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9화 (289/344)

해무(海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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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에 싸늘한 시선을 두었던 것도 잠깐. 

일이 생길 때마다 의심하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니 일단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고난과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어쨌든 뭐 지금은 잘 나가고 있으니까. 

‘그간 너무 갈대같이 흔들려서 형님이 믿음을 시험해보느라 그러셨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의자에서 내려서는데 다시 한번 외치는 영영이. 

“가가! 크, 큰일 났다니까요!” 

“영영 언니, 무슨 일인지 진정하고 이리 앉아서 천천히 말을 해보세요.” 

“영영, 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인가요? 여기 물 좀 마시고 말해봐요.” 

청이와 소소가 호들갑을 떨며 뛰어 들어온 영영이를 잡아다 식탁 앞에 앉히고는, 대체 왜 그리 호들갑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영영이가 소소가 내민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숨을 가다듬었다. 

“푸하···. 지금 항(港)과 어전이 온통 상갓(喪家)집이야.” 

“상가요? 큰일이라서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다치기라고 했나요? 영영?” 

소소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영영이. 

영영이가 문밖의 안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해무(海霧) 때문에 어젯밤에 나간 배가 한 척도 항에 돌아오지 못했데. 그래서 지금 아주 항 쪽은 난리야.” 

“해무 때문에요?” 

“해무요?” 

해무(海霧). 

내가 전생에 죽던 날도 진한 해무에 배가 출항하느니 마느니 하다가 출항했던지라, 여객선 대합실에서 해무에 대해서 검색하고 있었으니 해무에 대해서라면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도 진한 해무에 배가 출항했다가 원인 모를 이유로 가라앉았었으니까 말이다. 

해무란 바다에 생기는 안개를 말하는데, 일교차가 큰 봄철이나 초여름에 바다와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의 온도 차에 의해서 생기는 안개를 말한다. 

대륙과 바다의 경계인 해안에서 발달하다가 심하면 먼바다까지 밀려가 며칠씩 이어지기도 하는 진한 안개를 말하는 것. 

심지어 해무는 진해지면 가시거리가 일 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빽빽해지기도 하기에,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바다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재앙이라 할 수 있었다. 

낯에는 태양을 기준으로, 밤에는 별자리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이 시대의 항해법일 텐데,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방향을 찾을 수 없고, 그러면 바다를 표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마 그런 이유로 고깃배들이 하나도 항구로 되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제부터 꾸물꾸물하더니, 해무가 바다 쪽으로 밀려가 배들이 항구 쪽을 찾지 못했나 보군.’ 

호들갑을 떨어대는 영영이의 손가락질에 밖을 보니, 새벽녘 뿌옇게 변했던 안개는 이제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진해지고 있었다. 

“그러면 어전에 황어가 없었겠구나.” 

“네, 가가. 어쩌죠? 황어가 없으면 황어면은 못 만들잖아요? 정말 큰 일이죠? 그렇죠?” 

큰일이라기에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 

거대 문파 둘이 우리 가게 앞에서 패싸움을 벌인 것도 아니고, 일 층의 주메뉴가 두 가지인데 한가지가 안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이긴 했지만, 장사를 못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황어를 구할 방법이 없으니, 해무가 사라질 때까지 황어면은 메뉴에서 내리기로 했다. 

어제 잡은 녀석들은 아직 어전에 좀 굴러다니겠지만, 그걸 가져다 쓰느니 그냥 안 만드는 것이 나았던 것. 

재료의 질이 떨어지면 그만큼 요리의 질도 떨어지고, 단골이라면 모르겠지만 처음 온 손님들은 우리 요리의 질이 그 정도라 생각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구나. 황어면은 일단 손님들에게 안 된다고 하고, 우육면을 팔아야겠구나.” 

“네, 가가.” 

“노공, 하인들에게는 제가 이르겠습니다.” 

“그래 주겠소?” 

그렇게 영영이의 호들갑스러운 보고가 끝나고 창밖의 해무는 점점 진해졌다. 

정말 시야 거리가 일 미터가 나오지 않을 정도. 

그리고 황어가 없어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큰일조차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너무 진한 해무에 사람들이 밖으로 돌아다니질 않으니, 장사가 될 리가 없었으며, 건물 내부로 안개가 밀려 들어오지 않게 문을 다 닫아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신개장 첫날 아직 개시조차 못 해보고 있었기 때문. 

진한 해무에 문까지 닫혀있으니 손님이 오지도 가지도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형님 이번에는 아주 신박했습니다. 자연재해라니.’ 

갑작스러운 신장개업 날 들이닥친 자연재해.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분노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나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이것이 약간의 시험이라면 생각해보니 항상 이런 고난 끝에는 보상이 달콤했기 때문. 

청이 때도 객잔이 개 박살 나고 장인에게 살기 쏘여 죽을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청이를 얻었었으니까 말이다. 

서프라이즈 하긴 했지만. 

‘잠깐! 아니지, 이거 마냥 핑크빛이 아닐 수 있어.’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이게 마냥 핑크빛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보상으로 또 새로운 아내가 추가될 수도 있었던 것. 

항상 이런 고난 끝에 보상은 새로운 아내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이유로 굴 입구를 지키는 병정개미마냥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경계 태세에 임하기로 했다. 

‘여난은 사전 차단해버리겠어! 접근하는 모든 여자를 거부한다!’ 

미미의 해금 이후로 부끄럽게 어제 아침에 코피를 한번 쏟았으니, 모든 오마케가 해금되었을 때 내 미래가 빤히 보였던 것. 

그때였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해무가 들어오지 못하게 닫아두랬더니 누가 문을 닫아두었느냐? 거참.” 

해무 때문에 문을 닫아두라 했는데,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어 문이 완전히 닫혀있는 모양. 

밖의 사람에게 얼른 외치며 달려 나갔다. 

무엇보다 개업 날 개시는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나갑니다!” 

-삐걱. 

그렇게 재빠르게 달려 나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실망스럽게도 화화루의 교송지와 비연. 

개시와는 상관없는 인물들의 방문에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또 누구라고···. 어서 오시오 비연, 그리고 교송지.” 

“류 대인 잘 계셨습니까? 신개장을 축하드립니다.” 

“아니, 청운님 왜 목소리와 반응이 그리 떨떠름하세요? 안개 헤치고 오느라고 힘들었는데, 저도 손님인데 반겨주셔야지요!” 

비연의 토라진 목소리에 과장되게 대답했다. 

“아이고 반가워라! 첫 손님이 오셨네! 이렇게 기쁠 수가!” 

그러자 서운함을 토로하는 비연. 

“와···. 너무 서운해요!” 

“서운은···. 그래, 대체 무슨 일이오? 정점주(正店主)?” 

내 냉랭한 반응에 비연이 서운한지 입을 삐쭉거렸지만, 나는 얼른 비연의 꽌시들에게 그녀를 넘겼다. 

원래 꽌시 대접은 꽌시들이 하는 거니까. 

“청, 영영, 소소, 미미, 비연 왔소이다.” 

그러자 뒤에서 우리의 인사를 보고 있던 여자들이 몰려들어 비연을 끌어다 넓은 자리로 데려갔다. 

“비연, 어쩐 일이에요. 이런 때에? 잘 때가 아닌가요?” 

“맞아. 비연아 너 잘 때 아니야?” 

“언니들이 반점을 열었는데 동생이 당연히 와봐야죠.” 

“저런 피곤할 텐데.” 

“어차피 며칠 장사는 힘들 것 같아요. 이리 해무가 진하면 손님이 오지도 않거든요.” 

“하필 가가께서 반점을 여신 날···.” 

속상하고 안타깝다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어쩔 수 있나 자연재해는 사람이 어찌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여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해무가 며칠이 나갈까 고민할 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 

개업이라고 면 반죽을 잔뜩 준비해둔 것이 떠올랐다. 

‘이거 큰일이구나 잘못하면 요리 다 버리게 생겼구나.’ 

전생이라면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 쓸 수도 있지만, 이거 곤란했다. 

청이에게 냉기를 쏘아달라고 하려 해도 계속해서 그것만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다 버려야 했던 것. 

얼른 태도를 바꿔서 비연에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깝긴 해도 상해서 버리느니, 먹이고 좋은 소리나 듣는 것이 좋으니까. 

“비연, 교송지와 아직 아침을 하지 않았으면 우육면 한 그릇 말아줄 테니 드시겠소? 그래도 개업이라고 찾아왔으니 내 음식이나 대접하려 하는데? 

그러자 서운했다고 했던 사실도 잊고 금방 반색하는 비연. 

“좋아요! 뭐야? 청운님 아까 그냥 해보신 소리였군요? 후후.” 

그녀의 대답에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재빠르게 면발을 뽑고, 하인들에게도 이야기했다. 

“너희들도 아침을 안 먹었을 테니 다들 가서 앉거라 내 우육면 한 그릇씩 말아줄 테니.” 

하인들은 각층의 직원 숙소에서 흩어져 생활하는데, 얘들도 아침은 먹어야 했으니까. 

장사가 바쁘면 조금 늦게 먹거나 돌아가면서 먹어야 하는데, 지금은 다 같이 먹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말입니까? 어르신?” 

“그래, 손님이 없으니 지금이 좋을 것 같구나. 너희들도 아침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어서 준비하거라.” 

내 대답에 점소이와 하인들의 두목 격인 월희가 다른 아이들에게 명령했다. 

“어르신께서 요리를 만들어주신다니 다들 불러오세요. 아침은 지금 다 모여서 먹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면발을 뽑아 우육면을 만들어 비연과 교송지 그리고 하인들과 점소이 일을 보는 아이들까지 전부 아침을 먹였지만,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면. 

형님과 가련이가 면 반죽을 보고 난처한 목소리로 물었다. 

“매부, 새벽 일찍 일어나 만들어 두었는데, 너무 많이 만들어 둔 것 같군. 이걸 다 어쩐다···.” 

“하필 해무가 끼어서. 스승님 어쩌지요?” 

형님과 가련이는 주방 식구들은 주방 식구들이라고, 은은한 불에 끓고 있는 우육면의 국물과 반죽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큰솥 두 개에 끓고 있는 양은 이백 명은 먹을 양이었으니까 말이다. 

‘하···. 너무 아까운데. 먹일 사람 더 없나?’ 

남은 음식의 양에 고민할 때 영영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항(港)과 어전이 온통 상갓(喪家)집이야.’ 

‘아! 그렇지! 항구!’ 

바다에서 실종된 가족들 걱정에 항과 어전이 초상집이라는 이야기. 

우리 우육면을 화초와 무를 넣어 살짝 얼큰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 

전생에 주워듣기로는 상갓집에서 육개장을 먹는 이유가 답답한 속을 시원하게 풀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으니, 나쁘지 않았다. 

아 물론 거기가 상갓집은 아니고, 가족들 걱정에 무척이나 답답할 테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항구에 모여 가족들 걱정에 밥도 못 먹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텐데, 어차피 오늘 장사는 망했으니 명망이나 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우육면을 먹으며 비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미미를 불렀다. 

“미미!” 

-후르륵. 

“네, 냥균님.” 

내 부름에 미처 입안에 음식을 다 어쩌지 못하고 입을 가리며 대답하는 미미. 

미미에게 물었다. 

“미미, 혹시 이 안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소?” 

고수들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어두운 밤에만 돌아다니는 미미는 뭔가 남들보다 이런 시야가 가려지는 상황에서 앞을 더 잘 볼 것 같았기 때문. 

‘첫날 밤에도 아주 잘 보는 것 같았고 말이지.’ 

잠시 얼굴을 붉히며 면발을 다 먹은 미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당연하죠.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는걸요.” 

‘역시!’ 

나는 청, 미미, 소소, 영영이와 하녀들을 향해 의견을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만들어 둔 재료를 가지고 가, 항에서 사람들에게 요리를 나누어 줍시다. 가족들 걱정에 식음을 전폐하고 항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텐데.” 

그러자 역시나 기뻐하는 네 여인. 

“어머나! 노공, 정말 의로운 생각이십니다.” 

“공짜로 나누어 주시겠다는 거죠. 가가? 하긴 전 대백 얼굴이 말이 아니었어요. 밥이라도 먹이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다들 아침 든든하게 먹고 갑시다!” 

그렇게 며칠 운행하지 않았던 우리 노점 수레가 오랜만에 활동을 개시했다. 

대민 지원을 위해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 뭐.’ 

-뿌드드득. 

빽빽하게 낀 안개의 선두에서 미미가 방향을 잡고, 조금만 멀어져도 서로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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