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火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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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이야기를 마친 후, 미미는 난생처음으로 하인들의 목욕 시중을 받았다.
그리고 목욕과 따듯한 식사가 끝나자 고급스러운 침실로 안내되어 푹신한 침상에서 한숨을 푹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숨 자고 일어난 미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
잠들기 전을 기점으로 뭔가 분위기가 확 달라진 느낌이 들고 있었다.
“양녀 아니지, 딸을 삼았으면 아이를 제대로 챙겨주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가문의 모든 기대를 어깨에 걸고 있는 아이를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게 하다니!”
“아니, 나는 가문 회의가 끝나고···. 그래야 예산도 정하고···. 가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쉽고···.”
“먼저 진행하시고 다 나중에 처리하면 되는 일을 어찌 미루셨단 말입니까!? 우리 미미는 이제 가문의 얼굴이거늘. 어찌 아이를 동경 뒷골목에나 사는 여인 같은 모습으로 돌아다니게 한단 말입니까!? 저희 체면이 있지!”
‘어, 어떻게 아셨지?’
자신의 출신성분을 한 번에 알아챈 어머니가 미미가 입고 온 옷을 보고는 분노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혼쭐을 내고 있었던 것.
반점에 있을 때는 청이나 소소, 영영이 또는 비연이 옷을 챙겨주긴 했지만, 여행하려고 예전에 입던 옷을 꺼내 입었더니, 아마 그 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따님, 아버지께 서운했죠? 우리 귀한 따님을···. 아버지가 시커먼 아들놈들만 키워봐서 그렇답니다. 딸에게 옷과 장신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예, 아, 아닙니다. 어머니. 그나저나 아까 볼은?”
극진한 대우에 왠지 아까 뺨을 올려붙인 것이 미안해진 미미가 사과하려 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면서 뭔가 일을 빠르게 진행 시켰다.
볼 좀 부어있었는데···. 그것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이.
“볼? 아···. 따님이 어머니를 만나 반가워서 인사를 나눈 것뿐인데 신경 쓰지 마세요. 호호. 그런 사소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총관, 총관을 불러오너라!”
“아, 아니 괜찮은데···.”
“아니요. 안 됩니다. 따님, 따님은 이렇게 곱고. 이제 모용가의 꽃이자 모용가의 얼굴. 따님이 잘 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제갈이나 당, 남궁가의 여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데,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지요. 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는 절대 그러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부름에 잠시 후 총관으로 보이는 자가 달려오고.
“예! 부인, 부르셨습니까?”
“따님의 옷을 만들어야겠으니 당장 비단과 옷 짓는 사람을 불러오세요. 그리고 보험거(保险柜)를 열어 장신구와 보석들을 가지고 오세요!”
“예, 부인.”
그렇게 시작된 옷을 짓기 위한 몸을 확인하는 과정.
그리고 각종 장신구와 보석들이 보험거에서 꺼내져 미미의 앞에 놓였다.
보험거를 몰래 열어보는 것은 흔히 미미가 해봤던 일이지만, 이렇게 주인이 직접 꺼내다 주는 것은 생경한 경험.
“자, 마음에 드는 것은 모두 해보세요. 다 따님의 것입니다.”
빛을 발하는 찬란한 보석들.
늙은이의 지시에 훔치기는 했었지만, 미미는 본래 보석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그걸 걸치고 다니면 바로 의심을 받을 테니 관심이 생길 수가 없었던 것.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보석이 놓이니 미미도 여자인지라 약간 호기심이 동했다.
“저기···. 그러면 저것을···.”
“어머, 은류금화훼문수탁(银鎏金花卉纹手镯)을 역시 우리 따님! 그중에서 가장 비싼 걸 고르시네. 역시 안목이 있습니다.”
무심코 늙은이가 알려줬던 대로 비싼 것을 고르고만 미미.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이 떠올라 무심코 가리킨 것이었는데, 제일 비싸다는 말에 미미가 화들짝 놀라 얼른 가리키는 대상을 바꿨다.
“그, 그러면 저걸.”
“아닙니다. 이정도는 해야 저희 가문 사람이라 이야기할 수 있지요.”
그렇게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꽃팔찌가 미미의 팔에 채워지고.
한참을 더 장신구를 고르는 시진이 끝나고야 미미는 어머니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휴. 딸 노릇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그리고 미미가 그렇게 간신히 접객당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척.
갑자기 나타나 미미의 앞을 가로막는 네 명의 인영.
움찔한 미미가 놀라 넷의 얼굴을 살피자 넷은 누구도 아닌 바로 모용후의 동생들이었다.
‘뭐? 뭐지? 아까 뺨 맞은 것 때문인가? 더 때려줘야 하나?’
열여섯에서 여덟 내외의 비교적 미미보다 어린 동생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자 미미가 움찔했다.
아까 분명히 자신이 투왕이라는 것을 밝히자 누님이라고 부르며 기뻐했는데, 어른들 앞이라서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런 이유로 좀 더 누님의 위엄을 보여주어야 하나 고민할 때, 그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었다.
“저, 누, 누님.”
“네?”
“혹···. 그···. 바쁘지 않으시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부탁이요?”
갑자기 부탁할 것이 있다는 동생.
미미의 물음에 네 동생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런 부탁 실례가 되는 것은 알지만, 그, 저희는 이제 피를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인 누님의 동생이 아닙니까?”
“그, 그렇지요?”
“해서···. 저희 신법을 좀 그러니까···.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님에 비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저희 실력이 한참을 답보하고 있는지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누님의 말씀을 부모님의 말씀이라 믿고 따를 것이며···.”
갑자기 난데없이 신법을 보아달라는 동생들.
“네? 신법을요?”
“네, 일엽락(一葉落)이라고 하는데···.”
“아, 그 나뭇가지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듯이 하늘하늘 움직이는 그 신법 말이군요? 이렇게 하는 것이었나?”
아버지를 객잔에서 잡아 올 때 한번 목격한 신법이 생각난 미미.
미미가 신법을 생각나는 대로 펼치며 동생들에게 묻자 동생들이 반색했다.
“오오! 마, 맞습니다! 서, 설마 배우셨습니까?”
“아니, 아버지께서 펼치시는 것을 한번 보았긴 했는데···.”
“대, 대단하십니다. 누님!”
“어, 어떻게 한번 보고 그렇게!”
그 기대감 가득한 눈망울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미의 무공을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무공실력이 답보하니 한번 보고 도움을 달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동생들이 귀엽기도 했으니까.
“좋습니다.”
“““오오! 누, 누님 감사합니다!”””
기뻐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미미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고, 미미는 마음속으로 ‘아! 이런 것이 가족인가 보구나’라고 생각했다.
***
미미가 떠나고 이제 팔일.
소소, 청, 영영이는 마실을 나갔고, 나는 저녁을 먹기 전 객잔 이층 처소에서 창을 연 채, 저 멀리 붉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노을 지는 창을 바라보며 뭔가를 기다리는 이유.
그것은 모두 친정을 찾아간 미미를 기다리기 위한 것.
이제 미미가 슬슬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기에 이렇게 창을 열어두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내일모레가 당장 경연 날이기에, 잡아 온 따자셰를 손질해두려면 미미가 오늘 정도는 돌아와야 했던 것.
그렇게 창문 밖을 바라보며 미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우와아아아!”
“화조(火鳥)다 화조!”
판타지 세계도 아닌데 난데없이 무슨 불새가 나타났다는 사람들의 외침.
그 외침에 열린 창으로 하늘을 두리번거리자, 정말 사람들의 말대로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불은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새가 내 쪽으로 점점 가까워져 오더니 내 품으로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어? 어어어어어···.”
갑자기 날아드는 새에 놀란것도 잠깐.
귓가에 들려오는 듣고 싶었던 목소리.
미미의 목소리였다.
“낭군님!”
“미미?”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품 안에 안겨 있는 미미의 모습을 확인하자, 중원인들이 좋아하는 붉고 치렁치렁한 비단옷을 입고, 팔과 손가락에 금은 장식을 낀 미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까마귀 같은 모습으로 사라졌던 미미가 공작새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
“미미,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아무리 봐도 어디서 크게 한탕하고 온 것으로 보이는 미미.
당황한 목소리로 묻자 미미가 자기를 한번 슬쩍 둘러보더니 물어왔다.
“이, 이상한가요? 어머니께서 자꾸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어머니?”
“아! 낭군님. 모용세가에 갔는데, 좋으신 어머님과 귀여운 동생들이 넷이나 있지 않겠어요? 어머니께서 비단옷도 해주시고, 금은보석도 내어주셨어요. 무거워서 못 들고 가는 것은 나중에 복주의 류가반점으로 보내준다고 하셨어요.”
“그, 그렇소?”
한탕하고 온 것은 맞는데 장소가 다행스럽게 본가라는 이야기.
설마 어디서 크게 한탕하고 온 것은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것이 본가라면 다행이었다.
‘아, 본가에서 한탕하고 온 것이면 괜찮지. 그럼. 딸이 친정 가면 원래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것이니까.’
원래 본가에 가면 냉장고까지 탈탈 털어오는 것이 국룰이니 말이다.
‘괜한 걱정이었나?’
미미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혹시라도 텃세에 밀려 쭈구리가될까 걱정했더니 생각보다 만남이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다행이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늦었소? 닷새면 다녀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오지 않아 걱정했소.”
반가운 것은 반가운 것이고 미미의 속도면 닷새면 다녀오리라 생각했던 거리이기에 의문을 띄우자 미미가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가보니까. 양청호라는 곳이 없어 가문의 무사들이 좀 고생했다고 해요.”
“없단 말이오?”
“예, 양청호가 아니라 양성호(楊城湖)가 있어서 그곳에서 게를 잡아 왔는데, 그곳이 맞을까요?”
‘아, 지명이 지금과 달랐던 모양이구나.’
시대마다 지명은 차이가 있으니 아마도 송 시대에 양청호의 이름이 양성호인 느낌.
미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오. 고생했소. 미안하오. 미미.”
“아니에요. 그럼 다행입니다. 아차. 짐을 내려두어야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낭군님.”
미미가 그제야 등에 멘 등짐을 내려두고, 그 등에 지었던 대나무 상자를 확인하자, 안에는 끈으로 귀갑묶기를 당한 게들이 일렬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 한 마리를 꺼내 껍질과 크기 그리고 상태를 확인하자, 내가 알고있던 양청호 따자셰가 맞았다.
전생에 이정도 크기는 흔하지 않았지만, 마치 꽃게만큼 큰 따자셰들.
입에서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 올리는 녀석들이 대나무 상자에 한가득 담겨 있었던 것.
“어때요. 맞나요?”
“맞소. 아주 잘했소.”
고생한 미미를 한번 꼭 안아주고, 이제 부엌을 빌려 이 녀석들을 손질해야겠다 생각하려 하는데 품 안에서 미미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 그런데 낭군님.”
“왜 부르시오. 미미?”
“그 게를 잡으러 나갔던 가문의 무사들이 그러는데요. 게를 잡다가 호수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들었다는데, 이 게는 가을에 가장 맛있다던데 괜찮을까요?”
약간 걱정스러운 미미의 목소리.
미미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분명 가을이 가장 맛있을 때가 맞으나, 지금도 그에 못지않게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미미는 낭군님을 믿으니까요.”
미미의 말대로 참게 종류인 따자셰가 맛있는 것은 산란 직전의 가을.
알이 꽉꽉 들어찬 참게이니 맛있을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그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나에게는 알이 꽉 찬 그때보다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느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 그러면 게 손질 한번 해볼까? 구양수 딱 기다리쇼. 내가 제사상에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극상의 게 맛을 선보여줄 테니.’
이제 따자셰가 도착했으니 내 우승은 당연히 확정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