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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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소 두 마리를 단박에 때려잡으시고, 호쾌한 모습으로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청운이, 내 부임하는 대로 사람 하나를 붙여줄 테니, 고기가 필요하면 필요할 때마다 잡으시게. 다만 너무 어린놈은 안되네. 이제 일을 못 하는 소들이야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 먼저 잡은 것이라고 하면 되지만, 어린놈은 나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알겠나?”
“어이쿠. 형님. 그만해도 감사합니다.”
“감사는 이 사람. 우리 사이에 그 무슨 섭섭한 소리인가? 아, 그리고 조만간 제식들을 데리고 한번 관에 들리시게 알겠지? 내 부임했으니 식사라도 한번 하세.”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내 부임하는 길이라 이만 가볼 테니, 나중에 보세나. 제식들도 나중에 봅시다.”
“형님, 살펴 가십시오!”
“살펴 가세요. 포형인.”
“살펴 가셔요.”
부임하는 길에 동생을 위해 신선한 소고기와 함께 소고기 프리패스를 선사하시고 멀어져 가는 형님.
정말 무림의 협객다운 멋들어진 모습이었다.
동생에게 인정을 베풀고 시크한 모습으로 배를 출렁거리며 멀어져가는 모습.
형님의 뱃속에는 의와 협이 가득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이것이야말로 참 중원! 참 꽌시야 말로 참 의와 협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형님이 늠름한 모습으로 멀어지는 것을 배웅하며 감격에 젖어있을 때였다.
형님을 배웅하느라 이 사건으로 가장 놀랬을 한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놀란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 청운이 아니, 청운 공자님, 새 복주지주(福州知州) 어른과 아는 사이 아니, 의형제 사이였어? 아니, 셨습니까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푸줏간 주인인 주 아주머니.
형님을 배웅하는 사이 형님이 어떤 신분인지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으신 모양이었다.
서민 체험하는 것을 이미 들킨 상황인지라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이럴 때는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니까.
“주 아주머니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시는 분인데, 형님이 높은 분이지 제가 높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 그런가요?”
“그냥 평소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리 존대하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소문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야 일개 요리사니 이런 것이 알려지면 좀 불편하거든요.”
“그, 그럴까. 그럼? 호호. 아니, 복부 지주 어른의 의형제면, 내가 아주 잘해야겠수! 그리고 소문은 걱정마슈. 내가 푸줏간 거리 식구들은 다 입단속 시킬 테니깐!”
장사꾼이니 새 복주지주의 의형제인 나에게 잘 보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주 아주머니는 좀 더 싹싹해진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아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잠시만 기다려! 소고기 필요하다고 했었지!”
그렇게 나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안으로 뛰어가신 주 아주머니.
안에서 그야말로 기절했던 소를 잡는 소리가 나더니, 주 아주머니의 식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좌판에 소고기를 꺼내 가져오기 시작했다.
-쿵!
네 개의 다리와 여섯 조각으로 자른 몸통.
그리고 염통과 간을 비롯한 내장들.
이어서 소머리와 소꼬리까지.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나자, 대충 고기를 토막 낸 주 아주머니가 연쇄 살인마 같이 피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나타나 어떤 고기가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래, 어떤 부위를 줄까? 그런데 그건 알아야 해. 늙은 소다 보니 많이 질겨.”
확실히 아주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송의 소라는 것은 전생처럼 축사에서 살만 찌우는 소가 아니라, 짐마차를 끌거나 쟁기를 끄는 일소다 보니, 근육이 발달해 전생의 소고기보다야 훨씬 질긴 것이 보통인데.
거기에 전생처럼 몇 개월 미만을 잡아서 도축한 것도 아니고, 늙어 죽기 직전인 소를 잡은 것이다 보니 고기가 질길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 질긴 것 정도가 아니라 고무줄일 것이 분명했다.
‘어느 부위를 가져간다?’
널린 쇠고기를 보며 잠시 고민했다.
어떤 우육면을 만들지를 말이다.
내가 만들 것은 중원제일면인 우육면, 하지만 우육면은 한 종류가 아니다.
크게 분류해도 우육면은 네 종류나 되는데.
난주 우육면(兰州牛肉面).
양양 우육면(襄阳牛肉面).
대만 우육면(台灣牛肉麵).
광둥 우육면(廣東牛肉麵).
난주 우육면은 맑은 국물이 특징적인 면으로 소고기를 무와 푹 끓여 깊은 국물 맛을 내고, 그 위에 고수와 파 그리고 고추기름을 올려 먹는 요리.
양양 우육면은 고추와 향신료를 넣고 끓인 소기름인 우지에 삶은 고기를 넣고 푹 끓여 면 위에 부어 먹는 요리인데, 우지 기름과 국물이 각각 절반 비율인 기름 폭탄 요리.
대만 우육면은 중국 전통식이라고 볼 수 없는 요리인데 일단 다른 걸 떠나서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캘리포니아 식이라고도 부르는데 큼지막하게 썬 토마토와 당근이 들어가는 소고기를 넣은 우육면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둥 우육면은 사태와 쇠심줄로 끓여서 아주 걸쭉하고 진한 국물맛이 특징인 우육면.
‘토마토가 들어있는 대만식은 제외하고, 고추가 없으니 양양식도 제외하면, 조금 들어가는 고추를 화초로 대신할 수 있는 난주식 아니면 광둥식 그러니까 홍콩식으로 가야 하는데···.’
고추가 없으니 고추가 최대한 적게 들어가거나 화초로 대체할 수 있는 난주, 그리고 광둥식만이 남은 상태.
잠깐 고민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푹 끓인 양지와 쇠심줄을 넣고 진득하게 끓인 광둥식이 무엇보다 항구 노동자들이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광둥식의 특징이 쇠심줄에서 흘러나온 콜라겐 때문에 아주 진한 풍미를 자랑하기 때문.
곧바로 주 아주머니에게 힘줄과 사태를 부탁했다.
“주 아주머니, 소의 허벅지와 힘줄 그리고 뼈를 좀 잘라 주시겠습니까?”
“응? 아니, 요리에 쓴다면서 괜찮겠수? 하필 제일 질긴 부위로만 달라고 하네?”
“예, 괜찮습니다. 아, 버리는 소의 기름도 챙겨주시지요.”
“그럼 알겠수. 잠시만 기다려봐.”
-텅텅!
-서걱!
내 부탁에 주 아주머니의 채도가 도끼처럼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
다음날 이른 새벽.
우리 가족은 모처럼 아무도 빠지지 않은 총출동 상태로 복주로 향했다.
그리고 걸리면 감옥 코스 확정인 성벽을 무단으로 넘었다.
‘요리하려고 계속된 범법행위라니. 확실히 국공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
국법을 어기고 소를 때려잡는지 하루 만에 다시 국법을 어기며 성벽을 넘어야 했던 것.
우육면을 끓이려면 새벽에 복주로 들어가야 했는데, 새벽에는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월담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 방면에서 아주 유능한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그의 코치로 성벽을 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래 그 누구도 아닌 미미 말이다.
본인은 도둑질이 싫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배운 도둑질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새 요리인 우육면을 준비하려면 내가 복주의 객잔이나 화화루의 형님이 계시는 곳에서 당분간 지내야 한다니 펄쩍 뛰며 월담을 제안한 것.
“호, 혼자 복주에서 지내신다고요?”
“그렇소. 아무래도 고기가 질기니 우육면을 오래 끓어야 할 것인데, 그러자면 새벽같이 복주에 도착해야 하는데 해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아, 안 됩니다!”
“응? 아니 된다니?”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 그래요. 새벽에도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응? 그런 방법이 있었소?”
“그, 그럼요. 모, 몰래 들어가면 됩니다.”
“응?”
미미의 계획대로 하니 월담은 너무 손쉽게 이루어졌다.
송 시대 관병들이 중국 역사상 가장 빠진 관병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미미의 계획대로 영영이가 암기를 던져 관병들의 시선을 돌리고, 미미가 나를 업고 복주의 성벽을 넘었다.
그리고 청이가 영영이와 소소를 성벽 너머로 던져주고 혼자 넘어오자 완벽한 침입.
가족 도적단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니, 이거 왜 스릴있고 재미있지?’
아무튼 그렇게 담을 넘은 우리는 성벽을 넘어 곧장 화화루로 향했다.
중원제일면이자 곧 천하제일면을 선보여야 했기 때문.
그렇게 미미의 등에 업혀 화화루 앞에 도착하자, 이미 꺼져버린 등롱.
화화루는 아주 조용했는데 아마도 영업이 끝나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형님과 약속을 해둔 상태.
화화루의 뒷문으로 가 조심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닫힌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청운이 자네인가?]
[예, 형님 저입니다.]
[오라버니, 저희 왔어요.]
-삐거덕.
화화루의 뒷문이 열리고 형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안으로 들이셨다.
“어서 들어오게. 어서 오너라 소소야. 내 어제 들은 대로 살짝 준비해놓고 있었네.”
“그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해요. 오라버니.”
“감사라니 그런 소리 말게. 내 목숨을 구한 자네에게 내 뭔들 못 해주겠나.”
화화루의 장사 시간은 이른 새벽까지.
형님은 우리를 기다리기 위해 잠을 조금 미루실 수밖에 없었는데, 그사이 미안하게도 일부 재료를 준비해 주신 모양이었다.
형님을 따라 얼른 부엌 쪽으로 향했다.
우리가 이렇게 이른 새벽 화화루를 찾은 것은, 우육면을 만들기 위함인데, 그 우육면 중에서도 육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황어면이야 조기의 특수성 때문에 조금만 끓여도 진한 고기 육수가 완성되지만, 사태와 소의 힘줄로 만드는 요리는 최소 서너 시간은 푹 끓여줘야 했기 때문.
전생처럼 압력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긴 시간 은근한 불로 끓여야 사태와 힘줄이 부드럽게 변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형님을 따라 화화루의 부엌으로 들어가자, 흘러나오고 있는 소고기 국물의 진한 향.
재료 정도를 손질해주셨나 했더니 미리 고기를 삶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부글부글.
형님이 내게 보라는 듯 고개를 돌린 자리 뒤, 엄청나게 큰 솥에서 고기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네가 이야기했던 방법대로 한번 살짝 끓여 거품과 물을 전부 버리고, 월계(月桂)의 잎을 넣고 새로 끓이고 있었는데 맞는가? 괜히 실수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구만.”
월계(月桂)의 잎은 월계수의 잎을 가리키는 말.
아무래도 늙은 소의 고기이니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서 핏물을 빼 한번 데치고, 월계수를 넣어 삶는다고 했더니 그대로 하시고 계셨던 모양.
미소를 지으며 형님에게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잘하셨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먼저 들어가 주무시지요.”
“아니네. 내 자네가 하는 요리를 어깨너머로 보고 싶어서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단전에 문제가 생겼어도 무공을 배운 신체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그 정도는 괜찮네.”
“알겠습니다. 형님. 어, 그러면 같이하실까요?”
내가 만드는 요리를 가까이 보고 싶으신 듯하며 같이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하자, 형님이 기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그래도 되겠나? 자네 요리하는 모습은 몇십 년 무술을 연마한 고수의 초식을 보는 그런 느낌이라서 말이야. 노점에서 보고 잊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내 거들 테니 한번 그 재주를 다시 보여주시게.”
‘부끄럽게스리···.’
면전 칭찬에 조금 당황하며 일단 준비된 재료를 살폈다.
내가 형님에게 부탁드렸던 재료는 향신료로 귤피(橘皮), 계피(肉桂), 회향(茴香), 팔각(八角), 화초(花椒), 등초(藤椒), 마초(藤椒), 정향(丁香).
채소로는 생강, 무, 배추. 쪽파.
그리고 조미료로 사당(沙糖). 두반장, 소흥주,
고기로는 사태와 사골 쇠심줄.
향신료는 작은 그릇들에 담겨 윤기를 내는 모습으로 준비되어있었으며, 채소는 잘 씻겨 다듬어져 있었다.
그리고 고기는 솥에서 잘 끓고 있는 상태.
‘준비가 완벽하구만. 비연한테 미안해서 형님을 못 빼 오는 게 아쉽구만.’
원래 처가 식구들과 함께 사업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형님의 꼼꼼함에 욕심이 났다.
노점 일을 아내들이 돕고 있지만, 아무래도 아내들은 잔심부름 정도이고 요리를 직접 도울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
내 제자인 가련이는 현재 선공인 정화에게 맡겨진 상태니까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련이는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우리가 이른 봄에 난주로 출발하면서 제갈가에 편지를 보내 가련이를 정화에게 보내두라고 했던 터라 이동 기간을 생각하면 얼마 배우지 못했을 테지만, 일단 가련이를 다시 복주로 보내달라 개봉에 편지는 보내둔 것.
내가 이제 정착할 것이니 직접 가르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아 주방일은 나 혼자 하고 있으니, 수타에 다른 작업까지 좀 힘에 부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가련아! 어서 오거라 스승님 죽겠다!’
그러나 힘들다고 장사를 쉴 수도 없는 일.
가련이 생각에서 그만 빠져나와 형님을 향해 외쳤다.
“자 그러면 저와 함께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을 만들어보시지요!”
그러자 놀란 목소리로 화답하는 형님.
“처, 천하제일면? 하하하. 정말 호쾌한 이름이구만! 좋네! 해보세!”
천하제일 고기 폭탄 우육면 요리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