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7화 (303/344)

개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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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꿍꿍이가 있었구만. 요컨대 저 안에 영영이와 가련이의 맹점을 파고든 음식 재료가 있단 말이군?’ 

“비연이 놀이를 제안한 이유가 있었군···.” 

“이럴 수가! 비연이, 이런 꿍꿍이가 있었다니!” 

내 말에 영영이가 분노에 손을 떨고, 비연이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자기 입을 가리며 킥킥거렸다. 

“후후. 언니, 죄송해요. 저도 청운님을 한번 놀려주고 싶었다고요.” 

영영이도 모르는 향이며, 가련이도 모르는 맛. 

반으로 갈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성육병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영영, 가련 조합이 요리를 품평하는데 무적의 조합 같지만 실제로는 약점이 존재한다. 

영영이의 후각이 뛰어나 어떤 향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 영영이의 전문 분야는 독. 

또는 독이나 해독제로 사용될 수 있는 약재나 식물에 한정된다. 

왜냐하면 그런 훈련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일상생활이나 많이 접한 향은 기억으로 알아낼 수 있지만, 경험과 기억에 근거하고 있으니 영영이의 데이터에 없는 것이면 당연히 알아챌 수 없는 것. 

그리고 빈곤한 생활을 했던 가련이야 뛰어난 미각을 가졌지만, 먹어본 재료가 상당히 한정될 수밖에 없을 테니 분명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물어보니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뭐 그런 걸 주워다 먹어서 그런 맛들은 잘 알지만, 후추조차 나를 만나고 처음 먹어봤다고 했으니까. 

전생에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나 와인의 맛을 보고 품평하는 소믈리에들도 여러 가지 맛과 향을 접하고 수련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조향사나 소믈리에로 거듭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현재 가련이는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아이이니 맹점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둘의 맹점을 파고든 비연의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먹어봐야겠군.’ 

자신이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입이 귀에 걸린 비연. 

나도 절대 모를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양인데, 어림없었다. 

송 시대 기준으로 아마 가장 많은 재료를 먹어본 사람이 나일 테니까. 

‘전, 후생 합쳐서 말이지.’ 

“그럼 내가 직접 살펴야겠군.” 

반으로 잘려있는 성육병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하자 비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청운님도 잘 모를 실걸요?” 

“그건 먹어봐야 알겠지.” 

“후후. 신첩은 어떤 청을 드릴지 고민하고 있겠습니다. 아, 뭘 부탁드릴까? 이런 거 저런 걸 부탁드릴까? 아니면 요런 거 저런 거?” 

비연이 신이 난 목소리에 영영이가 나에게 다급한 전음을 보내왔다. 

[가가! 무조건 이겨요! 지면 안 돼!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신중 하자니까···.’ 

내가 아까 말릴 때는 그리 자신하더니. 

어쩌겠나 영영이가 친 사고 수습해야지. 

일단 반으로 잘려있는 성육병을 가져와 육안(肉眼)으로 살폈다. 

영영이와 가련이가 알아낸 재료는 표고버섯인 향고와 죽순, 그리고 합도(合桃)라 불리는 호두. 

죽순과 표고버섯과 호두를 넣은 구운 만두라고 보면 되는데, 영영이도 가련이도 뭔가 한가지가 더 있다는 의견. 

일단 육안으로 살피던 성육병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표고버섯의 향과 죽순의 아삭한 식감 거기에 더해진 호두의 고소한 맛.

그리고 입안 가득 느껴지는 솔향. 

‘응? 이것은?’ 

입안 가득 차오르며 그리움이 느껴지는 향.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먼저 머릿속에 대충 이 요리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생각해보았다. 

죽순과 표고버섯을 채를 채서 뜨거운 물에 데치고, 호두와 함께 넣은 무엇인가를 구워 고소함을 끌어올린 후, 곱게 갈아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해, 밀가루에 감싸 노릇하게 구운 요리. 

밀가루는 소금으로 간을 했고, 구울 때 중간 불인 온화(溫化)에 아주 노릇하게 구운 것이 분명했다. 

단순하지만 정성이 많이 들어간 요리. 

그렇게 일단 머릿속에 요리법을 정리하고,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그리움을 다시 끌어내 진한 향의 주인을 떠올렸다. 

‘이거 역시나 익숙한 고향의 향과 맛이구나.’ 

입안 가득 느껴지는 솔향은 그리운 고향의 그것이 분명했다. 

전생에 어릴 때 어머니가 뭔가를 잘하면 냉장고에서 꺼내주시던 것이었으며, 뒷동산에 올라 나무 위에서 힘들게 이것을 따서 내려오던 청설모를 겁줘 삥을 뜯었던 그것이 분명했던 것. 

‘어림없지 비연. 그나저나 이것이면 당연히 영영이도 모를 수 있겠군.’ 

손가락을 세워 비연을 향해 흔들며 말했다. 

“후후. 향고와 죽순을 채를 쳐 물에 데치고, 거기에 구워 간 합도를 넣어 고소한 맛을 끌어올렸군. 간은 소금과 간장으로 했고, 온화에 지긋이 양면을 뒤집어가면 노릇하게 구운 요리. 맞소?” 

그러자 요리를 가져왔던 여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비연을 바라봤고, 비연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 맞나요?” 

“예, 비연님. 한가지 재료는 역시나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것은 완벽합니다.” 

“휴우···. 역시 방심할 수 없군요. 그래도 마지막 재료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니 제가 이겼···.” 

비연이 신이나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려 할 때 비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마지막 한 가지 재료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너무 자축이 빠른 것 아니오. 비연?” 

“아, 아신다고요? 뭐, 뭔데요?” 

“이걸 뭐라고 부르려나.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 많아서···.” 

“마, 많다고요? 마, 말씀해보세요!” 

긴장된 표정으로 비연이 이름을 물어오고, 그녀에게 내가 아는 모든 이름을 이야기했다.

“송자(松子), 실백(實柏), 백자(柏子). 또 뭐가 있더라···” 

그러자 비연이 눈망울이 커지며 곧 놀라고 속상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어, 어떻게! 절대 아실 리가 없는데!” 

송자(松子), 실백(實柏), 백자(柏子). 

한국명 잣. 

한국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했을 때 항상 찾는 ‘이런 잣 같은 일이···.’에 등장하는 그 견과류 잣이 숨겨진 한 가지 재료였던 것이었다. 

비연이 내가 잣을 먹어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생에 호텔에서 신메뉴를 개발할 때, 요리 위에 토핑으로 잣 특유의 향과 진한 맛을 더하는 것은 어떨까 해서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석요리사 외에는 다들 잣을 잘 모르기에 알아봤더니, 잣이 한국 고유 품종인 잣나무에서만 나온다는 이야기. 

물론 유럽 잣도 있고 종류가 몇 가지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잣 종류라고 하면 한반도 일대와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만 자라는 잣나무에서만 열리는 열매였던 것. 

잣나무의 영어 명칭이 한국 소나무(Korean pine)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좀 비싸긴 해도 흔한 것이지만, 이쪽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재료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 시대에 잣이라면···. 

“이거 고려(高麗)에서 들어왔겠구려?” 

“이이익! 정말 얄미워요! 알아도 한번 져주지!” 

아쉬움 가득한 비연의 목소리.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바로 비연에게 티배깅을 선사했다. 

원래 한국에서라면 승리자에게 허락된 경건한 의식이자 퍼포먼스니까 말이다. 

“하하, 그럴 수 있나. 나는 그러면 무슨 청을 들어달라 할까나? 이런 거 저런 걸 부탁할까? 아니면 요런 거 저런고?” 

“청운님, 너무 얄미워요!” 

비연이 했던 말을 따라 하자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외치는 비연. 

비연의 얼굴은 얄미움과 아쉬움으로, 영영이와 가련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으로 찬사를 보내왔다. 

“잘하셨어요. 가가! 역시 우리 가가!” 

“스승님, 대단합니다! 역시 저의 스승님! 고려에서 온 사실도 맞추시다니 존경스럽습니다!” 

둘의 찬사가 끝나고 비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원에서는 잣이 신라시대 때부터 수입되어 잣을 신라송(新羅松)이라고도 많이 부른다고, 결국 내기는 우리의 승리. 

우리는 비연에게 산가삼취(山家三脆), 주자옥심(酒煮玉蕈), 성육병(胜肉饼)에 대한 요리법을 얻을 수 있었다. 

비건 VVIP 접대를 위한 메뉴 구성은 한 번에 끝난 상태.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송자(松子)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량 고려와의 무역에 의존하는 것이니 가격도 비싸지만, 문제는 한동안 고려에서 배가 들어오지 않아 화화루에도 남은 수량이 별로 없다는 것.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반절을 드릴 텐데 그리 많은 양은 아닐 것이에요.” 

“일단 그것이라도 주면 고맙게 받겠소. 한번 또 누가 가졌는지 알아보아야겠구려.” 

“저희도 따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호두의 비율을 올리고 잣을 비율을 낮춰 향만 조금 내는 정도로 써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왕 베어 물었을 때 아까와 같이 향긋한 잣의 냄새가 입안에 가득 나오는 것이 좋으니, 나온 김에 일단 항구 쪽을 한번 살피기로 했다. 

항구와 어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많이 친해졌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그런 이유로 가련이와 영영이를 데리고 항구 쪽에 도착하자, 반얀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는 아는 척을 해봤다. 

“아이고 류 대인 오셨네! 류 대인 안녕하십니까?” 

“아, 잘들 계셨소?” 

“조형, 류 대인 오셨소. 일어나 보시오!” 

“크릅···. 누가와? 어이쿠 류 대인!” 

여기저기 인사하는 사람들 틈에 낮잠을 자다가 놀라 몸을 일으키는 도부행(挑夫行)의 수장 조풍. 

원래 막노동할 때는 점심 먹고 낮잠이 꿀잠인지라, 그는 점심을 먹고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류 대인, 이런 때에 여긴 어쩐 일로?” 

조풍이 허겁지겁 일어나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입가에 침을 닦으며 인사하는 조풍의 모습에 달게 자는 사람 깨운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고 있을 때. 

‘아, 그렇지 조풍이라면 알지 모르겠군? 항구에서 물건을 내리는 사람들이니 주워들을 일이 많겠지?’ 

생각해보니 조풍은 도부행의 수장으로 항구 노동자들의 우두머리 격. 

도움을 받는다면 조풍 만큼 적격인 사람이 없었다. 

“아! 조 대백 그렇지 않아도 잘 되었소.” 

“예?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잘되었다는 내 반색하는 목소리에 의문을 띄운 조풍. 

“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소?” 

“부탁 말씀입니까? 저에게? 어떤?” 

자기 같은 사람에게 무엇을 부탁할 일이 있냐는 의문을 띄우는 조풍. 

그에게 내가 찾고 있는 물건에 관해 설명했다. 

“실은 내가 찾는 것이 있는데, 고려에서 들어 온 지 좀 된 물건이라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 말이오.” 

“아,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도와드릴 수 있지요. 그래, 찾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송자(松子), 실백(實柏), 백자(柏子)라고 부르는 것인데, 고려 배들이 실어서 가지고 오는 무역품인데 혹시 아시오?” 

“송자(松子), 실백(實柏), 백자(柏子)라.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조풍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자는 놈들 다 깨우고 도부행(挑夫行)에 입회한 놈들은 모두 반얀나무 아래 모이라 이르시게! 류 대인께 은혜를 갚을 일이 생겼으니 한 놈도 빠짐없이 모이라 하게!” 

“알겠수. 수장!” 

“알겠수!” 

조풍의 외치는 소리에 짐꾼들이 반얀나무 아래서 사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니, 조 대백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내 자네들에게는 은혜를 베푼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낮잠을 자는 시간에 모두를 호출해버린 상황. 

조풍에게 미안함을 전하자, 조풍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항에서 일하는 자는 대부분 어전(魚廛)에서도 일을 하지요. 고깃배에서 내리는 물건을 옮겨주고도 돈을 버니까요. 그러니 칠성어환을 만들어 주셔 어부들이 안전하게 되돌아오도록 빌어주셨으면, 저희의 일터를 돌봐주신 것이 되니 당연히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지역노조 위원장의 말재주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있을 때, 낮잠을 자다가 얼굴에 이런저런 자국이 난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들이 조풍의 명을 듣고 다시금 사방으로 흩어졌다. 

“잠시만 기다리면, 저놈들이 창고와 저자를 뒤져 이야기를 물어올 것입니다.” 

“고맙네. 내 이 은혜 잊지 않겠네.” 

“은혜야 저희가 크지요. 며칠 전에도 일이 없는 날에 두 끼나 얻어먹었고···.” 

“거, 사람···.” 

그렇게 조풍과 소식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한 식경쯤 지났을까? 

웃통을 벗고 머리에 끈을 묶은 남자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조풍을 향해 말했다. 

“허억···. 허억···. 수, 수장, 알아냈수! 마지막 고려 배가 실어 왔던 송자 절반은 이리저리 팔려나갔지만, 남아있던 절반의 송자(松子)가 몽땅 어디로 갔는지!” 

“어딘가 그게?” 

남자가 숨을 고르며 조풍에게 알아 온 소식을 이야기하려 할 때. 

“형님! 형님!” 

저 멀리서 나의 부끄러운 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재빠르게 달려온 장진이 뭔가를 깨물어 먹으며 말했다. 

-딱. 

“냠냠. 형님, 오랜만에 만나 뵈러 찾아갔는데 화화루에 가셨다 하여 화화루로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항 쪽으로 가셨다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엄청나게 찾아다녔습니다.” 

녀석이 말을 할 때마다 풍기는 향긋한 솔향. 

녀석이 소매 춤에서 뭔가를 꺼내다 우리의 시선을 보고는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혀, 형님, 형수님도 드셔보시겠습니까? 이게 해송자(海松子)라고 고려에서 들어온 약재인데 맛이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나와 영영이 손에 갈색의 딱딱한 것을 한 주먹씩 올려주었다. 

“장의 문에···. 들어갔다고···.” 

이어진 웃통 벗은 일꾼의 입에서 들려온 잣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대답. 

그리고 우리 손에 올려진 껍질을 까지 않은 잣. 

아마도 장의문에서 마지막 고려 배가 들여온 남은 잣을 시장 용어로 ‘아도’를 친 모양이었다. 

떠리. 

장진에게만 칭찬이 인색한 나지만 이건 장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아 네가 개똥보다 낫구나.” 

“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데, 걔는 쓸려고 하면 없다지만 장진은 최소한 쓸려고 하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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