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화 (322/344)

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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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끓어오르는 냄비 위로 찜기를 올리고 다른 화구에 바로 웍을 올렸다. 

그리고 바짝 달궈진 웍 위로 약간의 소 비계를 던져넣었다. 

-치이이익. 

잔뜩 달궈진 웍 위로 지방이 던져지자 소의 지방이 녹으며 익숙하고 고소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거기에 기름이 뽑혀 나오는 맛있는 소리는 덤이었다. 

“오! 시, 식룡이 뭔가를 하나 보오!” 

“오오! 드디어!” 

“대체 뭘까? 궁금하오!” 

그리고 원치 않지만 뒤따르는 호사가들의 기대하는 목소리. 

살짝 인상을 쓰며 생강을 채도의 옆면으로 후려쳤다. 

-탕! 

그러자 다시 끌린 어그로. 

아까 게를 자를 때는 아무 소리도 없어 그런지 끌리지 않던 어그로가 갑자기 다시 끌려버린 것. 

놀란 호사가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 시, 식룡의 칼에 용이 한 마리 내려앉아 있다!” 

“허억! 대단하오! 채도에 룡이 내려앉아 있다니!” 

“자신의 별호처럼 용을 채도에 올리다니 명불허전!” 

소소가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준 나의 채도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영영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 저것은! 식! 룡! 도!” 

“식룡도?” 

“와아···. 저 먼 상주의 ‘막곡 철장’이 만들었다는 식룡도!” 

“막곡이라면 무인들의 검만 만든다는 대단한 자가 아닌가!” 

‘제발 그만 날 죽여줘···.’ 

몸을 부들부들 떨며 깨진 생강을 바로 웍에 던져넣었다. 

-치익. 

생강을 넣는 이유는 소의 기름과 게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비린내와 잡내를 잡기 위함. 

원래 대갑게는 비린내가 없는 것이 특징이기에 게의 비린내를 잡기보다는 소기름에 있는 잡내를 잡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강의 향을 기름에 듬뿍 먹여주고, 아까 분리해두었던 게살과 게장을 바로 웍에 때려 부었다. 

-추와와와와와. 

강한 화력과 기름에 거의 튀겨지듯 순식간에 익어버리는 게살. 

게살과 눅진한 게장의 향이 곧바로 코끝에 흘러들었다. 

‘흐응···. 향 좋고.’ 

이어서 곧바로 소흥주. 

-치이이익. 

-화악! 

웍을 기울이자 증발하는 소흥주의 알콜과 소기름에 불이 붙어 불 쇼가 시작되었다. 

혹시 모를 잡내를 한 번 더 날려주는 과정. 

“화룡(火龍)이다!” 

“오오! 식룡의 냄비가 불을 토하는구나!” 

역시나 그냥 보아도 어그로가 끌리는 기술인데, 화려한 불 쇼에 사람들이 감탄을 내질렀다. 

‘그래, 익숙해지자. 아내도 하나에서 둘이 될 때 힘들었지만. 셋, 넷이 될 때는 보다 익숙했잖아?’ 

이제 거의 포기한 마음으로 다음 과정을 이어갔다. 

-탕! 

후려쳐 깨트린 후추를 던져넣고. 

아까 덜어두었던 오렌지의 즙과 다진 과육을 웍에 부었다. 

향긋한 게살의 향과 거기에 어우러진 오렌지의 상큼함. 

마지막으로 식초를 넣고 소금을 살짝 쳐 간을 마쳤다. 

그리고 최후의 재료로 전분. 

묽은 죽 같은 상태의 게살에 점성을 더하기 위한 것. 

그렇게 마지막 과정을 거치고 웍의 내용물이 끓어오르면 일차과정 끝. 

‘자, 이제 슬슬 담아볼까?’ 

아까 잘라둔 오렌지 껍질을 꺼내와 그 안에 게살죽을 잔뜩 채웠다. 

잘린 오렌지 껍질 속의 오렌지 게살죽. 

그것이 바로 나의 요리 해양등(蟹酿橙).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준비가 끝난 오렌지를 종이에 감싸 대나무 채반에 넣어 찜기에 올렸다. 

이제 반 다경 정도 쪄낸 후 서빙 하면 될 터. 

오렌지가 쪄지는 것을 기다리는 그사이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동경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출장요리사인 촌연주사(村宴廚師) 여자였다. 

잔치 요리 전문이라 그런지, 여자의 그릇에 담긴 것은 화려하게 플레이팅 된 게 요리. 

‘응? 저건···.’ 

그러나 아까와 마찬가지로 저것도 한 번쯤 본 적 있는 요리였다. 

술지게미로 담은 게장 말이다. 

‘미리 만들어왔는데 먹기 좋게 손질만 해서 낸 것 같구만.’ 

뚜껑을 따고 내장을 제거해 먹기 좋게 손질된 게장. 

중장취해(中庄醉蟹)의 원형 같은 요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심사대로 향했다. 

전생의 현대에는 게장이 양념과 간장이라는 형태로 이분화되었지만, 실제 간장게장은 종류가 다양했다. 

조선시대에는 술로 남는 주해, 식초로 절이는 추장해, 소금으로 절이는 염탕해, 거기에 술지게미, 간장까지 아주 다양한 종류로 담가 먹었던 것. 

그건 여기 중원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 시대에는 냉장고 같은 것이 없으니 금방 상하는 해산물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염장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발전한 요리니까 말이다. 

여자가 자기 요리를 들고 구양발 앞에 도착하자, 구양발이 여자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그래, 이 요리는 무엇인지 우리에게 설명해보게.” 

그러자 자기의 요리에 관해 설명하는 여자. 

“향긋한 술지게미에 사흘을 담가 그 향을 게살에 더한 요리입니다. 게는 저 황하의 대갑해를 사용했지만, 흙내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장을 깨끗하게 손질했으니, 비리지도 않고 향긋한 술지게미의 향이 더해진 달고 단 게살을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맛보시지요.” 

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 그녀가 가져온 것은 술지게미에 담근 게장. 

그녀도 동경에서 왔다고 했으니, 아마 자기가 익숙한 황하의 참게를 사용한 모양이었다.

원래 참게라는 놈들이 강만 있으면 거슬러 올라가 사는 놈들이니까 말이다. 

‘아, 내장은 그래서 뺀 것이구만.’ 

그리고 여자의 설명에 어째서 이 시대 게 요리들에 장이 빠져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시대는 게의 장을 굳이 먹지 않는 듯했지만, 그건 아마 수도가 개봉인 이유도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민물에서 잡은 수산물은 아무래도 냄새가 좀 나는 편이다. 

손질을 잘해도 특유의 냄새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닌 흙내. 

이 흙내가 심하기에 민물에서 잡은 수산물 요리에는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 편인데, 개봉은 송나라의 수도이자 문화 발전의 중심지. 

그러니 요리 문화도 자연스레 송나라 수도인 개봉에서 인기를 끌면 중원 전역으로 퍼지는 것인데, 문제는 이 개봉이 황하강을 끼고 있는 도시라는 것. 

황하가 무엇인가? 

진한 흙탕물을 머금은 강. 

원래 황하는 진흙탕이 흐르는 강이 아니다. 

원래는 아주 맑은 강이었으나 저 진시황이 만리장성 세운다고 주변 벌목으로 목초지와 산을 초토화하는 바람에, 비가 오면 주변의 작은 지류에서 토사가 강으로 유입되고, 초토화된 강변의 흙들이 강으로 유입되어 그렇게 변해 버린 것. 

아무튼 그런 이유로 황하강에는 민물고기의 흙내를 내게 하는 토사가 잔뜩 함유되어 있으니, 다른 곳보다 좀 더 흙내음이 진한 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게나 물고기의 손질을 좀 빡세게 하다 보니 저리 장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느낌이었던 것. 

민물고기 비린내의 원인은 흙 속에 있는 박테리아 때문인데, 이 시대에는 그걸 제거하는 방법을 모를 테니,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장과 아가미 따위를 제거하는 것이 일반적일 테니까 말이다. 

‘장이 있으면 평타는 쳤겠지만, 저건 나가리겠군.’ 

술지게미에 담근 게장이라면 평타는 칠 요리. 

물론 장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게장이라는 건 원래 장의 맛이 그 진한 맛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장이 빠지면 그건 앙꼬 없는 찐빵 붕어 빠진 붕어빵. 

‘아 붕어빵은 아니지.’ 

그렇게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그녀가 내민 요리에 손을 가져가는 심사위원 구양발과 소동파. 

곧이어 둘의 심사평이 들려왔다. 

“흐음. 술지게미에 담근 게장이라. 작년에도 이 요리가 나왔었지.” 

“그래, 그때도 괜찮았지만, 올해의 술지게미에 담근 게 요리도 맛있군. 요리사 혹시 뭐 특별한 비법이 있었나? 작년에 먹었던 맛과는 매우 다른데?” 

그러자 여 요리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질을 끝내고 혹시 비릴 수 있으니, 쪽파와 참기름을 살짝 둘러 비린내를 누르고 풍미를 좀 더 끌어올렸습니다.” 

“아아, 그래서 비리지 않고 고소했군?” 

“일단 잘 먹었네.” 

“그래, 일단 잘 먹었네.” 

소동파의 입에서 ‘일단 잘 먹었네’가 나왔으니 저건 내 생각대로 나가리.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 분명했다. 

소동파와 몇 번 식사하고 요리해주기도 했으니, 그의 반응 정도는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 

자칭 미식가라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 

약간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실제 확실하게 맛있다고 생각이 되지 않으면 생각을 잘 바꾸지 않고, 맛있다는 말에도 좀 짠 편.

그의 입에서 맛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니 나가리란 말. 

여자는 이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어르신들.” 

‘이정도면 무난하게 우승하겠어?’ 

하나둘 사라지는 경쟁자들.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촌연주사 출신 여자의 요리를 선보이는 순서가 끝나자, 곧바로 다시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다 끝났습니다.”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천에서 천류반점의 곽은청. 

대령숙수 딸급의 여자. 

뭐 선공이 흔하디흔한 것이니 대단한 것은 없지만, 여자는 소동파에 마음에 딱 드는 요리를 선보였다. 

다른 부분은 다 버리고 집게발만을 골라 손질해 튀겨, 탕초(糖醋)소스, 그러니까 새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려 내 온 것. 

‘집게발을 손질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도 않았으니 집게발만 손질해 온 모양이구만.’ 

동그란 접시 위에 꽃처럼 둘려진 집게발. 

그 위에 탕초 소스가 흠뻑 뿌려진 집게발 탕수육 느낌이랄까? 

곽은청이라는 여자가 접시를 들고 소동파와 구양발 앞으로 가 그것을 내려놓으며 설명했다. 

“가을에 가장 맛있는 대갑해가 아니라. 항상 맛있는 저 사천의 민물 게의 집게발만을 골라 손질해 튀긴 후. 식초와 사당으로 맛을 내어 준비해 보았습니다. 

물론 사천식으로 화초를 더해 매운맛을 살렸으니 입맛도 올라오는 맛있는 요리일 것입니다.” 

‘저건 좀 위험한데?’ 

제법 그럴듯한 요리. 

지금까지 나온 참가자들의 요리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흔하디흔한 녀석들이었다면, 저 대령숙수의 딸이라는 여자가 가져온 요리는 소동파가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그의 취향대로 집게발만을 골라 요리한 것도 있지만, 일단 튀겼으니까. 

원래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조금 위험할지도?’ 

그리고 역시나. 

소동파의 입에서 맛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오오! 이건 맛있군!” 

“확실히! 이건 정말 맛있군. 그런데 튀김의 옷이···. 독특하군.” 

‘허어···. 정말까지?’ 

정말 맛있다는 소리에 약간 호기심이 밀려올 때, 여자가 자기의 설명에 한마디를 추가했다. 

“나미(糯米)의 가루를 섞어 튀겨 아마 조금 쫄깃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헐···. 좀 치네?’ 

나미 가루라면 찹쌀가루. 

찹쌀 탕수육이라니. 

저건 확실히 좀 치는 느낌이었다. 

선공이 우리 형님 같은 그런 흔한 선공이 아니라 좀 잘 나가는 선공이었던 모양. 

‘나도 좀 더 센 거로 갈 걸 그랬나?’ 

좀 더 임팩트 있는 요리를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될 정도. 

이어서 나머지 참가자들의 요리가 차례로 내어졌지만, 곽은청이라는 여자의 요리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소동파가 다른 요리를 맛보면서도 남겨진 곽은청이라는 여자의 요리를 연신 하나씩 주워 먹고 있었던 것. 

반전이 필요했다. 

‘할 수 없지. 나는 그러면 요리와 함께 이빨로 간다!’ 

이제 남은 것은 나 혼자. 

찜기에 오렌지를 꺼내 접시에 예쁘게 올린 후.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요리가 끝났습니다! 바로 내어가겠습니다.” 

그러자 세인들의 외침도 따라붙었다. 

“식룡이 나온다!” 

“오오! 식룡의 요리가!” 

‘아···. 좀···.’ 

오렌지 게 요리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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