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샴페인
.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루는 장사진.
황어면을 파는 우리 노점인 탄 앞에 닷새째 펼쳐진 광경이었다.
수타를 치는 광경이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이틀째 비연과 남궁현 형님의 지원 사격까지 이어지니, 노점의 장사가 아주 호황을 맞아 순풍을 타고 순항하고 있었던 것.
‘둘째 날 비연과 형님 도움이 좋았지.’
장사 이틀째 되는 날 장사하는 우리 노점에 그릇을 들고 찾아와 포장을 주문하신 형님.
황어면을 주문하는 남궁현 형님이 눈을 찡긋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황어면 한 그릇 담아 주시게. 저, ‘화화루의 비연’님께서 어제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말이지.”
무슨 의도인지는 당연히 알 수 있었고, 받아먹지 못하는 놈은 바보가 아니던가.
역천의 눈치를 발휘해 형님을 향해 손을 싹싹 비비며 대답했다.
“화화루 최고의 기녀, 아니지, 복건 최고의 기녀 비연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르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최고의 실력으로 면을 뽑아 올리겠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화루의 비연이라면? 화화루의 제일 높은 기녀가 아닌가?”
“최고 기녀라면 고급스러운 음식을 많이도 먹어보았을 텐데, 화화루의 비연이 저것이 맛있다고 했다고? 얼른 가보세!”
“화화루의 비연이라는 기녀가 저것을 먹고 싶어 사람을 시켜 사 간다지 뭐에요?”
“어머! 저도 그러면 이따가 저것이나 먹어봐야겠네요.”
아무래도 남자들 사이에서 화화루의 비연이라는 위치는 절벽 위의 꽃.
또한 여자들에게서는 연예인 같은 동경의 대상.
꺾지는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연예인 같은 존재인 그녀가 맛있다고 했다니, 내 수타 퍼포먼스와 개업 버프까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뽑아낸 것이었다.
그 후로는 입소문이라서 사람들이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것이 닷새째까지 이어진 것.
역시나 오늘도 점심때가 되자, 사람들의 주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 황어면 두 그릇 내어주게.”
“예, 어르신, 잠시만 기다리셔요. 은공 두 그릇 부탁드려요.”
“알겠소. 소소, 거기 튀김 올린 채반 좀 이쪽으로 내어주시오.”
“여기요. 은공.”
“여기도 황어면 한 그릇 주시게. 어제 먹어보고 자꾸 생각나서 다시 왔다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밀어닥치는 사람들의 물결에 정신이 쏙 빠질 정도.
황어면 세 그릇을 신속한 손동작으로 말아내고 소소에게 얼른 부탁했다.
“소소, 그것만 정리하고 물을 길어다 주겠소? 육수가 다 떨어질 것 같아 좀 더 끓여야 할 것 같소이다.”
“알겠습니다. 은공.”
그렇게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계속된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장사가 끝날 때쯤, 미리 준비해둔 반죽 통을 살피자 남아있는 반죽 한 덩이.
”응? 조금 남았네?
모두 팔았다고 생각했는데, 반죽 통 속에는 반죽 한 덩이가 남아있었다.
손님이 많은 통에 정신이 없어 반죽량 계산을 잘못했나 싶어, 남아있는 수타 반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육수통과 튀김을 남아둔 채반을 마저 확인하자 역시나 조금씩 남아있는 재료.
어제보다 손님이 몇 명 적었던 모양인지라, 장사하느라 늘여놓은 의자를 치우고 설거지하는 영영이와, 소소, 미미를 향해 물었다.
“배고프면 혹시 황어면을 먹겠소? 마침 재료가 남았는데?”
“좋아요! 가가!”
“영영, 아침에도 한 그릇 먹었잖아요.”
“하지만 계속 일했더니, 배고픈걸. 나는 소소랑 다르게 계속 저자를 다녀왔다고.”
“저도 좋습니다. 낭군님.”
냉장고도 없으니 생선을 많이 사 올 필요는 없었고 그때그때 사다 날랐더니 배고프다는 영영이.
나는 영영이와 둘을 위해 다시 가장 맛있고 정성이 가득한 황어면을 끓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해지는 항구에 앉아, 청이가 빠진 인원으로 조촐한 축하 식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본가에서 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나를 업어서 데려올 미미와 물품 구매할 영영이를 제외하고 청이와 소소는 로테이션으로 집을 지키는 중이었기에 부득이하게 청이가 빠져 버린 것.
청이와는 나중에 축하하기로 하고, 우리끼리 그렇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조촐하게 순항하는 장사를 축하했다.
-후루룩.
-후룩.
“가가, 역시 가가세요. 저희 이러다가 금방 부자 되겠어요! 그러면 매일매일 맛있는 것도 먹고. 아, 생각만 해도 좋다.”
“은공의 요리실력은 역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특별한 재주인 것 같습니다.”
“낭군님의 사람이 되어 행복합니다.”
‘좋구나.’
사랑 가득한 칭찬과 함께, 순항하는 배처럼 국공이 되기 위한 첫 장사는 순풍을 타고 있는듯 했다.
***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말이 있다.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전에 미리 자축하다가 방심해 실패하는 것을 가리키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자주 쓰이는데. 장사 칠 일째 접어든 내 감상이 바로 그랬다.
분명 이틀 전 소소, 영영이, 미미와 노을 지는 항구에서 황어면을 먹으며 축하했는데, 어제 약 일할 정도 사람이 부족한가 싶더니, 오늘은 절반으로 뚝 떨어진 손님.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지? 뭐가 문제지?’
장사가 조금 이르게 끝난 늦은 오후
처음에는 제일 먼저 습관과 같이 빈 그릇을 확인했다.
“청, 미미, 혹시 손님들이 식사하고 가신 그릇에 남은 음식은 없었소?”
오늘 설거지는 청이와 미미가 맡은 상태.
혹시 남은 잔반이 있던 것은 아닌가 물었지만, 둘은 아니라고 대답해왔다.
“아뇨. 남은 음식을 넣으라고 주신 통에는 노공께서 요리하고 남기신 뼈만 남았습니다.”
“네, 오늘 한 번도 비우지 않았거든요.”
잔반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요리에 대한 불만이 적었다는 말.
오늘 손님이 줄었으니 어제와 그제는 어땠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영영이와 미미에게 다시 물었다.
“영영아, 어제는 어떠했더냐? 그리고 그제는?”
내 물음에 영영이와 미미가 서로를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제도 오늘이랑 비슷했어요. 남긴 건 거의 없었거든요.”
“맞습니다. 낭군님. 어제도 버린 것은 생선 뼈 정도에요.”
계속해서 불만 없이 손님들이 만족하며 식사하고 갔는데 손님이 줄어든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아 미미와 영영이에게 부탁했다.
“영영아 그리고 미미, 둘이 항구와 저자에 나가 혹시 어제와 그제 그리고 오늘까지 일이 적어졌다거나,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적었던지 뭐 그런 것을 확인해 줄 수 있겠소?”
“알겠어요. 가가.”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낭군님.”
혹시 우리 모르게 항구에 사람이 줄었거나, 하역하는 배들이 예전과 달라 일하러 나온 사람이 줄었거나, 같은 그런 장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해보라 부탁한 것.
그렇게 둘이 항구와 저자 쪽으로 사라지고, 청이를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했다.
“이상하군. 내 황어면을 만들어줄 테니 기다려보시오. 혹시 맛이 이상해졌는지 확인해주시오.”
“알겠습니다. 노공. 그런데 요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원인이 아닐까요? 배들이 멀리 나가 돌아오지 않은 배가 많다든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영영이와 미미가 확인하러 갔으니 조금 있으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둘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절반이나 남은 재료로 황어면을 만들었다.
특별히 이번에는 과정마다 재료의 맛과 상태를 살피면서 말이다.
그렇게 네 그릇의 황어면이 만들어지자, 항구로 갔던 미미와 저자로 갔던 영영이가 돌아와 보고했다.
“가가, 배는 삼 일째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요. 별다른 일도 없었고.”
“낭군님 항구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배는 삼 일째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일하러 나온 사람도 비슷하다고 하네요.”
외부적인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
‘그러면 요리가 문제란 말인가?’
“다들 한번 먹어보시오. 그리고 혹시나 맛이 이상한지 좀 확인해주시오.”
“알겠습니다. 노공.”
“네, 가가. 미미 언니 우리 같이 먹어봐요.”
“그래, 영영아.”
셋을 향해 완성된 황어면을 내밀었다.
튀겨진 황어 살에서 흘러나오는 고소한 황어 특유의 향과 은은한 생강 향, 진한 육수와 쪽파를 잘라 위에 올린 데코.
거기에 한층 더 쫄깃해진 면발.
황어면은 초기 버전보다 훨씬 완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수타면을 우물물로만 반죽했지만, 이틀째부터는 면수가 생겼기에 면수까지 넣어 반죽했으니까 말이다.
면을 끓인 면수를 넣으면 면의 탄력이 더 증가하기에, 면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어 면발은 탄력 있고 쫄깃해져 최적인 상태인 것이었다.
해서 이보다 더 퀄리티가 좋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로 만들어 셋에게 황어면을 선보이자, 셋이 그것을 맛보고 역시나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흐응. 너무 맛있어요. 가가.”
“저는 매일 먹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노공.”
“맛은 날마다 좋아져 오늘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면발을 흡입하고 있는 영영이게 물었다.
-후릅.
“영영아 혹시 황어는 문제없었더냐?”
-쪼옥.
그러자 영영이가 마지막 면발을 빨아들이며 대답했다.
“아, 전 대백이 그러는데, 이제 황어가 씨알도 굵어지고 많이 나와서, 내일은 많이 잡히면 철전 열 개에 스무 마리 주신다고 그랬거든요. 그거 말고는 달라진 건 없어요. 황어는 전 대백 아들이 매일 잡아 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제 코에도 그렇게 느껴졌어요.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 것도 같고요.”
전 대백 그러니까 전 씨 아저씨라는 사람은 영영이가 저자에서 물고기를 강탈해오는 아저씨.
시장 구경을 나왔을 때 처음으로 우리에게 황어를 파셨던 그 상인이다.
영영이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시는데, 그래도 죽는시늉하면서도 거래를 이어가시는 분 말이다.
영영이에게 매일 털려서 조금 불쌍한 분 같지만, 정말 이문이 남지 않으면 황어를 팔지 않을 텐데, 죽는시늉하면서도 영영이에게 물고기를 꾸준히 팔아주는 것을 보면, 마냥 손해를 보는 것 같지는 않는 분.
이 복주 어시장에서 영영이와 일수불퇴(一手不退)의 공방전을 이어가는 분이랄까?
영영이가 구매의 창이라면 판매의 방패 같은 그런···.
내가 아는 그의 얼굴을 생각해보아도, 나이 많은 중년인에 사람 좋게 생긴 사람이기에 오래된 황어를 파실 그런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렇게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이쿠. 영영 아가씨가 내 이야기를 다 하네.”
“어, 전 대백!”
첫날 시장 구경을 왔을 때 비단옷을 입고 있던 것을 들킨지라, 우리 신분을 대충 짐작하고 있는 전 대백이 우리 쪽으로 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영영이에게 씩 웃으며 물었다.
“아가씨, 당연히 이놈 칭찬을 하시는 거겠지요?”
“당연하죠!”
“다행입니다. 저는 또 물건 팔고, 물건이 좋지 않아 욕이라도 먹는 것은 아닌가 했군요. 하하.”
너스레를 떨며 대답하는 전 대백.
그 모습에 영영이가 어찌 이쪽을 찾아왔는지를 물었다.
아직 장사가 끝날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야 손님이 끊겨서 그렇지만, 아직 어시장은 한창 장사할 시간이었던 것.
“에이, 제가 물건도 좋은 가격에 사고 설마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오늘은 들어온 물고기를 다 팔아 장사가 일찍 끝나서 말입니다. 아가씨가 들락날락하면서 귀를 외쳐대는 걸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요즘 장사가 잘되거든요. 하하.”
영영이와 전 대백의 거래가 시장의 명물이 되었는지, 덕분에 어그로가 끌려 장사가 잘되는 모양.
그 이야기를 들은 영영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물었다.
“그러면 제 덕분에 장사가 잘됐으니, 내일은 철전 10개에 스물두 마리?”
“어이쿠! 아가씨 저희 식구 다 굶어 죽습니다!”
그러자 지체하지 않고 전 대백이 죽는시늉을 하고, 그의 말에 영영이가 입을 삐쭉였다가 다시 물었다.
“전 대백 아들 배에 살찐 거 봤거든요? 그냥 두면 어선이 가라앉겠어요. 엄살은 그만 부리고 그러면 한 마리만 더?”
“스무 마리 하세요. 아가씨. 제가 집에 가서 구워 먹을 거 몇 마리 더 챙겨드릴 테니.”
“알겠어요. 그럼, 헤헤”
역시나 그 짧은 사이에 공방을 주고받은 둘이 합의를 이루고 서로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시장 장돌뱅이 고수들의 세계.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에 감탄할 때, 전 대백이 가판 쪽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아, 그런데 설마 오늘 장사 끝난 것입니까? 매일 사람이 많아 사 먹을 수가 없어, 오늘은 나도 먹어볼 수 있을까 해서 왔더니, 장사가 끝났나?”
“아, 오늘은 손님들이 좀 적네요. 그래서 일찍 끝내려고요. 앉으세요. 매번 신세를 지고 있으니 제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어이쿠! 역시 공자님. 감사합니다.”
전 대백이 그렇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다시금 황어면을 만들어 전 대백을 대접했다.
“자, 여기 드셔보시죠.”
잘 만들 황어면을 전 대백을 향해 내밀자, 손을 비비며 기뻐하던 그가 젓가락을 들어 첫 면발을 들이켰다.
-후루룩.
그리고 그릇에서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라 우리를 바라봤다.
“커흡! 켈륵! 켈륵!”
맛은 이상이 없는지 전 대백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청, 영영이 소소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다 같이 전 대백을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자신들과 다른 이의 입맛은 내 요리를 어찌 생각하는지 말이다.
쏟아지는 시선에 사레가 들린 듯 전 대백은 한참 기침을 쏟아내고는 물었다.
“제,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켈륵!”
“아, 아뇨 그것이 아니라···.”
그에게 아무래도 우리가 그를 주시하고 있던 이유를 설명해야 했기에 손님이 줄어 걱정이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 대답을 들은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하긴. 이거 두 번은 못 먹겠는데요?”
“네에!?”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나보다 더 놀란 영영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전 대백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