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7화 (296/344)

공식인증

.

신이 난듯해 보이는 모용가의 가주는 별개로 하고, 일단 폭탄을 떨궜으니 바로 수습해야 했다. 

청, 미미, 영영이의 서운함과 실망감 가득한 눈빛이 나를 향하고 있었으니 저대로 둘 수는 없었던 것. 

내가 아무런 상의 없이 새 아내를 얻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우리가 넷이나 있고, 거기에 하나 더 확정이라는데. 그런데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요?’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무슨 말은 하고 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으니, 반드시 수습해야 했다. 

또 수습과 함께 미미의 의향도 확인해야 했다. 

그간 친정이 없어서 미안해하던 미미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어지간하면 오케이 할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양녀가 된다는 것은 그 가문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니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고, 막상 또 눈앞에 닥치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모용 가주님. 내 그 여인에게 의향을 물어보고 올 테니.” 

“물어보고 오신다고요? 오! 근처에 있습니까?” 

“예,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내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자, 얼른 다녀오십시오!” 

일단 모용가주에게 양해를 구하자, 뭣도 모르고 뭔가 일이 빨리 진행된다고 좋아하는 모용 가주. 

서운함 가득한 청, 미미, 소소를 모두 밖으로 불러냈다. 

“잠깐 다들 밖에서 이야기 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셋. 

거기에 남궁 장인까지 따라 나와 룸의 문의 닫히자마자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사위 여인이 또 있었나? 대체 또 누군가? 자네가 여인을 들이는 일이니 내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이미 다섯인데?” 

“가가, 누구예요!? 가까이 있나 본데? 서, 설마 비, 비연인가요? 비연 그것이 요즘 자꾸 가가에게 친하게 굴더니! 왜 자꾸 늘어나! 나는 매일 같이 있고 싶은데!” 

“낭군님 미미는 좀 서운해도 낭군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다른 말은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영영, 비연은 군자라고 하기는 힘들잖아요? 다른 아이가 아닐까요?” 

“노공, 그럼 서, 설마 가련이 인가요? 하지만 가련이는 제자입니다.” 

각자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넷. 

가까이 있다는 말에 주변에 모든 혼례 적령기 여자를 끌어다 붙이고 있는 상황. 

넷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미미의 양어깨를 잡아 내 앞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미미의 몸을 돌려 셋에게 보여주듯 내밀며 말했다. 

“그 여인 여기 있습니다.” 

“네!?” 

놀란 미미와, 나와 미미의 얼굴로 번갈아 움직이는 시선들. 

다시 미미의 몸을 돌려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미미, 혹시 모용가의 양녀가 될 생각은 없소? 며칠 전에 본가가 없어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나 미미가 하면 어떨까 싶어 이야기를 꺼내두긴 했지만. 싫다면 거절해도 되니 걱정하지 말고 말해보시오.” 

그러자 놀란 미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동그란 눈망울에 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작은 파문은 곧이어 큰 일렁임으로 바뀌었고, 미미가 곧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제 사소한 말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니 시다니···. 모용가라면 다른 동생들에 비해 부족하지도 않고, 낭군님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테니 당연히 좋습니다! 저도 이제 낭군님께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혹시라도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서운할까 싶었더니, 의외로 좋아하는 미미. 

이제 자신도 든든한 친정이 생겨서 좋은 모양이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쟁쟁한 세 가문을 등에 업은 다른 셋과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데, 마음의 부담도 사라지고 자신도 나를 도울 수 있게 되어 좋다는 대답. 

옆에서 반색 플러스 안심하는 청이와 영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노공, 그럼 처음부터 모두 미미 언니를 생각해두고 하셨던 말씀이로군요?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확실히. 미미 언니가 모용가의 양녀가 되면 모용 가주의 청도 들어주는 것이 되고, 미미 언니도 든든한 친가가 생기는 것이니. 정말 신묘한 한 수입니다!” 

“맞소.” 

“가가, 미미 언니가 모용가의 양녀가 되는 것이라고요? 나는 또 비연인줄 알고 깜짝 놀랐네. 휴우···. 다행이다.” 

“그래, 영영아. 비연은 무슨···. 나는 그렇게 날렵한 여자는 싫구나.” 

“예? 날렵?” 

“뭐 그, 그런 게 있단다.” 

일단 아내들의 서운 실망, 해소 성공. 

장인도 내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오오! 그런 방법이 있었구만? 그렇지! 투왕이 본가가 없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투왕이 모용가의 양녀로 들어가면 모용가는 삼합회에 들 수 있어서 좋고, 투왕은 든든한 친정을 둘 수 있어서 좋겠구만! 

정말 신묘한 한 수네! 뭐 투왕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 배분에도 문제는 없겠지. 당사자들끼리 입을 다물면 되니까.” 

다들 내 해답에 만족해하는 느낌. 

물론 나도 만족스러웠다. 

나 자신에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남자. 그는 멋진 남자 류. 청. 운. 여난도 이정도면 세이프지. 안 그래? 크하하! 좋구나!’ 

“그럼 안에 들어가서 모용 가주에게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습니다.” 

“그러세.” 

그렇게 모두가 마음속으로 신나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귓가에 흘러드는 미미의 전음. 

[낭군님, 제가 모용가의 양녀가 되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모용가가 물심양면으로 낭군님을 돕도록 애쓰겠습니다! 돈이든 무엇으로든지요!] 

처가 기둥뿌리라도 뽑겠다는 그런 다부진 결심. 

정말 개념 있는 결심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전생에 딸은 예쁜 도둑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딸은 키울 때나 출가한 후에도 아들보다 더 돈이 들고 혼례를 치를 때 친정집 세간도 축내지만, 딸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것이 도리어 예쁘게만 보임을 이르는 말로 쓰였는데. 

그런데 미미는 진짜 도둑 딸이니 저 결심, 왠지 다른 이의 결심보다 훨씬 진정성이 있었다. 

‘그래, 미미야 기둥도 뽑고 다 뽑자! 아주 그냥 모용가 탈탈 털어보자!’ 

지금부터 우리는 부부 사기단. 

아니, 도적단. 

미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며 문 안쪽으로 들어가 모용 가주에게 미미를 다시 소개했다. 

“모용 가주 이야기가 끝났으니,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바로 시작합니다.” 

“어찌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까? 예? 바, 바로?” 

갑자기 뭔가를 바로 시작하겠다는 말에 모용 가주가 영문을 몰라 당황할 때, 모용 가주 앞에 미미를 바로 끌어다 바로 인사를 시켰다. 

“미미, 이리 오시오.” 

“예, 낭군님.” 

“여기는 백미미라고 제 부인 중 하나인데,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친정이 없는 처지입니다. 해서 미미의 친정이 되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모용 가주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이미 다 결정된 상태에서 서류정리만 하면 되는 상태라는 말. 

모용 가주도 이미 내 아내가 된 여자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에 반색했다. 

“오오! 그렇습니까? 오오! 그러면 확실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스피드한 진행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용 가주. 

하지만 그도 가주인지라 허당은 아니기에 빠르게 눈알을 굴려 미미를 훑어봤다. 

아마 자기 가문에 어울리는 여인인지 살펴보는 모양. 

그런데 곧바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어? 그런데 태양혈을 보니 무공을 익힌 모양인데···. 혹 사문이?” 

미미가 무공을 익힌 것을 알고 갑자기 사문을 물어오는 모용 가주. 

무림 세계의 조폭인지라 바로 족보를 읊어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 

-꿀꺽. 

그 물음에 미미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어, 어쩌죠 낭군님. 사문을 밝히면 양녀가 못 되는 거 아닌가요?] 

걱정스러운 전음. 

사문을 밝히면 미미가 투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니, 그러면 양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배분상 문제도 그렇고 이미 전과기록이 즐비한 미미이니, 혹 그런 부담 때문에 빠꾸를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아주 합리적 걱정. 

현상금까지 걸려있는 미미이니 빠꾸는 당연히 가능한 이야기. 

안전장치가 필요할 때였다. 

원래 구대문파 칠대세가 사람들은 투왕의 신분을 함부로 말하지 않으니 비밀은 지키겠지만, 뒤로 빼지 못하게 안전장치가 필요했던 것. 

긴장된 얼굴로 모용 가주에게 말을 꺼냈다. 

“모용 가주님 사문이 어디인지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들으면 절대 양녀를 무르지 못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자 모용 가주가 반색했다. 

“오오! 그, 그렇습니까? 무, 물론이지요! 더 좋습니다! 비밀스러운 문파인가 보군요!” 

무림에는 비밀스러운 문파가 많으니 아마도 미미가 그런 비밀스러운 문파의 후계자 뭐 그런 것은 아니냐는 기대가 드는 모양. 

가끔 일인전승의 비밀스러운 문파가 등장해 강호에 파란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이 무협의 세계. 

모용 가주의 얼굴이 즉석 복권을 긁기 전의 얼굴로 변했다. 

비밀 문파의 전승자로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모용가의 이름이 또 알려지게 되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기대감 가득한 표정. 

‘비밀스러운 문파는 맞지.’ 

조용히 미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모용 가주를 향해 포권을 하며 미미가 정중히 자신을 소개했다. 

“투, 투왕문 오대 제자이자 장문인이자 오대 투왕. 백미미 아버지께 인사드리어요.” 

사람이 너무 놀라면 인지 능력이 상실되는 것이 보통. 

모용 가주가 자기 아들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 한참 눈을 깜빡였다. 

자기가 들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되는 느낌. 

잠시 후 인지 기능이 회복되었는지, 그가 자리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미미를 향해 마주 포권하며 인사했다. 

“투, 투왕!” 

“투, 투왕! 처, 처음 뵙겠습니다. 그, 그런데···. 저, 정말. 투, 투왕이 맞으십니까?” 

투왕이라는 말에 일어서 급하게 포권을 했지만,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지 다시 묻는 모용 가주. 

“그녀가 투왕이 맞으시네. 모용 가주.” 

남궁 장인의 보증과 이럴 때는 역시 신풍. 

미미가 대답 대신 사라졌다 나타나는 신묘한 움직임을 선보이자, 그가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화, 확실히 일엽락(一葉落)보다 빠른 움직임···. 시, 신풍이 확실하구나···. 어젯밤 그러면···.” 

망연자실한 그의 표정.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 느낌.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웃으며 미미를 재촉했다. 

이럴 때는 확실히 밀어붙여서 다른 소리를 못 하게 해야 했으니까. 

‘원래 사기라는 게 다 그래···. 속았다는 순간은 이미 늦은 순간이지.’ 

아무래도 다른 소리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자, 미미, 이제 아버지께 계수배를 올려야 하지 않겠소?” 

“아! 죄송해요. 알겠어요. 낭군님.” 

‘빠꾸는 없다. 삼합회 입회시켜달라고 했으니, 원하는 대로 스피드하게 가자!’ 

그렇게 미미가 절을 올리려고 두 손을 공손히 모으자, 몸을 날리듯 뛰어나온 모용 가주. 

-쿠당탕! 

가주가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달려 나온 모용 가주가 미미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고 마치 마임을 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외쳤다. 

“투, 투왕께서 저, 절이라니요!” 

전국구 팔대 보스 중 하나를 양녀로 맞은 지역구 보스는 과연 어떤 액션을 취할까? 

그 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 그리고 이러면 버, 법도가···. 무림의 법도가 있는데. 어찌 제가 투, 투왕을 양녀로···.” 

내 눈치를 보면서 움찔거리며 말하는 모용 가주. 

뜯은 즉석 복권에서 당첨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채가 쏟아져 나오자, 그가 얼른 복권을 반품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중원 복권이거든.’ 

그의 말과 표정에 미미가 당황해 나를 바라보는 상황.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아들을 들이밀거나 새 아내를 밀어 넣으려고 해서 그렇지, 그것이 아니면 그가 그토록 바라는 걸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는 군자, 그것을 이루어줄 사람이 바로 나니까 말이다. 

물론 양상군자인 미미를 양녀로 준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그가 이리 우리와 관계를 맺고 삼합회에 목을 매는 것은, 전부 군자가 되기 위해서. 

군자란 곧 지식인을 뜻하는 말인데, 그러니 그의 소망은 삼합회에 가입하여 오랑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중원 주류 지식인 대접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저 군자라는 말이 처음부터 저런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고대부터 쓰인 말이지만, 한사람에 의해서 완벽히 새롭게 정의된 것이 문명인 지식인으로서의 군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런 정의를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공자! 

그러니 이 시대의 군자(君子)란 유교적으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식인을 지칭하는 말인 것. 

공식 유교맨 인증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공식 군자 인증받으려면 유교를 통해야 하고, 그러면 지금 시대에는 그 인증을 누가 해줄까? 

‘누구긴 누구야 연성공이시지.’ 

아 그런데 이거 아주 공교롭게 내가 그의 의제네?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모용 가주를 향해 말했다. 

“영, 내키지 않으면 양녀로 거두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모용가의 가주. 

“저, 정말입니까? 그, 그럼 제가 다른 여인을?” 

“하지만 미미를 양녀로 맞아들이신다고 하시면, 제 의형인 연성공께 그 자리에 참석해달라 서찰을 넣어 보려 했는데···. 아이고 아쉽게 되었네···. 연성공 형님께서는 잘 지내시려나?” 

“아, 그렇지. 사위, 사위의 의형이 연성공이셨지?” 

-짝! 

“끄헙!” 

남궁 장인까지 옆에서 한소리 거들자 갑자기 옆에서 뭔가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익숙한 등 따귀를 올려붙이는 소리.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아픈 등짝으로 손을 뻗으려는 모용가주 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용가주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뭐! 뭣 하느냐! 너는! 내가 너를 그리 가르치지 않았거늘! 누, 누님께 인사 올리지 않고! 아이고 따님. 제가 이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 불러보시지요.” 

무림에서 행복한 한 가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