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8화 (258/344)

성공적 개시

.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가 복주에 도착해 장사 준비를 마치자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장사 준비라고 해봐야 그릇들이나 냄비들은 비연이 사람을 통해 준비해둔 상태고, 육수를 끓일 숯도 챙겨둔 상태. 

화화루의 주방에서 요리에 사용할 생강과 쪽파만 받으면 되었기에 준비 자체는 금방 끝나버렸다. 

정작 제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옷을 갈아입는 과정이었는데, 항구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팔 것인지라, 비단옷을 입고 나갈 수는 없었으니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던 것. 

나는 무릎아래 오는 짧은 바지와 민소매, 아내인 청이와 미미, 영영이는 송나라 평범한 여인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이었다. 

‘이 옷도 오랜만에 입어 보는구만.’ 

화화루 안쪽에 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기다리자, 곧이어 따라 나온 셋. 

평범한 여인들이 입은 수수한 옷을 입은 셋은 또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모습이었다. 

흰 티와 청바지만을 입었는데 매력 있어 보이는,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모습이랄까? 

셋을 향해 시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슬슬 출발할까?” 

“네, 노공.” 

“예, 낭군님.” 

“가가, 빨리 가요. 배고프니까.” 

우리가 아침 장사는 이미 끝나버린 이런 늦은 시간에 장사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아침 장사는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복주에서 본가가 있는 복청까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아침 장사를 하려면 전날 새벽에 잡은 생선을 다음 날 아침까지 보관해야 했는데, 봄임에도 연평균 기온이 이십 도에 이르는 복건은 무척이나 따듯한 상태. 

생선 보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이의 빙공으로 생선을 얼려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굳이 갓 잡은 생선이 나오는데 한번 얼었던 생선으로 요리할 이유가 없었던 것. 

조금 기다리면 새벽에 나갔던 배들이 생선을 잡아 돌아오니까 말이다. 

첫배에서 내리는 싱싱한 황어로 황어면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크한 목소리로 출발을 외치고 손잡이 쪽으로 들어가 수레를 당겼다. 

-삐걱. 

“아니, 수레가 왜 안 끌리지?” 

그러나 멋지게 출발하자는 말을 하고 손잡이를 잡아채 수레를 끌었지만, 움직이지 않는 수레. 

바퀴에 문제가 있나 싶어 내려서 바퀴를 살폈지만,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뭐냐? 설마 이것도 메이드인 중원이라 이거냐?’ 

꿈쩍도 하지 않는 수레에 당황한 것도 잠깐. 

그때, 청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노공, 제가 끌어볼까요?” 

“부인이 말이오?” 

“예, 제가 한번 내공으로···.” 

조금 위엄이 서지 않기는 했는데, 아내가 내공을 이용해서 끈다면 나보다야 당연히 힘이 좋을 것이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알겠소. 그러면 내 뒤에서 영영이, 미미랑 밀어보리다.” 

그렇게 나 대신 손잡이 안으로 들어간 청이. 

청이가 손잡이를 잡기에 얼른 뒤로 돌아가 미미와 함께 수레를 밀려고 했지만, 내가 수레 절반쯤을 지냈을 때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삐거덕. 

그리고 나와 미미가 수레를 밀기도 전에 청이의 손에 끌려 수레의 바퀴가 부드럽게 앞으로 굴러갔다. 

‘역시 내공 좋긴 좋구나.’ 

“역시 내공으로 움직이니 잘 움직이는구려.” 

“···” 

수레를 끌고 있는 청이를 칭찬하자 멈칫하는 청이. 

청이가 어색한 얼굴로 나에게 대답했다. 

“지, 지금은 내공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 

청이의 대답에 도리어 이번에는 내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가장의 위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말이었으니까. 

‘내가 힘이 그렇게 없었나? 이건 아닌데···. 무공을 빨리 익히든지 해야지 정말. 장인어른 장모님은 왜 무공 가지고 싸우셔서는···. 그나저나 무공과외 해주실 분은 언제 오시려나?’ 

내가 세 가문 통합 데릴사위가 되었음에도 무공을 전수받지 못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국공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대통합을 이룬 세 가문이었지만. 예전의 아내들처럼 무공에서만큼은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차 정실 대전이 끝나고 복주로 출발하기 전날. 

“저, 그런데 장인어른들. 저도 그 무가의 사위인데, 내공이나 무공 뭐 그런 거 하나쯤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서···. 그러니까···.” 

이왕 지원해줄 거 체력에 대한 부담도 있고 해서, 저녁 식사 중에 슬쩍 무공에 대한 것을 물었을 때였다. 

“그럼. 당연히 해야지! 아무렴 우리 사위인데 내 너를 그냥 두겠느냐? 내 직접 너에게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을 전수할 것이니라. 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아비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헛. 만류귀원신공이라면 당문의 직계만 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독왕 할배가 자기 식구는 확실하게 챙기는구만.’ 

당문의 직계만 배울 수 있다는 만류귀원신공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래, 사위도 자식이니 그 정도는 되어야지’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남궁 장인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독왕 어르신, 저희 사위는 요리사가 아닙니까? 독공을 익히고 있다면 그 누가 사위의 요리를 먹겠습니까? 사위도 어찌 보면 칼 쓰는 사람. 제가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을 전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 그렇지. 만류귀원신공이라고 해서 잠깐 혹했었지만, 요리사로 독공은 곤란하지. 큰일이 날 뻔했구만.’ 

그래, 예전에도 한번 당가의 무공은 곤란하다고 생각해놓고, 눈앞에 만류귀원신공이 던져지자 혹해버린 나. 

마음속으로 내 어리석음에 꾸짖으며 갈(喝)을 외치고 있을 때, 옆에서 제갈 장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위, 잘 들어 해보게, 다른 무공도 좋아 보이지만, 제갈가의 무공은 힘뿐만 아니라 오성을 뛰어나게 해주는 공능이 있는데, 자네처럼 똘똘한 사람은 아무래도 현원전단신공(玄元全檀神功)이 좋지 않겠나?” 

‘아하. 제갈가의 머리가 뛰어난 이유가 다 현원전단신공 때문이다? 이거 그러면 제갈을 또 버릴수도 없겠구나.’ 

나쁘지 않은 제안들에 고민할 때. 

거기에 더해지는 장모님의 제안까지. 

“사위님, 사위님이 청이의 괴질을 치료해 주고, 또 내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원을 동분서주했다는 사실을 들었는데, 이 장모가 어찌 그냥 있겠습니까? 본궁의 빙백신공(氷白神功)을 아끼지 않을 것이니 말씀만 하세요.” 

‘빙백신공을 배우면 냉장고가 없는 중원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인데. 잠깐 이거 뭔가 익숙한 패턴인데?’ 

더해지는 제안들에 기뻐한 것도 잠깐. 

뭔가 익숙한 패턴으로 흘러간다 싶었는데, 역시나. 

내가 혹해버리는 사이, 영약을 얻고 아내들이 서로의 무공을 배우라고 했을 때와 같은 패턴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 

이어질 상황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무슨 소리들인가! 내 다른 것은 양보해도 무공에서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네! 에잉!” 

“독왕 어르신 저희 남궁도 무공은 결코 물러서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 제갈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천, 천은 물러나세요. 여긴 같은 팔왕의 위치인 제가 나서겠습니다.” 

사위가 어떤 무공을 배우냐는 것은 정실 대전만큼이나 이분들에게 큰 자존심 문제였던 것.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결론지는 하나. 

“제 무공 연마가 세 가문의 불화를 가져온다면, 제가 그냥 아무 무공도 배우지 않고 범인으로 살겠습니다. 크흑.” 

중원 평화를 위한 뼈아픈 결단. 

마지막의 눈물은 의도치 않았는데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내 울음을 본 네 분이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니 청운아 불화라니. 우리 싸운 거 아니니라.” 

“그, 그럼요. 사위, 우리 싸우는 거 아니네.” 

“사위님, 싸움이라뇨. 저희 같은 팔왕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로 싸우지 않습니다.” 

그렇게 결국 무공 안 배우겠다고 내가 배를 째자, 내 몸과 오성에 어울리는 무공을 전수해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그러지 말고.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배우는 자의 재능에 따라 배울 수 없는 무공도 있는 것 아니겠나? 허니 청운이의 몸을 잘 살피고 그에 제일 어울리는 무공을 전수해주는 것은 어떻겠나?” 

“그거 괜찮은 생각이십니다. 독왕 어르신.” 

“확실히 그게 사위님에게 맞을 듯하군요.” 

해서 나의 몸을 제대로 한번 살피고, 나에게 맞는 무공을 가르쳐줄 사람을 의논해보시고 보내준다고 하셨는데 연락이 없는 것. 

아무래도 그 문제로 다시 싸우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 언젠간 연락이 오겠지.’ 

그렇게 무공에 대해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지 얼마 안 돼 도착한 장사 자리. 

부두 바로 옆 물고기와 화물을 하역하는 넓은 광장 한편, 큼지막한 반얀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곳이 우리의 장사 자리였다. 

“영영아, 얼른 가서 황어를 사 오너라. 청이와 미미는 옆에 우물에서 물을 좀 떠다 주겠소?” 

“알겠어요. 가가!” 

“알겠습니다. 노공.” 

미미와 청이가 물을 뜨러 가고, 영영이가 황어를 사러 간 틈을 타 장사 준비를 시작했다. 

숯을 넣은 화로에 불을 지피고, 아내와 미미가 떠오는 물을 받아 뜨거운 물을 끓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준비할 것은 반죽. 

더운 날인지라 반죽은 물을 살짝 덜 넣어 됨직하게. 

초보들은 더운 날이니 증발이 빠를 것이라 반죽을 더 질게 해야 하는 게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반대이다. 

날이 더우면 반죽이 더 부드러워지므로, 손에 잡으면 흘러내릴 정도의 반죽으로 수타를 쳐야 하니 반죽을 조금 됨직하게 해야 하는 것. 

밀가루와 물의 비율이 2:1이 아니라 2:0.95 정도의 비율로 맞춰주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나는 반죽하는 기계라는 심정으로 밀가루를 반죽해 준비하기로 했다. 

‘첫날이니 일단 백인분 정도만 준비해 볼까?’ 

한 번에 십 인분씩 열 번. 

숙련된 수타 기술자는 한 번에 십 인분의 면을 수타로 뽑아낼 수 있기에 열 덩이를 준비하는 것. 

나는 지금 그 정도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었고, 며칠 전 아내들에게 황어면을 만들어주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최대 육 인분 정도가 한계. 

반으로 나눠 오 인분씩 만들 예정인 것이었다. 

-촥! 촥! 

밀가루와 소금물을 섞어 반죽하고, 반죽을 탄력 있게 하기 위해 면판 위에서 반죽을 치기 시작했다. 

-텅! 텅! 

그러자 아직 태양이 머리 위로 떠 오르지 않아 한가한 광장에 반죽하는 소리만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대여섯 덩이의 반죽을 끝냈을 때였다. 

“가가! 오늘은 열여섯 마리 받았어요!” 

자기보다 큰 바구니를 들고 우리 쪽으로 흔들며 자랑하듯 뛰어오는 영영이. 

저번보다 한 마리 더 받았는지, 비린내가 날 법도 한데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래. 잘했구나. 영영아. 비린내 나니 이리 주거라.” 

“헤헤.” 

영영이에게 바구니를 받아 곧바로 황어 손질에 들어갔다. 

비늘을 벗기고 포를 뜨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소금과 후추로 밑간. 

물이 끓어오르는 두 개의 화로 옆에 곧바로 웍 두 개를 올렸다. 

그리고 먼저 밑간한 황어의 살점을 튀겨주었다. 

-치이이익. 

기름에 튀겨진 조기에서 흘러나오는 조기의 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아까부터 텅텅거리는 소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촤아악! 

마치 탕수육을 튀기듯 생선 살을 대량으로 튀기자, 노점 주변으로 퍼져가는 기름 끓는 소리. 

생선 살을 다 튀겨 수북하게 한쪽에 쌓아 기름을 빼주고, 남은 기름에 생강 뼈와 머리 내장을 볶아주자 폭발하는 향. 

-푸화아악! 

거기에 끓고 있는 솥에서 뜨거운 물을 떠 부어주자, 수증기가 확 하고 치솟으며 장관을 연출했다. 

-부글부글부글.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으니, 육수는 바로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밀가루에 비율대로 물을 섞어 청이와 미미, 영영이에게 한 덩이씩 맡겼다. 

“잘 섞어만 주시오. 반죽을 치는 것은 내가 할 테니.” 

“알겠어요. 가가.” 

“노공, 맡겨만 주세요.”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 육 인분의 반죽이 완성된 상태. 

첫 반죽을 꺼내 반으로 자르고 길게 늘여 수타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반죽을 몇 번 치댄 후 본격적으로 어그로를 끌기 위해 준비된 멘트를 내뱉었다. 

-텅! 

“한번을 치면 두 가닥이요!” 

-텅! 

“두 번을 치면 네 가닥이네.” 

-텅! 

“세 번을 치면 몇 가닥?” 

내 물음에 청, 영영이, 소소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덟 가닥!””” 

“그럼 한번을 더치면 총 열여섯 가닥이로구나~” 

내 외치는 소리와 물결치는 수타의 면. 

아내들의 합창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면이 이백오십여섯 가닥이 되었을 때. 

모여든 사람 중 하나가 참지 못하겠던지 나를 향해 물었다. 

“그, 면 요리 얼마요? 내 한 그릇 주시오! 좋은 구경했으니 그냥 갈 수는 없지!” 

그러자 그 남자의 주문과 함께 주문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여기, 여기도 주시오. 묘기 같은 재주를 보았는데 맛도 보아야지.” 

“우리도 두 그릇 주시오.” 

“여기도 한 그릇 주시오!” 

노점 개시 아주 성공적이었다. 

딱 일주일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