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黄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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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의 집무실 한쪽에서 다시금 청, 소소, 미미의 즐거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 맛있습니다.”
“가끔은 은공께서 해주시는 요리가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영영이는 언제 올까? 찾는 데 오래 걸리는 건가? 역시 내가 따라갈 것을 그랬나 봐. 숨겨진 것을 찾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도움이 될 텐데.”
잠깐의 대책 회의가 끝나고 다시 찾은 평온.
다들 미소를 머금은 채 음식을 입 안에 넣으며, 한편으로 영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벌컥!
갑자기 형님의 집무실 문이 활짝 열리며 영영이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영영이가 우리들의 모습을 슥하고 훑듯이 바라봤다.
눈망울이 일렁거리며 흔들리는 것이 뭔가 서운한 느낌.
‘이, 이거 혼자 뺑이치게 만들고 우리끼리 맛난 것 먹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군.’
탁자 위에 늘어선 먹다 만 오리구이, 만두, 찐 게, 구운 생선.
영영이가 꽤 좋아하는 요리들로만 채워진 상태였기에 서운함을 풀기 위해 영영이에게 희망이 될만한 소식을 전달했다.
“영영아, 서운해하지 말거라 내 너를 위해 많이 남겨두었으니.”
“그래요. 영영 언니, 여기 한쪽에 언니의 요리를···.”
영영이가 충분히 먹을 만큼의 요리를 떼어둔 상태니 혹시라도 서운해하지 말라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나 혹시 영영이가 토라질까 싶어 설명하는 나와 청이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르는 영영이.
처음에는 서운하다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마다하는 영영이의 목소리가 우리의 귓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응?”
“에?”
나와 청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먹을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영영이의 외침에 뭔가 큰일이 난 것을 완벽히 직감했다.
객잔이 무너지기 직전에도 요리부터 챙기는 아이인데, 먹을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정말 뭔가 큰일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무, 무슨 일이더냐 영영아!?”
“무슨 일인가요. 언니!?”
“영영, 얼른 말해보세요! 무슨 큰일이 닥쳤기에!”
내 물음과 다른 아내들의 외침에 영영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지휘사들과 화월루에 들이닥쳐 안쪽을 살피다가, 결국 화월루 일 층 한편에서 지하로 향하는 공간을 발견했어요. 안을 살피니 화월루 뒤편 강과 연결된 장소였는데, 가보니 이미 화월 루주의 수하들로 보이는 자들이 밀주하고 있던 술을 모두 버린 상태였어요!”
“뭐!?”
확실히 영영이의 말대로 먹을 것 따위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형님도 공감하는지 당황한 물음이 이어졌다.
“당 제식 그것이 정말이오!?”
“예, 해서 죄인들을 압송해 오기 전에 제가 먼저 경공으로 달려온 것이에요. 아무래도 빨리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잘했다. 영영아.”
역시 영영이.
본능적으로 생존과 직결된 일에는 상당히 고 지능을 발휘하는 녀석.
녀석을 칭찬하고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졌는지를 생각했다.
“이런···. 어째서 일이 틀어진 것이지?”
“복주청공사를 통해서 말이 샌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놈이 감히! 이참에 그놈도 갈아치워야겠군! 생각해보니 이전 복주지주가 해 먹는데 그놈도 일조했을 텐데.”
교송지가 북주청공사를 통해서 우리의 검거 시도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간 것은 아니겠냐는 물음을 띄웠고, 형님이 그 말에 분노했다.
하지만 둘의 이야기에 영영이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아뇨. 더 일찍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느낌이었어요. 안에 커다란 토기 항아리가 수십 개 있었는데 다 비워지고 물로 씻어두기까지 했으니까요. 제가 들이닥쳤을 때는 마지막 항아리를 비울 때였으니, 아마도 새벽부터 일찍 움직인 것 같았어요.”
그러자 귓가에 들려오는 미미의 전음.
[낭군님, 아마 새벽에 일어난 누군가가 장부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모양이에요. 국법을 어기고 있으니 혹시 몰라 재빨리 대처한 모양입니다.]
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말이니 신뢰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밀주를 만드는 것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장부까지 깨끗하게 만들고 주변도 철저하게 관리하는 놈들이었는데, 장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움직였다면 확실히 납득 가능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아마 장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혹시 모르니 재빨리 움직인 모양이구나. 화월 루주가 생각보다 조심성이 많은 놈인가 보군.”
내가 아쉽다는 목소리로 미미의 의견을 전달하자 형님이 실망 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나 청운이? 이건 낭패가 아닌가···. 딱히 다른 증좌도 없는 듯한데.”
“확실히 이렇게 빨리 움직일 것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임 놈들.
녀석들을 몰아붙일 약점을 생각해내야 했다.
최대 증거가 사라져버렸으니 이대로라면 위태로웠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밀주를 버리고 있던 놈들을 잡아 족치는 일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놈들은 입을 열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말이다.
아니라고 버티면 살 테지만, 인정하는 순간 두 황가 부자와 같이 밀주를 만든 죄로 개작두 행이니 끝까지 아니라고 할 것이 분명 했던 것.
‘확실히 애매해지는군. 명확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으니, 장부를 제 것이 아니라 한다면 놈들의 죄를 입증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지는 구만.’
장부를 투왕이 훔쳐다 줬다고 해도 그건 명확한 물증이 있을 때 지나가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모르겠지만, 명확한 증좌로 밀어붙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고민이 깊어질 때 아내가 영영이에게 물었다.
“언니, 그러면 모든 증좌(證左)는 강물에 흘러가 버린 것입니까? 홍국도 만들어지고 있던 술도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것입니까?”
정말 아무것도 못 건졌냐는 아내의 물음.
비난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물음에 영영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다 만들어진 술 항아리 하나만 발견했어. 아마 이미 다 완성되어 다른 술과 구분할 수 없으니 그것만 놓아둔 것 같더라고. 일이 끝나고 한잔하려고 남겨둔 것일 수도 있고.”
“이미 완성된 술이요?”
“응, 이미 완성되어 술지게미를 다 거른 황주(黄酒)였어.”
“안에 술지게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황주군요?”
“응. 관병들이 가지고 오곤 있는데···. 죄송해요. 가가. 맡겨 주신 일인데···.”
“아니다. 영영아. 그것이 어찌 너의 잘못이겠느냐.”
빈손은 아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며 미안해하는 영영이.
영영이가 잘못한 것이 없기에 영영이를 위로할 때였다.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생각.
‘잠깐 술지게미를 다 거른 황주? 금방 만든 황주를 말하는 건가?’
영영이의 말에 얼른 교송지에게 답을 구했다.
“교 루주, 혹시 전주(煎酒) 전의 황주도 관에서 운영하는 관영주창(官營酒廠)에서 사 올 수 있소?”
황주의 제조 과정은 크게 아홉 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침미(浸米), 증반(蒸饭), 량반(晾饭), 락항(落姮), 발효(發酵), 개파(開耙), 취주(取酒), 전주(煎酒), 봉단(封坛) 이라고 부른다.
침미(浸米)는 쌀을 물에 불리는 것을 말하고.
증반(蒸饭)은 쌀을 찌는 과정.
량반(晾饭)은 찐 쌀을 식히고 말리는 과정이다.
락항(落姮)은 쌀과 누룩을 항아리에 넣는 과정을 총칭하고.
발효(發酵)는 말 그대로 발효.
개파(開耙)는 완성된 항아리 뚜껑을 여는 것을.
취주(取酒)는 술지게미를 짜내 술을 얻어내는 과정을 말하며.
전주(煎酒)는 얻어낸 술을 한번 끓여 효모를 모두 살균하는 과정.
봉단(封坛)은 밀봉해 술을 익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교송지에게 물은 전주 전의 술이란 취주가 끝나 전주에 이르지 않아 아직 살균하지 않은 황주를 말한다.
그러니까 생막걸리를 말하는 것.
만약에 국영 양조장에서 생막걸리는 팔지 않는다면 술을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니, 비교적 술 거래에 밝은 교송지에게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가 이쪽에는 비교적 빠삭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놈들이 남겨둔 이유가 있었던지 교송지의 대답은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예, 전주 전의 술도 관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청운님.”
‘이런 제기랄. 뭔가 방법이 없나?’
오 층 짜리 내 요릿집이 눈앞에서 날아가 버릴 상황.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아내들에게 큰소리도 빵빵 쳤는데, 인제 와서 망신스럽게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머리를 굴리는 그때 밖에서 죄인을 압송해 왔다는 지휘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복주지주 어른, 죄인들을 포박해왔습니다!”
지휘사의 외침에 나를 바라보는 형님.
형님의 관자놀이에서 땀방울이 하나 흘러 턱 끝에 맺혔다.
-툭.
나를 바라보는 간절한 눈빛.
이제 어찌해야 하냐고 형님이 간절한 눈빛으로 물으셨다.
“청운이,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이런 큰 건은 아니, 큰 죄는 개봉에 보고해야 하니 증좌가 확실해야 하네. 조무래기라면 죄를 만들어서라도 어찌해보겠지만, 저런 큰놈은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으면 나중에 뒤탈이 나기 쉽거든. 내가 놈들의 재산을 보고 혹시 죄를 씌운 것은 아닌지 확인을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놈들을 개작두에 올릴 방법을 생각해낼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
형님께 시간을 벌어달라 부탁했다.
“형님. 일단 가서 죄인들을 문초(問招)해 보시지요. 술을 버리는 것을 보았으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계십시오. 영영이가 술 버리는 것을 보았으니 영영이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셔도 됩니다. 그사이 이 동생이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것입니다.”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문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형님.
“알겠네! 내 저놈들을 벌하지 못하면 내 뒤도 없으니 내 말미를 벌어보겠네!”
그리고는 형님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밖을 향해 외치셨다.
“공당(公堂)을 열어라! 내 직접 죄인의 죄를 물을 것이다!”
형님은 곧바로 포청천의 후예를 입증이라도 하듯, 땀방울을 훔치며 아주 늠름한 모습으로 죄인을 문초하는 공당으로 향하셨다.
-쿵. 쿵. 쿵.
형님의 발걸음 소리가 가슴을 쿵쾅거리며 울리고.
곧바로 밖에서 황부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울합니다. 복주지주 어른!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닥치거라 이놈들! 누가 공당을 소란케 하는가! 공당을 소란케 한 죄로 일단 열대씩 쳐라!”
“히이익! 사, 살려주십쇼!”
“살려주십쇼!”
황 씨 부자의 억울하다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형님은 곧바로 기선잡기에 들어가신 모양이었다.
‘잘한다! 우리 형님!’
***
-쩍!
“끄어어어어!”
-쩌억!
“끄아아아!”
두 부자를 향한 찰진 매타작이 시작되고, 녀석들의 비명을 배경음 삼아 죄를 실토하게 할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나 혼자보다는 청이와 소소, 미미, 영영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
혼자서 잘난 척하다가 망신당하는 것보다 그것이 나을 테니까 말이다.
“어찌 좋은 방법이 없겠소?”
내 질문에 잠시 조용해진 형님의 집무실.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청이가 영영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노공, 황주의 향은 다 똑같습니까?”
“향?”
‘아! 그렇지! 영영이가 있었지!’
바보같이 영영이를 보내고도 영영이를 금방 떠올리지 못하다니.
영영이의 코가 예민하니 혹시 다른 술과 차이점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영영아, 혹시 네가 발견한 술이 다른 술과 차이는 없더냐? 향이 다르다든지?”
내 물음에 잠깐 생각한 영영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술이 있던 곳에 시큼한 냄새가 가득해서 확인을 못 했어요. 국(麴)의 향도 강하고요.”
“그래?”
술이 발효되는 시큰한 향과 국 그러니까 누룩의 향에 확인 못했다는 영영이의 대답.
확실히 향이 강하면 후각이 둔해질 테니 그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향을 비교해보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형님께 증인과 다른 증거물을 부탁하기로 했다.
“소소, 형님께 전음을 보내, 화월루가 거래하는 관에서 운영하는 관영주창(官營酒廠)에 사람을 보내 취주(取酒)가 끝난 술 항아리 하나와 그 관리인을 공당으로 불러달라 하시오.”
“알겠어요. 은공!”
내 부탁에 소소가 형님에게 전음을 보내고 밖에서 형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죄인들의 죄를 살피기 위해 화월루가 거래하는 관영주창(官營酒廠)으로 사람을 보내, 그 관리인과 취주가 끝난 술 항아리 하나를 가져오게 하라!”
“예, 복주지주 어른!”
형님의 외침에 지휘사와 관병 몇 명이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