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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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가 이끄는 대로 안개 속을 헤치며 매번 장사하던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힘들게 수레를 굴려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광장.
하지만 우리는 익숙하게 수레를 펼치고 화로에 불을 넣어 우육면을 준비했다.
이미 다들 노점 장사에 익숙해진 상태인지라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서 장사 준비가 힘들지는 않았던 것.
“영영아, 미미랑 다니면서 사람들을 데려오너라. 다들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와서 요기나 하고 가라고 이야기하거라. 안 먹겠다면 끌고라도 오거라.”
복주의 다른 곳이면 모르겠지만, 항구 쪽은 그간의 장사로 사람들과 친분이 생긴 터.
가족들 걱정에 입맛이 없기도 할 테고, 이번에 화월루를 받은 일 때문이라도 거절할 확률이 높으니 강제로라도 끌고 오라고 말하자, 영영이가 미미의 손을 잡아끌며 냉큼 대답했다.
“알겠어요. 가가. 미미 언니 가요.”
“그래요. 영영.”
그리고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자 할 일을 정해주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형님은 국물을 맡아주시고, 가련이는 면이 익으면 건져서 찬물에 씻은 후, 그릇에 담에 형님에게 건네드리거라.”
“알겠네. 매부.”
“알겠습니다. 스승님.”
“청이와 소소는 물을 좀 떠다 주겠소? 하인들에게 시키자니 혹 앞이 보이지 않아 다칠 것 같아서 그렇소.”
“알겠어요. 노공.”
“알겠습니다. 은공.”
“따라온 하인들은 다 먹은 그릇을 받아 씻어주고.”
“““예, 어르신.”””
그렇게 모든 인원에게 명령을 내리고. 첫 면발을 뽑고 있을 때였다.
-탕! 탕!
도마 위에 후려친 첫 면발이 손끝에서 길게 늘어지고 있을 때.
안개 너머에서 전대백 그리고 영영이와 미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 아가씨 괜찮다고 해도요.”
“그러지 말고 얼른 오세요. 장사도 기운이 나야 하죠. 다른 분들도 얼른 오세요. 가족들 걱정되는 것은 알지만, 잘 먹어야 기운을 내서 기다리죠.
“자, 낭군님께서 걱정되어 음식을 마련했으니 얼른 가요.”
그리고 안개 속에서 미미와 영영이를 따라 얼떨떨한 표정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류, 류대인···. 안녕하십니까?”
미미의 뒤를 따라 나타난 사람 중에 제일 앞에 서 있는 전대백.
그의 인사에 뽑던 면발을 내려두고 앞치마에 손을 닦은 후, 얼른 달려 나가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전대백, 얼마나 근심이 크겠소.”
“아, 아닙니다···.”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는데 애써 괜찮다고 말하는 전대백.
현대에 들어와서는 모르겠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어부들이나 뱃사람들이 많은 항구 마을이나 해안도시라면 바다에 가족 한둘 잃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바다는 무서운 곳이다.
어부들의 배라고 해봐야 돛단배가 대부분인데, 풍랑이나 돌풍, 해무 같은 것을 만나면, 쉽게 표류나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더군다나 며칠씩 먹을 식량을 싣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해무가 길어져 뭍에 오르지 못한다면 바다에서 갈증으로 정신을 잃거나 죽을 염려도 있을 테니, 기다리는 가족 처지에서는 속이 바짝 타들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기는···. 얼른 앉으시오.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려면 기운이 있어야지. 자 사양하지 말고 앉으시오. 자 다른 분들도 내 오늘은 돈을 받지 않을 테니 다들 앉으시오.”
“가, 감사합니다! 류 대인.”
“감사합니다. 어르신.”
내 정체는 이미 알려질 때로 알려져 사람들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호의에 고마워했고, 그렇게 미미와 영영이가 데리고 오는 어전의 상인들과 해무로 일이 없어 쉬고 있는 항구의 짐꾼들이 우리의 무료 음식을 대접받았다.
하지만 항구의 일꾼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아무래도 가족 걱정에 입맛이 없는지, 다들 상당히 많은 음식을 남기고 있었다.
[스승님, 아무래도 손님들이 우육면을 많이 남기십니다.]
[뭐 속이 속이 아닐 테니 어쩔 수 없지. 괜찮으니 걱정 말거라.]
[하지만, 아깝습니다. 소고기인데···.]
[나중에 고기는 건져서 덕구라도 주면 되니 걱정 말거라.]
[아! 그렇지. 알겠습니다. 덕구. 덕구가 있었지.]
가련이는 궁핍한 생활을 했었기에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운 모양이었지만, 어차피 버릴 요리 인심이라도 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자, 항구에 흩어져 가족 걱정과 일이 없는 것에 한탄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우리 노점 근처에 모여들게 되었고, 우리 노점을 중심으로 바다에 나간 가족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해무는 얼마나 오래갈 것 같소?”
“원래 이맘때면 바다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어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육지에서 바다로 바람이 불고 있어 그런 것 같소.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이게 얼마나 오래갈지···.”
“다들 물 들은 얼마나 챙겨갔는지 아쇼? 우리 애들은 금방 돌아온다고 물을 한 통밖에 가져가지 않았는데, 걱정이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람들의 안타까운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침 식사는 어느 정도 대접했는지 미미나 영영이가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고,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색한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는 전대백.
“어찌 그러시오. 전대백?”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전대백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인. 아까 사과를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정신이 없어 놔서···.”
“아니, 갑자기 무슨 사과요. 전대백.”
영문을 모르겠는 전대백의 사과.
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전대백이 사과하는 이유에 대해 대답했다.
“제, 제가 대인의 생선을 모두 책임지기로 했는데, 물건을 드리지 못했으니 사과드리는 것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영영 아가씨 말로는 다른 곳에서도 구하지 않으셨다고···. 그, 그렇게까지 약속을 지켜주실 필요는 없는데···.”
‘아, 그랬지.’
농어 두 마리를 받으면서 전대백에게 우리 집에 들어오는 생선은 모두 전대백의 물건만 쓰기로 약속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전대백이 물건을 줄 수 있을 때의 약속이고, 우리는 장사를 해야 하니 전대백이 물건을 못 준다면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것.
하지만 오늘같이 물건을 주지 못할 때, 황어면을 만들기 위한 황어를 굳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구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오늘 배가 다 들어오지 못해 싱싱한 황어를 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는데, 전대백은 내가 의리를 지키려고 그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목을 가다듬고 전대백에게 이야기했다.
이 류청운의 ‘의리’에 대해서.
“크흠! 으, 의리 하면 또 이 류청운 아니겠소? 내 사람이 난처한데 어찌 내 사리사욕을 채우겠소!”
“뜨아아아아아···. 대인!”
‘개 자연스러웠어. 다행이야.’
이런 상황의 답변으로서 최고의 모범답안을 내밀자, 내 말에 감격했는지 전대백의 눈물샘이 장강의 물줄기처럼 터져버렸고.
그 눈물과 울음에 사람들이 안개 속에서 우리 쪽으로 다가와 무슨 일인지를 확인했다.
“저, 전대백 진정하시오. 하 이거 참.”
“대인 이 전가가 대인의 따듯한 말씀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뜨흐읍···.”
“전 씨, 무슨 일인데 울음을 터트리셨소? 아들 걱정 때문인가?”
“전대백, 진정하시오. 이 사람···.”
그렇게 눈물을 질질 짜는 전대백을 앉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나한테 고마워서 눈물을 빼는 거 같긴 했는데, 아무래도 좀 과한 감정에 뭔가 연유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
“내 그러고 보니 전 대백에게 자식은 아들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는데 아들이 그 하나요?”
그러자 눈물을 훔치며 전대백이 대답했다.
“예, 아내는 병으로 죽고, 다른 자식도 돌림병으로 다 잃었지요. 마지막 남은 자식입니다.”
마지막 남은 자식이라면 더욱 애틋할 터.
더군다나 그가 죽으면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것이니, 전대백의 감정이 어떨지 살짝 짐작할 수 있었다.
대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에서 대를 이을 적자(嫡子)를 잃는다는 것은 미래를 잃는 것.
암담한 마음이리라.
안타까운 마음에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혹시, 아들 혼례는 치렀소?”
“예, 얼마 전에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지금 애가 들어서, 집에 있는데 아들이 저리 바다에서 소식이 없어서···.”
“어머···.”
“전대백, 며느리분은 괜찮아요?”
임신한 몸으로 많이 놀랐을 테니 청이와 소소는 그것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예, 뭐 앓아눕기는 했는데, 해무가 걷히면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일러두었습니다.”
“저런, 정말 심려가 크시겠소. 내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아닙니다. 류대인 의리를 지켜주신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저희가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도 모르죠. 오늘 밤에라도 거짓말같이 해무가 사라지고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드러나면 다들 집을 찾아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위로를 건네자 전대백은 그래도 좀 눈물을 빼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던지 담담히 대답했고, 우리 이야기를 듣던 다른 사람들도 전대백의 대답에 약간의 희망을 담아 말했다.
“그래, 전 씨 말이 맞소. 북두칠성님이 드러나면 다들 그걸 보고 되돌아오겠지.”
“제발 밤에라도 북두칠성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그런 희망 속 안타까운 사연은 전대백 뿐만이 아니었고, 어린 자식들 넷을 둔 어부가 돌아오지 못했다든지, 삼 형제가 모두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듣는이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러고 해무는 답답한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도 바다를 하얗게 가리고는 애타는 이들의 가족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
-부스럭. 부스럭.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녘 옷깃이 부딪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있는 영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으음···. 벌써 아침이더냐 영영아?”
영영이의 임무는 아침 장을 보는 것이라 아무래도 제일 일찍 일어나 어시장으로 가야 하긴 했지만, 아직 생체시계상으로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은 느낌.
그런데도 영영이가 옷을 챙겨입고 있기에 물은 것이었다.
“아, 가가. 일어나셨어요?”
-쪽.
영영이의 대답과 함께 볼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옷을 다 챙겨입고 나에게 다가와 볼이 입을 맞춘 영영이가 발그레 물든 얼굴로 대답했다.
“전대백이 걱정되어서 조금 일찍 나가보려고요.”
매일 서로 죽네 사네 하면서도 정이 많이 들었는지, 영영이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창밖은 어떻더냐?”
밖에 해무는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고개만 젖는 영영이.
아직 해무는 걷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겠다.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알겠어요. 가가.”
그렇게 영영이가 류가반점 오 층의 내 방에서 밖으로 나서고, 나도 일어난 김에 세수하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해무가 걷히지 않았으면 오늘 장사도 공칠 확률이 높았고, 그러면 우리가 먹을 요리 외에 다른 것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
부엌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혹시 몰라 어제의 절반 정도만 사두었던 소고기와 힘줄 그리고 소뼈.
소뼈와 고기는 핏물을 빼기 위해 물속에 넣어두었던지라 물을 한번 갈아주고, 부엌에 연결된 뒷문으로 밖으로 나가 상황을 한번 살폈다.
‘뭔 안개가.’
어둠 속의 안개는 어제보다 진하면 진했지, 덜하지는 않은 느낌.
오늘 장사도 조져버린 것이 분명했다.
“뭐가 신장개업하면 아주 그냥 장사 공치는 게 수순이야.”
그렇게 투덜거리며 부엌으로 다시 들어서자, 가련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들어서다가 하품하던 입을 가리며 깜짝 놀라 외쳤다.
“스, 스승님! 어, 어째서 이렇게 일찍?”
“아, 그냥 좀 일찍 일어났구나.”
“그, 그러시군요. 어, 요리 준비를 할까요?”
“그래, 형님이 일어나시면···.”
-쿵!
형님이 일어나시면 먹을 아침이나 준비하자고 이야기하려고 할 때.
부엌 뒷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나며, 영영이가 울상을 지은 얼굴로 뒷문으로 들어와 속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가, 항이 어제보다 더 심각해요.”
“벌써 다녀왔느냐? 심각하다니?”
“그게···. 어제 암초에 부딪힌 건지, 밤사이 부서진 배의 파편이 해안으로 밀려와서, 사람들이 거기 몰려들어서 난리가 났더라고요. 시신도 하나 밀려오고···.”
그나마 희망에 끈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죽은 사람까지 발견되었으니 분위기가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저런···.”
“밤에 북두칠성이라도 나타나게 해달라고 절에 불공 드리러 간다는 사람도 있고···. 가가 저희 오늘 하루 더 요리 대접하면 안 돼요? 전대백이 물속에서 넋 나간 사람처럼 부서진 뱃조각을 살피는데 안타까웠어요.”
‘아니, 영영아, 네 녀석 한푼 두푼 아껴서 큰일에 팍팍 쓰는 아이였구나? 그나저나 모처럼 영영이가 부탁하는데 해주지 않을 수도 없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영영이에게 물었다.
“저, 전대백만 불러서 맛있는 것을 먹이는 건 좀 그렇지?”
“그럼요. 가가. 불쌍한 사람이 많은데 전대백만 어찌 불러서 먹여요. 그리고 그냥 맛있는 거 말구 맛있고 슬픈 사람들에게 막 희망도 줄 수 있는 그런 거 만들어주세요.”
이제 영영이는 내가 뭐 만들어 달라고 하면, 뭐든지 뚝딱 만들어내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요구사항이 아주 디테일했다.
하지만 저런 디테일한 요구사항에 맞추기는 힘들었다.
‘내가 무슨 요술 방망이도 아니고.’
“아니, 영영아 먹으면 희망이 생기가 기운도 나고 그런 요리가···.”
“없어요? 안 돼요? 못해요? 왜요?”
대체 그게 왜 안되냐고 말도 끝나기 전에 와다다다 묻는 영영이.
‘팽가의 지능이 우리와 생활하며 미운 다섯 살 수준으로 오른 모양이군.’
궁금한 것이 많을 정신연령.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영영아 내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별을 따다가 요리를 만드는 정도의 요구를 어찌 맞추겠···. 아, 그게 있었지!?”
하다 말고 멈춘 말에 영영이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영영이의 허리에 손을 '척'하고 두른 후,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될 것도 같긴 한데?”
“돼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요리로 별 정도면 어떻겠느냐?”
“별?”
까짓거 희망의 별을 만들어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