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군자(梁上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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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결론은 제갈 장인처럼 사고를 칠뻔했는데, 다행스럽게 모용 가주는 딸이 없어서 결과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일단 미수에 그쳤으니 남궁 장인은 용서하기로 하고, 딱히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일단 설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아들은 나에게 바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들이밀고 있으니까.
“후···. 일단 뭐 설득해보죠. 안되면 오해해도 어쩔 수 없으니 돌려보내고요.”
“알겠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 장인이 설명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그 모용 가주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자, 잠시만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남궁 장인이 설명하려 하자 먼저 발언권을 요청하는 모용가의 가주.
장인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 뭐 말을 막을 권한은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뭐, 그럼···.”
그러자 시작된 것은 그의 포트폴리오 발표.
경력직을 뽑는데 온 유능한 입사 희망자처럼 그가 자신의 가문과 포부에 관해서 설명했다.
“저희 모용가는 건강부(建康府)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으로 고려와의 무역품을 주로 취급하는 상단 하나와 중원에서 제일가는 표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삼합회에 입회한다면 분명 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건을 보낼 때나 서찰, 사람을 주고받을 때, 저희가 회를 위해 힘쓸 것입니다.”
요컨대 중원에서 제일가는 택배 및 경호 서비스 업체라는 말.
중원 조폭들이 자본 없이 진출할 수 있는 사업 중에 가장 접근이 쉬운 사업이긴 하지만 중원 제일 표국이라는 말은 좀 대단했다.
‘알부자라는 말이군? 꽌시로 나쁘진 않은···.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시작부터 말리면 안 되지.’
조금 괜찮은 꽌시 상대라는 말에 혹할뻔했으나 그의 아들과 혼례를 올리기는 싫었으니 얼른 머리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하지만 말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으니···.
“맞는 말이긴 하네. 모용가의 표국이 가장 신뢰가 높고 중원에서 크지. 소문내거나 정보를 모으는데도 모용가의 도움이 크니까 말이야.”
“남궁 가주님!”
“아니, 사, 사실이 그렇다는···.”
시작부터 말려든 남궁 장인도 눈치 없이 그의 말을 거들다가 다른 아내들의 눈총에 움찔했다.
그리고 조금 싸늘해진 분위기에서 남궁 장인이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얼른 말을 돌려 설명을 시작했다.
“모용가주,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삼합회는 당가, 제갈가, 남궁세가와 북해빙궁이 입회 되어있는, 한 가족으로 이루어진 회일 뿐이오.”
삼합회의 설립 취지와 뭐 목적 같은 것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 이야기.
하지만 역시 남궁 장인의 말대로 설명이 안 되는 상황.
“가, 가족!? 피, 피를 나눈 혀, 혈맹이란 말입니까?”
장인이 그의 대답에 도움을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오해하지 제일 중요한걸 말해야지.’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사실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기에 내가 나서서 제일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어르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삼합회는 저와 혼례를 올린 제 아내들의 본가가 우애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회로 단순한 친목을 위한 친목회(親睦會)입니다.”
전생에 계주가 돈 들고 튀는 그런 친목계 말고 단순한 친목회라는 나의 설명.
거기에 핵심적인, 혼례 관계로 부득이하게 생겨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내 설명을 듣고도 모용가의 가주는 장인에게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당가, 제갈가, 남궁가, 북해빙궁, 남만야수궁이 한 남자에게 딸을 주었다는 말입니까?
제가 바보도 아니고···. 남궁가주 설마 저희 모용가가 선비족 출신이기에 이리 제 체면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설마 그런 것입니까? 무식한 선비족 출신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속을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러네···.”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입니까? 내 입회를 위해 모진 고문도 견뎌냈거늘···. 바닥에 떨어졌다 해도 이리 앞에서 제 체면을 무시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크흡···.”
자신을 병신 취급하지 말라는 그런 말이었는데, 결국 남궁 장인의 말대로 납득할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거기에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그런 뉘앙스까지 더해졌으니 이 설득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
원래 모용가가 선비족 출신이기에 세가가 나오는 설정에서 흑막이거나 나쁜 놈들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약간 오랑캐 취급인 쩌리 느낌.
그러니 자기들이 오랑캐라 혐오와 차별을 받는다고 단단히 생각하는 상태인 것 같았다.
뭐 중원 놈들 그러는 건 전생이나 현생이나 알고 있는 바였고, 백이십 퍼센트 정도는 사실일 터.
깊은 피해의식까지 있으니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힘들겠군. 어디 보자, 옳지! 그것이 있었지?’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득은 동병상련(同病相憐) 작전.
청이에게도 통했던 작전이니 얼른 청이를 끌어와 설명했다.
“어르신, 여기 이 머리카락을 보십시오. 그리고 이 푸른 눈. 제갈세가의 가주와 북해빙궁에서 오신 장모님의 딸이 제 아내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오랑캐라 할 수 있지요.
그리고 제 먼 선조 님도 저 고려 땅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니, 저도 모용가의 가주님과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가 우리가 같은 오랑캐 라인인을 강조하자 반색하는 모용가의 가주.
“오오, 삼합회의 분도 그런 처지시란 말입니까? 고려! 고려는 예로부터 근본 있고 역사가 깊은 나라지요. 그리고 그렇다면 제발 저희를 삼합회에 입회시켜 주십시오! 중원에서 오랑캐 취급이 어떤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가훈이 뭔지 아십니까? 하도 오랑캐에 무식한 놈들이라는 시선을 받기에 ‘군자가 되자’가 저희 가훈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이야기하자, 한 시진 그러니까 두 시간 정도 그간 자기가 받은 설움을 토해내었다.
중간중간 내가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누가 돌림 노래를 틀어둔 것도 아닌데, 대화는 계속해서 되돌이표.
내가 모용가의 가주와 피아노 앞에 앉아서, 끝나지 않는 젓가락 행진곡을 첫 소절만 계속해서 연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빰빰빰 빰빰빰 빰빰빰 빰빰빰~.
귓가에 익숙한 멜로디가 계속해서 반복될 정도.
그나마 진척이 좀 있었다면 나와 남궁 장인의 말이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된 상태라는 것.
내가 아내들을 하나하나 인사를 시키자 그가 겁을 집어먹은 것 같으면서도 우리의 혼인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납득했다.
약간 정략결혼 뭐 그런 느낌으로 이해한 모양이지만.
“말씀대로 삼합회가 그리 큰 회가 아니고 정말 가족들만 이루어진 회라도 상관없습니다. 남궁, 제갈, 당가와 또 깊은 연이 된다면 그것으로라도 좋으니. 그러니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저희 가문의 숙원인 완전한 중원인이 되는 길이 군자인데, 입회만이 그에 가까워지는 길이니까 말입니다. 제 아들은 부인이 아니라 형제 아니지! 하인처럼 쓰셔도 되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결론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모용가 가주의 간절한 눈망울.
삼합회가 그리 대단한 회가 아니더라도 그는 입회하고 싶다고 간절히 말했다.
남궁, 제갈, 당가와 혈연관계가 된다면 그것으로도 좋다는 이야기.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
대체 아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니, 그래도 귀한 아드님을 어찌···. 아니, 그것이 아니고···.”
설득하려다가 심지어 다시 한번 말려버릴 뻔하기까지.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청이가 답답했는지 끼어들어 말했다.
“검왕 어르신 그리고 모용 가주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이마를 가리는 모용 가주.
제갈가의 딸이라고 말했는데도 그는 뭔가에 겁먹은 듯 아주 공손한 목소리로 허겁지겁 대답했다.
“마, 말씀하십시오!”
“말해보시게.”
그러자 청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대답했다.
“딱한 사정은 알겠는데, 그리해서 회에 입회한다 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 문제라면?”
“지금까지 하신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원에서 오랑캐로 소외되는 것이 힘들다는 말씀인데, 아드님을 하인이나 의형제를 삼아 입회하신다면 다른 가문들과 차이가 생기니 또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확실히 청이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소외되기 싫어서 회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의형제나 하인이 된다면 살을 비비고 사는 아내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알게 모르게 차별이 생길 테니까.
결과는 그가 싫어하던 소외로 이어질 수 있는 것.
그러자 모용가의 가주도 자기가 어떤 말을 했는지 이해했는지,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때였다.
지금까지 입을 꾹 닫고 있던 그의 아들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한 것은.
“어, 어르신들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입을 꾹 닫고 있는 녀석이 말을 하겠다고 하자 다들 그 녀석을 바라봤고, 모용가의 가주가 깜짝 놀라 그를 막았다.
“어느 앞이라고 네가 나서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소자 그래도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결연한 의지가 담긴 눈빛.
내가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나 보지요. 소협 한번 말씀해 보시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 싶었던 것.
그러자 녀석이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 좁은 식견으로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쭉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삼합회는 그리 대단한 회는 아니지만, 대협께서 아내로 맞은 당가, 제갈가, 남궁세가가 친목을 위해 맺은 회라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오오! 맞소!”
생각보다 똘똘한 녀석.
상황을 딱 정리해 설명하는 것을 보니 괜찮은 놈 같았다.
‘장진에 비하면 천재네 천재.’
내가 녀석의 똘똘함에 감탄할 때 녀석이 이어서 설명했다.
“예, 해서 삼합회에 입회하려면, 최소한 딸을 가진 가문이어야 하고 대협과 혼례를 올려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제가 삼국(三國)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그런데,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어? 이 새끼 설마? 송 시대 삼국지빠인가?’
삼국지 이야기를 꺼내는 통에 좀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녀석.
녀석의 말을 막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잠깐! 자네 삼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아니, 잘 아는 것은 아니고···. 조금 좋아···.”
“그래, 그럼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어디인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초, 촉한···.”
‘통과.’
같은 나라를 빨고 있다면 그것은 전우.
너구리 같은 오나라와 승냥이 같은 위나라를 빨고 있지 않다는 뭔가를 좀 아는 녀석.
반가운 마음에 녀석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로 했다.
“그래, 그러면 계속 이야기해 보시게.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편하게.”
그렇게 내가 녀석의 편의를 봐주었으나 녀석이 갑자기 이 남난을 여난으로 바꾸어 놓는 말을 내뱉었다.
“거기 보면 왕윤이 초선을 양녀로 맞아 동탁에게 보내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해서, 저희 가문에 여인이 없지만, 초선같이 아리따운 여인을 양녀로 맞아 대인께 보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 이 새끼 같은 삼국지 전우의 등에 칼을 꽂다니···.’
남난인 줄 알았는데 돌고 돌아 결국 여난.
송 시대 양자법은 사내는 어린 나이에 같은 성씨가 아니면 안 되지만, 여자에 대한 제한은 없다.
왜냐하면 여인으로 정략결혼을 많이 하는 시대이다 보니, 녀석이 예로 든 왕윤이 초선을 양녀로 맞아 동탁에게 보낸 것처럼 양녀를 얻어 정략적인 혼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
녀석의 의견에 모용가의 가주가 반색하며 말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내 미색이 고운 아이들로 추려 다시 올 테니, 그러면 그렇게 라면 어떻겠습니까?”
낭패스럽게 변한 청이의 얼굴.
틀린 말이 아니니 뭐라고 답변할 여지가 없었던 것.
또한 이거 거절해도 계속해서 여자들을 데리고 찾아와 혼례를 올리고 삼합회에 넣어달라고 징징거릴 것이 분명했다.
‘양녀라니 새로운 종류의 여난은 좀 신박하구나···. 군자 타령에서 양녀로 이어지는 여난이라니.’
이걸 뭐라고 둘러대고 모면하나 머리를 팽팽 회전시키며 청, 영영이, 미미를 바라봤다.
‘위에 소소까지 있는데, 또 추가라니 곤란하다. 어떻게든 여기서 막아야 해.’
그렇게 셋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옮길 때 눈에 들어오는 찌푸린 미미의 눈썹.
그 숯검정 눈썹과 함께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딸이 없고 아들만 있는 모용세가.
오랑캐 취급이 아닌 중원이 주류가 되고 싶다는 그들.
양녀를 받아달라는 그들.
거기에 며칠 전 미미가 친정이 없어 미안해했던 말이 떠오르고 이거 잘하면 서로에게 도움 되는 관계가 될 것도 같았다.
‘그래! 꼭 새 여인을 양녀로 넣으라는 법은 없잖아? 있는 부인으로 돌려막으면 되지?’
모용 가주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라도 정말 꼭 입회해야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한번 들어오면 절대 무를 수 없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까?”
“물론 이 모용승겸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좋습니다. 그럼 입회를 허락하겠소.”
“저, 정말입니까!?”
내 입회 허락에 기뻐하는 모용승겸과 그의 아들을 보며 놀라 소리치는 아내들.
“가가!”
“노, 노공!”
“낭군님!”
아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른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양녀는 제가 정해드리겠습니다.”
“오, 마음에 둔 여인이 있으셨습니까?”
기뻐하는 그에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딱 그쪽 집에 어울리는 여인을 하나 알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 여인도 군자라면 군자니까 말이죠.”
“오, 여인이 군자라니 그런 여인이 있단 말입니까?”
군자라는 말에 반색하는 모용 가주, 군자가 그리 좋으면 군자를 소개해주는 것이 도리.
‘응, 양상군자(梁上君子).’
양상군자도 군자는 군자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