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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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죠?”
“청아 이건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저번에 비연이가 우리 이야기를 대충 들은 것 같아.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지.”
“맞아요. 영영. 이 행동은 은공을 음해하려는 악의가 느껴지는 행동이 아니라 할 수 없군요.”
“우리 비연이가 대체 왜 그랬을까?”
팔짱을 낀 청, 영영이, 소소, 미미가 비연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기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비연.
“어, 언니들 제가 다, 서,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겨,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음해라뇨. 제, 제가 청운님을 얼마나 좋아하는···. 아,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런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걸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죠?”
“이건 이해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분명히.”
넷이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비연이 데려온 사람들 때문이었다.
비연이 사람들을 데려온 이유.
그것은 내 부탁 때문이었는데, 다른 것이 아니라 장사를 시작하려면 요리사부터, 점소이, 하인이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복주에서 그런 사람들을 구하는데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은 비연이 유일했던 것.
뭐 이젠 우리의 가맹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제일 먼저 필요한 요리사는 남궁현 형님을 화화루에서 이쪽으로 이적시키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보조인 초보 가련이와 이전 식당에서 일하던 식모를 이쪽으로 불러오는 것으로 급한 불은 껐는데.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역시나 점소이와 하인.
이 시대 장사는 점소이가 칠 할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점소이가 중요한데, 그것은 앞서 심우현의 내 가게의 점소이를 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의 행색과 말투, 행동거지들만 보고 그들이 돈이 많은 사람인지 개털인지 눈치채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은 가게라면 되는 요리가 적으니 적당히 있는 요리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되지만, 큰 건물에서 하는 장사는 여러 부류의 손님이 오니 그 손님들에게 맞는 요리를 추천해야 했던 것.
잘못해서 돈 많은 사람에게 싸구려 요리를 추천하거나, 돈 없는 놈에게 비싼 요리를 추천하면 뺨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점소이들의 세상이니까 말이다.
해서 내 부탁에 비연이 경험이 많은 아이들을 데려온다고 말해 기대하고 있었는데, 비연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여자를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무래도 기녀가 확실할 것으로 여자들로만.
그러니 청, 영영이, 소소, 미미의 처지에서는, 나에게 여난이 있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들로만 데려왔으니.
이건 뭔가 자기들이나 나를 엿 먹이기 위함이 아니냐고 물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그럼, 내 처지 아는 사람이 이러면 곤란하지. 확실히 비연이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상하지.’
네 여자의 다그침에 나도 고개를 주억거릴 때 들려오는 목소리.
[공자님.]
고개를 주억거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한 손을 살짝 들어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왔다.
비연이 혼나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정체는 금방 생각이 났다.
‘헉! 저 아이는? 진이가 좋아한다던 월희!? 저 아이가 대체 왜 저기에’
나에게 인사를 해온 아이는 장진 녀석이 목을 매던 월희.
알고 보니 비연이 데려온 아이 중에는 전 화월루의 기녀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던 것.
얼른 그녀의 눈길을 피하면서 딴청을 부였다.
그러나 귓가에서 들리는 서늘한 목소리.
“가가, 아는 아이가 있나요?”
“노공이 아는 아이가 있다고요?”
“은공?”
“낭군님?”
얼른 비연에게 상황을 설명하라고 눈빛을 보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그러자 잠시 내게 네 명의 시선이 나에게 끌린 틈에 비연이 왜 여자들만을 끌고 왔는지를 설명했다.
“언니들, 지,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이 아이들은 전부 문(門)에서 훈련된 아이들이에요. 그저 그런 기녀들이 아니라고요. 또 전부 확실한 제 사람들. 감히 언니들의 것을 탐할 아이들이 아니에요.”
“응? 문에서?”
“문에서 훈련된 아이들이라고?”
문에서 훈련되었다는 말은 결국 하오문 소속이고 무공을 어느 정도 익힌 스파이라는 뜻인데, 다들 비연의 말에 진짜 그것이 맞냐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예, 전부 제가 믿을 수 있는 아이들로 준비한 것입니다. 청운님과 언니들은 너무 무방비하신 것이 있어서 제가 아주 신경 써서 준비한 것이라고요.”
“““무방비?”””
비연의 무방비라는 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넷.
그러나 비연자 비연의 그 무방비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빨리 설명했다.
“무, 물론 무공으로 언니들을 당할 자들이 어디 있겠나요. 또 가문의 뒷배도 있으니 감히 해코지 같은 것은 생각하지 못할 테지만, 네 분과 청운님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주변에 두는 사람도 아주 조심해야 해요.
가문이나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 들은 이야기 같은 것들도, 큰 가치가 있는 것들일 수가 있기에. 이렇게 사람을 뽑을 때, 쥐새끼들이 끼어들어 오기 마련이니까요.”
확실히 비연의 주장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청이의 무공이 현 중원 제일이나 마찬가지기에 따로 가문에서 무사를 파견해달라 부탁하지는 않았지만, 장인들도 무사들을 보내준다고 했었고, 아무래도 점소이나 하인들을 뽑을 때 산업스파이가 끼어들어 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청운님의 요리는 천금의 가치를 가진 것이니, 아무래도 잘 보호해야 하지 않겠어요?”
비연이 말이 끝나자 화가 약간씩 수그러든 넷.
그러나 영영이가 불만 어린 목소리로 투덜댔다.
“그치만 왜! 다! 모조리! 전부! 여자냐구.”
“그, 그건 문 내에 제 위치 때문입니다.”
이어진 비연의 설명으로는 하오문은 알다시피 차(車), 선(船), 점(店), 각(腳), 아(牙), 기(妓),
그러니까 마부, 뱃사공, 점소이, 짐꾼, 인신 매매업자, 기녀의 직업을 가진 자들이 만든 연합 노조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각 직업의 수장이 전부 다르다는 것.
마부, 뱃사공, 점소이, 짐꾼, 인신 매매업자, 기녀의 수장이 다 다르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하오문을 구성하고 여섯 직업이 다들 뚜렷한 개성이 있어서 하오문 아래 활동하긴 하지만 섞이지 않아 그렇다고.
그 때문에 하오문은 한 명의 문주와 다섯 장로로 이루어져 있고, 여섯 직업의 수장 중 하나가 문주가 되고 나머지는 장로의 포지션이 된다나?
비연은 그 기녀의 수장 중 세 번째쯤 된다고.
그러니 결국 비연이 믿을만한 사람은 죄다 기녀뿐이라는 말이었다.
“···해서 제가 뽑은 아이들이 전부 기녀 출신 아이들인 것이에요. 그, 그리고 청운님의 부탁도 있고···.”
“응?”
“가가께서?”
“은공이?”
갑자기 내가 여자들만 데려오라 부탁했다는 비연의 말.
화들짝 놀라 항변했다.
“내, 내가 언제 그랬단 말이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는 비연.
“청운님께서 절대로 점 있는 남자 놈들은 데려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어?”
그러자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절대 얼굴 여기저기에 점 있는 사내놈들은 데려오지 마시오. 내, 점만 보면 몸에 뭐가 돋는 것 같아.’
이시기에는 점소이는 손님들에게 복을 받으라고 얼굴에 큰 점 있는 놈들은 고르는 것이 보통인지라, 혹시라도 그런 놈을 데려오면 환(環) 공포증에 걸려버릴 것 같아 한 말인데···.
‘내, 내가 말끝에 사내놈은 왜 붙였을까?’
쏘아지는 시선에 얼른 변명했다.
“내, 내 말은 그러니까, 복점이라고 하면···. 그래! 가련이 같이 적당해야지 눈알만 한 점부터 주먹만 한 점까지 달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피해달라 그런 말이었는데, 그 말이 좀 와전된 것 같구려. 아, 아무렴.”
약간의 의혹 어린 눈빛이 쏟아졌지만, 적당히 설명하자 못마땅 하지만 딱히 뭐라고 못하는 넷.
약간의 커뮤니케이션 차이이고, 비연도 생각해서 믿을만한 아이들을 챙겨줬다니 뭐라고 하기도 힘든 것.
얼른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저 아이들이 점소이 일은 잘 해낼 수 있겠소?”
하인이야 여자 하인들도 많으니 상관없지만, 점소이는 좀 다른 문제.
내가 조금 우려 섞인 질문을 하자 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돈 냄새를 잘 맡아야 기녀가 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리고 다들 노래는 어느 정도 할 줄 아니, 주문받는 노래도 잘할 테니까요.”
그렇게 약간의 소동과 함께 기루의 점소이와 하인들이 전격 결정되었다.
***
스무날이 지난 안개 낀 뿌연 새벽녘.
화월루라는 편액(扁額)이 사라지고 류가반점이라는 편액이 내 요릿집에 내걸렸다.
편액을 써준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포형님.
형님 알고 보니 남다른 재주가 있었는데, 공무원이라도 글솜씨가 남달랐던 것.
그렇게 형님이 써주신 편액까지 걸고 나자 우리 요릿집이 완성되었다.
“어떤가요? 마음에 드시나요. 청운님?”
“훌륭하오.”
자기가 해준다고 큰소리친 이유가 있었는지, 비연이 사람을 시켜 수리한 류가반점은 생각보다 내부가 아주 잘 나왔다.
기루와 대형 요릿집을 많이 운영하는 하오문이라서 그런지 노하우가 있는 느낌.
고급스럽고 과하지 않은 이 시대에 먹어주는 디자인으로 아주 괜찮은 모습이었던 것.
일 층은 내 요구대로 누구라도 와서 먹기 부담 없게 단아한 테이블로 채워졌으며, 이층은 조금 그보다 고급스럽게, 삼 층은 화려하고 각각의 느낌이 다른 룸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사 층의 객실은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오 층은 큼지막한 내 방과 함께 작은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었다.
위층까지 다시 한번 둘러보고 비연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수고했소. 마음에 꼭 드오.”
“다행입니다. 제가 직접 챙겼으니, 저에게도 충분히 상을 주셔야 합니다.”
“알겠소. 내 화화루에서 잘 먹힐만한 요리를 준비해드리리다.”
“믿겠습니다. 청운님.”
비연이 되돌아가고 뒤돌아 류가반점 내부에 양쪽에 늘어선 하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자, 그럼 장사 한번 시작해볼까!?”
청운객잔 리마스터 시작이었다.
***
하인들에게 각자 임무를 부여하고, 부엌으로 들어서자 우육면의 국물을 만들고 계신 형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옆에서 일손을 거들고 있는 가련이도.
“형님, 잘 되어가고 계십니까?”
“아, 매부. 자네 제자가 무척 도움이 되고 있네. 향신료의 양이나 간을 맞추기 이리 편하다니. 이 아이 말만 따르면 자네가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맛을 낼 수 있으니 정말 좋구만. 어디서 이런 보배 같은 아이를 찾아냈는가?”
형님이 일하시는데 가련이를 옆에 붙여두었더니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가련이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형님.
그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하하, 형님이 보아도 그렇습니까? 제가 아주 운이 좋았지요.”
“부, 부끄럽습니다. 스승님.”
우리 둘의 거듭된 칭찬에 얼굴을 붉힌 가련이가 어쩔 줄 몰라 한 것도 잠깐.
국물을 준비하는 것을 끝마친 형님께서 물으셨다.
“아, 매부. 이것은 이리 끓여두면 되고, 황어면 만들 황어는 아직 오지 않고 있는데 그걸 좀 확인해주겠나.”
“알겠습니다. 형님.”
황어면을 만들 황어는 전대백에게서 전량 공급받고 있는데, 하인들을 데리고 황어를 사러 나간 영영이가 아직 돌아오고 있지 않았던 것.
얼른 주방을 나서 홀에 들어서 하인 하나를 붙잡고 부탁했다.
“아, 영영이가 아직 오지 않아 그런데, 어전(漁廛)에 확인하러 다녀와 주겠느냐?”
“알겠어요. 대인.”
그렇게 하인 하나가 밖으로 뛰어나가고 홀을 살피는데, 조금 신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홀 가운데서 청이와 미미, 소소가 모여 뭔가를 하고 있었던 것.
‘뭐지?’
셋이 식탁 위에 뭔가를 내려두고 구경하고 있기에 그곳을 찾아가자, 붓을 들어 뭔가를 적고 있는 청이의 모습이 들어왔고, 청이가 섬섬옥수 고운 손으로 신개장(新開場)이라는 세글자를 적고 있었다.
‘아차차. 내가 저걸 빼먹었구나.’
중원에 신장개업이라는 말은 없다.
신장개업이라는 말은 한국에나 있는 말.
그 때문에 중원에서는 신개장이라는 말을 쓰는데, 뭐 그냥 새로 오픈했다는 그런 말로, 개업했으면 또 써 붙이는 것이, 공식 룰.
그것을 내가 빼먹어 청이가 대신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 그것을 쓰는 것을 빼먹었구려.”
“처음에 심우현의 노공의 객잔에 찾아갔던 기억이 나서 적어보았습니다.”
“잘했소.”
청이와의 첫 만남 생각이 떠올라 미소를 짓고 있는데, 나에게 내밀어지는 붓.
청이가 붉은 종이에 두 장의 신개장이라는 말을 다 적고는 나에게 붓을 내밀며 말했다.
“노공, 그것을 적으시지요.”
“그것?”
갑자기 뭔가를 적어달라는 말에 뭐 가훈 같은 것을 적어달라는가 싶어 물었다.
“어떤 것을?”
그러자 청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십자 말입니다.”
“아차차!”
제일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빼먹을 뻔했던 것.
역시 첫 아내.
나는 청이에게 붓을 넘겨받아 얼른 십자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밥풀로 일 층 제일 중앙 높은 곳에 붙이고, 의자에서 내려서고 있을 때였다.
“가가! 가가! 큰일 났어요!”
영영이의 큰일 났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십자를 향했다.
‘형님, 설마 아니죠?’
서버 오픈 때마다 이러면 정말 곤란했다.
모든 게임이 서비스 첫날 서버가 터지는 것이 국룰이라지만, 심우현의 초라한 객잔과 오 층짜리 전각이 터지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