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4화 (314/344)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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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면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반 오픈된 주방 앞에, 화로와 함께 넓고 커다란 솥이 놓였다. 

솥은 커다란 가마솥 같은 모습의 검은 쇠솥. 

-부글부글. 

오픈을 앞둔 새벽 그 커다란 끓는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수타면을 치는 곳에 커다란 솥을 준비한 것은 모두 반점의 새 면을 선보이기 위해서. 

“자, 그러면 오늘 장사를 시작해볼까?” 

내 말과 함께 반점의 문이 열리고···. 

아침 장사를 시작하자마자 몰려든 손님들이 면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여기 우육면 두 그릇···.” 

하지만 익숙하게 우육면을 시키려는 손님의 말을 가로막는 여 점소이의 목소리. 

점소이들이 웃으며 미리 교육한 대로 새 면에 관해 설명했다. 

“저희 반점은 오늘부터 면 요리의 면을 고를 수 있는데, 어떤 면으로 하시겠습니까? 지금은 절면과 ‘검후님의 검삭면’이 있습니다. 절면은 쫄깃한 것이 특징이고, ‘검후님의 검삭면’은 넓은 면으로 가운데는 쫄깃하고 양옆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입니다.” 

검후님의 검삭면 부분에서 말을 살짝 강조하는 점소이들. 

누가 보아도 검삭면을 시키라는 설명. 

눈치가 있는 놈이라면 무엇을 시켜야 할지를 알 터. 

“거, 검후님의 검삭면!?” 

“예, 손님 ‘검후님의 검삭면’ 검후님께서 면의 한 가닥, 한 가닥을 모두 검으로 직접 잘라 대접하십니다.” 

검후라는 별호를 가진 중원 무림 최고의 여검객이 면을 잘라준다는 말과 생글생글 웃는 서큐버스 점소이들의 설명에 손님들이 최면에라도 걸린 듯 검삭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거, 검삭면으로 우육면을 내려주십···. 아, 아니. 주시오.” 

“나, 나도 그렇게 주시옵소 아니, 주시오.” 

“청운님, 검후님의 검삭 우육면 두 그릇입니다!” 

주문받은 여 점소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주방 쪽으로 날아들었다. 

오늘 첫 검삭면 주문. 

부엌에 가져다 둔 의자에 앉아있던 소소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었다. 

‘자, 가라 소소! 가서 우리의 면을 선보여주거라!’ 

끄덕. 

소소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에 마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반죽이 올려진 면판을 걸친 채 큰 솥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가마솥 앞에 서 손을 크게 한번 털어 김을 흩어버렸다. 

-훙! 

솥 앞에서 소매를 털어 뽀얀 김을 날려버리자 솥 너머에서 나타난 소소. 

손님들이 수증기의 안개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타난 소소에 감탄했다. 

“오오!” 

“오오오오!” 

‘역시 등장은 안개 깔린 등장이 최고지.’ 

소소는 손님들의 감탄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손을 우아하게 움직이며 손에 쥔 사각 채도로 면판 위에 올려진 면을 깎아냈다. 

속도는 아다지오(Adagio 침착하게 느리게). 

-사각. 사각.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작으로 느리게. 

한 가닥, 한 가닥. 

손님들에게 어찌 검으로 면을 깎는지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소소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지렁이 같은 면발이 공중을 날았다. 

“저것이 검삭면! 검으로 면을 깎아내서 검삭면!” 

“오오! 면을 검으로 깎아낸다니! 이 무슨 대단한 광경이란 말입니까?” 

“검으로 깎아내서 검삭면! 그, 그렇구나!” 

‘지금이군!’ 

손님들의 모든 시선이 감탄과 열광으로 집중되었을 때 소소에게 슬쩍 다가가 말했다. 

“소소, 오늘 주문이 많으니 좀 빠르게 준비해 주겠소?” 

“예, 알겠습니다. 은공.” 

-사사삭. 사사삭. 사사삭. 

내 말에 소소가 면발을 깎아내는 속도를 올리자, 면발이 깎이는 소리와 함께 소소의 손이 보이지 않게 움직이며, 공중에 날아가는 면발이 마치 길게 이어진 것같은 모습으로 솥으로 떨어졌다.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 아주 빠르게).’ 

-참방. 참방. 

그러자 솥에 떨어지는 면발에서 물방울 튀는 소리가 틀려오며, 긴 밧줄처럼 이어져 날아가는 면발의 화려한 모습에 아직 주문하지 않은 테이블 여기저기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여, 여기도! 거, 검삭면!” 

“여기도 검삭면 부탁하오!” 

도삭면(刀削麵) 아니, 검삭면(劍削麵)의 화려한 출정이었다. 

*** 

우리 반점의 새로운 면 검삭면. 

사흘 만에 검삭면은 그 화려한 모습으로 손님들의 눈과 입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검후가 된 소소가 직접 검으로 깎아내는 도삭면이라는 이미지는, 무림을 동경하는 이 시대 사람 누구라도 한번 시켜보지 않을 수 없는 요리였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무인들에게까지 소문이 났는지 혼밥족 무림인들까지 찾아와 요리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 여기 검후님의 검삭면이라는 것을 판다던데?” 

“아하. 여기 검삭면 한 그릇이요.” 

시킨 면을 먹는 둥 마는 둥 자세히 살피며, 뭔가 거기에 무공의 묘리가 있지 않을까 확인하는 손님들. 

새로 찾는 손님들과 별개로 혹시 단골들에게는 면이 바뀌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뭐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손님들 입이 대부분 막입이니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도리어 도삭면 자체의 면발이 굵어 씹는 맛이 더 있으니 손님들도 좋아하는 느낌. 

이제 안심하고 며칠간 자리를 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쪽에서 같이 일하자고 이야기해두었던, 심우현의 객잔에서 일했던 식모까지 도착했으니 더욱 마음이 가벼웠다.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의 사당에서 열리는 요리 경연(競演). 

이거 꼭 참가해서 수상해야 했으니까. 

‘국공 서두르긴 해야지. 복주의 사람들에게 이제 넷이 모두 나의 처나 첩인 것 같다는 소문이 슬슬 나고 있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청, 영영, 미미, 소소가 나를 부르는 호칭과 내가 그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넷 다 나의 처첩이 분명하다는 그런 소문들이 복주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비연을 통해 들려왔던 것이었다. 

영영이는 송 시대 여자답지 않게 아주 팔짱까지 끼고 딱 달라붙어 다니고 있었고, 청이는 나에게 노공이라며 부인임을 사방에 알리는 상태. 

미미나 소소도 같이 다닐 때 내 여자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다소곳한 모습으로 내 뒤를 조용히 따르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다 보니 이렇게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고, 이러다 보면 잘못해서 국법을 어기고 중혼했다는 이유로 또 관에 끌려갈 수도 있으니,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착실한 포인트를 쌓아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중원에 이런 대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구양문충공이라는 대단한 이름까지 받은 사람의 집에서 열리는 경연이니 말이다. 

거기에 관에서까지 사람을 보낸다니 이건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미미, 영영아, 비연에게 가자꾸나.” 

“가가, 비연에게는 왜요?.” 

“네, 낭군님.” 

“구양문충공의 사당에서 열리는 경연에 관한 내용을 좀 알아보려고 말이다.” 

참가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했지만, 도삭면이 자리를 잡았으니 내가 며칠 정도는 자리를 비워도 될 터. 

오전 장사가 끝나고 미미와 영영이를 불러 비연에게로 향하기로 했다. 

비연을 찾아가는 이유는 구양문충공의 사당에서 열리는 요리 경연에 대한 정보를 살피기 위해서. 

제갈각 숙부께서 추천장은 써주셨는데 게 요리를 만든다는 것 외에 세부적인 정보를 하나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추천서가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별로 그리 대단한 내용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랜만에 비연을 찾아가 차를 마시며 요리 경연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내 구양문충공의 사당에서 열리는 요리 경연에 참여하려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좀 알려줄 수 있겠소? 어떤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지. 재료는 어찌하는지. 뭐 그런 것들 말이오.” 

“아, 그래서 이런 때에 찾아오셨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런 것은 아마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에요.” 

“고맙소.” 

“고마우시면 이번에 돌아와 저희를 위한 새로운 요리 어떠신가요? 매번 뭐 부탁하시면서 고맙다고만 하시지 말고···.” 

그러고 보니 기루 요리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요리를 알려준다고 해놓고는 본격 기루 요리를 아직 하나도 알려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육성어환은 칠성어환을 만들려다가 우연히 만들어진 요리이니까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자기앞 수표를 남발했군.’ 

비연에게 기루를 위한 요리를 만들어준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한 것이니, 아무래도 조만간 요리 레시피를 한두 가지를 더 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다녀와서 바로 기루에 어울리는 요리를 두어 가지 알려줄 테니 너무 서운해 마시오.”

“저, 정말인가요? 두 가지나요? 여, 역시!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요리를 알려준다는 말에 비연이 반색하며 사라지고 잠시 후. 

여러 장의 종이 묶음을 가져와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청운님. 아마 청운님이 궁금해하시는 것은 여기 다 있을 것이에요.” 

“고맙소. 어디 보자.” 

종이에는 역대 우승자와 우승한 요리의 종류. 

그리고 재료에 관한 규정이라든지 사소한 것들이 빽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런 것은 설마 미리 준비되어있는 것이오? 상당히 자세하구만.” 

깔끔하게 정리된 정보에 감탄하듯 말하자 비연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아무래도 구양문충공의 사당에서 열리는 경연이니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흐음. 그렇겠구려.” 

비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선 내가 가장 궁금했던 재료에 대한 것을 살피기로 했다. 

사천의 천월표국 사람들이 사천 민물 게를 배송해왔고, 전 중원으로부터 게들이 많이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태. 

어떤 재료들이 도착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팔락. 

그렇게 종이를 넘기며 내가 궁금한 것을 살피자 이게 생각보다 큰 행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흥하(紹興河), 남호(南湖), 칠리해(七裡海), 서호(西湖), 사천, 홍주(洪州)등 생각보다 많은 중원 전역의 강과 호수에서 게가 도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원에는 약 삼백여 종의 민물 게가 살고 있는데, 지금 시대라면 멸종한 게들까지 다 살아있으니 그 수는 대단할 터. 

뭐 그것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먹을만한 큰 게들 수십 종은 경연을 위해 모이고 있었다. 

“역시 권세 높은 가문인가?” 

전생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집이 아주 권세 높은 집안이었다며, 초겨울에 배추에 내리는 서리를 막기 위해서, 밭에 있던 모든 배추를 집에 있는 큰 대접으로 덮어두었더니. 

지나가는 암행어사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권세를 부린다고 조정에 보고해 증조인지 고조할아버지가 큰 옥고를 치르셨다고 했는데 그것과 비견되는 권세 질. 

사후에도 이정도 권세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대단하다는 투로 말하자, 비연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소식 어른 형제의 스승님이시니까요.” 

“소식 어른 말이오?” 

“예, 청운님.” 

‘그 사람 참 빠지는 곳이 없네.’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소동파 양반. 

구양수가 소동파와 그 동생의 스승이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자세히는 몰라도 소동파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그 동생이 당송팔대문학가(唐宋八大文學家)라는 당과 송 시대 가장 유명한 팔 인의 문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그런 그들을 가르쳤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그러면 이정도 권세는 이해가 가는 부분. 

확실히 이 경연 우승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대회를 우승하면 소동파 그 양반에게도 다시 한번 확실히 어필이 가능하고, 그의 동생과 그의 아버지에게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는 것. 

곧바로 이 경연에 참석할 맴버를 정하기로 했다. 

‘일단 미미는 나를 데려가야 하니 미미 확정. 거기에 무력으로는 소소나 청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데려가야 하지만, 소소는 나 대신 도삭면을 만들어야 하니 청이를 데려가야겠구나.’ 

일단 이동 간에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청이를, 또 이동을 위해서 미미를, 경험을 위해서 가련이 정도. 

식모가 도착했으니 가련이를 돌릴 여유가 있었다. 

형님과 식모, 소소 그리고 모용후가 주방을 책임져야 했지만, 하인들도 있고 며칠 정도는 괜찮을 터. 

그렇게 인원을 확정하고 이틀 후. 

우리는 길주(吉州) 여릉(廬陵)으로 향하는 관도에 오를 수 있었다. 

자기를 떼놓고 간다고 토라졌던 영영이까지 데리고 말이다. 

“가가, 청이 병 고친다고 온 중원을 돌아다니던 것이 생각나요!” 

‘영영이를 두고 간다면 시끄러울 것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언제 토라졌었냐는 듯 영영이가 경공을 펼치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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