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병(胜肉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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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장사가 끝난 저녁 전까지 브레이크타임.
해무 사건 이후로 손님이 미어터지는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VVIP 손님을 맞을 준비로 한창이었다.
특이한 두 문파의 사람들을 맞으려니 여러 가지 준비할 게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무인, 거기에 여인, 또 거기에 승려.
평범하지 않은 단어들로만 조합된 손님들의 신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부 장식부터.
“노공, 그분들이 도착하시면 화병에 꽃을 꺾어 방마다 놓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대신 너무 화려하지 않은 꽃으로 하는 것이 좋겠소. 아무래도 불가에 귀의하신 분들이니까 말이지.”
“화려하지 않은 꽃이라 무엇이 좋을까요? 은공.”
“아! 근처 강에서 연꽃을 겪어다가 꽂아두면 좋을 것 같소.”
“그러면 아미와 보타암 분들이 도착하는 대로 제가 다녀오겠어요. 낭군님.”
“그래 주겠소? 미미.”
“예. 낭군님.”
요리 까지.
일반 무인이라면 우육면을 삼시세끼 제공해도 좋다고 할 테지만, 아무래도 입맛이 예민한 여인 + 채식주의자 승려 + 칼로리를 많이 필요로 하는 무인이라는 조합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매부, 그분들은 육식하지 않으니 채소요리를 준비해야 할 텐데, 혹시 생각해둔 것이 있는가?”
역시나 형님도 요리가 걱정되시는지 메뉴에 관해 물어왔다.
“글쎄요. 승려님들의 요리를 해본 것은 고려의 왕자께서 오셨을 때 고려요리뿐인지라, 형님은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고려의 왕자? 그거 또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구만. 아, 이것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혹시 자네 소식분다(素食分茶)에 가보았나?”
“소식분다라면···.”
소식분다란 송 시대 채식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비건 식당.
채소로 만드는 다양한 요리를 파는데, 특징이라면 전생처럼 푸릇푸릇한 요리를 파는 것이 아니라 육식 요리와 똑같지만, 채소로 만드는 요리를 판다는 것.
내용물은 채소이지만 겉으로 봤을 때 고기 요리와 구분이 안 되는 겉만 그럴듯한 짝퉁 요리를 파는 것이 특징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만. 혹시 추천하실만한 요리가 있습니까?”
“뭐 보통은 가자압(假炙鴨), 가어회(假魚膾)같은 요리가 유명하지.”
가자압은 가짜오리라고 해서 박을 오리 모양으로 깎아 소스를 발라 굽는 요리인데, 진짜 오리와 구분 안 될 정도로 겉모습이 흡사한 요리.
중원 짝퉁 기술의 끝판왕 같은 녀석이라고 할까?
가어회도 겉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 물고기 요리였다.
“그건 너무 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맛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을 테고. 그리고 지금 박을 구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하니. 아무래도 귀한 손님들이니 귀한 요리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확실히 박은 지금 구하기 힘들 수도 있겠군.”
전생이라면 사계절 내내 좋은 요리 재료를 구할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송 시대 계절에 따른 재료 이외에는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남쪽인지라 가능성은 커도 확인해보아야 할 문제니까 말이다.
그렇게 형님의 말씀에 잠시 생각해본 나는 아무래도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 시대 고급 요리는 대부분 채식 요리이고, 그런 채식 요리를 많이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전생에 만들던 채소요리는 아무래도 조금 곤란했다.
고추처럼 지금 시대에 구할 수 없는 채소들도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송 시대에 구할 수 있는 채소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필요했던 것.
“도움을 좀 청해야겠군요.”
“도움받을 사람이 있는가?”
“예, 저희 정점주가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그녀라면 잘 알겠군.”
이런 일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은 역시나 비연.
기루에서는 지체 높은 손님들을 위해 채소요리도 다양하게 파니까 말이다.
대책 회의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나는 곧바로 비연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면 다른 것들은 상의한 대로 진행하도록 하고, 내 잠시 비연에게 다녀오겠소. 가련아 따르거라.”
“알겠어요. 스승님.”
“알겠습니다. 낭군님.”
“다녀오세요. 노공.”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가련이를 데리고 이층에서 내려오자 일 층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다가 고개를 쳐드는 영영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쳐든 영영이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나를 바라보며 반색했다.
“가가! 끝났나요?”
“그래, 끝났구나.”
“휴···. 기다리느라 힘들었네.”
영영이가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었던 이유는 회의에 참석하기 싫어서.
지루하다나···.
아무튼 그렇게 널브러져 있던 녀석이 위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내가 밖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이자, 뽀르르 달려와 옆에 달라붙어 물어왔다.
“가련이 데리고 어디 가세요? 가가.”
“화화루에 좀 다녀오려고 하는구나. 비연에게 무엇을 좀 물어보려고 말이야.”
“화화루? 그럼 같이 가요. 비연에게 정아(亭兒)나 좀 달라고 해야지!”
“그래, 뭐 같이 따라나서려무나.”
영영이가 비연에게 달라고 한다는 정아는 중원식 타래과인데, 모양을 정자나 집 모양으로 만들기에 정아라고 부르는 것.
그렇게 정아를 먹을 생각에 부풀어 기분이 좋아진 영영이를 데리고 화화루로 향했다.
“비연이 지금 일어나 있으려나?”
비연은 새벽에 잠드는 여자.
혹시 자는 걸 깨울까 싶어 혼잣말하자 영영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손님을 거의 받지 않으니 일찍 잔다고 하던데요?”
“그래? 손님을 받지는 않는 건가?”
“복주에 자기가 직접 맞을 손님은 거의 없다고, 가끔 사 층에 오는 손님들에게 얼굴을 정도만 비춘다고 그랬어요.”
“그런 이야기도 하더냐?”
“뭐, 제가 ‘언니’니까요.”
실제로는 비연이 한두 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언니를 강조하는 영영이.
영영이를 데리고 화화루에 도착해 연통을 넣자, 비연이 우리를 오 층으로 초대했다.
“청운님, 비연님께서 오 층으로 오르시기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래, 알겠소.”
그렇게 오 층에 도착하자 항상 우리를 맞는 접객실에서 따듯한 차를 따라놓고 기다리고 있던 비연.
문이 열리자 비연이 반색하며 인사하다 영영이와 가련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청운님! 어서 오셔요! 이쪽으로 앉···. 여, 영영 언니? 가, 가련 소저?”
“응, 비연아 나도 놀러 왔어. 그나저나 왜 그렇게 깜짝 놀라? 못 볼 사람 본 것처럼?”
“안녕하십니까? 비연님.”
“서, 설마요! 이, 이쪽으로 앉으세요. 세 분 모두. 아이들에게 정아를 내어오라 하겠습니다.”
이미 영영이에 대한 파악이 끝났는지 정아를 내오겠다는 비연.
-와드득.
영영이가 비연이 사람을 시켜 내온 정아를 먹는 사이 비연에게 찾아온 연유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내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해서 말이오.”
“도움이요? 저에게?”
“그렇소. 어제 이야기했던 아미파와 보타암의 문주께서 우리 류가반점을 찾을 예정이시라서 말이오.”
“아, 두 분께서 류가반점에서 화해하시려 하는 모양이군요? 그 중재는 검왕께서 맡으시고?”
어제 여자어를 번역해주었던지라 비연은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충 이야기가 어찌 흘러가는 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렇소. 해서 귀한 손님들에게 채소요리를 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송 사람들이 먹는···. 아니, 비구니들이 드실만한 채소요리를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않아서 말이오. 몇 가지 괜찮은 요리가 있으면 요리법을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소.”
내 말이 끝나자 깜짝 놀라는 비연.
비연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청운님이 모르시는 요리가 있다고요? 아니, 매번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시는 분이?”
비연 입장에서는 내가 항상 처음 보는 신기한 요리를 내니, 흔한 요리 정도는 다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뭐 그거야 전생에서 다 한 번쯤 배운 것이니 그런 것.
좀 찔리지만 웃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소. 나도 모르는 것은 많다오.”
“하긴. 뭐 눈치도 조금 없으시고···.”
그러자 갑자기 자기 턱을 쥐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비연.
갑자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망언에 정색하며 대답했다.
“눈치가 없다고? 이, 내가? 비연이 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내가 역천의 눈치라고 해서 세상의 섭리를 거스를 정도로 눈치가···.”
“네네, 물론 그러시겠죠.”
“아니, 이 사람이!”
‘아니, 이 여자가!? 설마 얼마 전 복수를 하는 것인가?’
개업식날 자기를 무시했다고 나에게 이러는 모양인 것이 분명한 행동.
뭔가 기분 얄밉게 고개를 끄덕거린 비연이 내 이야기를 들은 척, 만 척하며 대답했다.
“뭐 알겠고요. 채소요리는 청운님도 알다시피 철에 맞는 재료를 찾아내는 것이 보통이잖아요?”
내 정신을 다른 데 돌리려는 모양인데 속는 셈 치고 대답했다.
“크흠! 뭐, 내가 한번 속아주리다. 그렇지, 채소야 철에 맞는 요리를 내는 것이 보통이지. 뭐 녹두아(綠豆芽)나 두아(豆芽)는 겨울에도 낼 수 있지만.”
“후훗···. 예, 해서 저희 화화루에서는 죽순(竹筍) 요리를 내고 있지요.”
확실히 비연의 말대로 지금은 죽순이 한창 올라오는 시기.
신선한 죽순 요리.
그거 괜찮은 생각이었다.
“그럼 화화루에서는 주로 어떤 요리를 내고 있소?”
“저희 화화루에서는 산가삼취(山家三脆), 주자옥심(酒煮玉蕈), 성육병(胜肉饼)을 주로 내고 있습니다.”
“어떤 요리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소?”
그러자 비연이 앙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가르쳐 주는 것은 재미없으니. 그러면 요리를 만들어오면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맞히는 놀이를 해볼까요? 청운님과 제자분 영영 언니가 못 맞추면 나중에 제 청을 한가지 들어주시는 것으로 하고. 다 맞추시면 제가 청을 한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놀이하자고? 이상한데?’
뭔가 꿍꿍이 가득한 미소.
내 옆에 영영이와 가련이가 있는데 이런 제안이라니.
뭔가 수상쩍은 제안이었다.
의구심 많은 표정으로 비연을 바라보며 고민할 때.
영영이가 냉큼 나서며 대답했다.
“좋아! 비연 후회하게 될걸? 여기 나랑 가련이가 있다구.”
“뭐, 그렇게 되면 동생이 언니에게 청 한 가지를 들어드리려고 한 것으로 하지요.”
“그래. 자 얼른 요리를 만들어와 봐.”
“아니, 영영아 우리 이거 생각은 좀 해보고···.”
영영이의 자신감에 찬 대답에 생각이나 좀 해보고 하자는 말을 하려 했지만, 정색하는 영영이.
영영이가 정색하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가가, 저, ‘당’ 영영이에요. 그리고 쟤는 가가의 뛰어난 제자 ‘비설가’의 수제자 가련이. 저희가 질 리가 없잖아요?”
“아니, 믿지, 믿는데. 그래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라는 말도 있으니···.”
“비연아 얼른 만들어오렴. 가가는 너무 걱정이 많으시다니까.”
손쓸 새도 없이 시작해버린 내기.
비연이 영영이의 말에 신이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만들어오라 하지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알겠어.”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영영이에게 가져다준 중원식 타래과인 정아를 나눠 먹으며 기다리길 잠깐.
비연을 수발드는 기녀가 아닌 처음 보는 여인이, 손에 세 가지 요리가 담긴 쟁반을 손에든 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흐응···. 죽순 향이 가득하네.”
아직 요리를 식탁 위에 내려다 놓지도 않았는데 가장 먼저 반응하는 영영이.
이어서 여인이 식탁 위에 세 가지 요리를 내려놓자, 비연이 그중 하나의 요리를 내밀며 말했다.
“이것이 산가삼취(山家三脆)입니다. 이것부터 하지요.”
비연이 내민 요리는 죽순과 표고버섯 그리고 한 가지 푸른 나물이 섞인 볶음 요리.
윤기 있게 볶여진 맛있어 보이는 채소볶음이었다.
곧바로 요리로 살짝 코를 가까이해 향을 맡은 영영이.
영영이가 향을 음미하며 미소를 짓고, 곧바로 영영이의 입에서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나는 고기가 더 좋지만, 향이 나쁘지 않네. 죽순과 향고, 그리고 파란 채소 하나는 뭔지 모르겠네. 향이 좀 강한데. 그건 가련이에게 맡기고 초(醋 식초), 향유(香油 참기름), 호초(胡椒 후추), 지마(芝麻 참깨)가 들어가 있네. 아 간장도. 가련아 나머지는 네가 맛보고 알려주렴.”
“예, 당 사모님.”
영영이의 말에 가련이가 산가삼취를 맛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빠진 퍼즐을 맞추듯 영영이가 빼먹은 두 가지 재료를 이야기했다.
“초록 채소는 구기두(枸杞头)이군요. 그리고 소금이 빠졌습니다.”
구기두란 구기자의 어린잎.
가련이의 대답이 끝나자 요리를 가져온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비연이 박수를 치며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짝짝.
“역시 두 분이세요. 맞았어요. 자 그러면 두 번째. 주자옥심(酒煮玉蕈)이라고 해요.”
비연이 내민 두 번째 요리는 갱(羹).
국이었는데, 두 번째 요리도 첫 번째와 같은 패턴으로 흘러갔다.
영영이와 가련이가 손쉽게 맞춰버린 것.
황주가 들어가 술로 향을 더 끌어올린 죽순이 들어간 국이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비연이 내민 세 번째 요리였다.
성육병(胜肉饼).
밀가루 피에 속을 넣어 납작하게 구워낸 만두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안에 들어있는 소의 재료 중 한 가지를 영영이도 가련이도 맞추지 못했던 것.
“뭐지 대체? 처음 맡아보는 향인데?”
“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재료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영영이와 가련이의 당황한 음성에 비연이 씨익하고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