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면(切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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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 탁자 위에 있던 서찰을 점심이 끝난 브레이크타임에 가져와, 일 층 한편에 자리를 잡고 봉투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서찰은 아침 일찍 동경의 제갈가에서 도착한 서찰.
청이의 숙부이신 제갈각 숙부께서 나에게 보낸 서찰이었다.
봉투에서 꺼낸 고이 접은 서찰을 펼치자 드러나는 숙부님의 필체.
「청운이, 청이 잘 있느냐? 이렇게 서찰을 보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복주에서의 일은 잘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내 들었느니라. 해서 이제 관 쪽으로 좀 더 여러 가지······.」
사설이 길긴 했는데 서찰의 핵심 내용은 내가 이제 복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본격적인 명성 작업을 시작해보자는 이야기.
지금까지는 뭐 앞마당 다지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을 개시해보자는 그런 제안이셨다.
‘확실히 제갈각 숙부님의 말씀이 맞긴 하지. 복주 전체는 아니더라도 항구와 저자는 이제 거의 나의 나와바리화가 되었고, 무림에서의 명성이야 장인들 후광이 있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국공이 되려면 관 쪽에 좀 더 다양한 명성을 쌓아야 하는 것이 맞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우리 상황은 어찌 아시고···.’
제갈 장인이 아닌 숙부께서 서찰을 보내오셨다는 이야기에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장인이 제갈각 숙부님께 우리 일을 상의 하셨던 모양이었다.
가문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 가문의 모든 인원이 달라붙는 것은 뭐 당연한 일.
거기에 제갈각 숙부님은 황제를 직접 뵙는 높은 관리이자 관 쪽에 인맥이 많은 분이니, 벼슬을 받자면 숙부님을 통하는 것이 맞고, 또 장인과는 다르게 제갈가의 피가 진해서 그런지 좋은 계획도 잘 짜시는 분이니 그분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제갈 장인보다야 좀 더 믿음직한 분이니···. 그럼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볼까?’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씀을 하실지 다음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서찰에 쓰여있는 내용은 며칠 전에 들었다 기억 한편에 밀어둔 이야기.
「청운이는 모를 수도 있으나 매년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의 사당에서 요리사들을 불러 모아 작은 경연(競演)을 여느니라. 문충공께서 생전에 게를 좋아하셔 그 사당에 게를 올리기 위해 맛있는 게 요리를 뽑는 것인데······. 해서 거기 나가볼 생각은 없느냐?
황궁에서도 구양문충공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매년 관리를 보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이니라.」
서찰에는 육수부를 통해서 들었던 구양수라는 양반의 가문 이야기가 쓰여 있었던 것이었다.
‘아하. 게를 배송받는 것이 끝이 아니었구나?’
육수부를 통해서 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로는 그냥 중원 여기저기에서 게를 받아 그 게로 대충 요리한 음식을 올리나 싶었는데, 서찰의 내용을 보니 그게 아니라 요리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모양.
그것도 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그런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이야기였다.
황궁에서도 구양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제를 올리는 날에 맞춰 사람을 보내니, 이곳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면 황궁에 많은 어필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확실히 제갈각 숙부님다운 아주 좋은 생각이셨다.
“흐음. 확실히 좋은 의견이시구나. 역시 이래야 우리 ‘제갈’이지···.”
숙부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자, 의자에 앉아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내 양어깨 위로 머리를 내미는 영영이와 청이.
“노공, 무슨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까?”
“가가, 뭔데요? 우리 ‘제갈’이 나와요? 우리‘당’은 한 번도 안 해주면서?”
둘은 내 감탄사에 서찰에 무슨 이야기가 쓰여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제갈각 숙부께서 요리 경연이 열리니, 거기 참가해보라는 말씀을 적어 보내셨소. 영영아 우리 당은 우리 ‘당’영영에나 쓰는 것 아니겠느냐?”
“치. 아무튼 말은···. 그런데 요리 경연이요? 뭐지 그게?”
“언니, 아마도 요리사들의 비무대회 같은 것인가 봅니다.”
청이가 영영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무림 환경에 빗대어 설명했지만, 영영이가 오랜만에 팽가의 피가 들끓는지 재미있는 소리를 해왔다.
“비무? 요리사들끼리 막 채도를 들고 싸우는 건가?”
요리사들의 비무라니 뭔가 너무 무림다운 것을 상상한 모양이었다.
“그건 아니고, 요리를 만들어 가장 맛있게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뭐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지.”
영영이의 오해를 풀기 위해 최대한 자세히 풀어 설명했다.
그러자 반색하는 영영이.
“아하! 그러면 가가께서 무조건 대장원을 하실 테죠? 그렇죠?”
내 실력을 확신하는지 영영이는 당연히 내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대장원? 영영, 그게 무슨 소리죠?”
“영영아, 대장원이라니 그게 무슨 말지요? 낭군님께서 뭘 하시는데요?”
영영이의 반색에 소소와 미미까지 이쪽으로 얼른 다가왔다.
대장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느낌.
설명을 요구하듯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넷을 앉혀두고 서찰에 쓰여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제 복주 쪽에서의 일은 어느 정도 끝이 났으니, 주객낭중(主客郎中)으로 계신 청이의 숙부님인 제갈각 숙부께서는 관에 좀 더 알려질 수 있게 관 쪽과 관련된 일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그럼 말씀을 적어 보내셨소.”
“아아. 그렇군요. 은공.”
“낭군님 그런데 대장원은 뭔가요?”
“글쎄···. 그 경연에서 이긴다고 대장원을 시켜줄지는 모르지만, 제갈각 숙부께서는 관과 관련된 일로 구양수 어르신의 사당에서 열리는 요리 경연에 참여해 상을 받으라는 그런 말씀을 하셨소이다.”
“요리 경연이요?”
요리 경연이라는 말에 혹시나 또 영영이 같은 소리를 할까 싶어 얼른 설명을 추가했다.
“구양수 어르신이 살아생전 게를 좋아하셨기에, 그 사당에서 제를 올릴 때는 게 요리를 올리는데, 때문에 매년 요리사를 모아 게 요리를 만들고, 가장 뛰어난 게 요리를 뽑아 그것을 올린다고 하더이다.”
“게 요리 말입니까? 은공.”
“그렇소. 게 요리.”
“그러면 거기에 나가실 예정입니까?”
참가할 것이냐는 소소의 물음.
“숙부님의 말씀대로 참가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한데요?”
“가가, 왜요? 게 요리는 잘 모르세요?”
숙부님의 말씀대로 무척이나 좋은 기회이고, 영영이의 물음처럼 게 요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참가한다는 약간 문제가 있었다.
길주(吉州) 여릉(廬陵)까지는 복주에서 못해도 천 리 길이고, 미미를 타고 아니, 미미에게 업혀서 간다고 해도 이삼일이나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한계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백 킬로미터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 리가 사백 미터니 천 리면 약 사백 킬로미터.
먼 거리긴 했지만 일반인보다 서너 배의 거리를 걷는 것도 아니라 달릴 수 있는 미미이니, 쉬엄쉬엄 경공을 펼쳐 이틀이면 주파할 거리이긴 했지만, 문제는 미미나 거리가 자체가 아니라 그곳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오고 가는 시간 동안 반점이 문제였던 것이었다.
정확히는 반점의 수타면을 만들 사람이 없었던 것.
“게 요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면 수타면을 만들 사람이 없어 걱정이구나.”
“아···.”
“아···. 그렇군요. 노공.”
“생각해보니 그러네. 가가께서 안 계시면 그걸 만들 사람이 없구나.”
중원의 여러 가지 다양한 면 중 가장 쫄깃하고 맛있다 할 수 있는 수타면이 들어있는 우육면과 황어면의 원투펀치가 우리 반점의 간판 메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으니 내가 없으면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칠성어환이나 채식 요리는 가련이와 형님도 만들 수 있지만, 정작 메인메뉴에 들어갈, 면 뽑을 사람이 없어, 선뜻 자리를 비울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태.
그렇다고 며칠 문을 닫을 수도 없으니 정말 애매한 일이었다.
뭐 솔직히 며칠 정도는 요리하기 좋은 건면(乾麵)인 소면(素麵)을 이용할 수도 있긴 한데···.
‘장사 잘된다고 내용물을 바꾸면 단골들이 떨어져 나간단 말이지?’
그러나 그것은 안 될 말.
이렇게 손님이 많이 쏟아질 때 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손님이 오고 있으니 요리에 문제가 생긴다면 여러 손님의 입을 통해 금방 소문이 나버리게 되기 때문.
그러니 게 요리 경연이 열리고, 서찰에 제갈각 숙부께서 추천서 같은 것까지 써서 보내주셨지만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제갈각 숙부님의 추천서면 약발이 잘 먹힐 텐데 말이지···.’
주객낭중인 제갈각 숙부님의 추천서라면 대충 내정자가 되었다고 보아도 되는 법.
거기에 게 요리면 뭐 많은 종류를 알고 있으니,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하면 아내들이 원하는 대장원도 비벼볼 수 있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원래 이런 건 다 꽌시끼리 돌려먹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고민에 빠져있을 때였다.
들려오는 영영이의 물음.
“가가, 그러면 가가께서 경연에 참여하실 며칠 동안은 다른 면으로 하면 안 되나요?”
나도 살짝 생각해본 바지만 곤란한 생각.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소면(素麵)은 맛이 떨어지니···.”
“그러면 소면 말고 가련이나 남궁현 공자가 만들 수 있는 다른 면은 없어요?”
“다른 면?”
생각해보니 영영이 말이 맞았다.
미리 만들어 두는 건면인 소면은 아무래도 맛이 떨어지지만, 바로 만든 다른 면이라면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출 수 있을 터.
‘그렇지. 그러면 다섯 가지 면 중에 압면과 절면이 남는구나.’
소면(素麵), 압면(押麵), 절면(切麵), 납면(拉麵), 하분(河粉) 다섯 가지 중원의 면 중에 납면과 소면을 제외하고 쌀국수로 만드는 하분까지 제외하면 남는 것은 압면이나 절면.
압면은 작두같이 생긴 기계에 부드러운 반죽을 넣어 힘으로 눌러 뽑아주는 면인데, 이건 면 뽑는 기계를 만들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쫄깃함이 덜할 테니 일단 패스.
면 뽑는 기계를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당장 열흘 후쯤 열린다는 경연에 참여하려면 압면을 만들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절면인데, 반죽의 질과 밀대로 얼마나 잘 밀었느냐에 따라서 수타면만큼은 아니더라도 수타면에 필적할 쫄깃함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절면.
한국의 칼국수처럼 밀대로 밀어 접은 후 칼로 잘라 만드는 면이니, 배우는 데도 오래 걸리지 않고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다양한 굵기로 만들 수도 있고, 또 대량으로 만들기에도 수월한 면이니 장사에도 금상첨화(錦上添花).
“그래, 그러면 한번 다른 면을 만들어봐야겠구나.”
생각난 김에 서찰을 청이에게 부탁하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청, 서찰을 좀 부탁하겠소. 부엌에서 새 면을 만들어보려고 말이오.”
“알겠습니다. 노공. 서찰은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그렇게 청이에게 서찰을 맡기고 부엌으로 들어서자 형님은 보이지 않았고, 가련이는 새벽부터 일어나 피곤했던지 아궁이 앞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저녁에 일찍 자긴 하지만 여인의 몸으로 주방일을 따라오기 힘들었던 모양.
형님이야 단전이 깨졌어도 수련을 한 사람이라서 체력이 나쁘지 않았고, 나는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내.
하지만 가련이는 여인에다가 커다란 모래주머니 같은 것을 두 개씩 차고 주방일을 거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애 몸은 괜찮나? 그러고 보니 오래 서 있으면 겨드랑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가련이의 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슬쩍 자리를 비키려고 할 때였다.
-삐거덕.
원래 꿀잠은 방해하는 것이 아니니 잠이 다 깨고 오려고 했는데, 밖으로 난 문이 시끄럽게 열리며 모용후 녀석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 그럼 먹고 남은 음식도 버렸고···.”
-후르릅.
“어?”
그러자 그 소리에 놀라 깨버린 가련이.
아궁이 앞 의자에 앉아 졸다가 소매춤으로 입가에 흐른 침을 닦은 가련이가 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스, 스승님!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가련아, 피곤하면 좀 자다 오겠느냐? 저녁때까지는 아직 좀 여유가 있는데?”
“아, 아니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쉬시지 않고 부엌에는 어째서?”
“아, 새로운 면을 좀 만들어보려고 하느니라.”
“새로운 면 말입니까?”
“그래, 내 며칠 자리를 비울 것 같아, 내가 없는 사이에 반점에서 쓸 절면을 만들어보려고 말이다. 어찌 절면 한번 배워보겠느냐?”
내 물음에 가련이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네, 스승님!”
그럼 또 우리 하나뿐인 제자에게 절면 전수해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