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0화 (306/344)

진창궁무애검법(眞蒼穹無涯劍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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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자매단자를 가지고 다시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는 상대방이 마치 보이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는 두 장문인. 

둘은 아주 거만하고 얄미운 표정으로 손수건을 꺼내 입술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도 금방 식사가 끝난 느낌. 

얼른 자매단자를 식탁 한가운데 내려두었다. 

그렇게 큰 접시를 식탁 한가운데 내려두자 모두의 시선이 식탁 가운데로 쏠리고, 쏠린 시선을 받으며 둘을 향해 이야기했다. 

“후식(後食)을 드시지요.” 

그러자 동그랗고 하얀 요리가 나오니 호기심이 동하는지 관심을 드러내는 둘. 

“후식? 식사 후에 먹는 것인가 봅니다?” 

“이리 정갈할 수가. 검왕 어르신께서 먼저 맛보시지요.” 

“그러지.” 

그렇게 장인부터 차례대로 셋이 자매단자를 맛을 보기 시작했다. 

알알이 흰 경단. 

그것들이 하나씩 셋의 입 속으로 사라지고, 곧이어 쫄깃한 떡을 씹을 소리와 함께 요리에 대한 소감이 흘러나왔다. 

“어머, 아주 달콤하군요? 하얗고 동그란 피는 아주 쫄깃하고 속은 달콤하니 정말 맛있습니다.” 

“달콤? 저는 짭짤한데?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서로 다른 맛을 느꼈다는 소리에 얼른 두 번째 경단으로 손을 가져가는 두 장문인. 

신기한 요리를 접해 마음이 조금 풀어져 보이기에 얼른 둘에게 요리에 의미에 관해 설명했다. 

“지금 맛보신 요리는 자매단자. 짭짤한 경단과 달콤한 경단이 섞여 있는 요리입니다. 두 문파가 경단의 속이 다른 것처럼 비록 각기 배운 무공은 다르나, 겉모습은 같은 중원 무림의 한 자매임을 기억해 주십사 해서 만든 요리입니다.” 

그렇게 내가 요리에 대한 설명을 끝내자 잠시 생각에 빠져드는 둘. 

‘설마 먹혔나?’ 

어지간하면 화해는 힘들 것 같았으나 잠시 둘이 멈칫하기에 일이 잘 풀리나 싶었다. 

곧이어 번갈아 가며 들려온 말도 희망스러웠기 때문. 

“저런, 저희가 싸우는 모습 때문에···.” 

“무공도 모르는 요리사라 들었는데, 저희를 일깨우려 이런 요리까지···.” 

‘그래, 그래도 둘 다 비구니라 불경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영 허당은 아니었어.’ 

뭔가 분위기가 잘 풀리는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잠깐의 텀을 두고 희망스러운 기대를 박살 내는 둘의 물음이 이구동성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언니는 누구죠?””” 

갑자기 뜬금없이 대체 언니는 누구냐는 질문. 

“예!?” 

당황해 되묻듯 대답하자 둘이 그렇게 싸워놓고는 죽이 잘 맞는다는 듯 물어왔다. 

“저희 두 문파가 자매라면 언니가 있을 것 아닙니까? 세상에 나고 자란 것은, 다 순서가 있는 법.” 

“맞아요. 류대협이 생각하기엔 누가 언니 같지요?” 

‘아뿔싸···.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영영이나 소소에 대한 일에서도 그렇고 여자들에게는 언니가 누구인지가 아주 중요한 문제 같았는데 내가 내 무덤을 파버린 격. 

“어, 그, 그러니까···. 포태(胞胎 쌍둥이는)?” 

“어허! 불길하군요. 포태라니!” 

“맞습니다. 포태는 아닙니다. 그러면 길함을 위해서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포태라도 먼저 난자와 나중 난 자가 있는 법.” 

“호오. 그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군요. 하나는 죽어야 한다니···.” 

“아니, 그것이 아니고···.” 

쌍둥이 드립을 쳐봤지만, 이 시대 쌍둥이는 불길한 존재. 

태어나면 둘 중 하나는 죽이는 것이 보통이니, 잘못하면 둘 중 하나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르는 일. 

이거 잘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당황한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을 못 하자, 이제 둘이 자문자답하기 시작했다. 

“그야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한 번이라도 이긴 제가 언니가 아니겠습니까?” 

“뭐라고요! 고작 어릴 적 한번 이긴 것 가지고 저를 모욕하다니! 그리고 이제는 언니 행세하시겠다? 참을 수 없군요!” 

“참을 수 없다면 이 언니와 한번 해보자는 말입니까?” 

“뭐라고욧!” 

-스릉! 

-챙! 

싸우지 말라고 요리를 만들어왔는데, 다짜고짜 칼을 뽑아 드는 둘. 

장인은 설마 본인 앞에서 싸우겠냐며 식사하기 위해 뒤쪽에 칼을 풀어둔 상태. 

둘이 제비같이 식탁 위로 날아올라 격돌했다. 

그렇게 격돌하는 둘. 

칼을 뽑아 든 둘이 식탁 위로 몸을 날리던 그 순간. 

이어질 상황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갸아아아아악! 안돼! 내 반점!” 

-스릉. 스컥! 채캉! 

그러나 뒤이어 칼 한 자루가 더 뽑히는 소리가 나더니, 둘의 격돌 사이에 뛰어든 인영이 있었으니. 

‘장인인가?’ 

순식간에 일어난 격돌. 

처음에는 뒤편에 풀어둔 칼을 잡아 장인이 몸을 날렸나 싶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살피자, 아미의 장문인과 보타암의 문주가 낭패한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를 교환한 상태였고, 소소가 어느새 반대편으로 넘어가 둘에게 포권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곳은 저의 은공께서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인지라, 후배가 버릇없이 칼을 뽑고 말았어요. 두 분께서 손속에 사정을 두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자 소소의 말에 움찔하는 둘. 

‘어? 이거 설마?’ 

뭔가 강하게 촉이왔다. 

원래 무림의 설정상 고수의 격돌에 끼어들려면 어지간한 수준차로는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 

둘의 무공을 버티지 못하면 가운데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분명 둘 다 지금 소소와의 격돌로 쫄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소소는 검왕이 직접 키운 중원 최고의 히트맨 아니, 우먼. 

슬금슬금 다가가 장인에게 귓속말로 제안했다. 

[장인어른 이 싸움 없앨 묘안이 생각났습니다.] 

[오! 묘안! 그래, 그게 뭔가?] 

묘안이 생각났다는 말에 반색하는 장인. 

장인에게 씨익 웃으면 대답했다. 

[그냥 싸우게 하시지요.] 

[싸우게 한다고?] 

[예 싸워서 싸움거리를 없애는 것이지요.] 

[아니, 맹에서는 둘이 싸우게 하지 말라는데, 싸우라고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리고 싸워서 싸움거리를 없앤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누가 둘이 싸우게 한답니까?] 

[그럼 둘이 안 싸우면 누가 싸운단 말인가!?] 

내 뚱딴지같은 소리에 장인이 답답한 듯 나를 올려다봤고, 그런 장인의 귀가 번쩍 뜨일만한 이야기를 속삭였다. 

[검봉이라는 별호는 좀 소소에게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국공이 될 텐데, 아내는 검후 정도는 되어야죠. 아니 그렇습니까?] 

국공이 된다면 나도 뭐 일국의 왕. 

검후는 그러니까 검의 왕비. 

왕 옆에 왕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 

더군다나 싸움이 꼭 둘이 하란 법은 없지. 

아무렴. 

그러자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는 장인. 

장인의 신이 난 전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내 딸이 또 있으면 그 딸도 자네에게 주고 싶구만. 아무렴···.] 

‘이 양반도 음란 마귀가 들었나?’ 

장인의 전음에 움찔할 때, 장인이 폭소하면 두 장문인을 향해 외쳤다. 

“으하하하. 그래, 뭐 애들도 아니고 싸우지 말라면 싸우지 말고, 싸우라면 싸우는 게 무림인은 아니지! 자! 나가세! 어디 한번 검후가 누구인지 결정해보세! 검은 쥔 자는 검으로 말하는 법. 아무렴.” 

그러자 자신들의 운명도 모르고 반색하는 두 장문인. 

“역시! 시원하십니다. 검왕 어른!” 

“저도 그간의 은원을 이제야 풀겠군요! 역시 검을 잡은 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군요.” 

그렇게 모두 신이나 달려 나간 류가 반점 뒤편 후원. 

어떻게든 말려야 하는 대결이 결국 열리고야 말았고, 나뒹군 둘 사이에 선 붉은 입술의 여인이 새로운 검후(劍后)가 되어 둘을 지긋이 내려다봤다. 

“축하하오. 소소. 아니지. 이젠 검후라고 불러야 하나?” 

검후라는 별호는 소소에게 압수되었고, 검봉 소소가 검후로 승진해 버린 것. 

“두 분께서 후학에게 양보해주셔 감사합니다.” 

마무리 티배깅까지 아주 완벽한 승리였다. 

*** 

장인은 둘에게 언제라도 소소를 꺾는다면 검후라는 별호를 넘겨줄 것이라 다짐해 줬다. 

물론 소소도 그렇게 대답해줬다. 

하지만 며칠 후. 

풀이 죽어 되돌아가는 두 문파의 장문인. 

저렇게 풀이 죽은 이유는 둘 다 소소에게 뭘 해보지도 못하고 패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소소는 둘이 소소의 실력을 인정할 때까지 상대해주었고 결국 결론은 완벽한 패배. 

수련한다고 갭이 좁혀질 것 같지 않으니, 저렇게 시무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소소가 죽기 전에는 검후라는 별호를 되찾을 길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인도 놀라서 대결이 끝나고 소소에게 물었을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소소가 강하긴 해도 저렇게 강할 줄은 모르셨던 모양이었다. 

“소소야!? 서, 설마? 완성하였느냐?” 

그러자 쓰러진 둘을 지긋이 내려다본 소소가 장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잘못 생각했다?” 

“예, 정확히는 반쪽짜리 깨달음. 창궁무애(蒼穹無涯). 푸를 창(蒼), 하늘 궁(穹), 없을 무(無), 물가 애(涯). 푸른 하늘에는 그 끝이 없기에 검을 형(形)과 식(式)으로 펼치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푸른 하늘로 뻗어나가기 위한 시작일뿐. 하늘에는 끝도 시작도 없으니 형과 식에도 제한은 없다. 이것이 저의 깨달음이었지요.” 

“그래,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지.” 

“해서 식과 형을 자유롭게만 펼치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답보. 뭔가 잘못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 새벽에 제 수련을 봐주시던 은공께서 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사위가?” 

“내가 말이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지?’ 

내가 이야기했다는 말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나와 장인의 물음에 소소가 나에게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졸리신 지 하품하며 지나가듯 창궁무애 검법이 무엇이냐 물으셨지요. 해서 제가 하늘의 끝을 찾아가는 것이 창궁무애 검법이라 했더니, 은공께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은 둥글기에 끝도 시작도 없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그리고는 칼춤을 추듯 빠르게 검을 펼치며 말을 이었다. 

-싱! 

-씨잉! 

“형은 식을 따르고 식이 형을 부르니, 무한히 이어지며 멈추지 않게 식과 형을 엮어 초식으로 펼친다. 순환하는 흐름에 따라 형과 식을 초식으로 펼쳐내니, 첫 초식을 펼친 진기는 다음 초식으로 남김없이 이어지고. 진기의 흐름이 막힘없이 순환하니, 이 검에는 시작도 끝도 한계도 없다.” 

뭔가 정형화되어있던 동작들이 사라지고, 어떤 동작 어떤 자세에서도 자연스러운 초식들이 이어지는 모습. 

그 화려한 춤사위 속에서 소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진창궁무애검법(眞蒼穹無涯劍法). 소녀가 은공의 은혜와 사랑으로 완성한 검법이옵니다.” 

그리고는 입술처럼 붉어진 두 볼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쭉 검을 뻗었다. 

*** 

저자와 항구 쪽은 이미 평정한 상태. 

거기에 아미와 보타암까지 다녀가자 민가 쪽에서도 손님이 쏟아졌다. 

불교를 숭배하는 이 시대에 불교 신비 문파인 보타암과 여자들만의 불교 문파인 아미가 다녀갔다는 말에 다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우리 반점으로 모여들었기 때문. 

더군다나 입구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 싸웠던 모습에서 사람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우리 반점은 아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금 메뉴라고 해 봐야 황어면, 우육면, 칠성어환, 거기에 여승들이 먹었던 산가삼취, 주자옥심, 성육병. 

단출한 메뉴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성육병의 잣은 후추와 맘먹는 가격에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고려에서 분명에 발에 챌 정도로 많고 청설모가 먹어 치우는 잣을 이리 비싸게 팔다니, 정말 고려 선조님들 무역 스킬이 장난 아니라고 생각이 들 정도. 

할 수 없이 대용품으로 구하기 쉬운 견과류인 진자(榛子)인 개암으로 대신했는데, 맛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끝나고, 송 시대 공중목욕탕인 향수행(香水行)에서 몸을 씻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미미가 목욕을 하고 와서 발그레해진 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낭군님, 어서 오셔요. 피곤하시죠?” 

“아니요. 하루 잘 보냈소? 내 오늘 바빠서 미미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확인도 못 했구려.”

요 며칠 바빠서 미미가 어찌 지내는지도 몰랐던 상황. 

미미의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미안한 듯 말하자, 미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청이, 영영이, 소소가 잘 대해주니까요.” 

네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미미는 아무래도 좀 신경이 쓰인다. 

청이와 영영이는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 

소소는 자기 오라버니인 형님이 계시지만, 미미는 이곳에서 오롯이 혼자인 것. 

그러니 내가 잘 챙겨주어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바쁘면 짬이 안 나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아니요. 반점이 바쁘니까요. 검왕께서 오셔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에요. 도리어 제가 죄송합니다. 저도 노공의 반점에 도움이 될 친정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무슨 소리요. 절대 그런 소리는 다시 하지 마시오.” 

정색하며 미미를 품에 끌어안았다. 

아무래도 세 가문에서 두고 넉넉하게 쓰라고 돈을 보내주기도 했고, 남궁 장인 같은 경우에는 손님들까지 끌고 오니, 친정이 없는 미미는 마음이 불편한 모양. 

쟁쟁한 가문들 틈에 끼어있으니 주눅이 드는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좀 더 잘 챙겨야겠어···.’ 

아무래도 미미를 좀 더 잘 챙겨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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