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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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가 화화루에서 마음을 추스르는 중인 가련이를 데리러 빠져나가고, 곧이어 지휘사들이 관영 주창에서 항아리 하나와 코가 빨간 알코올 중독자 같은 놈을 하나 데려왔다.
항아리는 아까 영영이가 가져온 것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 몸통만 한 커다란 항아리.
그것을 살피려는데 지휘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지주 어른, 관영 주창을 관리하는 유걸수라는 자와 전주 전인 술을 한 항아리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 알겠다.”
-딱!
형님이 손에 든 목패를 탁자 위에 내리치자 움찔하는 녀석들.
형님 뒤 병풍 속에 숨어 공당 안쪽을 살피자, 처음에는 왜 끌려왔는지 어리둥절하던 유걸수라는 놈이 황 씨 부자를 보더니 움찔하고는 얌전해졌다.
‘확실히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이군.’
원래 정말 죄가 없는 놈은 이렇게 갑자기 재판장으로 끌려오면 당황해 이것저것 물으며 외치기 마련인데, 입을 꾹 다물고 얌전해지는 것은 범죄자의 특성.
전생에도 무죄인 사람을 유치장에 넣으면 불안해하지만, 정말 범죄자를 잡아넣으면 코를 골면서 잠이 든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의도적으로 황 씨 부자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확실히 이상했다.
그때 귓가에 들려오는 청이의 목소리.
[노공, 저기 토기 항아리. 두 개가 똑같습니다.]
[맞습니다. 은공. 영영이가 가져온 토기 항아리와 두 개가 똑같습니다.]
지휘사의 보고와 형님의 말씀을 듣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항아리를 다시금 확인하자 정말로 똑같은 모습.
뚜껑을 밀봉한 종이가 영영이가 가져온 것은 흰색이지만, 관영 주창에서 가져온 것은 붉은색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
표면의 무늬가 같은 것으로 봐서는 같은 장인이 만든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저놈이 이 일에 관련된 것이 분명하오.]
[큰일 날 뻔했습니다. 노공.]
[그래도 괜찮소. 충분히 대비했으니.]
이미 녀석에 대한 대비는 준비했으니 황윤과 그 아비를 살폈다.
어떤 표정인지 궁금했기 때문.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몇 대 두들겨 맞았음에도 입꼬리가 올라간 황윤의 얼굴.
쥐새끼 같은 황윤의 아비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데, 황윤은 아직 속마음을 숨길만큼 노련한 장사치가 아닌지라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많이 웃어둬라. 그것이 너의 마지막 웃음이 될 테니까. 황윤아.’
녀석이 자신의 미소가 최후의 미소임도 모르고 신나 할 때, 흘깃 뒤를 바라보시는 형님.
시키는 대로 저놈을 데려왔는데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소소, 형님에게 전음을 보내서···.]
‘아니지. 잠깐. 이거 개꿀잼 몰카 한번 찍어야겠네.’
소소를 통해 형님에게 전음을 보내 다음 지시하려는데 불현듯 드는 생각.
이거 굴곡 없이 우리가 너무 수월하게 이기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원래 복수란 선 자리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에 올려준 후 떨어트리는 것이 빅재미.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는 충격이 크니까 말이다.
잡혀 온 것이 오해이고, 형님에게 배상도 받고 사과도 받아야 할 상황에서 냅다 목을 떨궈야 그것이 진정한 복수가 아니겠는가?
[소소, 형님을 얼른 불러들이시오.]
[포 형인(兄仁)을요? 알겠어요. 은공.]
곧바로 소소의 전음이 문자 메시지처럼 형님에게로 쏘아지고, 몸을 움찔한 형님이 공당안에 소리쳤다.
“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심문하겠다!”
그리고는 뒤쪽 자신의 집무실로 허겁지겁 되돌아와서는 다급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으셨다.
“아우, 어찌 불렀는가? 그리고 이제부터 어찌해야 하는가? 방법은 생각해두었는가?”
형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형님, 혹시 거짓말 잘하십니까?”
“응? 거짓말?”
형님이 귀여운 척을 하려는 것인지 눈을 깜빡거리고, 왠지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주먹이 꾹 쥐어졌다.
‘아차.’
***
잠시 후 다시 열린 공당.
안에서 포 형님이 끌려온 관영주창의 관리인에게 묻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딱!
“네 이름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라!”
그러자 고개를 조아린 광영주창의 관리인이 형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소, 소인은 복주의 관영주창 세 군데 중 하나의 주창을 맡은 유, 유걸수라 합니다.”
“그래, 그 일은 맡은 지는 얼마나 되었더냐?”
“수, 술 만드는 일은 올해로 삼십 해가 되었고, 주창은 맡은 지는 열두 해 되었습죠.”
“긴장하지 말거라. 내 네 죄를 물으려 부른 것은 아니고, 물을 것이 있어서 찾은 것이다.”
“물을 것 말이십니까?”
형님의 물음에 살짝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물을 것이 있다는 말에 황 씨 부자를 흘깃거리는 유걸수.
형님이 놈에게 놈을 공당으로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 지금 공당에서는 국법을 어기고 밀주를 만든 저 두 부자와 죄를 묻고 있느니라. 그런데 밀주하던 술은 모두 버려지고 남은 것은 저 항아리 하나. 죄인들은 저 술이 네가 판 술이라 주장하고 있느니라.”
“미, 밀주! 구, 국법을! 저 둘이 말입니까!?”
별로 놀란 것 같지는 않은데 놀란 표정으로 말하는 유걸수.
형님이 다시금 질문하셨다.
“하지만 본 복주지주는 저 술이 저들이 몰래 밀주한 술이라고 의심하는 상태. 네가 그리 오래 술을 빚는 일을 하고 주창을 관리했으면 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터. 저 술이 네가 만든 술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겠느냐?”
형님의 질문에 주창의 관리자인 유걸수가 괜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던 아까와는 다르게 고개를 조아리는척하며 황 씨 부자 쪽을 흘깃 바라봤다.
그러자 살짝 끄덕여지는 황 씨 아비의 고개.
그 신호를 본 주창의 관리인이 형님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 물론입죠.”
“그래, 그러면 한번 저 두 술이 같은 술인지 다른 술인지 비교해보라.”
형님의 지시에 딸기코의 유걸수가 항아리 쪽으로 걸어가더니, 이미 영영이가 확인하느라 봉인이 훼손된 단지로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 한껏 향을 들이켜는가 싶더니 형님을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제가 만든 술이 트, 틀림 없습니다요.”
그의 대답과 함께 터져 나오는 황 씨 부자의 목소리.
“그것 보십시오. 지주 어른! 저희가 무어라 했습니까? 누구에게 어떤 소리를 들으신 줄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억울합니다! 저희를 이리 두드려 패고 핍박하신 것은 어찌 보상할 작정이십니까!?”
“맞습니다! 대체 정직하게 장사하는 저희 부자를 어찌 이리 핍박하신 것입니까!?”
둘의 억울하다는 목소리에 형님의 호통이 이어졌다.
“다, 닥쳐라! 이, 이놈들! 유, 유걸수 네 말이 틀림없으렷다!?”
“제,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 고하겠습니까?”
형님의 질문에 납작 엎드린 류걸수가 오버액션을 취하면서 엎드리고, 형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 본관이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니라. 네놈이 사, 삼십 해를 이 일을 했다고 해도 틀릴 수 있는 법. 내, 냄새에 대해서라면 틀림없다는 당가의 여식이 다시 한번 살필 테니 기다리거라!”
형님의 신호가 온 상황.
영영이에게 얼른 지시했다.
[영영아 가보거라.]
[알겠어요. 가가.]
영영이가 병풍 뒤에서 걸어 나가고 형님이 영영이를 향해 말씀하셨다.
“당가의 여식은 저 두 술을 살피고 저것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를 살펴주시오.”
“알겠습니다. 어르신.”
항아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영영이.
영영이가 항아리 쪽으로 걸어가며 주창의 관리인에게 물었다.
“유걸수라고 했던가요? 뭘 좀 물어도 될까요?”
영영이의 질문에 형님을 바라보는 유걸수.
형님이 유걸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그 소저가 묻는 것은 내가 묻는 것과 같은 것. 질문에 대답하라.”
“예, 아, 알겠습니다.”
형님의 허락이 떨어지고 영영이가 유걸수에게 질문했다.
“술의 향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러자 유걸수가 잠시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영영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술의 향을 결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국(麴)입죠. 어떤 국을 쓰느냐에 따라서 향이 좋은 술이 되느냐 아니면 맛이 좋은 술이 되느냐가 결정되니까요.”
“그렇군요? 그러면 두 개의 술이 같은 술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도 같은 국으로 만든 것이라 그런 것이군요?”
“무, 물론입죠. 다른 국으로 만들었다면 분명 차이가 있을 테고 그러면 삼십 해나 술을 빚었던 제가 틀릴 리는 없습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주창의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대답하고.
천천히 항아리 앞에 도착한 영영이.
영영이가 이미 봉인이 뜯긴 항아리와 또 관영주창에서 판매하는 술 항아리 두 개의 향을 맡아보고는 나에게 전음을 보내왔다.
[가가, 확실히 둘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보관된 곳에서 밴 미세한 잔향들을 제외하고는 같은 곳에서 만든 것이라 할 정도로.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그리고는 형님을 향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거. 어. 어쩌지. 두 술의 향이 또. 똑같네. 아. 아마도 같은. 수. 술인 것 같네.”
‘아, 아니! 여, 영영아!’
갑자기 튀어나온 영영이의 발연기.
형님도 당황해 뒤쪽 병풍의 나를 바라보고, 소소를 통해 얼른 영영이를 불러들였다.
[소소, 얼른 영영이를 불러들이시오!]
[알겠어요. 은공.]
영영이의 발연기가 문제가 될 것 같아 허겁지겁 영영이를 불러들였지만, 그것은 공당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당가의 여식인 영영이도 두 술이 같은 술이라 보장했으니, 공당에는 형님을 향한 공격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
“그것 보십시오! 복주지주 어른! 코에서라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는 당가의 여식까지 같은 술이라 말하지 않습니까. 이제 어찌하실 것입니까!? 제 아비와 저를 이리 무참히 매질하시고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우려 하시다니!”
“맞습니다. 이 일을 어찌 보상하려 하십니까!”
녀석들의 매서운 질타에 움츠러드는 형님.
“그, 그것이···.”
그리고 그때 형님의 집무실 창문을 통해 미미가 안으로 풀쩍 들어오며 전음을 보내왔다.
[낭군님! 제자분을 데려왔습니다.]
병풍 뒤에서 공당을 지켜보다 모두 형님의 집무실로 달려가자, 미미의 등에 업혀 있는 가련이.
애가 새파랗게 질려있는 모습에 미미를 바라보자, 미미가 가련이를 의자 위에 내려두더니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가, 가슴이 커서. 업기가 좀 힘들어 몇 번 떨어트릴 뻔해서···.”
하긴 경공을 펼치는 미미의 등에 업혀 있으면 맞바람이 심한데, 가련이는 미미의 등에 밀착할 수 없으니, 맞바람에 떨어질 뻔한 모양.
“가련아 괘, 괜찮은 것이냐?”
그러자 잠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마음을 가라앉힌 가련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괘, 괜찮습니다. 스, 스승님. 조, 조금 놀라서···. 그, 그런데 여기는? 사모(師母)께서도 모두?”
아직은 떨고 있는 가련이에게 말했다.
“가련아. 내 얼마 전 너를 모욕했다는 그놈을 공당에 잡아두었느니라.”
“네엣? 그, 그놈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지 가슴을 움츠리며 대답하는 가련이.
가련이에게 물었다.
“그래, 우리가 무가는 아니지만, 너의 사모들도 다 무림인이고 복수는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혹시 네 손으로 저 밖의 저놈을 혼내주고 싶지 않더냐?”
내 질문에 가련이가 움찔하며 청, 소소, 미미, 영영이를 바라봤고, 잠시 가련이와 넷 사이에 오가는 시선.
넷이 가련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결연한 표정이 된 가련이가 식탁 위 자기 앞에 있는 무엇인가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영영이가 오리를 잘라 먹느라 식탁 위에 꺼내놓은 비수.
비수를 꼭 움켜쥐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가련이가 대답했다.
“예, 제, 제가 스승님께서 부끄럽지 않게 지, 직접 복수하겠어요! 어, 어디 있습니까? 그놈! 어, 어딜 콱 찌르면 되나요? 스, 스승님께 배운 요리 칼 다루는 법으로 히, 힘껏 찔러보겠어요!”
‘아니, 가련아 그거 아닌데?’
가련이의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청, 영영이, 소소, 미미는 그 대답이 아주 흡족한 모양.
가련이를 향한 칭찬이 이어졌다.
“아주 노공의 제자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입니다.”
“확실히 은공의 제자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가 아닌가요?”
“비수에 독까지 바르면 더할 나위 없긴 할 테지만, 그 정도면 충분한 마음가짐이지. 아무렴.”
가련이가 넷의 칭찬에 볼을 발그레 물들이고.
뭐 어쨌든 가련이가 마음을 먹었기에, 가련이에게 복수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가련아 그런 험한 복수가 아니라 네 혀로 하는 복수란다. 소소 형님께 신호를.”
“알겠어요. 은공.”
“네? 혀로?”
내 말에 당황한 가련이가 자기 혀를 빼물고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소소의 전음에 밖에서 쩔쩔매던 형님의 목소리가 조금 다른 외침이 되었다.
“······대체 이것을 어찌 보상해주실 것입니까!?”
“내 자네들의 치료비와 그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고 할 줄 알았느냐! 이놈들! 내 네놈들의 죄를 입증할 사람을 하나 더 데려왔으니 딱 기다리거라!”
형님 진짜 꿀재미를 아시는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