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단자(姊妹团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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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한과 독기를 품은 여자 둘이 마주하고 있는 나의 객잔은 시베리아가 따로 없었다.
냉기가 씽씽 부는 객잔 삼 층의 룸.
날카로운 눈빛과 삐쭉거리는 입술, 위아래로 움직이는 두 여인의 시선.
두 문파의 문주를 양쪽에 두고, 보다 못한 장인이 상석에서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크흠. 다들 사흘 전쯤에 도착하셨다던데 늦으셨구려···.”
그러자 두 문파의 문주가 별로 미안하지 않은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답했다.
“긴 여정으로 심신이 피로했던지라 잠시 쉬고 연통을 넣으려 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검왕 어르신,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친 제자들을 돌보느라. 죄송하게 되었어요.”
그게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정말 태연자약한 목소리.
장인이 분노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러나 장인이 분노하기도 전에 둘의 대답은 곧바로 싸움으로 번졌다.
“보타문주는 왜 저를 따라 하시는 겁니까?”
“네? 제가요? 아닌데요?”
“복주에서 보타암은 별로 멀지도 않은데, 제자들이 지쳤다는 말입니까? 그런 허약한 제자들이라니···. 뭐 장문인을 닮은 것이겠지만···.”
“뭐라고욧!?”
-탕!
장인이 둘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식탁을 손으로 내려치고.
탕하고 울리는 소리와 식탁 표면에 찍히는 손자국에 내 마음이 찢겼다.
‘새 식탁인데···.’
“그만! 두 문주들은 자중하시게!”
“흥!”
“쳇···.”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에 손을 가져간 장인이, 오른쪽에 앉은 나를 보고 부탁하셨다.
“사위, 먼저 음식을 좀 준비해 주시겠나? 이대로는 이야기가 안 될 것 같군.”
“알겠습니다. 장인어른. 곧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청운님, 여기 월희가 있어요. 명령하실 것이 있으신가요?”
“그래, 지금 당장 형님과 가련이에게 바로 요리를 준비해달라고 이야기를 전해주거라.”
“알겠습니다. 청운님.”
원래는 대충 인사라도 하고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으나, 이 상태로는 안 되겠던지 장인께서 먼저 식사를 부탁하셨다.
아무래도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려면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나와 소소, 청이는 장인의 양쪽에 나눠 고문역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기에 형님과 가련이에게 요리를 부탁해 둔 상태.
산가삼취(山家三脆), 주자옥심(酒煮玉蕈), 성육병(胜肉饼)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요리인지라 둘이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방에 요리를 부탁하고, 요리를 기다리는 싸늘한 분위기 속.
보타암주가 장인에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검왕 어른, 소란스러워 다른 분들에 대한 소개를 듣지 못하였는데, 부탁드려도 되겠나요?”
“아, 그렇지. 이쪽은 내 사위. 류청운.”
“처음 뵙겠습니다. 류청운이라 합니다.”
“사위!?”
“사위 말입니까?”
“그렇네. 이쪽 내 딸인 소소의 짝이지.”
분명 좀 전에 나를 사위라 불렀는데, 전혀 처음 듣는다는 듯 되묻는 둘.
장인이 이어서 소소를 소개하자 둘이 앞다투어 반색하며 기뻐했다.
“아, 이번 무림비무대회 대장원! “말씀 많이 들었네요. 검봉, 그리 검술이 뛰어나다고요?”
“여인의 몸으로 대장원이라니, 저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대단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두 분 장문인. 남궁소소라 해요.”
아마 검을 다루는 여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지 반가워하는 둘.
소소와의 인사가 끝나자 둘이 고개를 돌려 청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저쪽의 소저는?”
“아, 그쪽은 제갈가의 여식이네. 도움을 받으려고 이 자리에 청했네. 제갈가의 지혜라면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야.”
우리끼리야 상관없지만, 굳이 아내라고 소개해 복잡해질 필요는 없기에 제갈가의 여식이라고만 소개된 청이.
나와 청이의 혼례 소식은 모르는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갈 청이라 합니다.”
“제갈 가주님의 따님이셨군요?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소저. 아버님과는 안면이 있습니다.”
‘하긴 평생 혼례도 못 치르는 분들이니 남의 혼례식 이야기는 신경 안 쓰는 게 맞지. 마음이 쓰리니까.’
그렇게 대충 서로에 대한 인사가 끝나자 곧 음식이 들어오고, 두 장문인이 입에 성육병을 넣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장인이 이야기를 꺼냈다.
“먹으면서 이야기들 들으시게. 내 맹에서 직접 이 싸움의 중재를 부탁받았는데, 맹에서는 더 이상 둘이 충돌하길 원치 않네. 그러니 내 얼굴을 봐서 원만하게 화해했으면 하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검왕의 면(面)을 봐서 적당히 하라는 말.
자꾸 처 싸우면 중재를 맡은 장인의 체면이 상하니 적당히 하라는 반협박이었다.
맹에서도 둘이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감히 검왕 앞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을 것 같기에 장인에게 이 일을 부탁한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그러자 먼저 보타암의 문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장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면 저는 아미파 장문인께서 본인을 모욕한 사실을 사과하시면, 검왕 어르신의 체면을 보아 물러나도록 하겠어요.”
그러나 보타암의 문주의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아미파의 문주.
태연자약 뻔뻔한 아미파 문주의 대답에 다시 한번 보타암주가 분노했다.
“사과요? 제가 무슨 모욕을 했다는 말입니까?”
“감히 본문의 문주에게만 전해져오는 전통 깊은 별호를 탐내고, 본인을 모욕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요?”
“저는 당연한 사실과 당연한 순리를 이야기한 것일 뿐. 애초에 검후라는 별호는 보타암의 것이 아니지 않았습니까?”
‘누님, 사실이라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 훼손이에요. 상대방을 쪽팔리게 하니깐.’
정확히 말하면 사실 직시에 의한 명예 훼손이 맞긴 하지만, 그건 전생에나 가능한 이야기.
전생의 무협 상식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아미파 장문인이 왜 검후라는 별호를 내놓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둘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며칠.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검후(劍后) 칼 검(劍) 자와 임금 후(后)자를 써서, 검의 왕비 뭐 그런 뜻의 별호.
팔왕급에 준하는 칭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 검을 든 여성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별호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남해 보타암이 이 검후라는 별호를 독점하게 된 이유는, 보타암의 후계자인 소검후나 검후 자신이 중원으로 나올 때마다 전설을 써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무림의 설정.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 왔으니, 보타암주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무림에서는 보타암주가 검후라는 별호를 쓰는데 아무런 이견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있었다.
지금이 명, 청 시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송 시대.
보타암의 불패의 신화는 아무래도 그 역사가 짧고, 보타암이 이 검후라는 별호를 얻은 것도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역사였던 것.
“이미 백 년이나 저희 보타암의 것이었는데, 무슨 소리인가요!”
“이미 백 년이 아니라 고작 백 년이겠지요.”
그러니 백 년 전에는 여인의 몸으로 검의 최고를 증명하면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칭호였기에 이런 사단이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뭐 무림의 법도대로 시원하게 한판 싸우고 이긴 쪽이 별호 가져가고, 자신 있으면 나중에 다시 찾아가면 될 일이긴 했으나.
그런데 문제는 맹에서 두 문주의 충돌을 원치 않는다는 데 있었다.
무림계 내, 외부에서는 마교들이 준동하고, 북으로는 오랑캐인 요나라와 서하가 강성한 이때. 굳이 내부의 결속을 저해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보타암주가 이겨도 이 결투를 승인하면 검후라는 별호를 얻기 위해 아미파의 계속된 투쟁이 이어질 테고, 아미파의 장문인이 이겨도 다시 별호를 찾기 위한 보타암의 도전이 계속될 테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백도 무림의 여인으로 이루어진 가장 유명한 두 문파가 계속 적대 관계가 될 테니까.
또 아무리 목숨까지 거두는 생사결이 아니고 비무라지만, 검을 들고 싸우는 상황에서 실력 차이가 없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고, 결국 그것은 백도 무림의 세력이 약화하는 것.
그러니 장인은 최대한 둘의 싸움을 말리고 싶은 상황인데, 이거 어지간해서는 말려질 것 같지 않았다.
아미파의 장문인은 어떻게 해서든 검후라는 별호를 가져가고 싶은 모양이었으니까.
뭐 보타암의 장문인도 이번에 십오 년 전의 설욕을 단단히 하고 싶은 느낌이고.
“두 문주 들은 자중하시게. 무림 말학들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가! 같은 불문이며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두 문파라면, 무림에서 자매나 마찬가지이거늘. 어찌 이리 싸운단 말인가?”
“죄송해요. 검왕 어른”
“죄송합니다.”
입으로는 사과하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
답답한지 청이의 전음이 이어졌다.
[노공, 아무래도 힘들겠죠?]
청이도 둘의 상태를 보니 이걸 평화적으로 말리기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모양.
장인도 내 쪽을 흘깃흘깃 살피는 것으로 보아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오시는 것이 분명했다.
‘도와드린다고 큰소리는 쳐두었는데···.’
[사위, 어찌 분위기를 풀어볼 요리 같은 것이라도 없는가? 나를 감동하게 했던 삼투압(三套鴨) 같은 요리로 어리석은 저 둘을 깨우칠 수 없겠는가? 무림의 두 자매가 싸우는 꼴이니···.]
역시나 귓가에 들려오는 장인의 전음.
‘삼투압이라···. 아미와 보타암···. 자매···. 자매의 우애라···. 아! 그게 있었지? 그런데 있긴 있는데 과연 될까 싶긴 한데···.’
여태까지 요리로 대부분의 일들을 해결해왔지만, 이런 여인들의 감정싸움을 말려본 일은 없는 상황.
생각나는 요리가 있긴 했지만 이게 조금 상황이 미묘했다.
이걸로 싸움이 말려질까 싶었던 것.
원래 캣파이트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고양이들이 싸우는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옆에 오면 한 대 쥐어패고 손톱을 세우는 것이 고양이라는 것이니까.
‘이번 여난은 아내가 생기는 여난이 아니라 여인들로 인한 심리적 여난인가?’
그러나 일단 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기에 자리에서 일어서 장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식사하시는 사이 일단 제가 내려가 후식(後食)을 만들어오겠습니다.]
[오, 무슨 방법이 있는가?]
[뭐, 일단 해보지요.]
[응?]
내 대답에 조금 의혹 가득한 표정이 된 장인을 뒤로하고 얼른 주방으로 내려갔다.
“매부, 어째 요리는 문제는 없었는가?”
“스, 스승님 괜찮았나요?”
부엌에 들어서자, 요리에 관해 물어오는 남궁현 형님과 가련이.
자기들이 어떤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요리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상황.
둘이서 계속해서 싸워대는 통에 무슨 이상이 있었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 뭐···. 요리는 전혀 문제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곧바로 요리 한 가지를 만들어야 하니 준비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새로운 요리 말인가?”
“무엇을 준비해드리면 될까요. 스승님?”
급하게 새 요리를 만들어야 했기에 서두르며 말했다.
“우선 나미(糯米)를 맷돌에 좀 갈아 주시겠습니까? 형님.”
“나미 말인가?”
나미란 찹쌀을 의미하는 말.
후식으로 떡을 만들 것이기에 찹쌀이 필요했던 것.
“예. 형님.”
“알겠네. 잠시만 기다리게.”
형님이 한쪽에서 재빨리 찹쌀을 갈기 시작하고, 그사이 가련이에게 아까 성육병을 만들고 남은 재료를 가져오라 시켰다.
“가련아, 송자(松子)와 남은 호두를 가져오거라. 그리고 지마(芝麻), 사당과 향고, 쪽파, 간장을 좀 준비해 주거라.”
“예, 스승님. 향고, 송자, 호두···. 에 또···.”
가련이가 재료를 찾아 나르고, 조금 기다리자 형님이 찹쌀가루를 쓸 만큼 만드셨기에 그것을 형님에게 반죽해달라고 부탁한 후, 속을 만들기로 했다.
“나미 가루를 삼할의 밀가루와 섞어 반죽해 주시면 됩니다. 따듯한 물로 말입니다.”
“삼 할. 알겠네.”
먼저 지마(芝麻) 그러니까 참깨를 절구로 갈았다.
-스윽스윽.
깨를 곱게 갈자 흘러나오는 깨의 고소한 향.
거기에 송 시대 설탕인 사당을 넣어 달콤한 속을 준비했다.
우리나라의 깨 송편을 만들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잣과 호두를 갈아 표고버섯과 쪽파를 다져 넣고 간장으로 간을 했다.
이것은 짭짤한 속.
원래 고기를 넣어서 만들지만, 손님들이 비구니인지라 비건식으로 고기 대신 잣과 호두를 갈아 넣은 것이다.
속을 두 가지나 준비한 이유는, 이 떡 요리는 똑같이 생긴 두 가지 찹쌀 경단 안에 짭짤한 소와 달콤한 소가 들어있는 요리.
먹으면 어떤 맛이 나올 줄 모르기에 기대하며 먹는 맛이 색다른 요리이기 때문.
그렇게 완성된 속으로 셋이 재빠르게 두 가지 경단을 만들어 찜기에 반 식경 정도 쪄내자, 달큰한 찹쌀의 향이 가득한 경단이 완성되었다.
“이건 또 처음 보는 요리군. 자네의 머릿속에서는 어찌 이리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가 나오는가? 요리의 기재라 아니할 수 없군. 그런데 이 요리 이름이 뭔가?”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떡을 본 형님의 찬사와 이어진 질문.
형님의 찬사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형님. 이 요리는 자매단자(姊妹团子)라 합니다. 우애 좋은 두 자매가 만들었다 해서 자매단자라 부르지요.”
“자매단자라···.”
지금 만든 요리는 자매단자(姊妹团子).
음란 마귀에 시뻘겋게 물든 자라면 ‘자매ㄷ’ 까지만 듣고 이상야릇한 상상을 할 수도 있지만, 전생에 이 요리는 아주 퓨어하고 세인트한 우애로운 두 자매가 만들었다 해서 자매단자.
절대 자매ㄷ로 시작하는 좋은 아니, 음흉, 음란한 것이 아닌 것.
그렇게 면전(面前)에서 터진 형님의 찬사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고, 가련이와 형님에게 자매경단을 맛보라 일부 덜어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경단을 접시에 소복하게 올려서, 좀 걱정되는 마음을 가지고 위층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나조차도 힘들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