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난(男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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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짹.
창밖에서 시끄러운 새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라면 좀 찌뿌둥할 텐데 이상하게 개운한 느낌.
버릇처럼 침상 옆자리를 더듬자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청이가 아직 누워있나?’
일어나자마자 옆을 더듬은 이유.
아내들이 다들 무림인인지라 내공이나 자신의 무공들을 수련하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옆에 없는 편이 대부분인 것.
그 때문에 항상 옆자리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옆자리에 청이가 누워있었다.
따듯한 체온과 보들보들한 감촉.
좋은 기회!
눈을 감은 채 팔을 뻗어 청이의 뒷머리에 손을 집어넣어 그녀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청, 아직도 자고 있었소?”
-쪽.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러자 이상하게 후끈하게 느껴지는 열기.
품 안에서 마치 활화산 같은 뜨거운 기운이 훅하고 솟아올랐다.
그 뜨겁게 느껴지는 열기에 남들보다 네 배로 농축된 결혼 생활을 하는 유부남으로서의 촉이 강하게 반응했다.
이 강한 열기는 바로 그것이 분명했던 것.
‘이, 이게 그 후끈하게 달아올랐다는 그것인가!? 정말 후끈하고 뜨겁구나! 오늘 아침은 좀 늦게 내려갈 이유가 생겨버렸군.’
일찍 내려가 장사가 시작하기 전 부엌을 한번 살펴야 했지만, 어제 자기 전 이미 한번 확인해 두었고, 형님과 가련이가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어젯밤 기억이 좋은 시간 보내자는 청이의 속삭임 부분에서 끊긴 것으로 보아, 아마 내가 피곤해서 잠이든 모양.
그 때문에 아쉬움에 후끈 달아오른 청이를 식혀주어야 할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으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그녀의 냉각수이자 소방수이자 얼음물.
타오르는 그녀를 얼른 식혀주어야 할 것 같았다.
왜 전생에도 이런 증상에 시달리는 분들이 소방서에 전화해서 ‘내 몸이 불타고 있어요.’라고 하소연했다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어젯밤의 미안함을 만회하고자 청이의 입술을 끌어당겨 다짜고짜 키스를 박았다.
-츄읍.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했던 키스인데, 키스 뉴비처럼 그녀의 입술은 꼭 다문 채 열리지 않았고, 동시에 치마를 걷어 올리며 허벅지를 쓰다듬자 파르르 떨려오는 청이.
-부르르르.
얼마나 떠는지 통돌이 세탁기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그 진동에 침상이 떨릴 정도.
유경험자인 청이가 이리 떤다는 것은 이상한 일.
‘신혼 첫날 밤도 아니고 어째서? 설마 오늘 아침은 그런 느낌으로?’
아무리 후끈 달아올랐어도 뭔가 난도 높은 연기 같기에 눈을 뜨며 청이에게 물었다.
좋긴 한데 아내의 과도한 변신은 사내를 두렵게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청? 왜 그렇게 떠는···. 소, 소소?”
어제 분명 청이와 잠이 들었고, 그렇기에 옆에 누워있는 것은 당연히 청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청이가 아니라 소소.
코피라도 흘렸는지 코 주변이 눌어붙은 피딱지로 가득한 소소가, 마치 목이 졸려 숨이 넘어갈 것같이 검붉게 물든 얼굴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거기에 부릅뜬 눈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아래로 향해 있는 상태.
대체 뭘 보고 그러는지 소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자 소소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내 바지춤.
혼전순결주의자인 소소에게 충격적일 수 있으니 얼른 엉덩이를 뒤로 빼며 말했다.
“소, 소소. 이, 이건 그러니까. 아침의 자연스러운···”
-퓻!
소소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 순간 소소의 코에서 뿜어지는 쌍코피.
이어서 소소가 뜬눈으로 축 늘어졌다.
“소, 소소? 소소!”
쌍코피를 흘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내공이 역혈 했거나 칠공에서 피를 뿜는 중대한 내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느낌.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방문으로 달려갔다.
“누, 누구 없소!?”
-벌컥!
그렇게 방문을 열자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미, 청, 영영이.
마침 다행이다 싶어 셋을 향해 소리쳤다.
“크, 큰일이오! 소, 소소가! 소소가 쓰러졌소! 코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는데, 저거 위험한 것 아니오? 역혈이 일어났다거나 주화입마(走火入魔) 그런 것은 아니오?”
“소, 소소가 말입니까?”
“소소 언니가요?”
“가가, 소, 소소요?”
얼마 전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더니, 혹시 그로 인해 주화입마라도 온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방안으로 들어선 셋은 소소의 코에서 뿜어진 피.
내 얼굴에 튄 피를 보자 한숨을 푹 쉬며 소소의 눈을 감겨줬다.
마지 죽은 사람의 눈을 감겨주는 느낌.
그리고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냥 좀 놀란 것 같으니 그대로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노공.”
“저렇게 코에서 피를 대차게 뿜으며 눈을 뜬 채 혼절했는데 말이오?”
“입이라도 맞추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어요. 낭군님.”
“아, 아니, 어, 어찌 그것을!? 여, 옆에 잠들어있기에 내 청이인 줄 알고···.”
내가 뭘 했는지 다 아는 미미.
움찔하며 변명하듯 대답하자 청이가 수건을 세숫물에 적셔 소소의 코피를 닦아주며 말했다.
“노공, 소소 언니는 내실(內室)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제 입을 맞추면 아이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물으셨을 정도니까요. 저희가 알려 드리긴 했는데···.”
성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청이의 황당한 대답.
‘아니, 설마 그러면 그동안 입도 못 맞추게 한 것이?’
소소의 붉은 입술은 탐스러운 매력이 있어 그동안 잠들기 전 호시탐탐 노렸는데, 소소는 혼례를 올리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번번이 거절했던 상태.
그 거절의 원인을 알자 장인을 향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장인 이 양반, 애한테 진짜 가르쳐야 할 건 안 가르치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화를 내는 한편, 부끄러워 졸도한 것 같다는 말에 일단 안심하며 대답했다.
“그, 그럼 다행이오. 아무튼 큰일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이라면 다, 다행이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하자 갑자기 서로의 눈치를 보는 셋.
곧이어 시선을 교환하던 셋 중 영영이가 양쪽 검지를 마주해 꼼지락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해 왔다.
“이, 이건 큰일이 아닌데, 다른 큰일이 있긴 있어요. 가가.”
“큰일?”
“저희가 큰일을 좀 친 것 같은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큰일을 쳤다는 셋의 고백.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지만 셋은 일단 삼 층으로 가봐야 한다는 말만 반복해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냐?”
“그, 일단 가보시면 알아요. 가가.”
“청?”
“가, 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노공.”
의구심 속에 대충 세수를 끝내고 셋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삼 층 한편의 룸.
아직 영업도 하지 않는 삼 층의 룸 중 하나를 열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는데, 안에서 남궁 장인의 쩔쩔매는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모, 몸은 괜찮으시오?”
“괜찮소···. 자, 자식과 무사들 앞에서 눈물까지 보였지만 몸은 괜찮지···. 체면은 이제 저 발아래 차이는 돌만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것이라면 괜찮은 것이겠지. 크흑···.”
“아니, 그러기에 왔으면 나에게 알릴 것이지. 대체 왜 사람을 풀어서는···.”
고개를 돌려 청, 미미, 영영이를 바라보며 어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셋이 내 눈길을 피하며 먼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것이지?’
의구심을 가지고 룸 안쪽에 일단 내가 밖에 도착한 사실을 알렸다.
“저 청운입니다.”
“어, 그래 들어오시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내 쪽을 보고 움찔하는 남자 둘.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청, 영영이, 미미를 확인하고 놀란 느낌이었다.
‘뭐지? 대체?’
남자들의 모습은 남궁 장인 또래로 보이는 사내와 젊은 남자 하나였는데, 장인 또래의 남자는 이마는 핵 꿀밤을 맞았는지 주먹만 한 혹이 달린 상태로 피로에 전 모습이었으며, 젊은 남자의 표정은 뭔가 결연한 결심을 한 그런 느낌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가 안에 완전히 들어서자, 나이 많은 남자가 반색하며 말했다.
“호, 혹시 이분이? 사, 삼합회의? 저, 저는 모용 가문의 가주 모용슴겸이라고 합니다. 삼합회의 입회를 희망합니다!”
“예!?”
난데없이 입에 올려선 안 되는 그 단체인 삼합회의 입회를 희망한다는 말.
거기에 자신의 신분을 모용세가의 가주라고 소개하는 말에 인지부조화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모용세가의 가주라고 소개한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끔뻑이자, 그가 내 당황한 표정을 보고는 옆에 앉은 젊은 남자를 얼른 일으키며 말했다.
“아! 물론 그냥 오지는 않았습니다. 입회하는데 여인이 필요한 것은 들었지만, 제가 딸이 없어 대신 그에 못지않은 제 장남을 데려왔으니. 바, 받아주십시오!”
그리고는 옆의 젊은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자, 옆의 젊은 남자가 느끼하고 소름 돋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어떤 일이든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며, 온몸과 마음을 다해 모실 것입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이게 대체 무슨?”
[놔! 놔봐 잠깐만 놔보라고!]
[어, 언니 참으세요. 오, 오해가 있겠지요.]
[미친 게 분명해!]
내 등 뒤에서 영영이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영영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팔뚝을 걷어붙이고 달려들려다 제지당하고,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장인을 바라보자 장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대화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잠깐 밖에서 보세.”
“예? 예, 뭐···.”
부담스러운 두 남자의 시선을 뒤로하고, 장인이 나를 잠깐 밖으로 끌고 나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했다.
“얼마 전 황산에서 칠대세가 회가 열렸는데 말이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역구 조폭 수장들끼리 단합회 같은 것을 한 모양.
해서 모처럼 모인 김에 장인 장모들끼리 친목을 다졌다는데, 항상 이인자인 모용가가 세 가문이 너무 친하게 지내니,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삼합회에 관한 이야기를 주워들었고, 알지도 못하면서 삼합회가 뭔가 대단한 회라 생각하고 입회를 희망하는 상태라는 것.
아내들이 친 사고는, 입회를 거절한 장인을 몰래 따라와 주변을 기웃거리던 모용가 사람들을, 나쁜 사람인 줄 알고 잡아다 밤에 고문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고, 고문 말입니까?”
그런 험한 일은 못 할 것 같은 내 아내들이 사람을 집단 고문했다는 말에 움찔하자 장인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될 것이네. 몰래 사람을 보내 감시했고, 내 뒤를 밟은 것도 백도 무림에서는 부끄러운 일. 내가 크게 문제를 삼을 수 있기에 조용히 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게. 진짜 문제는 다른 것이야.”
핀트가 살짝 어긋난 위로.
하지만 그것을 지적할 여유가 없었다.
“다른 문제라면?”
“저리 막무가내로 입회를 원하는데, 그런데 이게 아무리 설명해도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당, 남궁, 제갈가의 딸을 한 사내에게 맺어줬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하겠나? 자네는 무림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공기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가문도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설명하다 말고 묵직한 팩트로 나를 두드려 패는 하는 장인.
다 아는 이야기를 꼭 굳이 입으로 해야 했을까 하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는 자기 혈압을 생각까지 해줬는데···.
그러나 내 서운함을 알아채지 못한 장인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걸 설명한다 해도 믿을 수 있겠나? 나조차도 자세한 설명을 듣기 전에는 자네를 음적이나 색마가 아닌가 의심했었는데?”
장인이 슬쩍 내 바지춤을 내려다보았고, 음적, 색마라는 말에 오그라드는 무엇.
오늘 좀 여럿에게 주시받는 녀석이었다.
“또한 최대한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자면 자네를 국공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과 남만야수궁까지 얽혀있는 일까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설명을 한순간 반드시 우리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면 곤란하지.”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확실히 장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이걸 맨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고, 또 이해시키자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남만야수궁에 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고, 그러면 반드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
점창파와의 문제가 남아있고 국공 그건 아무래도 대외비.
높은 분들은 생각도 안 하는데 국공이 되겠다고 설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건 정말 쪽이 팔려버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김칫국물을 김치냉장고 채 갈아 마시고 있다는 그런 소리이면서, 알려지면 건방지다는 소리 또는 무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 것.
“그건 정말 곤란하군요? 그런데 대체 왜 사내놈을 데려와 저런 답니까?”
내용은 대충 알았는데, 왜 사내놈을 데려와 저러냐고 묻자 장인이 미안한 얼굴로 대꾸했다.
“하도 조르기에 내가 혹 딸이 있으면 한번 자네에게 이야기라도 해보겠다고 했더니···. 말을 못 알아듣고 딸 대신 아들이 있으면 삼합회에 입회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네. 크흠···.”
‘아아, 그러니까 이번엔 남궁 장인이 사고를 치셨다?’
내 짜게 식은 시선에 장인이 괜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지나가는 말로다가···.”
두 번 지나가듯 말씀하시면 여난이 아주 남난(男亂)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