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6화 (276/344)

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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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병들이 화월루가 거래하는 주창으로 관리자와 비교해볼 술을 가지러 달려 나간 후, 한 다경쯤 지났을까? 

궁금함에 몰래 형님 뒤쪽의 병풍 뒤로 다가가 공당 안쪽을 살피자 안쪽의 모습이 눈 안에 들어왔다. 

“네놈들이 밀주를 만들고 홍국을 밀매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거늘 감히 본 지주 앞에서 거짓을 고하는가!” 

쩌렁쩌렁하게 공당을 울리며 터져나가는 형님이 심문을 이어가는 소리. 

곧이어 이미 얻어터져 죽는소리로 대답하는 황 씨 부자와 끌려온 놈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억울합니다. 지주 어른! 억울합니다! 어찌 그런 오해를 하시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결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뭐라 네 녀석들이 술을 버리던 모습을 지휘사와 관병들이 목격하였는데! 공당에서 감히 거짓을 고얀 저놈을 몽둥이로 열대 치거라!” 

“예! 복주지주 어른!” 

“어, 억울합니다. 그것은 전주 전의 술인지라 더위에 술이 상해서 버린 것이지, 밀주하던 술을 버린 것이 아니옵니다!” 

생막걸리라서 상해서 술을 버린 것이지 밀주하던 술이 아니라는 대답. 

하지만 형님은 일단 매질부터 하고 보셨다. 

어차피 입증 못하면 뒤는 없으니 그냥 다 조져버리겠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퍽! 퍽! 

“끄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지주 어른!” 

“닥쳐라! 이놈들! 네 너희들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너희들이 거래하는 관영주창에 사람을 보내 술을 가져오라 했느니라! 술을 가져오면 너희들에게 압류한 술과 비교해 너희의 죄를 입증할 것이니라!” 

“지주 어른 그러면 관영주창에서 가져온 술과 저희 지하에서 발견된 술이 같은 술이면, 저희를 놓아주시는 것입니까?” 

‘응? 이 새끼들 허튼 희망은···.’ 

그렇게 형님이 시간을 잘 끌고 계실 때였다. 

놈의 물음을 듣자 아까 관영주창으로 술을 가지러 달러나 가는 관병들을 모습을 본 후, 가슴속에 자리를 잡았던 불안감이 스멀거리며 커지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왜 이렇게 마음 한편이 불안하지? 일이 한번 살짝 틀어져서 그런가?’ 

관병들이 이제 화월루가 거래하는 관영주창에서 술을 가져오면, 술을 만드는데 들어간 국(麴)이 다를 테니 당연히 향도 다를 테고, 그러면 둘을 비교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는 문제인데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고 있었던 것. 

그 때문에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청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노공, 어찌 그러십니까?” 

“아, 아니요. 뭔가 살짝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불안이요?” 

“그렇소. 영영이가 아까 화월루에서 가져온 술과 이제 가져올 주창의 술을 비교해보면 될 일이긴 한데···.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말이오.” 

“불안하시다라···. 

나와 청이의 대화에 집중되는 시선. 

만두를 먹던 영영이가 먹을게 들어가 기분이 좋은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가. 제 코라면 틀린 점을 반드시 잡아낼 테니까요.” 

“당연히 영영이야 믿고 있지. 다만 너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구나.” 

“다른 문제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영영이의 코야 당연히 틀림없을 테지만, 이건 뭔가 근원적 불안감. 

내가 다시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미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한편이 불편하고 자꾸 뭔가를 놓친 것 같은 생각이 드시는 것이군요?” 

“맞소! 그런 것 같소. 한편으로 뭔가 우리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소.”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미미. 

미미가 내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 그···. 저희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의 불문율 같은 것이긴 한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낭군님.” 

‘저희 쪽 일이라면 도둑들의 징크스 같은 것인가?’ 

전생에도 도둑들은 징크스 같은 것에 예민하고 또 신봉하는 경향이 있어, 잡히지 않기 위해서 도둑질하러 들어간 집 침대 위에 똥을 싸고 나온다거나, 간장이나 락스 같은 것을 옷장에 뿌리고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런 것을 하라는 것이면 곤란했지만, 그래도 미미의 이야기라면 들어 주어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소. 말해보시오. 어떤 좋은 말인지.” 

그러자 미미가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일을 준비하고 행동에 들어가기 직전에 혹시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드는 것은, 뭔가 일이 잘못될 징조이니 물러나 처음부터 잘 살펴보라는 것이에요. 준비부터 잘못되었을 수 있다고···. 느, 늙은이가 알려준 것인데···.” 

아마도 내가 뭔가 실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니 미안했던 모양. 

그러나 나쁜 의견은 아니었다. 

원래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면 처음부터 살피는 것이 확실히 좋은 방법이니까 말이다. 

“알겠소. 미미. 처음부터 다시 살펴봅시다.” 

“네? 네. 알겠습니다. 낭군님.”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내 자세에 기쁜지 볼을 발그레 붉히는 미미. 

그녀의 말대로 다시 한번 일을 살피기로 했다. 

‘늙은이라면 전대 투왕이 알려준 것이라는 말인데···. 준비부터 잘못 되었다라···. 이 일의 준비라면 어디부터 살펴야 하나···. 

이건 황윤 그놈이 형님의 뺨을···. 아니 이건 너무 멀리 갔군. 내가 화월루에서 게 요리를 먹고 와서 놈들이 밀주 만들고 있는 것을 알았고···. 영영이를 화월루로 보냈는데···. 아니지, 밀주를 만들려면 쌀과 누룩이 필요하니···. 잠깐!’ 

불현듯 스치는 생각.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내 혼잣말에 청이와 소소가 연유를 물어왔다. 

“무슨 생각 말인가요. 노공.” 

“은공 무슨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밀주를 만드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민가에서도 가끔 국법을 어기고 술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된 근대 우리나라에서도 법을 어기고 쌀로 막걸리를 만들어 먹기도 했던 것. 

그러나 술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누룩으로 들어가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온도나 습도가 조금만 달라도 누룩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때문에 소량이라면 모르겠지만, 밀주를 만들기 위해서 대량으로 직접 만들려면 기술자와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 

그리고 그것은 이 무덥고 습한 복주에서 더욱 중요하고 당연한 일일 텐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냥 몰래 만들었거니, 아니면 사 왔거니 간단하게 생각을 했을 뿐이니까. 

누룩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온도와 습도 유지가 필요하니, 반드시 온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에 만들어야 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필수인데, 그건 남의 눈을 피해 만들거나 관의 눈을 피해 쉬 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관에서 모든 누룩을 관리하고 기술자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룩을 띄울 건물은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물론 민가에서 조금 정도야 만들 수 있지만, 팔아야 하는 술을 망쳤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누룩으로 빚는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러면 화월루에서 쓸 방법은, 자기가 잘 아는 양조장의 관리자를 매수해 홍국과 술 만드는 법을 알아내는 것. 

결국 다른 말은 우리가 불려올 기술자가 매수된 놈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였다. 

생판 모르는 놈에게 국법을 어기기 위해서 홍국을 사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아는 놈을 돈으로 매수하는 것이 빠를까? 

당연히 후자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내들의 물음에 대답할 새도 없이 먼저 교송지에게 물었다. 

“교루주, 화월루가 거래하고 있다는 관영주창의 관리인이 누군지 아시오?” 

“예, 뭐 물론 다들 주행에 가입해 가끔 얼굴을 보니 누군지 알고 있습니다만···.” 

질문에 긍정하는 교송지. 

그에게 다시 한번 질문했다. 

“내가 만약 교송지를 통해서 그에게 몰래 홍국과 술 빚는 법을 은밀히 구하려 한다면 가능하겠소?” 

내 질문에 교송지가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자기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치며 외쳤다. 

“유걸수 그놈 설마!? 어쩐지 요즘 씀씀이가 헤퍼진 것 같더라니···.” 

그러자 다급히 외치는 청, 소소, 미미. 

“노공, 무슨 일입니까? 설마 관영 주창에서 술을 가지고 올 자도 한패입니까?” 

“은공, 그러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연루된 자가 계속 나오는군요. 그러면 어찌 되는 건가요? 낭군님.” 

원래 이 중원 사회가 꽌시인맥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서 누구 하나가 부패하면 주변을 빠르게 물들이는 것이 특징. 

아마 관영 주창에서도 꽤 많은 인물이 여기에 연관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청이에게 대답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소.” 

“그렇지만 노공, 같은 누룩으로만 만들어졌더라도 같은 술은 아닐 것 아닙니까?” 

분명 그렇지만 아마도 누룩뿐만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관리인이 홍국을 빼내는데 일꾼들이 모를 리 없을 테니까. 

아마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연관돼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 누룩뿐만이 아닐 것 같소. 주창의 인원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면, 누룩뿐만 아니라 술의 맛을 결정 짓는 발효를 위한 토기 항아리나 쌀도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봐야지···.” 

“그러면 향은?” 

“아마도 같을 것이오.” 

“큰일이군요.” 

술을 만드는 방법도 도움을 받았을 테니 거의 같은 술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발효되는 곳에 따라서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었고 거기에 도박을 걸 수는 없었다. 

그 정도 맞았으면 기가 죽을 만한데 밖에서 황부자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복주지주 어른 만약에 저희가 밀주를 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쩌시려고 이리 저희를 핍박하시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죄가 확실하지 않은데 저희를 이리 핍박하시다니! 억울합니다!” 

“이, 이놈들이!” 

형님도 내가 마땅히 어떤 신호를 주지 않으니 더 세게 나가야 할지 어쩔지 주저하시는 느낌. 

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켈륵! 켈륵! 헤으윽! 헤윽!” 

만두를 먹던 영영이가 사레라도 걸렸는지 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새빨개진 얼굴로 바들바들 떨며 기침해대기 시작한 것. 

곧장 놀란 미미와 소소의 외침이 이어졌고. 

“여, 영영아, 그러다 숨넘어가겠어요. 천천히 먹어요!” 

“맞아요. 누가 빼앗아 먹는 것도 아닌데. 자 여기 차.” 

-꼴깍꼴깍.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영영이는 미미가 건네준 식은 차를 들이켠 후 깊은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미, 미안···. 하이고 차 없었으면 죽을뻔했네.” 

조금 부끄러운지 볼을 붉히며 대답하는 영영이. 

부끄러울 만했다. 

그래도 영영이도 일류 고수에는 들어가는 경지인데, 밥 먹다 목이 메어서 죽었다면 두고두고 중원 무림 역사에 흑역사로 회자 될 사건이니까 말이다. 

「식탐 많은 당가의 일류 고수 밥 먹다 목이 메어 사망.」 

얼마나 쪽팔린 이야기인가? 

찻주전자를 영영이 쪽으로 밀며 이야기했다. 

“영영아 천천히 차도 마셔 가면서 먹거라.” 

“네, 가가.” 

‘정말 팽가의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그렇게 영영이의 진한 팽가의 피에 한탄하던 순간이었다.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단어. 

물! 

‘그렇지! 이게 영영이 하나에게 의존하니까 일이 안 풀리는 것이었어. 가지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지혜인데 그걸 생각하고 있지 못하다니!’ 

순간 영영이 때문에 떠오른 물이라는 단어. 

술의 품질 그러니까 술의 맛과 향을 결정 짓는 것은 발효조, 누룩, 쌀, 물. 

술을 만들기 위해서 발효조로 쓰는 토기 항아리나 누룩 그리고 쌀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모두 옮겨올 수 있는 문제였지만, 물만은 무게가 많이 나가니 현지의 물을 사용했을 것이 뻔했던 것. 

그리고 그런 상태라면 일반인은 느끼지 못할 테지만, 미묘한 물맛 차이로 인한 술의 변화를 알아낼 사람이 우리에게 하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미미에게 사람 한 명을 데려다 달라 부탁했다. 

“미미, 가서 가련이를 데려다주지 않겠소?” 

“제자분을요?” 

“그렇소.” 

생각해보니 우리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와인 소믈리에 버금가는 혀를 가진 가련이가 있었던 것. 

“제자분은 아직 심신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미미에게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흑막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우리가 무림의 세가는 아니지만, 가문 안에 다양한 무공을 익힌 여인들이 있으니 우리도 반쯤은 무가. 복수란 자기 손으로 직접 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네 명의 아내가 나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요. 노공.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것이 어찌 진정한 복수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은공,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세요. 그렇죠. 와서 작두라도 한번 내려야지.” 

“확실히 그러면 자기 손으로 복수했다는 성취감도 있을 테니 마음도 빨리 회복할 테지요.” 

“냠냠···.” 

내 말에 아내들이 기뻐하고. 

물을 마신 영영이는 다시금 오리 다리를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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