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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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예부랑중(禮部郞中) 어르신.”
“오랜만에 뵈어요. 예부랑중 어른.”
갑자기 의외의 등장을 한 소동파에 놀랐지만, 일단 재빠르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왜 그가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아, 이번 구양문충공 어른의 제에 참석하기 위해서 왔지. 황제께서 하사품과 함께 나를 직접 보내셨거든. 내 스승님이니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지.”
“아하···. 구양문충공께서 어르신의 스승이셨군요?”
관에서 제에 참석하라고 보낸 사절이 소동파 이 양반이라는 말.
구양수라는 분이 소동파의 스승이라 관에서 제에 참석할 관리로 소동파를 파견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집주인하고 잘 알 수 있으니 왜 문전박대 느낌이 나는지 물어봐야겠구나.’
구양수라는 분의 환영이 좀 싸해서 의문이었기에 바로 그에게 물었다.
꽌시의 서찰을 가져온 나에게 이러면 아주 곤란했던 것.
꽌시가 잘 봐달라는 서찰을 들려서 보냈다는 것은 곳 자신과 같은 대우를 해달라는 말인데, 이런 문전박대는 우리 제갈각 숙부님의 체면을 훼손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어르신 제가 제갈각 숙부님께 받은 서찰과 감귤까지 사서 찾아뵈었는데. 그런데 구양발 어른이 저를 달가워하지 않는 느낌이···.”
“아···. 혹시 느꼈는가?”
못 느꼈으면 그건 눈치가 없는 놈.
역천의 눈치인 내가 이런 사소한 감정을 못 느꼈다면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동파가 머리를 긁으며 설명했다.
“원래 나와 각이 그리고 발은 셋이 친우이네. 유선주와 그 의형제들 같은 사이라고나 할까? 셋이 스승님, 그러니까 구양문충공 어르신 문하에서 몇 년이나 동문수학했으니 막역한 사이라고 할 수 있지.”
“아, 그러셨군요?”
구양발, 소동파, 제갈각 세분이 유비, 관우, 장비와 같은 의형제 못지않은 막역한 사이라는 말.
거기에 동문수학까지 했으면 학연까지 엮였으니 꽌시를 넘어 꽌꽌시라고 보아도 무방한 관계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그의 행동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막역한 친구의 조카사위가 추천서까지 들고 왔는데 이런 문전박대는 좀 이상했으니까.
‘이 양반들 싸웠나?’
친구가 셋 있으면 원래 싸움이 나기 쉬운 법.
인간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지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면 더 이상하군요?”
그러자 돌아온 것은 웬 삐졌다는 대답이었다.
“그것이 아마 좀 서운해서 그럴 것이네.”
“서운 말입니까?”
‘설마 호르몬 문제인가?’
원래 장인처럼 이 나이대 어른들의 고질적인 문제인 여성호르몬이 원인인가 싶었다.
하지만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각이와 술자리를 하다가 각이 자네를 좀 도울 일이 있다기에 내 고려의 왕자가 왔을 때 자네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 생각나 이 경연을 떠올려 알려주었지······. 하지만 그러는 바람에 저 친구가 좀 서운해하는 것이야.”
소동파가 설명한 구양발이라는 사람이 서운해하는 이유는 다른 원인이었다.
원래 이 게 요리 경연은 몇 달 전에 참가 신청을 받고 구양문충공의 가문 내에서 엄정한 심사를 거쳐 경연 당일에 요리할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라고.
한데 올해 참가자가 다 결정되었는데, 한 번도 이런 부탁을 한 적 없는 친구가 자기 조카사위를 참가시켜달라니 일단 거기서 한번 삔또가 상했다는 것.
거기에 잘 부탁한다고 추천서 같은 것까지 들려 보내자 두 번째로 빡이 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꽌시끼리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싶었다.
원래 꽌시끼리 이런 부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그러나 또 이게 소동파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다른 일이라면 당연히 자네를 웃으며 돕겠지만, 아버지의 제에 관련된 일이라서 저 친구가 예민해진 것이야. 아버지의 제에 올릴 소중한 음식을 실력도 모르는 친구의 조카사위가 만든 것을 올려 달라고 부탁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유교를 숭상하는 사대부 중 또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이니, 다른 일이었다면 웃으며 나를 팍팍 밀어주었겠지만, 아버지의 제에 올린 요리를 만드는 중차대한 일에 실력도 모르는 내 요리를 올려달라면 그건 불효를 하라는 것인가 마찬가지였기에 저런 반응이었다는 것.
그 일로 구양발 저 양반이 제갈각 숙부님께 화까지 냈다고.
“스승이면 부모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불효를 저지르고 그것을 자신에게까지 강요하냐고 화까지 냈었거든. 내가 직접 자네의 실력을 변호해 어느 정도 마음은 수그러들었는데.
그래도 자네 실력을 확실히 모르니 저러는 모양이네. 태후마마께 웅장을 올리고 제서를 받은 것도 이야기했는데, 웅장을 올린 것이지 게 요리를 올린 것은 아니지 않냐면서···. 저 친구가 여기에만 있어서 동경 쪽 소식이 좀 느렸던 모양이야.”
‘아무튼 그놈의 유교가 문제다!’
이유가 어쨌든 소동파의 설명에 분노가 치솟았다.
유교가 근본 원인이긴 했지만, 마치 내가 실력이 없어서 우승을 구걸한다 생각하는 느낌이 아닌가?
어차피 우승은 나라는 것이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내가 실력을 발휘하면 이 시대 요리사들의 요리에 질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잘 봐달라 하는 것은 다 일종의 급행료일 뿐인 것을.
내가 우승으로 가는 급행료 말이다.
‘사람을 우승을 구걸하는 거지로 보는 것인가!? 나의 체면이!’
이거 가오가 좀 상해버리는 상황.
이 시골구석 집안에서 서책만 읽으시니 이 류청운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 줄 잘 모르시나 본데, 그렇다면 알게 해드리는 것이 도리.
소동파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이 류청운 그 이야기를 들으니 숙부님과 저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 경연 제가 꼭 장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크흠!”
그러자 믿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동파.
“내 자네가 그렇게 대답할 것으로 생각했네. 전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이셨던 사마광 어르신 댁에서 사마회부계를 먹고도 담담히 자신의 소신을 밝혔던 자네가 아닌가?
그 권세 높은 동중서문하평장사 어르신 댁에서 내어준 요리에도 물러서지 않던 자네니. 당연히 실력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말이야. 하하.”
“아, 그나저나 동중서문하평장사 어른이 돌아가신 일은 참 안타깝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갑자기 튀어나온 사망광 아니, 사마광 어르신의 일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만 되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으니 우리 영영이 밥을 먹어야 했고, 더 이상 들을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 남아있을 이유도 없었던 것.
“그럼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으니 경연 날 뵙겠습니다. 어르신.”
“벌써 돌아가려고? 나와 식사나 하고 가지? 내 발이 저 친구도 다시 한번 불러 볼 테니···.”
소동파는 오랜만에 만난 것이 아쉬운지 식사까지 권했지만,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하면서 눈칫밥 먹으면서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제가 나중에 홀로 경연에 참여하게 되었다니, 여길 드나들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도 다른 요리사들의 의혹을 사지 않겠습니까? 경연 날까지 그런 의혹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허허, 이 친구 칼을 단단히 갈 모양이군. 내 기대해도 되는가?”
게 요리 생각이 나는지 입맛을 다시는 소동파.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실망하게 해드린 적이 있던가요?”
“물론 그런 적이 없지. 그러면 갈 때 저것도 가져가게. 자네가 사 온 것이지?”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것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감귤.
아무리 문전박대를 당했어도 선물을 줬다 뺏는 치졸한 짓을 하라는 말인가 싶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소동파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저걸 다시 가지고 나가면 다른 이들에게 문전박대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테니, 나중에 자네가 장원을 해도 그것을 문제로 삼는 이가 없지 않겠는가? 뭐 가져가는 지금은 좀 그렇겠지만.”
“아하. 그거 와신상담(臥薪嘗膽)하라는 말씀이군요?”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들고 들어갔던 선물을 다시 가져가면 쪽팔릴 테지만, 확실히 이걸 들고 나가면 소동파의 말대로 나중에 의심하는 일도 사라질 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청이가 냉큼 바구니를 안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저는 이만.”
“어르신 반가웠습니다. 그럼 경연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청이와 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밖으로 향하려 문고리를 쥐었을 때였다.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소동파의 목소리.
“아, 내가 이번 경연에서 요리 맛보는 자 중 하나이니, 기대하고 있겠네. 그리고 살짝 도움을 주자면 내 노도부(老饕賦)를 꼭 한번 읽어보시게···.”
***
청이와 구양문충공 댁 입구로 걸어 나오자 쏟아지는 시선들.
청이와 나의 표정과 그리고 청이가 품에 든 감귤 바구니의 모습에 사람들이 피식하고 비웃음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양문충공 댁에 회뢰(贿赂)를 넣으려다가 거절당했나 보구만. 크흡.]
[어찌 사대부가 회뢰를···. 부끄러운 일이야.]
[어지간하면 선물을 받아는 줄 텐데 대체 저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감귤은 무척이나 비싼 과일 이거늘.]
어딜 가나 남 안 되는 일이 가장 재미있는 일인지,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공···.]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내가 걱정되는지 청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러왔지만, 어차피 일면식도 없고 나중에 볼일도 없는 놈들.
신경을 끄고 아까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소동파가 했던 이야기에 대해서나 묻기로 했다.
“신경 쓰지 마시오. 어차피 장원을 하면 저 쓸데없는 입들은 모두 닫힐 터. 그나저나 나올 때 소식 어르신께서 말씀했던 노도부에 관한 것이 기억 안 나서 그런데, 혹시 비연이 보여주었던 노도부의 내용을 기억하시오?”
소동파가 언급했던 노도부라면 이미 우리 반점이 화월루였을 때 한번 보았던 부.
술지게미로 만든 게 요리에 관한 내용이 있던 부분이었기에 전체적인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기억이 떠올랐기에 청이에게 물은 것이었다.
청이의 기억력은 상당히 좋으니까 말이다.
“아, 예 제가 기억합니다. 노도부(老饕賦).
······작상전지양오(嚼霜前之兩螯).
서리가 내리기 전 맛볼 것은 게의 집게발.
난앵주지전밀(爛櫻珠之煎蜜), 옹행락지증고(滃杏酪之蒸羔).
앵두를 달여 꿀을 만들고, 살구와 치즈를 양고기와 함께 찐다.
합반숙이함주(蛤半熟而含酒), 해미생이대조(蟹微生而帶糟).
조개는 반숙으로 술안주 삼고, 게는 술지게미에 담가 날것으로 먹는다.
개취물지요미(蓋聚物之夭美)······.
이처럼 진귀하고 맛있는 요리가 있구나.”
역시 똘똘한 청이.
제갈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청이의 기억력이었다.
“그러면 소식 어른께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분명 작상전지양오(嚼霜前之兩螯)라는 부분이었겠구려?”
“아마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해미생이대조(蟹微生而帶糟). 술지게미 게 요리를 만들어오라는 소리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저희에게 어떤 실마리를 주시려 한 것 같은데요?”
‘작상전지양오(嚼霜前之兩螯) 서리가 내리기 전 게의 집게발을 맛보라는 뜻인데···. 대체 뭘 알려주려 하신 것일까?’
딱히 뭔가가 떠오르지 않는 느낌.
소동파가 대체 뭘 알려주려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것이라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집게발을 맛보라는 것은 가을 게를 맛보라는 말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늦봄과 초여름 사이···.’
“노공,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으십니까? 저는 요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뭘 말씀하려고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이도 돕고 싶은지 나에게 물어왔다.
하지만 나도 당장 떠오르는 것이라면, 중원의 식용 게 중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분명 민물 게라는 정도.
봄에 가장 맛있는 게는 봄에 알이 꽉 들어차는 꽃게이지만, 가을에 가장 맛있는 게는 민물 게이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바다의 게가 봄에 알이 꽉 찬다면, 민물 게의 알이 꽉 들어차는 계절은 가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답할 수 없는 상황.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좀 생각해봐야겠소.”
“알겠습니다. 노공.”
그렇게 객잔으로 돌아와 귤 바구니를 보고 반색하는 영영이에게 귤 바구니를 안겨주었다.
“가가 웬 감귤을 이리 많이 사셨어요?”
“언니가 아까 잘 드신다고 노공께서 다시 사셨어요. 여기요 언니.”
“정말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청이를 바라보자 눈을 찡긋하는 청이.
그래, 누구라도 행복해지면 그것으로 다행이다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첫 아내의 센스인가?’
“그래, 영영아. 네가 아까 아주 복스럽게 먹기에 네 생각이 나서 샀구나. 우리 영영이는 감귤만큼 상큼한 아이이니까 말이야.”
“헤헤···. 부, 부끄럽게···.”
자기를 위해 오렌지를 사 왔다니 기뻐하는 영영이.
하지만 아까 잔뜩 까먹었기에 일단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영영아, 감귤은 대신 나중에 먹고 일단 저녁부터 먹자꾸나.”
“네, 가가.”
그렇게 갠잔에서 요리를 시켜 식사하며 아까 구양문충공 댁에서 있던 일들을 다른 일행에게 이야기했고, 내 이야기에 다 같이 분노하던 일행 중 하나인 가련이가 소동파의 노도부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가 궁금하던 사실의 답을 알려주었다.
“게는 원래 집게발이 가장 맛있으니까 집게발 요리를 해오라는 것 아닐까요? 스승님.”
“응? 집게발이 맛있다고?”
“예,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희 요릿집에도 사천 게로 만드는 요리가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집게발이 가장 맛있는 부위라고 하셨거든요.”
“그래?”
가련이의 말에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간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수해를 만들 때도 요리사들이 장을 씻어내 순살만을 이용했던 것이 생각났던 것.
화월루에서 보았던 술지게미에 담근 게장도 장이 깨끗하게 씻겨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월희가 나에게 내민 것도 집게발 부분이었고.
‘설마 이거 송 시대 사람들 알고 보니. 모두 게 맛도 모르는 놈들이었구만?’
집게발이 근육이 많아 쫄깃하긴 하지만, 그건 게 맛을 제대로 볼 줄 몰라서 하는 소리.
게의 진정한 맛은 녹진한 장의 맛이 아니겠는가?
소동파 어른은 집게발 요리를 해야 놓은 점수를 딴다고 일러준 모양이었지만, 진정한 게 맛을 맛보게 해줄 필요가 있을 것 같은 느낌.
게 맛도 모르는 놈들에게 참교육이 필요했던 것.
“미미, 친정에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소?”
“네? 친정?”
장맛이라면 미미의 친정이 있는 그곳의 게장이 최고이니, 아무래도 미미를 친정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