꽌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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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이던 성문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하게 흐르는 강을 따라 반얀나무들이 시원하게 자라있는 복주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스승님이 계시고, 그 본가가 있는 곳이구나···.”
성문 안으로 들어서 복주의 전경을 본 가련이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개봉과는 또 다른 느낌.
개봉이 더 화려한 도시이긴 했지만, 가련이가 복주에 남다른 감상을 가지는 것은 그녀의 하나뿐인 스승인 류청운이 이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류청운.
스승이면서 가련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어두운 삶에서 자신과 동생들을 건져낸 은인, 그리고 이제 남을 삶을 다해서 스승으로 섬겨야 할 분.
가련이는 두 손은 공손히 가슴 위로 올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스승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절망뿐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횡액(橫厄).
술 취한 무림인에게 무참히 살해당하신 부모님.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빚쟁이들.
요릿집과 살던 집까지 빼앗기고 가련이는 동생들과 심우현 외곽의 폐가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의 삶은 고난뿐이었다.
가련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부모님이 친우였던, 식반행이나 주행의 수장이 가끔 일을 주긴 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
굶어가는 날은 늘어나고 있었고, 동생들은 기운이 없이 폐가에 누워 하루하루 가뭄의 풀처럼 시들어갔다.
결국 마지막 모아둔 양식으로 밥을 해 먹고 사흘째, 이젠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동생들의 밥을 한 끼라도 더 해먹이고 부모님 곁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찾은 저자에서, 식반행과 주행의 수장이 남자들을 끌고 어디로 향하는 것을 발견한 것은.
가련이는 그 행렬에 끝으로 홀리듯 다가가 얼굴에 큰 점이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 다들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아, 현령님의 의형분이 객잔을 여셨다고 해서, 거기 점소이가 필요하다 해 가보는 길이라오.”
‘저, 점소이?’
그 말에 순간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잔칫집에 가서 일을 거드는 그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 말고, 점소이는 한번 일하기 시작하면 한해는 일할 수 있었던 것.
점소이라는 말에 꺼져가는 장작불 같은 가련이의 삶에 불씨가 다시 붙는 듯했고, 가련이는 그 소리에 얼른 앞으로 달려가 자신도 점소이를 잘 할 수 있으니 같이 가고 싶다고 간청했다.
하지만 둘의 대답은 싸늘했다.
“어찌 너같이 둔한 아이를 현령님의 의형제에게 보이겠느냐! 안된다!”
“네 사정이 딱한 것은 알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아, 쓸데없이 크기만 한 가슴.
요즘 굶어서 많이 빠진 상태였는데, 또 가슴이 가련이의 발목을 잡았다.
이 가슴 때문에 둔한 아이라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던가···.
그래도 마지막 희망.
가련이는 몰래 그들의 뒤를 밟았고, 모든 점소이들의 자신들의 재주를 선보이고 불통을 받았을 때, 미친 듯이 뛰어 들어가 그분께 매달렸다.
“공자님, 부모께서 요리점을 오랫동안 하셨고, 제가 그 일을 오래 도와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제발 기회를 주십시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동생 둘을 홀로 돌보고 있어 일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자 자신을 절망 속에서 건져준 한마디.
“통(通)!”
그 한마디에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왜? 어째서? 왜 통인 것이지? 무슨 이유 때문이지?’
호쾌한 통소리에 대체 자신이 어찌 통을 받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상황.
미색이라도 고우면 모르겠지만 자신은 추하고 둔하다는 소리를 듣는 여인.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분이 자신을 통이라고 할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
심지어 그분은 추한 가련이의 외모를 보고, 복 있다고까지 말씀해 주셨다.
새카만 피부에 쓸데없이 큰 가슴.
둔하고 못생긴 가련이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분의 말로는 눈 옆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점이 복점이라나?
그 후로 그분은 가련이의 모든 것이 되었다.
자신과 동생들을 죽음에서 건져냈음은 물론이거니와,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은자를 하나씩 주시는 감사함과 자신을 믿고 가게를 맡겨 주시는 믿음을 보여주시니, 당연히 모든 것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렇기에 그분께서 자신의 혀를 귀한 보물이라 해주시고 일문을 이루자고 했을 때, 당연히 그것이 자신을 첩실로 받아준다고 하시는 줄 알아버렸고.
그 생각만 하면 부끄러워 지금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
-두근두근.
‘다시 생각해도 부, 부끄럽구나.’
솔직히 가련이 자신이 너무 바보스럽긴 했다.
그분은 제갈가의 접각부이신 대단한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제 유명한 가문인 당가, 남궁가의 여자를 비롯해 부인이 넷이나 된다는데, 자기 같은 미천한 것이 옆자리를 생각하다니.
제자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가련이는 복주를 바라보며 다짐했다.
스승님의 모든 것을 이어받기로.
‘부인들께서는 평생 스승님 옆에 계실 뿐이지만, 그분의 모든 의지(意志)를 잇는 것은 내가 될 거야.’
그렇게 다짐한 가련이는 자신을 이곳까지 호위해온 두 무사를 따라 총총히 복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을 기다리고 계실 스승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
“어서 가시죠, 가련 소저.”
“예, 무사님.”
그렇게 복주에 들어선 가련이 일행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요릿집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복주에 도착하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도 대충 육포로 때우고 길을 재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제일 먼저 늦은 식사를 하려 했던 것.
그렇게 길을 물어 꽤 괜찮은 식당 이층으로 찾아가 자리를 잡자 무사 하나가 가련이를 향해 말했다.
“가련 소저, 일단 제가 식사를 시키고 요리가 만들어지는 사이 화화루라는 곳을 찾아 접각부님께 연통을 넣고 오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무사님.”
“자네는 남아 소저를 잘 지키고 있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무사 하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요리를 시키고, 스승님께 연통을 넣기 위해 사라진 후, 남은 가련이와 무사가 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꾸루룩.
갑자기 어디선가 꾸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가련이와 같이 요리를 기다리던 무사가 배를 움켜주고 가련이에게 미안한 듯 말했다.
“가, 가련 소저 내 잠시 측간 좀···.”
“네? 네, 그러세요. 무사님.”
가련이는 무사의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무사는 다리를 꼬아대며 재빨리 아래층으로 사라졌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였다.
-와장창!
‘뭐, 뭐지!?’
어디선가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난 것.
가련이는 상황을 살필 새도 없이 재빨리 식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
복주에서 유명한 요릿집 이층.
황윤이 분노에 차 술병으로 무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또 실패했다고!?”
“크흑···. 면목 없습니다. 공자님.”
그가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을 모욕한 제갈가의 접각부 때문.
고작 남궁가에서 쫓겨나 이제 남궁도 아니라는 놈의 뺨 한번 올려붙였다고, 자기의 계집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까지 패게 시키다니, 이 원한을 갚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의 복수 대상은 놈의 첩으로 보이는, 자신을 두드려 팬 여자의 가문인 남궁가가 되어야 맞겠지만. 남궁가는 감히 건드릴 수 없었고.
그를 배신한 친우였던 장진은 약왕의 손자. 만만한 대상을 고르다 보니 장진의 형님이라는 그놈이 제일 만만했던 것.
알아보니 무공도 배운 적이 없다고 하고 제갈가라고 해도 그놈은 하찮은 데릴사위 아니던가?
돈이 없어 남의 집 일꾼이 된 놈.
수하들이 잘못하면 남궁가와 제갈가가 연루될 수 있으니 그를 말렸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구에게 맞아본 적 없는 황윤은 이미 눈이 돌아버린 상태였다.
안 들키고 무조건 놈을 어떤 방법으로든 혼내주고 싶었던 것.
“대체 이번에는 왜 실패한 것이라더냐!”
“그것이. 이번에는 장진 공자가 나타나서, 정말 배가 아픈 것인지 확인한다고 하는 바람에···.”
-쾅!
“장진, 그 친구를 팔아먹은 버러지 같은 놈이!”
“진정하십쇼 공자님. 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기랄!”
처음에는 수하들의 말대로 삼류 파락호들을 보내 습격을 부탁했지만, 남궁가의 여식 빼고도 고수가 있었기에 실패.
두 번째는 아버지의 의형제의 도움을 받아 세리들을 보내 금전적으로 괴롭히려 했으나, 며칠 만에 아버지의 의형제가 찾아와 사색이 된 모습으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놈이 이번 부임해온 복주지주 어른의 의형제라고 하네! 부임을 하자마자 사람을 하나 두고 그가 불편함이 없게 하라 했는데, 나는 이게 알려지면 큰일이네. 우리 만난 적 없는 것이네!”
“배, 백부님! 백부님!”
그리고 오늘 세 번째까지.
황윤은 분노로 몸을 떨며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 꺼지거라!”
“고, 공자님.”
“꺼지래도!”
그리고 이미 반쯤 취한 상태였지만, 식탁 위에 남아있는 독한 술을 더 신나게 들이켜기 시작했다.
“꺼윽. 제기랄!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구나!”
그렇게 술을 퍼먹은 지 잠깐.
빈속에 퍼 넣은 술은 금방 황윤의 이지를 상실하게 했고.
여기가 어딘지 뭐 하러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을 때, 가물가물한 그의 눈에 들어오는 한 여자.
까무잡잡한 피부에 가슴이 커 무척이나 둔해 보이는 기녀가, 조금 떨어진 자리 식탁 아래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저녀니?”
황윤은 꼬부라진 혀로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기녀에게 다가가 크게 호통했다.
“어떤노미 시커멓고 아둔하게 생긴 네녀늘 보낸거시더냐? 가서 다른녀는 들라해라!”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기녀.
“네!? 고, 공자님, 무슨 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기녀의 말에 화가 난 황윤.
-주르르륵.
황윤은 자신이 들고 있던 술병을 여자의 머리에 붓고 기녀를 크게 비웃었다.
“이 못생기거 두한년이 뭐라는 거시야! 두해서 말을 모알아듣나? 어이쿠! 이년 두한 가숨봐라.”
“후아아아아아!”
그러자 눈앞에 시커멓고 둔하게 생긴 기녀가 사정없이 울기 시작했고, 황윤은 가물거리는 눈을 한 채 식탁 위로 처박혔다.
-털썩.
***
-쿵!
“죄송합니다. 접각부님! 제자분께서 모욕당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련이를 개봉에서부터 호위해온 두 무사가 마룻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가련이는 눈물범벅으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였기에 호위해온 둘에게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불렀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사죄를 듣고자 부른 것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들으려 부른 것이니 고개를 들고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 보시오.”
혼내자고 부른 것이 아니라 연유를 듣고 싶다는 내 말에 눈치를 보던 두 무사 중 하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이···. 어제 저희가 계획하기로는 길을 서두르면 복주에 오늘 안에 도착할 것 같아, 노숙을 마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육포를 먹으며 길을 서둘렀습니다.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무사의 말로는 점심때 도착한 가련이 일행은 육포만 먹으며 길을 서두른지라 도착하자 제일 먼저 요릿집을 찾았다고 했다.
허기진 배도 채우고 동시에 나에게 연락하려 했다는 것.
때문에 먼저 요릿집에서 음식을 시킨 사이 한 명이 화화루에 연통을 넣기 위해 화화루를 향하고, 나머지가 가련이를 지키기로 했는데 배탈이나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사이 웬 파락호에게 가련이가 모욕당했다는 이야기.
“무슨 모욕을 당했다는 것입니까?”
“그, 그것이···.”
내 질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무사들.
그러자 옆에서 비연이 나서 나에게 속삭였다.
[그, 이야기는 제가 들었으니 무사들을 물리시지요.]
“잠시 나가들 계시오.”
그렇게 무사를 물리자 청, 영영이, 소소, 미미, 비연과 가련이만 남은 공간에서 비연이 차마 못 하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이 커 두, 둔한 년이라며 모욕하고 머리에 술을···.”
“후아아아아앙···.”
비연의 말과 함께 가련이의 울음이 다시 폭발하고, 아내들의 분노도 같이 폭발했다.
“뭐!?”
“뭐라고요!?”
“비연아, 다시 말해봐 어떤 놈이 뭐라고 했다고!”
“어떤 놈이 감히 노공의 제자에게 그따위 말과 행동을!”
-촤르르르.
우리의 분노에 떨리는 화화루 오 층.
“비연, 무사들 다시 들라 하시오!”
대체 어떤 놈이 남의 귀한 제자에게 맨정신으로 그딴 소리를 지껄였는지 궁금해 무사를 다시 호출했고, 그러자 곧바로 우리가 있는 방의 문이 열리며 무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누가 감히 내 제자를 모욕한 것이오?”
분노에 찬 내 목소리가 범인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 무사들의 입이 벌어져 범인을 말하는 과 동시에, 배 아프다는 놈을 심문한 장진이 안으로 들어와 같은 이름을 내뱉었다.
“화월루의 황윤이라고···.
“화월루의 황윤이 아마 배 아프다고 한 놈을 보낸 것 같습니다. 형님.”
‘아니, 이 씹새가?’
무림의 예법대로 훨씬 급이 높은 내가 삼 초식 양보하는 모양이 되었으니 이제 조질 때.
이 새끼 아무래도 꽌시 맛 좀 단단히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