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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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생각보다 꽤 유명한 사람이거나 역사적 위인인 듯싶었다.
그러니 사후에 그를 기리는 사당도 세워주고 했을 테니까.
내가 알기로 사당이 있는 사람은 포 형님의 선조이신 포청천 그 양반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포청천급은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내 생각.
그 때문에 어떤 연유로 그를 기리는 사당에서 그 먼 사천의 민물 게를 특별배송시켰는지 궁금했지만, 그것을 물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왜냐하면 곧바로 미미가 요리 재료들을 한 아름 안고 반점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특별배송보다 더 빠른 총알 배송으로 말이다.
‘아니지, 여긴 무림이니 쾌검(快劍) 배송? 생각해보면 미미가 하는 배송은 바로 뽑는 순간 급소를 찌르는 속도의 배송이라 할 수 있지.’
“낭군님! 다녀왔어요! 필요한 재료는 모두 사 왔고, 부족한 것은 화화루에서 받아왔어요.”
나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임무를 성공리에 마쳤으니 칭찬해달라는 듯한 상기된 목소리.
그녀의 손에서 물건을 넘겨받으며,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그 부드러운 손을 살짝 쥐여주었다.
뭐 전생이라면 안아주기라도 할 테지만, 여긴 이정도 서비스만으로도 엄청난 애정 표현이라는 평가와 함께 나는 달달한 남자 확정이니까.
역시나 미미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가 사방을 훑고는 볼이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잘했소. 고맙소. 미미.”
“흐, 흐흠···.”
그렇게 미미의 손에서 재료를 모두 넘겨받고 나서 세 손님을 향해 잠시만 기다려 달라 부탁했다.
“자, 그러면 내 금방 요리를 만들어 내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세분.”
“알겠습니다. 공자님. 아, 이제 혼례를 올리셨다니 대인이라 불러드려야겠구만. 허허”
“감사합니다. 대인.”
“그놈 참 빠르기도 하네. 저도 그럼 기대 하겠습니다. 대인.”
경쟁하듯 나를 대인이라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재료를 한 아름 안고 부엌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는 새벽에 끓일 우육면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했는데, 내 품에 안긴 재료를 보자 가련이와 형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건 뭔가 매부.”
“스승님, 늦은 시진인데 요리라도 하시려고요?”
일이 끝나갈 때인데 새로운 재료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니 그 연유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아, 예전에 사천에서 도움을 받았던 분들이 찾아와 요리를 좀 대접하려 합니다. 가련아 냄비에 뜨거운 물을 올리고 찜기와 웍을 준비해 주겠느냐?”
“손님이 오셨군요? 알겠습니다. 스승님.”
“형님, 죄송한데 황어면 세 그릇만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면은 제가 뽑겠습니다. 양은 평소의 두 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죄송하긴 이 사람. 알겠네. 그럼.”
가련이가 꺼져가던 화구에서 불씨를 살려내 다시 장작불을 지피고, 화구 네 개에 불씨를 옮기기 시작했다.
딱 필요한 네 개의 화로가 세팅되고, 그중 하나에 물 담긴 냄비가 올랐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의 화구에는 웍이 하나씩.
내가 쓸 웍이 놓인 화구 하나와 형님이 황어를 튀길 웍 하나, 거기에 황어면의 육수를 끓일 웍 까지.
빠르게 요리하기 위해서 준비된 세팅.
암기력은 좀 떨어져도 일머리는 있는지 가련이는 역시나 상당히 유능한 조수였다.
그렇게 냄비와 웍들이 세팅되고 제일 먼저 아침에 쓰기 위해 휴재시켜두던 반죽을 여섯 덩이 꺼내 면부터 만들었다.
아직 면을 뽑는 것을 대체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
면을 뽑을 사람을 가르쳐야 했는데, 가련이도 연습하고는 있다지만 아무래도 여자에게는 힘든 일.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 반죽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 제자를 하나 더 들여야 하나 고민이 되는 부분이랄까?
하지만 지금은 일단 고민보다는 요리해야 할 때.
일단 고민은 한쪽에 밀어두고 반죽을 서둘렀다.
-촥!
밀가루를 면 판에 흩뿌리자 휘날리는 흰 가루.
그 위에 그대로 반죽을 내리쳤다.
-탕!
경쾌한 소리와 밀가루 분진이 피어오르고, 그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자 곧이어 늘어나는 반죽들.
한 번씩 반으로 접힐 때마다 면발이 두 배로 늘어나고, 순식간에 육 인분의 면이 만들어져 가련이에게 넘겨졌다.
“가련아 물이 다 끓으면 면을 삶아 찬물에 씻어두거라. 그리고 찜기에 만두를 좀 쪄주거라.”
“예, 스승님.”
이제 황어면과 우리가 먹으려고 만들어 두었던 만두는 형님과 가련이의 손에 완성될 것이었고, 내가 할 일은 사나이의 약속을 지키는 일.
사나이들만의 약속.
구채초육사를 만들기 위해서 재료 손질을 서둘렀다.
-탁탁탁탁.
처음으로 구채(韭菜 부추)를 씻어 적당하게 썰고, 생강을 얇고 가늘게 채 쳤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가늘고 길게 썰어냈다.
그리고 이어서 할 일은 사천의 맛을 뽑아낼 화초 기름을 준비하는 일.
웍에 유채 기름을 잔뜩 올려 달구면서, 오랜만에 중원 매운맛 사총사를 조미료를 두는 곳에서 모두 꺼냈다.
화초(花椒), 등초(藤椒), 마초(藤椒), 오수유(吳茱萸).
붉고, 노랗고, 갈색의 알갱이들.
화초의 알싸한 매운맛에 등초의 감귤향 머금은 매움과 마초의 쏘는 맛을 더하고, 수유는 세 매운맛이 비는 공간을 채워줄 은은한 매운맛을 더할 재료.
사천의 매운맛을 내기 위한 핵심 재료들이 바로 녀석들이었다.
‘자, 그럼 비율을 맞춰 볼까?’
손절구에 비율을 맞춰 네 녀석을 차례대로 넣어주었다.
그간 요리로 터득한 이 시대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매운맛의 비율은 3 : 1 : 1 : 0.5.
화초가 3, 등초가 1, 마초가 1, 오수유가 0.5.
현대인의 매운맛인 고추의 맛을 잘 아는 나도 맛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비율.
-쿵! 쿵!
작은 절구에 네 가지 매운 재료들을 넣고 대충 빻아 준비해 두고, 달궈진 유채유를 국자로 크게 떠 절구 안으로 부어주었다.
-촤아아아악!
그러자 큼지막하게 부서진 네 가지 매운 재료 위에 쏟아지는 끓는 기름.
그 끓는 기름이 마른 모래에 물이 스미듯 재료를 적셔가자, 그 열기에 네 가지 재료가 튀겨지며 안에서 매운 향이 물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네 가지 매운 향신료에서 기름으로 매운맛을 토해내자, 코끝을 알싸하게 후리는 매운 향.
“에치!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가련이가 옆에서 요리하는 내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던지,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가 매운 향에 놀라 재채기하고는 입을 가리며 사과했다.
“매웠던 모양이구나.”
“예, 스승님. 조심하겠습니다.”
가련이가 저렇게 화들짝 놀란 이유는 그간의 교육 때문.
아무래도 위생 개념이 부족한 시대이다 보니, 대체로 요리사들의 위생 관념은 심각한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가 중원인지 전생의 인도인지 헷갈릴 정도.
그러니 손을 씻고 만든다거나 하는 개념이 없어 가련이와 형님만큼은 철저하게 교육 시켰더니 자기 실수에 놀란 모양이었다.
손을 씻는 것은 물론이고 기침이나 침이 튀지 않게 조심하라 했었으니까 말이다.
“요리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하느니라 가련아.”
“예, 스승님.”
가련이에게 다시 한번 살짝 주의를 주고 다음 과정을 시작했다.
돼지고기에 간장과 밀가루를 넣어 살짝 버무리고, 달궈진 웍에 만들어 둔 화초 기름을 반 국자 정도 퍼 올렸다.
예전의 기억으로 저 세분은 아주 매콤한 사천식을 좋아하니 볶는 기름도 화초 기름을 사용하기로 한 것.
그렇게 화초 기름이 새까만 웍의 내부를 반질거리며 물들이고, 거기에 채 썬 생강을 먼저 흩뿌려 기름에 생강의 향을 먹였다.
-치이이이···.
매콤한 향에 어우러지는 생강의 향.
곧바로 채 썰어 밀가루와 간장을 먹여둔 돼지고기 투하.
-촤아아아아아!
기름에 튀겨지듯 익어가는 돼지고기에서 간장이 타는 고소한 향과 화초의 매콤한 향이 피어올라 코끝과 입맛을 자극했다.
구채초육사(韭菜炒肉絲)는 돼지고기와 거의 모든 재료를 채 썰어 준비하니, 과정 대부분이 순식간에 끝나는 편이기에 서둘러야 했다.
이미 돼지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갈 재료는 이 요리의 메인 재료 구채(韭菜)인 부추.
부추가 웍 안으로 모두 부어지자 향긋한 부추 향이 피어올랐고, 부추가 모두 쏟아지자마자 재빠르게 손을 놀려 웍에 담긴 재료를 빠르게 볶아냈다.
-촤악!
-촤아악!
웍의 벽면을 따라 요리사 쪽으로 회전하는 재료들.
윅에서 떨어졌을 때 과생성된 수분이 증발하여 날아가고, 다시 웍에 재료가 떨어졌을 때 뜨거운 열기에 재료들이 빠르게 익어갔다.
이때 요리사가 확인할 것은 구채의 숨이 죽은 정도와 돼지고기의 색.
부추의 굵은 대가 아직 원형을 유지하고, 돼지고기는 모두 익은 것으로 보이는 지금이 바로 요리가 완성된 순간!
“접시!”
가련이에게 신호를 주자 가련이가 얼른 접시를 하나 내밀었고, 완성된 구채초육사를 국자로 쓸어 담아 접시에 맛깔나게 담아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까 만들어 둔 화초 기름을 건더기와 함께 위에 살짝.
곧바로 전체적 준비 상황을 물었다.
“만두는 다 되었느냐 가련아?”
“잠시만요. 스승님.”
내 물음에 가련이가 대나무 찜기를 살짝 열어 만두가 데워진 정도를 확인했다.
“네! 다 되었습니다. 안쪽까지 따듯해진 듯합니다.”
“형님, 황어면은 다 되었습니까?”
“나도 지금 막 끝났네.”
“그러면 요리를 내가야겠군요.”
“제가 하인들을 부르겠습니다!”
완성된 요리가 가련이의 부름에 달려온 하인들의 손에 밖으로 향하고, 손님들의 식탁에 꽃빵과 부추잡채 황어면으로 이루어진 맛있는 식사 한 상이 차려졌다.
-탁.
그리고 나는 마지막 접시가 놓이는 순간 육수부의 앞에 도착해 셋에게 요리를 권했다.
내가 약속했던 요리이니 내가 직접 셋이 먹는 모습을 봐야 했으니까 말이다.
“육대협과 친구분들께서 가르침을 주신 사천의 매운맛을 담은 구채초육사. 다시 한번 맛보아주시겠습니까?”
내 권유에 셋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셋이 동시에 젓가락을 들어 구채초육사로 가져갔다.
사천의 맛은 마스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품평을 받는 상황이 되자 떨리는 가슴.
셋의 구채초육사를 짚는 젓가락질과 부추를 씹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아작. 아작.
마치 요리 학교에서 처음으로 만든 요리를 스승들에게 선보여주던 상황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아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구채초육사(부추잡채).
‘어, 어떻소?’
대놓고 묻기는 뭐하고 속으로 물었지만, 셋은 눈치 없이 대답 대신 약간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는 다시 한번 젓가락을 구채초육사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의 남은 한 손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턱.
그들의 손이 향한 곳은 바로 만두.
원래 매콤한 부추잡채와 꽃빵은 환상의 짝궁.
소싯적에 구채초육사좀 치셔본 분들이라 그런지, 세분이 동시에 만두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익숙한 동작으로 만두의 배를 갈라 안에 구채초육사를 넣더니, 마치 햄버거를 만들 듯 만두의 속을 채워 구채초육사를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셋의 모습에 예상 답안이 나온 상태였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법.
미소 지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마음에 드십니까? 약속드렸던 사천의 매운맛이?”
그러자 화들짝 놀라 먹던 만두를 뱉어내며 대답하는 셋.
“커흡! 예! 대인. 저희에게 약속하신 것을 확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사천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사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니! 어허! 이놈아 그건 내가 만들어 둔 것이야!”
“만두에 이름이라도 써두었더냐? 먹는 놈이 임자지.”
“이놈들아 먹을 때도 싸우느냐? 개도 아니고···. 대인 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천에서나 먹을 수 있는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요. 아이고 맛나다.”
‘후후. 사나이의 약속 지키고 말았군.’
그렇게 오래된 은혜를 청산한 저녁.
식사 자리는 곧 술자리로 변했다.
“다들 술을 드시고 위에 객실에서 원하는 만큼 묵고 가셔도 됩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대인.”
“수부야, 오늘은 모기에 물리지는 않겠다 그렇지 않으냐?”
“에라이 이놈아!”
“모기 말입니까?”
“그런 게 있습니다. 대인. 크헤헤.”
화기애애해진 분위기.
술이 한두 잔씩 돌아갈 때 우연히 아까 묻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아, 분위기 좋을 때 구양수 그분에 관해 물어봐야겠구나.’
요리 재료를 배달했다니 요리사의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제가 아까 궁금한 것을 묻지 못해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 게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비밀리에 옮기는 표물은 아닌듯해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육수부.
“아,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구양수 어른은 한림학사겸사관수찬(翰林學士兼史館修撰)을 지내시고 사후 문충(文忠)으로 봉해지신 분입니다.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이라 보통 부르지요. 돌아가신 지는 이제 십여 년 정도 되었나?”
뭐 대단한 관리였다는 말인데, 그것 말고 왜 사당에 게가 필요한지가 궁금했다.
“아아, 대단하신 분이었구려? 그런데 게는 왜?”
“아! 그것을 말씀드려야지. 그분이 살아생전 게를 그리 좋아하셔 사당에서 제를 올릴 때 자손들이 꼭 게를 올리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게를 올린다고 이맘때쯤 중원 여기저기에서 게를 잡아들이는 것이지요. 뭐 잡아들인 게 중에 제일 맛있게 요리한 게를 올린다나?”
“저, 정성들이 아주 대답합니다.”
유난스럽긴 해도 유교 사회인지라 뭐 이정도 정성은 명성에 비하면 과한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참 유료 탈레반도 이정도면 지극 정성이다 싶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제사상에 올릴 요리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에 좀 흥미가 식어버린 것.
제사상에 뭘 올리든지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육수부 일행과 다시 해후해 약속했던 사천의 맛을 대접하는 식사가 끝나고, 내 반점에서 며칠 묵고 떠난 육수부 일행.
며칠 묵던 육수부 일행이 떠나고 이 일이 잊히나 싶었는데···.
며칠 후 동경의 제갈가 그러니까 청이의 숙부께서 추천서와 함께 이 이야기와 관련된 서찰을 이쪽으로 보내오셨다.
‘웬 추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