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8화 (304/344)

갈(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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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창가에 기대앉아 밖을 바라보던 미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오실 때가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네요? 그렇죠. 낭군님?” 

“확실히 좀 늦어지고 계신 것 같긴 한데···.” 

미미가 이상한 일이라 말하는 것은, 장인이 아미와 보타암 두 문파에 연통을 넣은 지 상당한 날짜가 흐른 후인데도 불구하고, 두 문파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공을 익힌 무림인들이라면 벌써 도착할 때가 지났는데 말이다. 

심지어 소식을 알리러 갔던 사람들이 모두 먼저 돌아온 상황. 

그들을 통해 언제 출발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터라 이런 의문이 생기고 있었던 것. 

요리에 들어갈 잣을 장진에게 구매해오고,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해 객실을 정리까지 끝마쳤는데 두 문파의 사람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두 문파가 도착할 때가 되어 가끔 물어오는 숙박 손님들도 모두 거절하고 있는데 말이다.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문파니 같은 층에 남자 손님을 받지 않고 있었던 것. 

‘노쇼 이거 곤란한데?’ 

예약하고 잠수타버리는 노쇼가 아닌가 걱정되는 상황. 

장인도 늦어지는 두 문파로 인해 가오가 상했는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는 약간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본 검왕을 이리 기다리게 하다니···. 이 내가 검왕의 별호를 얻기 위해 무림에 협행을 돌던 때만 해도 무림의 어른이 찾으신다면, 산적의 목도 베다 말고, 하던 일도 제쳐두고 얼른 달려왔는데···.” 

소싯적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요즘 무림 친구들은 예의가 없다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시는 장인. 

‘장인어른 알고 보니 꼰대 타입이셨군?’ 

화가 나는지 계속해서 라떼를 찾으시는 장인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보타암이야 이 시기 해무가 많이 생긴다니, 배편이 준비가 안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또 아미파는 사천에서 오는 것이니 좀 늦을 수 있겠지요. 사내들의 여정보다 여인들의 여정은 여러모로 챙길 것도 많고요.” 

미치지 않고서야 중원 제일 사시미인 남궁 장인의 심기를 거스를 일을 벌일 수 있겠느냐며 장인을 위로하자, 언제 분노했냐는 듯 기분이 풀리는 장인. 

칼질만 하는 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꽤 단순한 위인이었다. 

“그렇겠지? 무림의 후배들이 본 검왕의 체면을 일부러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문요. 장인어른, 감히 어떤 놈들이 장인의 체면을 상하게 하겠습니까? 목이 제대로 붙어있고 싶으면 절대 그럴 리 없지요.” 

“하하, 내 자네와 이야기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그놈의 체면이 무엇인지, 내가 꽌시까지는 뭐 어찌 적응해도 체면은 정말 적응이 안 되는 문화였다. 

그렇게 뭐 보타암과 아미가 늦은 이유를 대충 납득 갈만하게 설명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할 때였다. 

-터벅터벅 

일 층 계단에서 올라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곧이어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대인, 죽순과 구기두(枸杞头)는 제자분께 가져다드렸습니다. 삯도 부인께 받았으니 그러면 소인 물러갑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저자에서 채소를 파는 모 씨. 

전대백을 통해서 거래를 튼 채소 상인이었다. 

아마도 채소를 배달하고 돌아가는 길에 인사를 온 것 같기에, 고개를 돌려 모 씨를 향해 대답했다. 

“모 씨가 채소를 가져다주러 왔었구려. 고맙소 모 씨. 저번 채소도 좋았다고 가련이가 그러더군. 앞으로도 좋은 물건 잘 부탁하네.” 

“당연합죠. 대인. 그러면 물러···.” 

그렇게 모씨와 인사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응!?” 

혼자서 창밖을 구경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약간은 놀란 듯한 음성을 내뱉은 미미. 

미미가 창밖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를 불렀다. 

“어, 낭군님 저기 밖에···.” 

“모 씨 그러면 나중에 봅시다.” 

“알겠습니다. 대인.” 

얼른 대화를 마무리하고 미미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미미.” 

“저기 밖에 골목에 말입니다.” 

저자가 아니 관청 쪽으로 난 창문에 걸터앉은 미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자, 송 시대 승려와 문인들의 옷인 백색 직철(直裰)을 입은 여자 하나가 건물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이쪽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뭔가 우리 가게 입구를 살피는 모양새.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기 시작할 때 미미가 다시금 다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쪽에도.” 

이번에 미미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반대편, 

조금 떨어진 반대편 건물 뒤쪽 이번에는 회색 직철(直裰)을 입은 여승 하나가 이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둘 다 여승으로 보이지만 뭔가 소속이 다른 느낌. 

“어? 이거 설마?” 

창밖의 모습에 나와 미미가 서로를 바라봤다. 

내가 생각했던 안 좋은 느낌과 미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같은 느낌. 

찌찌뽕을 외치고 싶은 그 순간. 

우리의 놀란 모습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지 남궁 장인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가? 같이 좀 재미···.” 

그리고 슬쩍 창밖을 훑으셨다. 

-뿌드드드득 

역시 팔왕쯤 되니 슬쩍 훑는 것만으로도 창밖의 상황이 이해되시는 느낌. 

창문 밖을 확인한 남궁 장인의 입에서 곧바로 이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눈썹을 파들파들 떨며 이를 악문 채 스산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투, 투왕. 무, 무슨 일인지 확인 좀 해주겠소? 끄릅···. 부. 탁. 좀. 드. 리. 겠. 소.” 

우리 셋 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한 상황. 

‘이것이 심심상인(心心相印).’ 

미미가 남궁 장인의 부탁에 어찌해야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해야 했다. 

아마도 감히 남궁 장인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굳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서 남궁 장인의 혈압을 올릴 필요는 없었던 것. 

장인은 중풍을 조심해야 할 나이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저 나이에는 제일 무서운 게 중풍이지. 눈썹 떨리는 거 저거 상당히 위험한 거거든.’ 

*** 

미미가 남궁 장인의 부탁을 받고 열린 창밖으로 사라진 지 얼마 후. 

다른 비구니와 교대하고 되돌아가는 비구니들을 따라갔던 미미가 우리의 예상을 확인시켜주듯 말했다. 

“양쪽 다 도착한 지는 사흘 정도 되었다고 해요. 보타암은 공당 뒤쪽의 작은 객잔에, 아미파는 다리 건너 서문 입구 쪽 객잔에 자리를 잡았더라고요.” 

“사흘이나 말이오?” 

두 문파가 약속 장소인 우리 반점을 두고 다른 객잔에서 묵고 있는 연유는 아마도 기 싸움 때문. 

협상 자리에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해 자신이 상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이유가 분명했던 것. 

왜 전생에도 각국 정상들과의 대화에서 항상 느지막하게 도착하는 분이 한 분 계셨지 않은가? 

-부르르르르. 

“이, 이···. 사람들이!” 

그러자 역시나 분노한 남궁 장인의 테이블이 분노로 몸을 떠는 장인에 휘말려 믹서기 올라간 것처럼 바르르 울려왔다. 

분명 그대로 두면 저 떨림이 곧 이층 전체로 이어질 테고, 그 떨림은 곧 오 층 전각을 뒤흔들 터. 

장인을 진정시키려면 얼른 두 문파를 불러들여야 했다. 

심우현의 내 객잔도 저러다가 회생 불가를 판정받았으니까. 

“고, 고정하시지요. 장인. 제가 당장 두 문파를 도착하게 하겠습니다.” 

“당장 말인가?” 

“예, 당장.” 

내 말에 잠시 진정된 장인. 

장인의 물음에 대답하고는 곧바로 소리쳤다. 

“소소, 소소 어디 있소!?” 

“남궁 부인은 어찌 찾으십니까? 어르신. 오 층에 계시는데요?” 

내 외침에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것은 하인들. 

하인들을 향해 다시 외쳤다. 

“너희들 소소와 청이, 영영이를 찾아오너라. 손님이 도착한 것 같아 맞으러 가야 한다고, 의복을 정갈하게 하고 오라 이르거라.” 

“예, 어르신!” 

“미미, 미미도 손님을 맞으러 가야 하니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오시오.” 

“알겠습니다. 낭군님.” 

그렇게 미미가 위층으로 사라지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청, 미미, 소소, 영영이가 다 같이 예쁘게 꾸미고 이층에 도착했다. 

“노공, 손님이 도착하셨다고요?” 

“가가. 저희가 데리러 가야 해요? 못 찾아오나?” 

“그런 것이 아니고 이미 며칠 전에 도착했는데, 아마 상대방보다 늦게 도착하려 눈치를 보고 있는 모양이구나.” 

“네? 며칠 전에 도착했다고요 은공?” 

내가 넷을 찾은 연유를 이야기하자 놀란 얼굴로 남궁 장인을 바라보는 넷. 

‘어머 어떡해? 체면 상하셨어.’하는 표정에 남궁 장인이 다시금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튼 그러니 소소와 미미는 보타암이 묵고 있다는 객잔으로 가서 그들을 데려오고, 청이와 영영이는 아미파가 있다는 객잔으로 가 그들을 데려오시오. 영영아 아미파 사람들과 친분이 있다고 했으니 아미파 쪽은 네가 가야겠구나.” 

“알겠어요. 가가. 누가 왔으려나? 아는 사람이 왔으면 더 좋겠는데.” 

원래는 남해 보타암과 아미파의 싸움 중재를 맡은 것이 검왕이신 남궁 장인이기에 그 딸인 소소를 필두로 양 문파를 데려와야 했지만, 그러자면 누군가는 먼저 도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또 싸움이 날 것이 뻔했다. 

그러니 보타암 쪽은 소소와 미미가, 아미파 쪽은 같은 사천 출신인 영영이를 보내기로 한 것. 

잘 모르는 보타암에는 소소를 보내 압박을 주고, 아미에는 같은 사천 출신인 영영이를 보내 설득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편이 양쪽을 일찍 도착시키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낭군님 가서 뭐라고 하죠?” 

그러나 출발하기 전, 뭐라고 하고 불러오냐는 미미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마도 오라고 한다고 올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미미의 생각이 모양이었다. 

‘확실히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고는 조금 그렇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데서는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라 정공법이 필요한 법. 

“가서 딱 이렇게 말씀하시오. 언제 도착들 하셨는지 검왕께서 다 알고 있으며, 그 때문에 검왕의 인내심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최대한 빠르게 도착하셔야 할 것 같다고 말이오. 늦는 문파는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존나 빨리 튀어오라고.’ 

그렇게 소소와 미미, 영영이와 청이가 두 갈래도 갈라져 두 문파가 묵고 있다는 객잔으로 달려가고 얼마 안 돼, 우리 류가반점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비키세요. 저희가 먼저 들어가겠어요.” 

“저희가 먼저 도착했는데 무슨 소리입니까?” 

“누가 봐도 저희가 먼저 도착했는데, 무슨 소리인가요?” 

“보타암주께서는 검 실력만큼 눈도 좋지 않으신가 봅니다?” 

“뭐라고요? 아미파의 사태께서는 입구에서부터 한번 해보자 이 말인가요?” 

서로 각 문파의 이름을 외치며 싸우기 시작하자, 몰려드는 사람들. 

사람들이 놀랍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보, 보타암? 저분이 남해 보타암의 신니?” 

“저쪽은 아미파의 사태라고 하시는구먼” 

“류가 반점에 누가 먼저 들어가려는 지로 싸우는 것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류가 반점에 어찌?” 

싸움으로 인해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지만, 저 모습에 불편하신 분이 한 분 계셨으니. 

장인이 창틀을 부여잡고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고 계셨다. 

입술을 움찔거리는 것이 뭐라고 외치려 하시는 모양. 

장인에게 이럴 때 하면 가장 좋은 맨트를 알려드리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는 누가 뭐래도 그 단어 아니겠나?’ 

갈(喝). 

이 환장스러운 상황에서는 갈이야말로 최고의 단어니까 말이다. 

“장인어른. 이럴 때는 갈(喝) 한번 하시지요.” 

“갈? 아, 꾸짖을 갈. 그래, 그거 아주 좋은 소리군.” 

장인도 상황이 맞아떨어진다 생각하시는지, 장인의 입에서 곧바로 웅후한 내공이 실린 그 단어가 터져 나왔다. 

“갈(喝)!” 

그러자 창밖에 몰려들어 구경하는 사람들부터, 아미와 보타암의 비구니들까지 화들짝 놀라 이 층 창문을 바라봤다. 

그들을 향해 흘러나가는 장인의 스산한 목소리. 

“두 문주께서는 세인들 앞에서 그 정도로 하시고 안으로 드시게!” 

장인의 외침이 다시 한번 이어지고, 움찔한 두 여자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반점 안으로 들어섰다. 

검후라는 별호를 둔 두 문파의 기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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