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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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공, 요릿집이 금방 구해진다고요?”
“뭔데요? 가가, 뭔데요?”
“은공, 뭔지 알려주세요. 무척 궁금합니다.”
“서, 설마 훔치는 건가요? 낭군님 설마? 의적, 그래, 의적인가요?”
내 말에 난리가 나버린 넷.
갑자기 없는 가게가 어찌 생겨나냐고 다 같이 달라붙어 설명을 요구했다.
“청운님, 뭔가 재미있는 계획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저에게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비연까지 안달이 난 상황.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월루 쪽으로 난 창문으로 걸어가 늦은 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저 앞에 보름달을 배경으로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 멋지게 들어서 있는 화월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이제 우리 요릿집이요.”
“네엣?”
“화월루를요?”
“화, 화월루를?”
내가 화월루가 우리 요릿집이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이유.
그것은 화월루에서 맛본 게 요리 때문이었다.
화월루의 게 요리 그러니까 중장취해의 원형쯤으로 보이는 그 요리 말이다.
“노공, 어찌 저 화월루를 저희가 가지게 됩니까?”
“가가, 자꾸 궁금하게만 하지 말고 속 시원히 좀 알려주세요. 이러다 병나겠어!”
“은공, 이번에는 저도 참기 힘듭니다.”
창가까지 몰려와 내 손을 붙잡고 이제는 간청하듯 묻는 넷.
넷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놈들이 만든 게 요리가 저 화월루를 우리의 요릿집으로 만들어줄 것이요.”
“게 요리요? 낭군님?”
“청운님 화월루의 게 요리 말입니까?”
“그렇소. 그 게 요리.”
중장취해(中庄醉蟹)는 술에 담가 만드는 게장인데, 본래는 취라(醉螺)나 취하(醉虾)에서 시작했다고 배웠다.
취라는 술 취한 달팽이, 취하는 술 취한 새우를 뜻하는 말로 아무래도 절이면 보관성이 용이해지는 생선과 달리, 달팽이나 새우는 절여도 쉽게 부패하므로 방부 성능이 강력한 술로 장을 담는 것인데, 그 때문에 완성된 요리는 술이 가지고 있는 향을 머금어 술에 포함된 향긋함과 원물 그대로의 신선함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중장취해란 그런 요리법을 게에 적용한 것인데, 게가 많이 나는 강소성에서 부패하는 게가 아까워 만든 요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월루에서 메인요리로 내고 있다는 게 요리는 그것과는 결이 좀 다르다.
화월루의 게 요리는 신선한 게를 가지고 술지게미를 양념장 삼아 버무려 만드는 일종의 양념게장.
먹어본 바로는 술지게미에 남아있는 향과 알코올 성분을 신선한 게의 살에 살짝 스며들게 해서 먹는 요리인 것이다.
게의 비린 향과 비린 맛을 술지게미로 죽이고, 약간의 양념을 첨가해 게의 진한 맛만을 살린.
그럼 이 술지게미 양념게장이 왜 화월루를 우리의 요릿집으로 만들어주는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양조주(釀造酒) 그러니까 발효주의 메커니즘과 송 시대 주류 판매 구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송 시대의 거의 모든 술은 양조주.
그러니까 과일 속의 과당이나 곡물 속의 전분을 당화시켜 효모로 발효해 만드는 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발효로 술을 만드는 메커니즘의 핵심은 산소 차단이라 할 수 있다.
발효과정의 산소를 차단해 효모가 무기호흡을 하게 해서 당분을 에탄올로 바꾸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대체 화월루의 게 요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물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재미있는 물음이 발생한다.
그러면 효모가 산소와 접하면?
그러면 대체 어떻게 되느냐?
발효라는 것은 일종의 세력 싸움이라 볼 수 있는데, 어느 균이 가장 큰 세력을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토해내는 내용물이 달라지는 것, 그런데 발효과정에 있는 술 항아리에 산소가 공급된다?
그러면 효모의 활성화가 감소하고 반대로 초산균이 득세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러면 술 항아리에 생성되는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아세트산.
그래, 곧 식초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변하기 시작하는 막걸리가 유달리 새콤한 맛을 내는 것도, 과발효된 매실 액기스가 신맛이 나는 것도 다 같은 원리.
그러니 화월루에서 술지게미 양념게장을 만들어 내놓으려면 최대한 신선한(?) 술지게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술을 거르고 술을 모두 짜낸 술지게미는 이미 그 순간 대량의 산소와 접하게 되는 상황.
조금 시간이 지나면 시큼한 맛이 날 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술지게미 자체는 부패에도 취약한데, 그러나 분명 내가 화월루에서 맛본 게장은 새콤하지 않은 상당히 싱싱한(?) 술지게미로 만든 것.
그럼 얘들이 대체 술지게미를 대체 어디서 구할까?
당연히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운송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날씨가 더운 이 복건에서 술지게미를 운송해올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술지게미는 그 자체로도 알코올 성분을 품고 있기에 물에 타 아주 알뜰하게 술을 뽑아내는데, 누가 요리에 쓰기 좋게 뽑을 술을 뽑지 않고 판단 말인가?
비연을 향해 음흉한 표정으로 물었다.
“비연,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시오? 술지게미로 게 요리를 만들었는데, 대체 그 술지게미는 어디서 구해왔을까? 이 무더운 복건에서 하루만 지나도 신맛이 날 터인데? 더군다나 그렇게 술맛이 가득한 술지게미를 과연 누가 팔겠소?”
그러자 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 비연이 갑자기 자기 입을 가리고 놀란 눈을 부릅떴다.
“허어어어업! 맙소사!”
어울리지 않는 괴성을 지르는 비연.
비연의 놀라운 반응에 청이, 영영이, 소소, 미미의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이제 내가 아니라 비연을 향해 물음이 쏟아졌다.
“왜? 비연아 무슨 일인데?”
“비연, 대체 무슨 일인가요? 저희에게도 알려주셔야죠!”
“자꾸 이러면 화낸다!”
비연이 저리 놀라는 이유는 게 요리에 들어가는 술지게미가 화월루에서 직접 만들었으리라 의심되는 상황과 함께, 내가 비연에게 화월루가 정점(正店), 각점(脚店), 박호(拍戶)중 무엇이냐고 물었던 물음 때문.
송 시대의 주류는 강력한 전매제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전매제 그러니까 국가에서 모든 술의 판매를 통제한다는 것.
그러면 이 주류 판매시스템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첫 식반행과 주행의 문제로 조금 공부를 해본 바로는, 국영 양조장을 운영해 국가에서 직접 주류를 만들어 판매하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주류를 제조할 수 있는 면허를 판매한다는 것.
이러면 국영 양조장을 통해 판매하는 술을 제외하고, 주류 제조 면허를 얻은 사람들이 세금을 포탈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송나라가 바보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효율적 통제 수단을 고안했는데.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닌 술을 만드는데 필요한 누룩인 홍국(紅麴)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룩은 무조건 국가에서 구매해야만 하는 것.
궁금해하는 넷을 향해 설명했다.
“잘들 들어보시오. 박호는 관에서 운영하는 주장(酒場)에서 술을 사다 파는 집을 말하고, 각점은 정점에서 술을 받아다가 파는 집을 말하지. 그리고 정점은 관의 허가를 받아 술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집을 말하는데···. 글쎄 화월루는 박호라지 않소?”
“어머! 그러면?”
“은공, 그러면 화월루는 정말 큰일이 아닙니까?”
“나라를 상대로 도둑질하다니 정말 간 큰 놈들이 아닙니까? 낭군님.”
청이와 소소, 미미의 놀란 외침.
그리고 옆에서 영영이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뭔데? 나도 알아듣게 설명해줘!”
‘아차, 팽가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어야 했거늘.’
영영이를 식탁에 앉히고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영영아, 잘 들어보거라. 그러니까 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저기 화월루 놈들이 국법을 어기고 누룩인 홍국(紅麴)을 몰래 밀조(密造)하거나 밀매(密賣)하고, 거기에 몰래 밀주까지 만든 것 같구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영영이.
“정말요? 그놈들 미친 것 아니에요? 잠깐만, 그러면 그 국법을 어기면 어떤 처벌을 받는 거죠?”
영영이의 물음에 대답하려는 찰나.
소소가 뚜벅뚜벅 식탁으로 걸어가더니, 비연이 밤에 우리에게 먹으라고 가져다 둔 다과와 약한 술이 담겨있는 병이 놓여 있는 곳에서, 술병을 하나 집어 식탁 끝에 놓아두고는 칼을 뽑아 그대로 휘둘렀다.
-스컥.
그러자 날아가 버리는 병 모가지.
그 병 모가지를 가리키며 보고 소소가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이 날아가겠죠. 일가(一家)의.”
그제야 다섯 여자의 머리가 끄덕여지고, 만족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그 정도는 되어야 복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노공.”
“그래, 일가의 목은 베어야 복수지. 아무렴. 대단해요. 가가. 게 요리 하나에서 이런 사실들을 알아내시다니.”
“일가의 목이라···. 그 정도면 충분한 복수입니다. 은공.”
“목숨을 훔치는 것인가요? 좋아요!”
넷의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왠지 열린 너머 화월루 뒤로 보이는 보름달이 붉게 물든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놈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가 특정되니, 이상한 점은 금방 더 크게 드러났다.
아까 미미가 가지고 온 장부에서 우리가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
매출은 한동안 고정되어있는데, 구매하는 술의 양은 천천히 줄고 있었으며, 장부상에 그냥 지나쳤던 쌀 구매 수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거기에 그렇게 별거 못 건지나 싶었던 장부 마지막 장에. 붉을 홍(紅)자와 함께 뭔가 수량이 적혀있었던 것.
“응? 이건?”
“이게 뭐죠? 가가?”
“그게 바로 술을 만드는 데 쓰는 홍국(紅麴)을 구매한 수량 같구나.”
홍(紅) 이라면 당연히 홍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고, 늘어난 쌀의 소비와 비추어 볼 때 딱 술을 빚는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아, 이게 홍국. 술 만드는 재료.”
“이리 증좌가 확실하면 당장 관에 발고해야겠군요. 발고는 제가 아침이 밝자마자 교송지를 시켜서 해도 되겠습니까?”
비연이 모든 것을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나서겠다며 제안했다.
왜냐하면 정점은 다른 밀주하는 자들을 발견할 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
정점도 술을 만들어 파는 곳이기에, 자신들의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밀주 제조자들을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 주겠소?”
“정점인 저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은근히 세금 같은 문제를 관을 동원해 저희를 압박하던 화월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이니, 저희가 직접 나서야겠지요. 그리고, 아마 화월루를 무너트리면 하오문 내에서 저의 위치도 올라갈 테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좋소.”
비연도 그동안 좀 당한 것이 있는 느낌.
거기에 이 일로 잘하면 승진까지 할지 모른다니 그녀의 동참을 허락했다.
내가 직접 신고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또 저쪽에서 내가 형님의 아우라는 사실로 불공정을 주장할 수도 있으니, 길게 저쪽과 경쟁을 했던 비연이 나서는 것이 모양을 내기에도 좋았다.
또 하오문이긴 했지만, 그동안 비연이 우리의 편의도 많이 봐주었고, 원래 이렇게 큰 사냥감을 쓰러트리면 다 같이 살을 나누는 것이 사냥 문화 아니겠는가.
화월루를 쓰러트린 공은 비연이.
화월루의 두 부자의 목이 날아가면 건물은 내가.
그리고 국법을 어긴 죄인 둘의 목을 날리고 그간 부정 축재한 돈은 포 형님이.
피와 살육의 대잔치를 벌이는 것.
이 거대한 복수의 대서사시는 일대일? 아니다 모름지기 조폭들의 싸움은 다구리가 아니겠는가?
마음속으로 흡족한 결말을 기대하며 미소를 짓자 네 아내가 물어왔다.
“가가, 그러면 저희는 무슨 일을 하죠?”
“맞습니다. 모름지기 복수는 자기 손으로 하는 것. 뒤에만 있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노공.”
“맞아요. 은공. 모름지기 무인의 복수는 자기 손으로 이루는 것. 목이 떨어진다 해도 이렇게 뒤에만 있는 것은 성미에 안 맞아요.”
“저는 모두의 의견에 따르겠어요. 낭군님.”
조폭가의 딸들답게 복수란 모름지기 자기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
당연한 소리였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직접 앞에서 싸우는 일이 아니라, 말을 움직이는 일이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놈들의 죄를 입증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
원래 자고로 빌런들은 최후가 질긴 법.
뒤에서 꽌시들을 움직여 녀석들을 몰아세우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마치 이 모든것 뒤에 있는 흑막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