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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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달려오느라 지친 미미를 일단 향수행에 안내해주고 바로 저자로 향했다.
미미가 가져온 게를 이틀 후 아침 일찍 벌어질 경연에 쓰려면 반드시 미리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러자면 꼭 필요한 재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본 요리도구와 몇 가지 향신료들은 여행에 항상 지참하고 다니는 급에 실려있었지만, 게를 미리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재료는 이곳에서 구해야 했던 것.
지금 이 시기에 따자셰를 사용하려면 그것이 꼭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있겠지? 없으면 좀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애들이랑 놀지만 말고 미리 좀 알아볼 것을.’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미미의 말에 생각나 버린 추가재료.
뭐 그것이 없으면 요리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더 풍미를 끌어올리려면 그것이 꼭 필요했고, 혹시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저자를 헤매길 잠깐.
원하던 육전(肉廛)을 찾을 수 있었다.
“어서오슈. 뭘 드릴까?”
육전 앞에 다다르자 물어오는 주인장의 목소리.
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소기름을 좀 구할 수 있습니까?”
“응? 소고기가 아니라 소기름?”
“예, 소의 기름만 좀 필요합니다. 두 근정도.”
내가 찾던 것은 소의 고기가 아니라 기름.
더군다나 복주라면 포형님께서 발급해주신 살우(殺牛) 면허가 있으니 상관없었지만, 국법으로 도축이 금지된 상태에서 소의 부산물을 구할 수 있을까 좀 걱정이 되었던 것.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杞憂)였던지 주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구양문충공의 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라 잠시 소의 도축이 허용되어 좋은 소고기가 들어왔소. 그런데 기름만 가져가면 돈을 좀 더 내야 하니 그건 아시오.”
이 시대는 고기보다 지방을 좀 더 귀하고 좋은 부위로 치기에 지방만 잘라가려면 돈을 좀 더 내야 한다는 주인.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돈 조금 더 내는 것이야 당연히 상관없었던 것.
“알겠소.”
“기름이 맛있긴 해도 또 기름만 가져가는 손님은 처음일세.”
주인은 어디선가 꺼내 온 소고기에서 기름만을 떼어내. 두 근을 만들어서 내게 내밀었다.
“자, 여기 있수, 철전 스무 개만 주시오.”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품속에서 전낭을 꺼내 철전 스무 개를 세어 주인에게 내밀 때였다.
-턱.
누군가 내 손목을 잡아채며 소리쳤다.
“귀(貴)!”
“어이쿠 깜짝이야!”
“아이쿠!”
화들짝 놀란 나와 육전의 주인.
놀란 얼굴로 내 손목을 붙들고 있는 앙증맞은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영영이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에는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영영이의 행동에 어색해하는 청이와 가련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가가, 뭘 사러 나오셨으면 저를 데려가셨어야죠.”
“노공, 뭔가를 사러 나오셨습니까?”
“스승님, 여기는 어쩐 일로?”
뭘 사려면 자기를 데려가야지. 왜 혼자 나와서 이러냐는 영영이의 질문과 무엇을 사러 나왔냐는 청이의 질문.
두 질문의 대답으로 미미가 도착한 사실을 알렸다.
“아, 미미가 도착해. 게를 손질할 재료를 사려고 나왔소. 소기름이 좀 필요해서 말이지.”
“미미 언니가 왔어요?”
“미미 언니가 돌아오셨군요?”
“그래, 좀 전에 돌아와 향수행에 데려다주었단다. 영영아.”
이후의 과정은 영영이와 주인의 잠시 엎치락뒤치락하는 흥정이 이어진 것이 수순.
돌아가는 길에 영영이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아주 강적이었어요. 저를 상대로 철전 두 개밖에 깎아주지 않다니. 그런데 가가 소기름은 뭐 하러 사셨어요? 기름이 맛있어도 고기랑 같이 있어야 맛있지 않나?”
영영이는 내가 왜 소기름만 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럼 또 소기름을 드실 분을 알려줘야 하는 법.
영영이에게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우리가 먹을 게 아니라서 그렇구나.”
“그럼 누가 먹는데요? 손님이 오셨나?”
“그야···.”
“그야?”
“당연히 게가 먹어야지.”
“네? 게가? 그걸 왜 게가 먹어요? 아깝게?”
게가 먹는 다는 말에 영영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객잔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주인에게 큰 토기를 빌려 그 안에 물을 살짝 채우고, 귀갑 묶기로 포박되어있는 게 녀석들을 그 안에 풀어주는 일.
게를 준비하는 것을 돕기 위해 따라온 하나뿐인 제자 가련이에게 게를 풀어주며, 좋은 게를 고르는 방법에 관해서 설명했다.
대갑게에 대해서 가르치기 마침 아주 좋은 기회였던 것.
“좋은 게를 고르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잘 듣거라. 가련아.”
“네, 스승님.”
“우선 등은 파랗고 배는 하얀 대갑게가 최고란다. 게는 저 호수 밑바닥에 사는 생물이기에 좋은 곳에서 사는 대갑게만이 푸른 등과 하얀 배를 가질 수 있단다.”
“푸른 등, 하얀 배.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눌러보았을 때 단단하고 통통한 것이 좋으며, 크기가 같은 게는 더 무거울수록 살이 더 꽉 차 있단다.“
”아, 그럼, 여기 이 녀석은 속이 꽉 찬 것이 아니군요. 말랑말랑합니다.“
”그래, 잘 확인했구나.“
그렇게 가련이에게 좋은 게를 고르는 법을 설명하며, 게들을 다 풀어주고.
곧바로 토기 안에 소기름을 몽땅 털어 넣었다.
”이 녀석들 잘 먹거라.“
그리고 게에게 왜 소기름을 먹이는지도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배가 고픈 게들에게 소기름을 먹이는 것이란다.”
“스승님, 그런데 소기름을 왜 게에게 먹이는 것이죠?”
원래 게에게 소기름을 먹이는 것은 중원식 방법은 아니다.
이 게에게 소기름을 먹이는 방법은 원래 전생 한국에서 참게장을 담을 때 쓰는 전통적인 방법.
게에게 진한 소기름을 먹여 게장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방법인데, 내가 이 방법을 사용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 이 대갑게의 맛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계절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하지만 정말로 가을 게가 가장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란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게가 맛있는 이유는 장 때문인데······”
보통 사람들은 가을 참게를 최고로 친다.
산란하기 직전의 알이 꽉 찬 암참게를 최고로 치는 것.
이건 전생이나 현생이나 거의 공통적인 의견인데, 하지만 나 같은 전문가에게 정말 그때 참게가 가장 맛있느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게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누가 뭐래도 게의 장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녹진한 장의 맛은 게의 풍미 중에 가장 뛰어난 부분이고, 게의 맛이 가장 농축되어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 게의 장이라는 것은 장이 아니고, 전체적인 면적으로 따져보면 게의 장은 게의 배 속에 있는 장기중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게의 장이라는 그 부분의 정확한 명칭은 간췌장(hepatopancreas).
간과 이자의 기능을 함께 하는 절지동물의 소화샘이라고 보면 되는데, 게의 간에 해당하고 게가 영양분을 저장하고 흡수하는 기관으로 쓰인다.
그렇기에 그 부분이 가장 풍미가 뛰어나고 맛이 있는 것.
영양분이 듬뿍 저장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가을에 참게의 이 간췌장을 잘 살펴보면 주황색의 부분과 붉은색의 부분으로 나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주황색은 간췌장, 붉은색은 알이 아니라 암게의 난소이다.
이것은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간췌장의 영양분이 번식을 위해 난소로 옮겨가며 난소가 그 크기를 키우기 때문인데, 그렇기에 풍미가 뛰어난 간췌장의 영양분이 대부분 난소로 이동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난소와 간췌장을 동시에 먹는 가을에는 간췌장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는 것.
그렇다면 언제 간췌장, 그러니까 눅진한 진짜 장의 맛을 볼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바로 지금.
바로 이 봄!
유월쯤 아직 난소가 발달하지 않은 암게의 배를 열었을 때가, 겨우내 농축된 간췌장의 진한 맛과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다만 게 자체가 그리 지방이 풍부하지 않고 간췌장을 포함하더라도 게 자체가 워낙 담백한 맛이기에, 진한 지방의 맛을 추가해 좀 더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사전 작업으로 소고기 기름을 먹인 것.
게의 짧은 장 안에 소고기 기름을 꽉 채워, 좀 더 서로가 시너지를 주고받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런 이유로 먹인 것이지. 알겠느냐?”
“···어, 그, 그러니까··· 아무튼 좀 더 맛있어 지, 진다는 말씀인 것이지요?”
긴 설명이 끝나자 당황한 가련이.
그 모습에 고개가 갸웃했다.
‘아니 이유는 그게 맞는데···. 혹시 가련이 먼 선조 중에 팽 씨가 있나?’
뭐 찰떡같은 설명을 개떡같이 알아들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내용은 이해한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아, 알겠습니다. 스승님.”
설명을 끝내고 항아리 안을 확인하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게들은 항아리 안으로 떨어진 지방을 마구 뜯어 먹기 시작했다.
이제 게들은 이틀 동안 소기름을 충분히 뜯어 먹고 장을 소기름으로 가득 채울 것이고, 그런 과정이 끝나면 좀 더 진한 풍미를 지닐 터.
대나무 채반을 뚜껑처럼 덮어두고 바로 객잔의 내 객실로 향했다.
가련이와 게를 손질하고 올 테니, 셋에게 미리 객실로 식사를 시켜두라 했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식당에서 먹지만 오늘은 미미가 돌아와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기에 따로 조용한 자리를 마련한 것.
아무래도 가문의 이름이나 국공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것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련이와 객실에 도착하자 영영이와 미미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가가, 어서 오세요.”
“낭군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가련이도 이쪽에 앉거라.”
“그래, 고맙구나. 영영아.”
“감사합니다. 백부인 아, 아니고 모용 부인.”
나와 가련이까지 자리를 잡자 시작된 식사.
식탁에 차려진 오리구이와 만두 따듯한 갱과 몇 가지 채소볶음들.
그리고 거기에 미미가 가지고 온 장신구와 보석들이 반찬처럼 식탁에 올랐다.
식탁 한편에 자리 잡은 금과 은으로 장식된 보석들.
등롱의 빛을 밭아 그것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언니, 모용가에서 이걸 다 보내주셨단 말입니까?”
화려한 보석의 모습에 놀란 청이.
“응. 청이도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요. 제가 그동안 여러 가지 받기만 해서 미안해 나눠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간 청이가 챙겨준 것을 받기만 해 미안했던지 미미가 보석이나 장신구를 나눠준다고 말했지만, 머리 장식 외에는 별로 다른 장신구를 하지 않았던 청이는 그 제안을 거절했고, 그러자 미미의 시선은 영영이에게로 향했다.
“그러면 영영이는 다른 거 필요 없나요?”
“냠냠. 네? 저요? 저는 암기나 먹을 것이 더 좋아요. 보석 가지고 있으면 잃어버릴까 봐 불편하기도 하고.”
“나누어주려고 잔뜩 받아왔는데···.”
미미가 좀 서운해했지만, 무가의 여인들이라서 장신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
그렇게 식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침상 머리맡에 며칠 전에 뇌물로 선물하려다가 빠꾸 당했던 감귤 바구니가 시야야 들어왔다.
아직 꽤 많이 남아있는 오렌지.
생각보다 영영이가 많이 못 먹은 것 같기에 물었다.
“응? 아직 감귤이 남았구나.”
그러자 갑자기 이를 가리고 인상을 쓰는 영영이.
산도가 높은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 이가 시린 모양이었다.
“아, 그거. 맛있긴 한데 이빨이 시려서 못 먹겠어요. 가가.”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무리 맛있는 과일이라도 신 과일을 많이 먹으면 이가 시린 법.
영영이도 이가 시린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때 친정에서 돌아온 미미가 자신이 가져온 게를 어찌 요리할지 궁금한지 나에게 물어왔다.
“그나저나 낭군님. 어떤 요리를 하실지 정해는 두셨습니까?”
아마 다들 그것이 궁금했던지 쏠리는 시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 인자한 성품이지만, 내 가져간 선물을 받지 않고 체면을 상하게 했으니, 그것이 누구라도 되돌려 주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내 게 요리는 저것으로 할 작정이요.”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움직이는 여인들의 시선.
그 끝에 놓인 감귤 바구니를 보고 영영이가 다시 이가 시린지 인상을 쓰며 당황했다.
“응? 저, 저것요?”
‘딱 대라! 오렌지 그대로 돌려준다.’
내 인생에 빠꾸는 없으니까 저 오렌지 다시 돌려줄 예정이었다.
이제는 입에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