다.”
“오! 그렇소?”
“예.”
신품은 아니지만 누군가 쓰던 것을 깨끗하게 수리한 고급 포장마차가 우리 앞으로 도착했다고 연락이 온 것.
네 개의 화구를 쓸 수 있게 화로가 네 개 달린 멋들어진 수레가 말이다.
“그럼 당장 내일부터 슬슬 장사를 시작해볼까나?”
송 시대 노점 탄(攤)으로부터 시작되는 국공을 향한 고난의 길.
그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