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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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시작하시오!”
북소리가 끝나고 구양발의 외침과 함께 시작된 요리.
좀 전까지 다들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지만, 요리가 시작되자마자 역시나 다들 요리사라는 본분을 잊지 않고 각자의 요리에 달려드는 요리사들.
나도 재빨리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집중 안 하면 청이랑 영영이, 미미에게 혼날 것 같아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말이다.
‘그렇지만 또 어떻게 혼날지 궁금하기는 해···. 셋에게 둘러싸여 잘못했다고 할 때까지 이렇고 저런 일을 당하면 이게 또···. 아니지, 아니지. 십자 형님! 제 마음의 음란 마귀를 물리쳐 주소서! 이럴 때가 아니야 집중. 집중.’
갑자기 음란 마귀가 끼어들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지만, 신앙심으로 이겨내고 요리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불부터.’
요리를 돕기 위해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하인들에게 부탁했다.
“화구 두 개에 불을 좀 붙여주시오.”
“알겠습니다. 요리사님.”
그렇게 하인들이 화구에 불을 올리는 것을 확인하고 물을 끓여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주재료 중 하나인 오렌지의 뚜껑을 따기로 했다.
오늘 요리의 주재료는 게와 오렌지.
오늘 할 요리의 이름이 해양등(蟹酿橙)이기 때문이다.
해양등(蟹酿橙).
‘오렌지 속을 채운 게’, ‘오렌지 항아리 게’라는 요리인데, 이 요리는 전생에도 유명했다.
이 요리가 유명한 이유는 두 가지 특이한 사실 때문인데, 한가지는 오렌지라는 과일을 사용한다는 것과 이 요리의 기원이 이 송나라 때이기 때문.
요리법이 현대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전통 있는 요리이며, 또 그 요리의 모습과 재료가 특이해 후대에도 유명해진 요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송 시대라고 해도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북송 시대는 아니고, 이 북송이 망하고 남송 시대가 열린 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남쪽이 좀 더 개발되어 바다와 따듯한 남쪽의 오렌지 같은 것들이 더욱 저렴해지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니 북송에서 열리는 게 요리 경연이라는 말에 이것을 택한 것이다.
수많은 게 요리 중에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을 요리였던 것.
‘남송에서도 유명했던 요리니 이 시대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지, 또 빠꾸 맞은 오렌지를 되돌려 준다는 의미도 있고 말이야.’
-서걱.
칼끝으로 오렌지의 뚜껑을 지그재그로 예쁘게 따냈다.
이 해양등은 오렌지를 껍질부터 과육 그리고 즙까지 알뜰살뜰하게 전부 이용하는 요리.
그 껍질마저도 그릇으로 사용하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해양등은 서양 요리로 치면 빠네 스파게티 느낌이랄까?
빠네 스파게티가 빠네 바게트 안에 스파게티를 넣어 서빙 하는 요리라면, 이 해양등은 오렌지 껍질 안에 게 요리를 채워 서빙 하는 요리인 것.
그러니 오렌지의 뚜껑을 딸 때 아주 예쁘게 따야 하는 것이다.
그릇이 예뻐야 모양이 잘 나오기 때문.
-서걱서걱.
톱날 모양으로 절단면을 예쁘게 만들고, 숟가락을 이용해 오렌지의 과육을 퍼냈다.
물론 과육을 다 퍼내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과육은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핵심.
그래야 조리과정에서 오렌지가 뭉개지지 않고, 남아있는 오렌지의 과육이 한 번 더 게살을 상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남겨두는 과육의 비율이 아주 중요하지. 잘못하면 오렌지의 모양이 무너져 버리니까.’
그렇게 과육 퍼내고 오렌지의 겉껍질은 좀 더 칼로 모양을 내 문신을 새겨주기로 했다.
-슥슥.
칼이 움직이고 오렌지의 겉껍질에 새겨지는 무늬.
게 요리이기 때문에 오렌지 껍질에 게 무늬를 새겨주기로 했다.
그냥 오렌지 껍질을 그대로 내기에는 너무 밋밋했던 것.
그렇게 뚜껑과 오렌지의 옆면을 게 무늬로 수놓고, 과육은 칼로 다져 곱고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과정을 이어가려 할 때였다.
“다 끝났소!”
요리가 벌써 다 끝났다는 누군가의 외침.
‘뭐?’
잠깐 당황했으나 피식 웃었다.
안 봐도 어떤 요리일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요리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피식 웃는 느낌.
그래도 내 예상을 확인하기 위해 요리를 다 만들었다는 사람 쪽을 바라봤다.
‘저 남자는···.’
목소리의 주인은 남자.
그리고 가장 왼쪽에서 들려왔으니 아마도 내 기억이 맞는다면, 동경 태화각에서 온 금적삼이라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전생으로 치면 서울에서 잘 나가는 호텔 수석요리사 정도의 위치랄까?
그리고 내 생각대로 역시나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세수해(洗手蟹).
이정도 짧은 시간에 나올 수 있는 요리는 그 정도뿐이니까 말이다.
살아있는 게의 살을 발라 다진 후, 마늘과 식초, 화초와 소금으로 무쳐 먹는 일종의 양념게장.
저 요리를 시키고 손을 씻고 오면 그사이에 나온다고 해서 세수해.
송나라 미식가들이 즐겨 먹는 요리이니 여러 가지 어레인지 버전이 많은 요리인데, 나오는 속도와 모양으로 보아 그것이 맞는 것 같았다.
당가에서 그 사기꾼놈과 대결을 펼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요리.
지금의 영영이와의 관계가 시작되게 된 그런 요리라고나 할까?
영영이도 그리 생각하는지 전음이 들려왔다.
[가가, 세수해에요. 예전 생각이 나네요. 그때 그놈 당문에서 어찌 되었을까요?]
‘뭐 어찌 되누. 영영이가 좋아하는 독수에 녹아내렸겠지.’
사기꾼의 최후를 생각할 때, 몰려든 호사가들도 나와 의견이 비슷한지 요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려왔다.
“세수해군!”
“역시 첫 요리는 세수해인가?”
“작년에도 제일 첫 요리는 세수해였지?”
“하긴 저 속도를 따라올 요리는 없을 테지.”
게를 눌러 살을 짜낸 후 양념에 버무려 먹는 양념게장.
그가 자기 요리를 들고 요리를 심사하는 구양발과 그의 네 형제 그리고 소동파의 앞으로 가져갔다.
“완성되었습니다. 한번 맛보시지요.”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여섯의 심사위원에게 요리를 내민 금적삼.
여섯이 요리를 덜어 그 요리를 맛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요리를 맛본 소동파와 구양발이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했다.
“흐음···. 맛있구나. 신선한 게의 살이 아주 달구나.”
“태화각의 비법 세수해로군.”
“자네 예전에 먹어보았나?”
“나야 동경에 있으니 몇 번 먹어보았지. 포도주로 살짝 버무린 달고 상큼한 맛이 특징이지.”
“음···. 확실히···. 포주의 맛이 느껴진다 생각했더니 그것이었구만. 그런데 뭔가 하나 더있는데? 이 향긋함은?”
송 시대의 대표 주류가 지금은 월주로 불리는 소흥주 같은 황주라 오해하기 쉽지만, 송 시대 대표 주류는 포도주.
사대부 가문들은 보통 술을 마신다고 하면 고급술인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 관영주창에서 국영사업으로 만드는 술 중에 가장 비싸고 귀한 술은 포도주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수도인 동경 태화각은 그런 이유로 세수해의 맛을 내는데 포도주를 사용한 모양이었다.
고급술로 향과 맛을 끌어올린 양념게장이라는 이미지 정도의 느낌.
원래 약간의 식초와 소흥주로 향과 풍미를 살리는데, 그것을 포도주로 대체한 느낌이랄까?
맛이 나쁘지 않은지 한참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려온 구양발의 물음에 소동파가 그 답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복숭아꽃 꿀을 넣어 아주 향긋하고 달콤하지.”
“보, 복숭아?”
‘자 그러면 하나 나가리.’
첫 요리를 낸 태화각 주인이라는 금적삼이란 자는 아마도 곧 짐을 싸게 될 터.
신경을 끄고 요리를 서두르기로 했다.
‘어디 보자. 오렌지 준비는 끝났고. 그러면 이제 게를 준비할 차례군.’
바구니에서 게를 꺼내 등딱지를 바로 따냈다.
이미 세척은 객잔에서 해온 상태.
게의 배갑을 젖히고 뚜껑을 따내자 드러나는 녹진한 게의 장.
오렌지색의 게 장이 윤기를 머금은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색도 좋고 완벽하군.’
원래 이 해양등의 조리법은 게를 한번 쪄내 그 살을 발라내 요리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내부의 게장과 살에서 육즙이 빠져나갈 수 있는 법.
나는 게장의 풍미와 살의 맛을 좀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 조금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게의 살을 짜내 직접 조리하는 것.
-탕!
껍질을 따낸 게를 반으로 가르고, 곧바로 그릇에 게의 장과 고기를 짜냈다.
쪄낸 게라면 껍질을 부숴 살을 발라내야 하지만, 살아있는 게는 이렇게 반으로 가르고 단면을 짜내면 게살이 치약처럼 잘린 단면으로 흘러나오니까 말이다.
그렇게 소고기의 기름을 잔뜩 먹은 게의 장과 살을 짜내고 있을 때였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동파의 목소리.
“금적삼, 미안하네만 자네는 불통이네.”
“예!? 그, 무슨? 이 경연에 통이나 불통은 없지 않았습니까?”
이 경연은 제일 맛있는 요리를 뽑아 제사상에 올리는 요리.
그렇기에 통이나 불통 같은 합격 불합격은 없는 것이기에 나중에 장원인 자만 발표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신이 불통인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
불통이라는 말에 다른 요리사들도 궁금했던지 그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구양발의 목소리.
그가 타이르듯 금적삼을 향해 말했다.
“자네 경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구만. 그래서 불통이네.”
“모른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대체 자기가 뭘 모른다는 것이냐는 황당한 목소리.
하지만 정말 뭘 모르는 놈이었다.
좋게 이야기해 줄 때 물러나야 하는데 도리어 저러면 경을 칠 것인데···.
지금 사람들이 많으니 참고 있지만 구양발 저 양반 화가 났을 텐데 말이다.
“자네 이 세수해에 든 것이 정녕 복숭아 꿀이 맞단 말인가?”
“맞습니다. 봄에 핀 복숭아꽃을 꿀에 재워 만든 것이지요. 포도와 복숭아의 두 가지 향이 어우러진 극상의 맛. 그것이 저희 태화각의 세수해입니다!”
자기 요리에 자부심 있는 모습.
그럴 수 있었다.
자기가 자기 실력으로 자기 가게를 연 사람들의 특징.
자부심과 높은 콧대.
하지만 자기가 자기 실력에 매몰되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모르는 느낌이었다.
‘저쉐키 저거 생각 없이 가게 홍보하러 왔구만.’
당당하게 자기 가게를 홍보하는 녀석.
하지만 저자는 이제 동경의 가게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 가게가 쫄딱 망해버릴 것이 분명했던 것.
“자네. 이 경연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의 가게 홍보가 끝나자 꾹 참아내는 것 같은 구양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의 물음에 금적삼이라는 자가 대답했다.
“뭐, 그야 구양문충공의 제에 올릴, 구양문충공께서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셨던 게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걸 아는 놈이 그래?’
마음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줄 때 벼락같이 들려오는 구양발의 외침.
분노한 그의 목소리가 쩌렁 하며 광장을 울렸다.
“그걸 아는 자가 그러는가! 복숭아가 무엇인가! 귀신과 악을 쫓는 과일! 그런 복숭아 꽃꿀이 들어간 요리를 제에 올리란 말인가!?”
‘쯧. 쯧쯧···.’
구양발이 자기 아버지 제사를 끔찍이 생각해 이런 경연도 여는 것인데, 아버지의 귀신을 독살하는 요리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원래 복숭아란 신선이 먹는 과일.
그렇기에 신령스러운 나무여서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는 것인데.
복숭아 꽃꿀이라니.
정말 한심한 놈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저건 유교적으로 보면 일종의 패륜 요리니까 말이다.
“그, 그건···.”
당황한 금적삼의 목소리.
세인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허허, 제에 올릴 요리에 복숭아라니. 조상을 독살하는 요리가 아닌가?”
“패륜이네!”
“태화각의 금적삼 정말 생각 없는 자가 아닌가!?”
시뻘게진 얼굴의 금적삼.
요리를 내밀며 당당한 얼굴을 하던 때와는 다르게 그가 부끄러운 듯 쭈그러들었다.
그리고 마치 도망치듯 자기 물건을 챙겨 사람들을 헤치고 사라졌다.
당연한 결말.
한심한 요리사의 최후였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나가 사라져버렸네? 이거 가만 있어도 우승하는 거 아니야?’
“자, 그러면 요리 다시 이어서 해볼까?”
이제 남은 경쟁상대는 다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