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4화 (310/344)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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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문을 열어라!” 

다시 한번 들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와 관병의 외침. 

“아, 그렇지! 위대협 이걸!” 

청이가 기지를 발휘해 어깨에 맨 한 놈의 전낭에서 은자를 한주먹 꺼내, 그것으로라도 관병들을 되돌려 보내라는 듯 위보헌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위보헌. 

“아, 알겠습니다. 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요.” 

그러나 청이의 계획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위보헌이 은자를 쥐고 문 앞으로 나가 문을 여는 순간,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관병들 때문에 위보헌이 은자를 바닥에 떨구며 뒤로 굴러버렸기 때문. 

-쿠당탕! 

“어쿠쿠쿠쿠.” 

“빨리빨리 열지 못하고! 응!? 이, 이건! 아, 아장 여기입니다! 여기!” 

양쪽 어깨에 남자를 하나씩 걸쳐 매고 있는 둘의 수상할 수밖에 없는 모습에 곧바로 관병은 창을 겨누며 아장을 불러댔고. 

-찰박찰박 

곧이어 빗물 밟는 소리와 함께 다른 관병들이 몰려들어 둘에게 창을 겨눴다. 

[미미 언니, 일이 번거롭게 되었는데 이왕 이리된 것. 그냥 한번 사실대로 이야기해 볼 테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일단 모두 기절시키세요.] 

[사, 사실대로 말한다고?] 

[포 형인이 계시니 폐를 끼치게 되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조용히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노공의 의형제인 포형인의 후광을 믿어볼밖에. 

좀 전에도 사실대로 말하니 이해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게 청이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관병의 아장으로 보이는자가 위보헌의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저기···.” 

그리고 그를 향해 청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안의 모습을 확인한 아장이 청이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대경실색해서 창을 겨두고 있던 관병들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쳤다. 

-뻐억! 빠악! 

“커흡···.” 

“끄허억!” 

“뭐! 뭐 하는 짓이냐! 바보 같은 놈들! 감히 차, 창을 겨누다니! 지주 어른 의형제의 부인이신 제갈 부인이 아니시더냐!” 

양쪽 어깨에 사람을 둘러멘 그런 모습은 전혀 문제가 안 되는 느낌. 

포형인의 후광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전음. 

[부인, 복주지주께서 제서를 받으시는 날 저희 아장들과 지휘사 어른을 불러 당부하셨습니다. 류대인께서는 연성공의 의형제시니 각별히 신경 쓰라고···.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연성공의 후광인가? 

“대체 너희 놈들은 눈깔도 없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제갈 부인. 아래 녀석들이 큰 실수를···. 눈치 없는 놈들 뭣들 하느냐! 부인께서 무거운 것(?)을 들고 있지 않냐! 얼른 받아들지 않고!” 

아장이 창을 겨누고 있던 관병들을 다그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후다닥 달려온 관병들이 미미와 청이의 손에서 네 남자를 받아 들었고, 곧바로 아장의 물음이 들려왔다. 

“부인, 그런데 이놈들은 어째서 제압하신 것입니까?” 

청이가 그 눈빛에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좀 당황스러웠던 것. 

“저, 저희 반점 주변을 기웃거리며 감시하는 자들의 배후로 보이기에···.” 

“바, 반점 주변을!? 죄, 죄송합니다! 그런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저희가 잡아들였을 것인데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도리어 잘못했다는 아장의 반응에 청이와 미미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미야 한 번도 관병들에게 이런 호의를 받아보지 못했으니 당황하는 모습으로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던 것. 

항상 쫓기기만 했지, 나서서 일을 수습해 주는 경험은 처음이었으니까 말이다. 

“지주 어른께서 각별하게 챙기라 하셨는데, 저희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나쁜 놈들을 보았나! 이놈들은 저희가 관으로 끌고 가 물고(物故)를 내겠습니다!” 

물고를 내겠다는 말은 그대로 관으로 데려가 이유를 불문곡직(不問)하고 때려죽이겠다는 말. 

그 말에 청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배후가 누구인지 모르니 저희가 데려가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러시면 류가반점으로 가시지요.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젠 도리어 데려다주겠다는 아장. 

그렇게 청이와 미미가 어색한 모습으로 아장을 따라 문밖으로 나서려 할 때, 아장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더니 다시 한번 깜짝 놀라 외쳤다. 

“거기 너희 둘. 두 부인께서 비를 맞으시지 않게 어서 빨리 가서 산(傘)을 준비해 오너라!” 

“아, 알겠습니다!” 

우산까지 구해오라는 아장의 명령에 두 병사가 허겁지겁 뛰어나가고, 아장이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주변에 뭔가를 보거나 들었다고 하는 놈들을 두드려 패서 입을 다물게 하거라!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사라진 사람도 없고 망가진 창도 없다! 알겠느냐!” 

“““예, 아장 어른!””” 

“그리고 산이 도착하는 대로 두 분을 류가반점으로 모실 것이니 준비하거라!” 

“예!” 

그리고 얼마 후. 

준비를 마치고 청이와 미미를 기다리고 있던 영영이는 관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류가반점 안으로 들어서는 둘의 모습에 깜짝 놀라 입을 가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관병의 호위를 받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조용히 두 놈을 잡아 온다는 약속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비단 산은 또 어디서 나서?’ 

뭔가를 은밀히 잡아 오는 것이 아니라 사대부 부인이 호위를 받으며 달밤에 산보(散步)를 다녀오는 느낌이었으니까. 

*** 

-똑. 또옥.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모용승겸이 고통 속에서 눈을 떴다. 

머리통이 터져 나갈 것 같은 통증. 

“크흐흑···.” 

고통 속에서 눈을 뜨자 어두운 동굴 같은 곳, 의자에 묶여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주변에 무사 넷과 모용승겸의 아들이 모두 혈도가 제압된 채 눈알만을 굴려대며 쓰러져 있었다. 

‘결국 모두 잡혀 온 것인가?’ 

일단 감시하는 자가 보이지 않기에 모용승겸은 자신의 상태부터 확인해보려 했다. 

그렇게 내기를 돌려보자 느껴지는 답답함 그리고 나른함. 

혈을 잡힌 것이 분명했다. 

‘혈을 잡혔군.’ 

승겸은 일단 잡힌 혈부터 풀어보려 했다. 

몸 안의 내력을 움직여 막힌 혈을 뚫어보려는 것. 

그러나 모용승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극한의 음기를 머금어 냉기까지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의 혈을 꽉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혈한 자가 상당한 고수인지 막힌 혈이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 

‘그, 여 고수인가?’ 

아마 자신을 제압했던 그 여 고수가 자신의 혈을 짚어 둔 모양. 

그런 인간 같지 않은 기운이라면 자신이 풀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풀려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 

모용승겸은 일단 눈을 감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모용가의 가주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이 포기하면 세가는 이대로 끝일 테니 말이다. 

‘만약 죽이려 했으면 벌써 죽였을 터. 아직 살려둔 것이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보아도 되겠지?’ 

그렇게 일단 눈을 감고 최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애쓴 지 얼마 안 돼, 위쪽으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나는 또 관병들과 몰려오기에 처음에는 잡히기라도 했는지 알았네. 휴우···.” 

“준비는 다 된 건가요? 영영?” 

“그럼. 가지고 있던 몇 가지 독을 여러 가지 암기와 장침에 발라두었지. 죽지는 않고 아주 고통스러운 것으로 말이야.” 

‘도, 독? 암기?’ 

독과 암기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모용승겸.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목소리의 주인들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희망이 보였다. 

눈앞에 자신을 고문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음에도 모용승겸이 희망을 떠올린 것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모두 여자라는 말은 곧 이곳이 삼합회의 근거지라는 말이었고, 자신이 이곳으로 잡혀 온 이유는 아마도 근거지를 염탐한 무사들이 행동이 들켰기 때문임이 분명했던 것. 

‘휴···. 아무래도 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 같군. 확실히 누군가 회의 근거지를 염탐하고 있다면 그럴 수 있지. 내 삼합회에 입회하기 위해 딸이 없어 대신 아들이라도 준비해왔다고 설명하면 어떻게든 풀려날 수 있겠군.’ 

그렇게 다소 안심하는 마음으로 나타난 십여 명의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자신을 제압했던 자로 보이는 백발의 여자가 모용승겸 앞에 다가오며 말했다. 

역시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자가 우두머리로 보이는데 아혈을 풀어주고 대체 왜 이곳을 염탐하고 있었는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아혈을 풀어주면 잘 설명해야겠구나.’ 

그렇게 회가 오해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해보려 마음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때 들려오는 뾰족한 목소리. 

“청아, 그러면 안 돼.” 

“네? 안된다고요?” 

“그럼, 이런 놈들은 일단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해.” 

“뜨거운 맛?” 

‘뜨, 뜨거운 맛?’ 

뜨거운 맛이라는 말에 움찔하는 모용승겸. 

관자놀이에서 흐른 땀이 턱 끝으로 떨어졌다. 

“그래, 이런 놈들에게 왜 염탐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겠어? 고문으로 일단 기를 꺾어놔야지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거든.” 

잘못하면 이대로 고문을 피할 수 없는 상황. 

모용승겸은 눈빛으로 모두 말할 테니 제발 아혈을 풀어달라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의 마음은 둘에게 닿지 않았고, 악독한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할아버지한테 배워서 이런 건 잘 알아.” 

“하지만 영영 언니, 구대문파나 육대세가 사람이면 어쩌려고요?” 

백발의 여자가 똑똑하게 자신의 신분을 짐작하듯 말했고, 그에 다시 한번 모용승겸이 간절한 눈빛으로 두 여자를 바라봤다. 

‘맞소 육대세가 맞소! 아혈부터 풀어주시오!’ 

그러나 모용승겸을 흘깃 바라본 악독한 여인이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세가나 문파에서 보낸 자 중에 이런 일을 할 자라면 알려지지 않은 자일 테고, 신분도 드러난 자가 아니니. 염탐하러 왔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왔겠지. 그리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면 그리 높은 사람은 아닐 테니 괜찮아. 그리고 이 눈알 봐! 잡혀 왔는데도 분노로 충혈되어 있잖아? 이러면 반드시 기를 꺾어놔야 해.” 

자신의 간절한 눈빛을 분노의 눈빛이라 매도하는 악독한 여인. 

그녀의 말에 백발의 여인도 설득되어버렸다. 

“아, 그럼 어찌 뜨거운 맛을 보여주죠?” 

‘아, 안돼! 아니요! 저, 절대 아니오! 다 말할 것이오!’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지만, 백발 여자의 질문에 악독한 여자가 긴 장침을 하나 들고 앞으로 다가오며 웃었다. 

“이렇게.” 

-퓩. 

그리고는 곧바로 허벅지에 긴 장침이 꽂히고, 이어서 밀려오는 격통. 

마혈이 짚여 있는데도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렇게 격통이 몰려오자 모용승겸은 곧 정신을 잃고 말았고, 격통에 깨어났다 실신하기를 두어 번. 

몇 번 장침과 세침이 허벅지와 발바닥에 꽂히며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고통과 억울함에 눈물이 줄줄 나오자 그제야 고문이 멈추고, 이어서 악독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운다! 울어! 이러면 이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겠지?” 

비웃듯 말하는 그 목소리에 가슴속에서 뭔가가 바스러지는 느낌. 

가문의 무사들과 아들 앞에서 고문당하고 눈물까지 보이고만 모용승겸.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그의 아혈이 그제야 풀리고, 백발 여자가 물어왔다. 

“그래, 대체 왜 저희 반점을 몰래 살핀 것입니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더 험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물음에 모용승겸이 줄줄 흘러내린 콧물을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크흡···. 나는 모용가의 가주 모용승겸이요. 저 아래 누워있는 내 아들을 바치고. 사, 삼합회에 입회하고 싶어 살핀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소이다···.” 

“모, 모용가!” 

“가, 가주!” 

여자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오고. 

-퓩! 

다시금 허벅지에 느껴지는 고통. 

“끄아아아악···.” 

아혈이 풀린 모용승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비명과 함께 다시금 정신이 멀어졌다. 

그리고 그 멀어지는 모용승겸의 귓가에 두 여인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대체 왜 찌른 것입니까? 모, 모용가의 가주시라는데!” 

“아, 아니, 삼합회에 입회를 원한다는 것도 화나는데···. 가가께 사, 사내를 바친다는 말에 그냥 손이 움직였어···.” 

“아···.” 

너무 억울한 모용 승겸은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도 살아서 돌아간다면 꼭 딸을 하나 낳아야겠다 다짐했다. 

첩이라도 들여서···. 

아들을 바친다고 화를 낼 일은 아니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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