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4화 (300/344)

치정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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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두 문파의 물리적 싸움. 

그것은 바로 캣파이트(Catfight)! 

캣파이트가 벌어졌다는 말에 조금 아니, 무척이나 흥미가 돋았다. 

원래 자고로 싸움과 흥정은 붙이는 것이고, 제일 재미있는 구경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그냥 싸움도 아니고 캣파이트? 

거기에 불가 문파? 

이 기묘하고 특이한 타이틀매치가 기대될 수밖에 없었던 것. 

장인어른을 따라가서 구경하고 싶을 정도. 

‘보통 중원의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불문은 머리를 밀지 않으니 머리채를 잡으려나? 아니면 둘 다 검문(劍門)이니 아무래도 칼질이겠지? 여자들끼리의 칼부림이라니···. 개꿀이겠는데?’ 

두 무리의 싸움 구경하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소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는지 장인에게 되물었다. 

“아버지, 아미와 보타암(普陀庵)이 말인가요?” 

“그래, 그 둘 말이다.” 

“어째서 아미와 보타암이···.” 

소소의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물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문이라면 살생과 분쟁을 멀리하는 것이 기본 기조. 

그렇기에 두 불가 문파 간에 싸움이 났다는 말은 조금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니까. 

전생처럼 범죄자들이 불문에 숨어 들어 중이 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둘에게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상대. 

아미파가 구대문파라는 거대 연합 조폭 단체에 속해있고, 보타암이 소수정예 신비문파 느낌이라 아미파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보타암은 검각(劍閣)이라 부를 정도로 검의 명문이며, 그 검각의 최고수인 검후(劍后)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니까 말이다. 

‘검후란 보통 검든 여자 중에 제일 센 설정이지?’ 

그러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는데, 소소의 그런 의문에 장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게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검후’라는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맹에서는 그리 생각하는 모양인 것 같더구나.” 

“검후요? 아버지?” 

“장인어른, 검후 말입니까?” 

검각 보타문이 배출하는 검의 최고 고수이자 미녀를 지칭하는 말인 검후 때문에 싸움이 났다는 말인가 싶었지만, 남궁 장인의 말은 뭐가 좀 이상했다. 

뭔가 검후라는 인물이 아닌 검후라는 별호 때문에 싸움이 났다는 말로 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의문 속에 들려오는 장인의 물음. 

“자네 무림비무대회(武林比武大會)라고 아는가?” 

“그야, 형님이 장원을 하시고, 소소가 대장원을 했다는 무림인들의 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아닙니까?” 

“그래, 그렇지.” 

소소와 형님이 대장원과 장원을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장인. 

장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현이와 소소가 장원과 대장원을 했던 무림비무대회(武林比武大會). 정확히는 십오 년 전의 무림비무대회에서 일어났던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네. 당시 차기 보타암주였던 소검후(小劍后)가 아미의 대제자에게 패하는 일이 있었네.”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일이군요?” 

소검후라면 차기 보타암주인 검후로 내정된 여인을 지칭하는 말. 

그러니까 검후를 제외하고는 검각에서 제일 고수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여자를 아미의 대제자가 꺾었다는 말이니, 결국 두 문파의 장문인 예비 후보자가 예비 경선에서 붙었는데 한쪽이 발렸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진 쪽은 아주 몇 년 동안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능욕당할 일이었던 것. 

“그렇지.” 

“그런데 그것이 어찌 지금의 싸움으로?” 

“아, 그 비무의 당사자인 둘이 얼마 전 불혹(不惑)도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각각 아미와 검각의 주인이 되었지. 각 문의 장문인들이 좀 이르게 열반(涅槃)하시는 바람에 말이지.” 

불혹이라면 마흔 살을 지칭하는 말일 테니, 사십도 되지 않아 장문인이 되었다는 말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초고속 승진했다는 말이었다. 

소검후야 검후로 내정된 인물에게 붙이는 별호이니 당연히 장문인이 되었을 테고, 그런 소검후를 꺾었다면 당시 아미의 후기지수 중에서 단연 뛰어난 자였을 테지만, 모든 대제자가 장문인이 되지는 않더라도 이건 장문인으로 밀어줄 수밖에 없는 업적. 

왜냐하면 소검후를 이긴 자가 장문인이 되면 나중에 두 문파가 만났을 때 상대적 심리우위에 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바닥이니까. 

“둘 다 대단하신 분인 것 같군요? 그러면 십오 년 전의 일로 다시 싸움이 난 것입니까?” 

“맹(盟)에서 두 문파의 장문인이 바뀌어 작년 겨울에 회합을 가져 인사를 나눴는데, 거기서 예전 일의 앙금을 잊지 못한 둘이 싸움이 났다더군. 그런데 다들 십오 년 전의 일 때문인 것 같긴 한데 대체 왜 싸움이 난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를 못 하고 있네.” 

“이해를 못 하신다고요?” 

장인은 내 물음에 아까와 같은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관자놀이를 누르던 장인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나에게 도움을 구해왔다. 

“아! 자네의 지모가 그리 뛰어나다고 했지? 날 좀 도와주게 사위. 왜 싸웠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중재를 할 것이 아닌가?” 

“예, 뭐 제가 도와드릴 일이면 당연하게 도와드리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좀 자세하게 알 수 있을까요?” 

장인의 부탁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옆에서 처숙부께서 나서며 장인 대신 설명했다. 

“당시 내가 형님 대신 맹의 회에 참석했으니 그 부분은 내가 설명해주겠네. 내가 그 싸움의 현장을 직접 봤으니까 말이야. 그게 분명히 처음에는 인사를 잘 나눴단 말이지? 그러니까······.” 

*** 

구파 중 하나의 장문인이 새로 바뀌고, 보타암에서도 장문인이 바뀌었기에 마련된 맹의 인사 자리. 

인사가 모두 끝나고 차려진 식사까지 마치자, 여기저기 흩어진 식탁에서 다들 친분이 있는 문주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통대로 그런 자리들을 분주히 오가며, 새로 장문인이 된 두 사람이 별도의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새로 문주가 된 한 명이 인사를 다녔지만, 이번에는 비슷한 시기에 둘이나 문주가 교체 된지라 둘이 동시에 인사하게 된 것. 

“화산의 장문인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그간 별래무양(別來無恙) 하셨습니까?” 

“드디어 장문인이 되셨군요. 아미의 홍복(洪福)입니다. 하하하, 감축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제가 드려야지요. 십오 년 전의 그 무위를 저는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운 실력입니다.” 

“아미타불, 빈니 화정이라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어요.” 

“감축드립니다. 저는 남궁가에서 온 남궁성이라 합니다.” 

“아, 남궁 시주셨군요. 검왕 어르신의 동생분이라 이야기 들었어요.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아하하, 뭐 영광까지야···.” 

그렇게 아미와 보타암주의 인사가 여기저기서 이어지다가 두 문주가 식사가 열리는 접객당 중앙에서 마주쳤을 때였다. 

서로 마주 보자 움찔한 보타암의 검후. 

그런 보타암의 검후를 보고 아미의 장문인이 먼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잘 지내셨나 보군요? 십오 년 만입니다.” 

“자, 잘 지내셨나요? 그렇군요. 십오 년.” 

십오 년 전의 일을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이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둘이 인사가 계속되었다. 

“십오 년 전에는 제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까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신경이 쓰였는데 말입니다.” 

“네? 아···. 그때는 제가 몸 상태가 안 좋았기에, 후후···. 아시지 않나요? 여자들은 그런 날 있는 거.” 

“뭐, 그렇죠. 왜 하필 그날이었을까요?” 

아미파 장문인의 인사에 왠지 검후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 대답에 다시 아미의 장문인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미의 장문인 쪽으로 살짝 다가간 검후가 아미의 장문인에게 물었다. 

“응? 이 향은?” 

“아아, 이거 말입니까? 동경에서 잘 팔리는 물건이라고 어느 시주께서 굳이 선물을 해주셔서···. 고려에서 들어 온 것이라던가?” 

“어머, 어쩐지 그래서 그런 향이···. 제가 고려에서 들어오는 배가 자주 들어오는 항주 근처에 있으니 들은 것인데, 고려에서 배가 들어온 지 한참이라 고려의 향낭이라 팔리는 것은 대부분 진짜가 아니라 하더군요. 어느 시주분이신지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자 이번에는 아미의 장문인이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예전과는 다르게 아주 말씀을 잘하십니다. 분명 그때는 이리 말을 잘하는지 몰랐는데 말입니다.” 

“이번에는 몸이 그때와는 다르게 좋으니까 저번보다 나을걸요? 뭐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죠.” 

“아! 정말입니까? 저도 그랬는데 마음이 통했습니다.” 

-채캉. 

-스르릉. 

그리고는 두 장문인이 회합장 한가운데서 칼을 뽑아 들고 격돌했고, 다른 문주들은 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부랴부랴 검기가 뿌려지는 밖으로 물러나 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맹의 접객당이 둘의 격돌에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 

“이래서 대체 모르겠다는 말일세. 서로 안부를 묻다가 향낭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고 죽일 듯이 달려드니···. 그날 맹의 접객당이 반파되고 아주 난리가 났었네.” 

“이건···.” 

“어찌 알겠나?” 

“오, 사위 알겠나?” 

숙부님과 장인의 물음, 하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인지는 알아도 나도 해석이 안 되는 말이었기 때문. 

‘이, 이거 그거구만! ’여자어’.’ 

내가 지금 숙부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그것이 분명했다. 

여인들이 나눈다는 핵심을 숨기는 대화법 여자어. 

수많은 변화구가 등장하는 대화인지라 나조차 알 수 없는 말이었던 것. 

그렇기에 소소를 무슨 이야기인 줄 아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소소가 도리어 나에게 질문했다. 

“은공, 저게 무슨 말이죠? 대체 왜 싸운 거죠? 저것이 싸울 말이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비구니들 사이에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일까요?” 

소소는 집에서 혼자 검만 수련했고, 저런 대화를 나눌 또래 친구나 적이 없었을 테니 여자어를 배우지 못한 느낌. 

일단 우리 여자들을 모두 불러올렸다. 

“소소, 아래 가서 영영이, 청이, 미미 모두 불러와 주겠소?” 

“셋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셋이 등장했지만, 미미는 늙은 스승과 같이 살아 또래 여자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으니 말을 못 알아들었고, 청이도 얼굴이 찐빵일 때 주변에 또래라고는 영영이 뿐. 

영영이는··· 그냥 머리만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주변에 여자들이 많고 기 싸움을 많이 할만한 환경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 그렇지! 비연!’ 

“미미, 비연을 좀 데리고 오겠소? 내가 부탁할 것이 있으니 빨리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주시오.” 

“비연을요? 알겠습니다. 낭군님 금방 다녀올게요!” 

미미가 이층에서 그대로 창문을 통해 밖으로 사라지자 장인의 물음이 들려왔다. 

“사위, 누굴 부른 것인가?” 

내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 궁금한 모양. 

장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예, 저 말이 어떤 말인지를 풀어줄 사람을 불렀습니다.” 

“오! 그런 사람이 있었나? 대단한 학자인가? 아미와 보타암의 장문인들이 쓰는 말이니, 불문에 통달한 학자이려나?” 

뭔가 잔뜩 다른 기대를 하고 계신 장인. 

“아닙니다. 기녀입니다.” 

“응? 기녀?” 

내가 진실을 알려주자 장인이 적잖이 당황했다. 

기녀가 와서 불심 높은 둘의 대화를 풀어준다니 당황스러운 느낌. 

그렇게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미미가 비연을 직접 업고 다시 이층으로 뛰어 들어왔다. 

“낭군님, 데려왔어요.” 

“고생했소. 미미. 비연 이리 급하게 불러서 미안하오.” 

“아니에요. 청운님. 제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미미 언니의, 등에 업혀보겠나요. 그나저나 어찌 급하게 찾으셨는지?” 

비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숙부께 들었던 이야기를 누가 했는지를 빼고 대화 내용만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비연이 내 이야기를 다 듣고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세상에! 아주 기 싸움이 대단하네.” 

“그, 그렇게 심한 말이오?” 

“그럼요. 처음에 ‘십오 년 전에는 제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오늘 보니까 괜찮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신경이 쓰였는데 말입니다.’ 이 말은 ‘너 나한테 십오 년 전에 그렇게 당했는데도 얼굴 들고 다니니? 내가 다 부끄럽다 야.’ 이런 말이에요.” 

“그, 그게 그런 말이란 말이오?” 

“그럼요. ‘그때는 제가 몸 상태가 안 좋았기에, 후후···. 아시지 않나요? 여자들은 그런 날 있는 거.’ 이 말은 ‘나 그때 살살했어.’라는 말이고요.” 

둘의 대화가 비연의 입에서 해석되자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비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장인이 비연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까는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럴듯했던 모양. 

“그러면 쭉 설명해봐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 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비연이 두 사람을 연기하듯 좌우를 번갈아 오가며 말했다. 

“너 나한테 십오 년 전에 그렇게 당했는데도 얼굴 들고 다니니? 내가 다 부끄럽다 야.” 

“나 그때 살살했어.” 

“그래? 나도 살살했는데?” 

“그런데 너 그 향은 뭐니?” 

“이거 뭐 나는 별로인데, 나 이 정도 선물해줄 사람은 만나고 있지.” 

“어머 가짜 향낭을 선물해주는 사람이라니, 네 수준 알만하다. 안타까워.” 

“십오 년 전에는 내 앞에서 엉엉 울던 게 이젠 꼬박꼬박 말대꾸한다? 많이 컸네?” 

“그래? 그러면 한번 다시 붙어볼래? 겁먹은 건 아니겠지?” 

“그래, 그 생각이 내 생각이야. 붙자.” 

다들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 

대화의 진의를 파악하니 이건 싸움이 안 일어났다면 도리어 이상한 상황. 

비연이 설명을 마치고 나에게 물었다. 

“어디, 큰 가문 첩들의 치정 싸움인가요? 서로 간의 앙금이 엄청나게 많은 모양인데?” 

비연이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두 장문인이 아니라 여인들의 치정 싸움에서나 나올 이야기라 생각되는 모양. 

“그···. 그게. 여인 둘의 싸움은 맞는데···.” 

“언니들이 이리 싸우실 리는 없고, 대체 누군데요? 머리채라도 잡고 싸웠을 것 같은데?” 

“그것이. 아미와 보타암의 문주께서···.” 

“네에!? 누, 누구요?” 

비연이 눈을 깜빡이며 청, 영영이, 소소, 미미를 바라봤다. 

지금 자기가 들은 내용이 맞냐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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