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0화 (270/344)

중장취해(中庄醉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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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에게 중요한 자료를 빼 오라고 부탁하기로 했으니,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같이 침투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나야 따라가 봐야 방해만 될 테고 미미 혼자 다녀오는 것이 빠를 테니까, 

다만 원래 이런 작전은 성동격서(聲東擊西)로 펼쳐야 하는 법. 

미미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미가 훨씬 더 움직이기 쉽게 만들어주기 위해, 내가 화월루로 찾아가 시선을 끌어주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예쁜 아내를 혼자 위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해서 세부 계획을 아내들에게 설명했다. 

“미미가 화월루의 은밀히 숨어들어 장부 같은 것을 좀 빼 오면 좋겠소. 그리고 미미가 움직이기 좋게 내 장진을 데리고 한번 화월루에가 놈들의 시선을 끌어보겠소.” 

그렇게 내 계획을 말하자 놀라는 셋. 

셋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안 돼요!””” 

“무, 무슨 일인데! 뭐가 안 되는 일인데!? 츄릅.” 

졸다가 깜짝 놀라 일어난 영영이. 

어리둥절한 영영이와 넷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가 위험한데 간다고 해서 저러는 모양이니까 말이다. 

“아니, 어차피 기루 손님으로 가는 것이라 다른 손님들도 많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사람들이 많은데 별일이야 있겠소? 그리고···.” 

그렇게 내가 위험한 일을 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가 싶어 안심하라고 설명하자, 내 말을 막고 외치는 셋. 

“그것이 아니라 노공, 장진 공자랑 가면 안 된다고요! 왠지 나쁜 것을 배워오실 것 같아요.” 

“그, 그래요. 은공. 차라리 저희 오라버니를 데려가세요!” 

“맞아요. 청운님, 어찌 그런 곳을 장진 공자랑 가려 하십니까? 언니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해요.” 

‘아, 그것이었나?’ 

여자들의 걱정은 불량 식품 급의 위치인 장진 때문인 느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든지 처음 가보려면 전문가를 데려가야 하는데, 장진이 기루 전문가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기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장진 외에 누가 있겠소.” 

“아···.” 

“그, 그도 그렇군요.” 

내 말에 납득해버리고 마는 다섯이었다. 

*** 

복주 안에 어둠이 내리깔렸다. 

저녁은 이미 지나 밤으로 가는 시간. 

저 아래 보이는 길에는 등롱들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런 어둠이 내리깔린 화화루 오 층에서 나와 미미는 문을 열고 난간으로 향했다. 

“준비는 되었소?”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미. 

미미가 날렵한 동작으로 화화루 오 층 난간에 한쪽 다리를 관능적으로 올리고 기대앉자, 바다에 반사된 달빛이 미미를 어스름하게 비췄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날리는 미미의 긴 머리카락. 

쫙 달라붙은 요가복 느낌의 잠행복을 입은 미미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질끈 묶더니 나에게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역시나 부끄러운 목소리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 오늘 밤 당신의 마, 마음을 훔치러 가겠어요. 이, 이러면 되나요?” 

-짝짝짝.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사내라면 어찌 코스프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아내가 남편을 위한 헌신의 코스프레라면 박수받아 마땅했다. 

남편을 위한 최고 최상의 헌신은 코스프레가 아니던가? 

‘정말 오늘만큼은 큰 사람이 되고 싶구나.’ 

부끄러워하는 미미를 향해 열광과 기쁨에 찬 찬사를 보냈다. 

첫 코스프레에 찬사를 보내야 두 번째 세 번째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 

“물론이요. 미미. 아주 아름다웠소. 최고요!” 

“나, 낭군님 마음에 드셨다니. 다, 다행입니다. 그,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죠?” 

“별 의미는 없지만 내가 행복해진다오.” 

“그, 그렇군요? 낭군님이 행복···.” 

부끄러운지 떨리는 미미의 목소리. 

안쪽에서 혹시 빠트린 것은 없는지 자료 확인에 열중한 청, 소소, 비연과 졸고 있는 영영이의 눈치를 보며, 슬쩍 미미를 품에 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시오. 그리고 싫다는 도둑질을 시켜서 미안하오.] 

그러자 달빛 속에서 발그레 물드는 미미의 얼굴. 

미미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더니 나를 향해 나직이 속삭였다. 

[아뇨. 부정하게 재물을 모은 나쁜 놈들의 물건을 훔쳐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의적(義賊)이라는 게 있다니. 저도 이 순간은 의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합니다.] 

아무래도 싫다는 도둑질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미미에게 의적 개념을 설명해주었는데, 미미는 그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뭐 우리를 때렸으니 우리 입장에서 저놈들이 나쁜 놈이고, 또 원래 예쁜 도둑은 다 의적이니까 미미는 의적이 확실했지만 말이다. 

[그럼 다행이오. 조심해서 다녀오시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낭군님.] 

미미가 달빛 속에 인사와 함께 흐린 미소를 남기고는 복면을 뒤집어쓰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 닿기 전 미미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져버렸다. 

*** 

미미를 보냈으니 나도 움직여야 할 때.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이 벌건 장진이 서류를 살피는 여자들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이 이리 빨리 기루에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 

그것은 아까 화월루로 가겠다고 이야기한 후 영영이에게 같이 갈 장진을 찾아오라 시켰더니, 영영이가 한 다경도 되지 않아 장진을 데려왔던 것. 

알고 보니 화화루 아래층에서 기녀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나? 

정말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눈치를 보고 있는 장진을 향해 물었다. 

“진아, 준비되었느냐?” 

“예, 형님. 가시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내 질문에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하는 장진. 

하지만 곧바로 사방에서 장진을 향한 협박이 이어졌다. 

“가서 가가 잘 모시고 돌아와야 해요! 알겠어요!? 가가 다치면 다 죽는 거야. 알겠죠?” 

“부디 아무 일 없이 모시고 오고 이상한 것을 가르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아셨습니까?” 

“부디 제가 검을 뽑는 일이 없으면 좋겠군요.” 

장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무, 물론이죠. 형수님들. 이, 장진이 모, 목숨을 걸고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아내들에게 다짐받고 도착한 화월루 앞. 

환하게 밝혀진 치자등 위에 올려진 채반이 여기가 수위가 높은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치자등 위에 올려진 채반은 그런 의미니까.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흐릿한 비음. 

“하아···.” 

-꿀꺽. 

비연네 화화루와는 이미지부터가 틀린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들고 있었다. 

나야 처음이다 보니 긴장될 수밖에 없었는데, 나와는 다르게 이쪽 방면에서는 중원 팔왕급인 장진이, 입구에 도착하자 화월루 앞에 서 있는 무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이야기했다. 

“아, 잘 있었나? 조 무사” 

“자, 장진!? 아, 안녕하십니까. 자, 장진 공자님···.” 

제 주인과 장진이 요즘 어떤 분위기인 줄 아는지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무사. 

장진이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에게 말했다. 

“안에 자리 두 개만 만들어주게.” 

“자, 자리 말입니까? 수, 술을 드시려고 말입니까?” 

“그럼 내가 여기 뭐 하러 왔겠나? 그리고 월희 있나?”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월희는 다른 손님을 받고 있는데···.” 

“어허 이거 참. 화월루가 요즘 장사가 잘되나? 나, 장진이 왔는데 어찌 이런 대접이지?” 

“죄, 죄송합니다. 안쪽에 알리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돼 기루의 하인 둘이 뛰어나와 우리를 안내했다. 

입구를 지나 망사 같은 붉은 천만 처진 방들에서 여자와 엉겨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휙휙 지나가고, 그렇게 계단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막 계단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지금 내 의형 앞에서 네놈들이 나를 망신 주는가!?” 

벼락같이 울리는 장진의 호통. 

깜짝 놀라 장진을 바라보자, 장진 이놈이 시근거리며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황가 놈이 한 대로 우리도 음식에 잡아 온 벌레를 집어넣고 진상짓을 하려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급발진해버린 장진. 

갑자기 이놈이 미쳤나 싶어 장진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왜 그러느냐? 소란은 나중에 피워도 되는데.] 

그렇게 왜 갑자기 이러느냐 묻자, 장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형님, 저와 형님이 어찌 일 층에서 술을 마시겠습니까? 화화루에서도 저희는 오 층인데, 감히 화월루가! 황윤 그놈이 시켰더냐!? 내, 내일부터 요리에 쓰는 약재를 거래하는 이들에게 화월루와는 거래를 끊으라 해야겠군!” 

‘아, 그거였군.’ 

여기도 층수에 따라 접대가 다른 느낌. 

그러면 화날 수 있었다. 

우리를 일 층으로 보내는 것은, 우리의 체면을 무시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 시대에는 객잔이나 요릿집에서 시키는 요리도 점소이가 잘못 권하면 체면을 깎는 일이라 큰일이 나는데, 기루에서 장진 같은 높은 신분을 일 층에 처박는다? 

이거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황가 놈이 화가 나서 앙심에 진이와 나를 망신 주려 한 모양인데, 이건 자충수였다. 

‘이거 이렇게 되면, 난리 좀 쳐야겠구만.’ 

의도한 소란은 아니지만, 미미야 벌써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을 테고. 

조금 이르긴 했지만, 장진의 행동에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허허, 장의문 약왕의 손자 ‘장진’이 일 층이라니. 내 아우의 체면에 똥칠하는군! 여기 루주가 누구인가! 어찌 장의문 ‘약왕의 손주’ 장진의 체면을 이 뭇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주는가? 루주 나와 보게!” 

‘사장 나와! 사장 나오라고!’ 

우리가 뻔뻔히 찾아온 것만으로도 황가인가 그놈이 보고받고 빡치고 있을 테고, 그래서 우리를 일 층에 박으라 했을 텐데, 우리가 이렇게 높은 층까지 달라며 장진이 협박까지 하니 돌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잠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곧 어디선가 쥐새끼 수염의 쥐새끼처럼 생긴 놈이 달려와 장진을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고, 장진 공자. 이 무슨 일입니까?” 

“아, 황 루주 어른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저 장진이 간만에 화월루를 찾았더니 저를 일 층으로 안내하다니요!” 

“그, 무슨 소린가? 누가 장 공자를 일 층으로!” 

-쩍! 쩍! 

황가의 아버지로 보이는 루주는 우리를 안내하던 하인의 따귀를 올려붙이고는 하인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 너희들의 실수는 나중에 물을 것이니. 장 공자와 친우분을 사 층으로 모시거라.” 

“예, 어, 어르신.” 

“장 공자 아마도 아이들이 실수한 듯하네. 오 층은 이미 선약이 있어서 일단 사 층으로 오르시게. 내 오늘은 사죄하는 의미에서 술값을 받지 않겠네. 그래, 장 공자가 월희를 마음에 들어 했지? 내 바로 보내드리지. 그러니 약재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시게. 자자.” 

그렇게 시근거리는 장진을 데리고 사 층에 도착하자, 붉은 천이 사방에 걸린 큼지막한 방이 우리에게 배정되었다. 

이어서 차려지는 한 상. 

술과 함께 여러 가지 요리들이 우리 앞에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잠시 후 기녀들까지 네 명이나 등장했는데, 방에 걸린 붉은 천과 같은 붉은 적사로 온몸을 휘감은 그런 여자들은, 방으로 들어서 장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장진에게 열광했다.

“장 공자님! 왜 요즘 뜸하셨어요!” 

“장 공자님, 이번에는 저 진맥해준다고 하셔놓고 어찌 이리 오랜만에 오셨어요?” 

“요즘 화화루에 화월이 한 테 빠지셨다고 하던데. 정말 나쁜 사람. 몰라몰라.” 

장진에게 달라붙어 갖은 아양을 떠느라 난리인 기녀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이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이 헛기침하며 기녀들을 혼냈다. 

“어허! 이년들이 오늘은 저 앞에 내 의형을 잘 모시거라!” 

“의형? 장 공자도 의형이 있어요? 장 공자랑 의형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헉···.” 

“어머···.” 

“저, 저분이 형님이시라고요···.” 

갑자기 내 얼굴을 바라보고 멈칫하는 기녀들. 

장진에 주변으로 밀물처럼 몰려갔던 여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오며 내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두 명이 결정되자, 나머지 두 명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장진 옆으로 물러갔다. 

그러자 장진의 입에서 들려오는 어이없다는 목소리. 

“월희야? 넌 왜 거기?” 

“장 공자님의 의형이시라는데, 제가 잘 모시려고요.” 

내 옆에 있는 한 명이 장진이 좋아하는 월희라는 여자인 모양. 

장진의 툴툴거리는 전음이 바로 귓가로 쏘아졌다. 

[형님이랑은 절대 기루 오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 

소란은 이미 한번 크게 피웠고, 적당히 술을 마시다가 빠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적당히 술을 받아마시며, 내가 없는 동안 장진이 뭘 하고 지냈는지 정도를 묻고 있는데, 앞으로 내밀어지는 어떤 것. 

고개를 돌리자 월희라는 기녀가 안주를 입에 넣어주겠다는 것인지 뭔가를 손에 쥐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코끝에 느껴지는 비릿함과 술 냄새. 

안주를 확인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게의 다리였다. 

‘중장취해(中庄醉蟹)인가?’ 

중장취해란 중원식 게장 중 하나인데, 특이하게 술에 담가 발효하는 것이 특징. 

중장취해가 크게 알려진 것이 청나라 때로 알고 있으니, 이것은 그 원형인 느낌. 

생각에 빠진 내게 월희라는 기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게를 싫어하시나요? 저희, 게 요리는 비린내가 나지 않고 향긋한 조(糟)에 담가 만들어 아주 향긋하고 맛있답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자, 아···.” 

내밀어지는 게 다리에 당황스러운 상황. 

완벽한 연기를 위해서 받아먹어야 했지만, 이게 아내들에게 미안해서 머뭇거리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조(糟)!?’ 

그녀의 손을 치우고 물었다. 

“이걸 조에 담가 만들었단 말이더냐?” 

“예? 예. 물론이죠. 저희 요리사의 자랑거리입니다. 화화루의 서시설에 못지않다고···.” 

‘와···. 이 새끼들··· 설마?’ 

이거 잘하면 꽌시까지 안 가고도 여럿 즐거운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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