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어환(七星鱼丸)
.
어리둥절해하는 영영이에게 곧바로 부탁했다.
“영영아. 하인들을 데리고 전대백에게 가서 지금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생선과 새우를 몽땅 사 오거라.”
“생선과 새우를요? 몽땅? 아니,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그것이···.”
그러자 당황한 모습으로 묻는 영영이.
영영이가 당황하는 이유는 뻔했다.
지금 전대백의 좌판에 널려있을 생선은 그제 잡은 생선을 팔고 남은 것일 텐데,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을 쳐두었겠지만, 상태가 좋은 생선이라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새우는 빨리 부패하니 결코 상태가 좋을 수가 없는 것.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만들 요리는 원래 너무 싱싱한 생선보다는 약간의 산미가 올라오는 생선으로 만들면 더 맛이 좋으니까.
“그래, 가서 전부 사 오거라. 스무 근 정도 사와야 하는데, 혹시 부족하면 전대백에게 말해서 다른 사람의 물건도 사 오너라. 상하지만 않았으면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 알겠어요. 안 팔리는 것을 팔아주면 전대백이 더 좋아하겠어요. 고마워요. 가가.”
영영이는 달려와 나를 꼭 안더니, 하나둘 출근하는 하인들을 몇 명 끌고 잽싸게 사라져버렸다.
그리자 이어서 나타난 미미.
미미가 부엌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해왔지만, 그것에 대답하자마자 출근하는 미미에게도 다른 것을 부탁했다.
아침으로 준비하자면 빨리 서둘러야 했던 것.
“낭군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간밤에 잠이라도 설치셨나요?”
“아니요 괜찮소. 미미, 혹시 심부름 하나만 해주겠소?”
“심부름요? 어떤?”
“주 아주머니에게 가서 돼지고기를 좀 사다 주겠소. 한 열 근 정도면 될 것 같은데, 기름이 많은 부위로 달라고 하면 되오.”
“돼지고기 열 근. 알겠습니다. 낭군님.”
“돈은 청이에게 받아 가시오.”
“예, 낭군님!”
미미가 카운터를 보는 청이에게 돈을 받아 밖으로 사라지고, 그사이 나머지 재료를 준비하기로 했다.
“가련아 계단(鷄蛋 계란), 대산(大蒜 마늘), 생강, 양총(洋蔥 양파), 밀가루, 소금, 사당(沙糖)을 준비해 주겠느냐? 계단은 흰자와 노른자는 나눠서 준비해주고, 양파는 말(末)로 마늘과 생강은 이(泥)를 만들어 두거라.”
“예, 스승님, 양파는 말. 마늘과 생강은 이. 알겠습니다.”
양파는 깨 크기만 하게 다지고, 마늘과 생강은 칼로 후려쳐 다져두라는 내 부탁에 가련이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사이 어제 사다 둔 소고기를 이용해서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
형님과 영영이, 미미가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부엌으로 들어서는 셋.
영영이가 들고 들어오는 많은 양의 생선에 형님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매부, 내 창밖을 보니 해무가 오늘도 심한데, 대체 이 많은 생선은 무엇인가?”
그러자 나 대신 얼른 대답하는 영영이.
영영이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가가께서 하늘의 별을 따서 요리를 만들어주시는데요.”
“별은 딴단 말입니까?”
“예, 별.”
“이거 이 친구 또 뭐 재미있는 요리를 만드나 보구만. 이거 재미있겠어.”
형님의 하늘의 별을 따서 요리를 만든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내기에 오랜만에 형님의 주특기를 살려주기로 했다.
“형님, 이 생선들의 살만을 준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붉은 부분을 제외하고 흰 부분만 있으면 됩니다.”
“살만? 가시만 제거하고 준비해 달라는 말이겠군?”
“예, 형님.”
“포 뜨듯이 뜨면 되겠구만. 그러면 오랜만에 칼 좀 잡아보겠구만. 알겠네.”
-탁탁탁탁.
가련이는 이미 양파 다지기에 들어간 상태.
형님이 생선을 받아 포 뜰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영영이를 따라갔던 하인들이 가져온 새우를 받아 바로 손질에 들어갔다.
-촤아악.
소금에 절였던 새우인지라 일단 물에 담가 소금기를 빼내며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채도의 옆면으로 후려쳐 새우살을 뭉갰다.
-탕!
채도의 넓은 면으로 후려칠 때마다 뭉개져 다진 새우살이 되는 새우들.
옆에서는 가련이의 손에 양파가 다져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형님이 생선포를 뜨기 시작했다.
-탁탁탁.
-탕! 탕! 탕!
-촤악.
셋의 칼질 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부엌에서 퍼져나가는 모습.
그렇게 제법 그럴듯한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주방에서만 흘러나오는 맛있는 소리에 즐거운 마음으로 손을 서둘렀다.
‘그래, 요리는 이거지! 요리사만 좀 늘어나면 코스요리도 해볼 수 있겠어.’
전생의 호텔 주방이 떠오르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잠시 후 제일 먼저 자기 일이 끝난 가련이에게 형님이 포를 떠든 생선 살을 새우와 같이 뭉개달라고 부탁했다.
“가련아 다 했으면 형님을 좀 돕거라. 그 생선 살을 나처럼 칼 옆면으로 후려쳐 뭉개주면 된단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탕! 탕!
셋의 칼에서 계속되는 탕탕 소리가 끝나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뭉개진 생선살과 새우살, 그리고 다져진 양파와 생강, 마늘.
미미가 사 온 돼지고기를 녹두알 크기로 다져 준비하고 바로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어기로 했다.
“형님, 우선 생선 살에서 질긴 부분을 골라내고, 천으로 감싸 물에 헹궈 하얗게 만들어 주십시오. 마지막에 물을 꼭 짜주셔야 합니다.”
“알겠네.”
“가련이는 큰 그릇에 형님이 씻어주시는 생선 살과 새우살을 넣고, 그 양의 삼 할 정도 되는 양의 밀가루를 넣거라. 그리고 물을 넣으면 천천히 한쪽으로 저어주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둘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나는 그사이에 소를 만들기로 했다.
다진 돼지고기에 간장과 소금 사당을 넣어 간을 하고, 다진 마늘과 파, 생강을 아까 끓여두었던 육수에 풀어 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청, 소소, 미미, 영영이와 하인들에게 부탁했다.
“다들 깨끗하게 손을 씻고 와주겠소? 오늘 만들 요리는 다 같이 만들어야 하니 손을 거듭시다.”
“저희도요? 노공?”
“은공, 저, 저희가 도움이 될까요?”
“낭군님의 요리를 망칠까 두렵습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가가.”
제일 걱정되는 녀석만 의욕을 드러내는 상태.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늘은 영영이가 눈감고 만들어도 만들 수 있는 요리니까.
“어렵지 않고 이렇게 동그랗게 환을 빚으면 되니 괜찮소.”
“아! 그러면 저희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정도면 저희도 당연히 할 수 있지요.”
돼지고기로 만든 소를 동그랗게 뭉쳐 손바닥 위에서 보여주자, 그제야 근심 어린 표정에서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여인들이 움직였다.
나는 소와 쟁반을 식당으로 내어주어 돼지고기 환을 빚으라고 해주고 다른 작업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형님, 가련아 얼마나 되었습니까?”
“아 매부, 생선 살은 하얗게 다 씻고 지금 섞으려고 하네.”
형님 앞에 놓인 큰 그릇에 생선 살이 모두 쏟아지고, 그 속으로 새우살과 밀가루, 간을 맞추기 위한 약간의 소금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아까 가련이가 준비해둔 달걀흰자를 거기에 더해주었다.
이제는 한쪽으로 휘젓는 일만 남은 상태.
형님이 팔을 걷어붙이고는 큰 막대기를 가져와 반죽을 젓기 시작하셨다.
그때 빠트린 것이 생각났다.
“아차, 돼지의 기름이 빠질 뻔했구나.”
원래 여기에는 돼지고기의 기름인 라드가 살짝 들어가 줘야 하는데, 그걸 빼먹은 상황.
얼른 아까 사 왔던 돼지고기에서 떼어두었던 껍질과 기름을 웍에 볶아 기름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반 정도 덜어 형님이 휘젓고 있는 반죽에 넣어주었다.
형님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반죽이 뭉쳐져 단단해지고, 잠시 후 약간은 투명한 흰 반죽이 라드에 반짝이며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정도면 충분한 상태.
밖으로 가져가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자, 이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밖으로 가지고 나가 마무리해야겠습니다.”
“가보세. 뭘 만드는지 아직도 모르겠네.”
궁금해하는 형님을 끌고 밖으로 나가자 청, 영영이, 소소, 미미의 그리고 하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돼지고기 환.
나는 가지고 나간 절반의 라드를 손에 약간 찍어 손을 기름으로 코팅하고, 흰 반죽이 들어있는 반죽 통에서 반죽을 떼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좀 전에 만든 돼지고기 환을 이 흰 반죽으로 감싸 하얀 환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셨습니까?”
“예, 노공,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은공.”
영영이와 미미는 돼지고기 환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지 대답을 못 하고, 열심히 만들어 둔 돼지고기 환을 가져와 하얀 생선 반죽에 넣어 하얀 환을 탄생시켰다.
“매부, 이거 만두와 비슷하군?”
“예, 생선 살로 만든 만두라고 할 수도 있지요.”
뭘 만드는지 궁금해하던 형님의 궁금증이 이제야 풀린 느낌.
내가 지금 만드는 요리는 형님의 말씀대로 생선 살로 피를 대신한 만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중원의 어묵.
동그랗게 빚어 만드는 중원 어묵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중원인들이 잘 먹지 않은 상어 같은 생선이나, 조금 상태가 별로인 생선으로 만드는 요리.
열심히 손을 굴리며 골프공만 한 어묵 환을 만들었다.
사람이 많으니 어묵 환은 금방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어묵 환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져가 아까부터 끓고 있는 육수에 물을 조금 타 어묵 환을 끓이기로 했다.
-퐁! 퐁퐁! 포봉퐁!
솥 안으로 어묵 환이 굴러 들어갈 때마다 들려오는 맑고 경쾌한 물소리.
한 알씩 어묵 환이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육수가 튀어 오르며 국물을 튀겨댔다.
그렇게 모든 어묵이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다시금 끓어오르는 솥.
-부글부글부글.
거기에 양파와 파를 썰어 넣어주고, 약간의 소금으로 간까지 끝내 주자, 어묵들이 수면 위로 떠 오르기 시작했다.
어묵이 떠오른다는 것은 어묵이 충분히 익었다는 이야기.
재빨리 큰 고정 솥에 끓어오르던 녀석들을, 우리가 우육면 장사하러 가지고 나가는 이동용 솥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자, 다들 준비합시다. 월희는 아이들을 서넛 데리고 류가 반점을 지키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수레를 준비해 주시오. 자 서두릅시다.”
“알겠어요. 가가! 자 가들 가자꾸나.”
영영이는 신이 났는지 요리 맛을 보겠다고 할 법도 한데, 하인들을 데리고 우리 수레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미미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항상 장사하던 곳으로 향했다.
서둘렀지만 아침은 살짝 지난 시간.
어제보다 진해진 안개를 헤치고 항구 앞 넓은 광장 반얀나무 아래 도착하자, 어제와 같이 수고스럽지 않게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 회의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이 옆에 흥원사의 주지께서 그리 영험하다는데, 돈을 모아서 시주해보면 어떻겠소? 정성을 모아 불공을 드려보는 것이지. 이 망할 해무가 빨리 걷히기를. 밤에 북두칠성이라도 드러나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그것이라도 해보시지요.”
“흥원사 말고 월덕사는 어떻습니까? 흥원사보다는 월덕사가···. 응? 류대인이 오셨어요. 류대인 안녕하세요?”
“류대인, 안녕하십니까?”
“류대인이 또 오셨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류대인.”
아침에 난파했다는 배에 더 이상 안 되겠던지 절이라도 찾아가 불공이라도 드려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어지간히도 애가 타는 모양.
사람들의 인사에 화답하며 식사라도 했는지를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찌 아침들은 드셨습니까?”
그렇게 대책 회의를 하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요기라도 했는지를 묻자, 조용해지는 사람들.
아침은 무슨.
배가 난파했다는 말에 이른 새벽부터 몰려나와 여기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저, 그것이···.”
“정신이 없어 놔서···.”
역시나 돌아오는 예상했던 대답들.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아하니 다들 마음을 졸이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신 모양이로군. 다들 오시오! 내 아침을 준비해 왔으니.”
그러자 어제의 못 이기는 모습과는 다르게 펄쩍 뛰는 사람들.
사람들이 손을 맹렬히 휘저으며 대답했다.
“어, 어제 따듯한 아침을 해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틀씩이나···. 저희가 낯이 그렇게 두껍지 않습니다. 대인.”
“맞습니다. 감사하긴 하지만, 아침마다 이리 챙겨주시면 저희가 염치도 없는 자들이 됩니다. 대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
나는 어그로를 한번 끌기로 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먹을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서.
“어허, 이사람들 가족들이 돌아오길 바란다면, 내가 주는 것을 반드시 먹어야 하네.”
“예?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류대인.”
사람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뒤에서 한창 장사 준비하는 우리 식구들을 향해 말했다.
“형님. 그릇에 어환 일곱 개를 담아 저에게 주십시오.”
“일곱? 너무 적진 않은가?”
보통 송 시대 사람들이 먹는 양으로 치면 골프공만 한 어환 일곱이니 부족한 양은 맞았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일곱 알만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
형님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형님 반드시 일곱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어제보다 작은 그릇에 약간의 국물과 함께 일곱의 어환이 담기고.
형님께 넘겨받은 그릇을 사람들 앞에 내밀며 아까의 물음에 대답했다.
“바다로 나간 가족들이 북두칠성을 보고 안전히 집으로 되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먹는 요리. 칠성어환(七星鱼丸). 일곱의 하얀 어환을 그릇에 담았는데 이래도 안 먹을 텐가?”
내 말에 사람들이 앞다투어 우리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