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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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의 오렌지가 육성어환처럼 동그랗게 들어앉아 있는 대나무 찜기.
그것을 들고 심사위원인 소동파와 구양발의 형제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척.
그리고 그 찜기를 식탁 한가운데 내려두자, 예전과는 다르게 내가 그래도 이름 좀 날리는 요리사라는 것을 알게 된 구양발이, 무안한지 목을 가다듬으며 물어왔다.
“크흠. 어, 어떤 요리인지 설명해보게.”
“알겠습니다. 어르신.”
얼른 대답하고 일단 첫 번째로 앞 접시 세팅.
여섯의 앞 접시를 구양발의 형제와 소동파의 앞에 빠르게 놓아두었다.
그리고 자리로 들어와 다소 과장되게 대나무 찜기 오픈.
뚜껑을 확 뽑아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푸화악.
뚜껑을 열자 솟아오르는 오렌지의 새콤달콤한 향기가 사방으로 흘러나갔고, 재빨리 심사위원들 사이를 오가며 오렌지를 그들 앞에 하나씩 서빙 했다.
그러자 역시나 생각했던 때로 심사위원들의 놀란 목소리가 이어졌다.
“응? 감귤!?”
“아니, 이건 감귤이 아닌가?”
“오! 그래, 이건 감귤 아닌가? 게 요리를 부탁했는데 감귤이라?”
찜기에서 나온 것이 난데없는 오렌지라는 사실에 심사위원들은 다들 조금씩 놀라는 얼굴이 되어버렸고, 그런 놀란 심사위원들에게 바로 설명 시작하려 할 때였다.
“이 요리는···.”
내 설명을 막아서는 소동파와 구양발의 놀랍다는 목소리.
“응? 이건!? 설마? 호오···. 패기롭구나.”
“허허···. 무림인들이 붙여준 식룡이라는 별호가 있다더니. 이리 패기로울 줄이야. 이래서 식룡인가?”
‘뭐지? 뭐가 패기롭다는 거지?’
갑자기 내 패기를 칭찬하는 둘.
내가 원래 한 패기 하긴 하지만 뭔가 타이밍이 이상했다.
난데없이 내 패기를 칭찬할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 때문에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은 아닌지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소동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귤의 껍질에 게의 그림을 그려 넣다니. 재주도 재주지만 이것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런 소동파의 말에 구경하던 호사가들의 놀란 외침이 이어졌다.
“감귤의 껍질에 게의 그림을!”
“그, 그것은!”
“허억! 호기롭구나! 호기로워!”
“역시 그래서 식룡인가!?”
‘뭔데? 이새키들아! 뭔지 나도 알려줘! 대체 뭐가 호기로운데!?’
자기들끼리 놀라며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할 때, 울려 퍼지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가 모여든 모든 사람을 향해 퍼져나갔다.
“식룡이 이번 경연의 장원은 자신이 될 것임을 모두 앞에 선언했다!”
‘뭐!? 이새키야 내, 내가 언제!?’
갑자기 내가 예고 홈런이라도 치겠다는 듯 우승 예고를 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목소리.
곧이어 들려온 청이의 전음에 이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의 원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노공, 멋있습니다. 제가 노공의 부인이라는 것에 가슴이 떨릴 정도로 멋있습니다. 아···. 나만의 야서(野鼠)···. 게의 그림이라면 갑(甲)을 의미하는 것. 갑이라면 과거(科擧)의 장원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원을 하시겠다고 당당히 알리시다니···.]
뭔가 뻑이 가버린 목소리.
옆에 있었으면 ‘헤으응’ 하면서 곧바로 달려들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물론 청이만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둘의 목소리도 이어졌으니까.
[가가! 정말 너무 대단하세요! 너희들은 모두 내 아래다 그런 의미죠? 어쩜. 어쩜. 내가 이래서 반했지.]
[미미는 낭군님의 패기에 가슴이 저릿저릿합니다. 저도 늙은이 성화에 내일 밤 무엇을 훔치러 간다고 서찰을 보내고 물건을 훔친 적이 있는데, 얼마나 짜릿하던지···. 낭군님도 그런 것을 즐기신다니···.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天生緣分).]
‘이거 그러니까 게의 그림이 장원을 기원하는 뭐 그런 그림이라는 뜻이구만···.’
평소 같으면 요리가 구양 씨 가문 사람들의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이해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경연이 열리는 상태이니 다들 내가 우승 예고를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저 단지 오렌지 그대로 내면 너무 밋밋해서 모양을 낸 것뿐인데, 송나라 이거 거를 타선이 없었다.
뭐만 하면 여자들이 뻑가고 뭐만 하면 오해받는 이 더러운 곳.
전자는 괜찮았는데, 후자가 문제.
그런데 생각해보니 전생에도 조선시대에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도 같고···.
뒤를 돌아보자 요리를 이미 내고 기다리던 다른 요리사들의 싸늘한 시선이 쏘아지고 있었다.
‘어쩌겠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만한 모드로 가자. 아니라고 하는 것도 우습고···.’
일단 장원 예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뻔뻔한 얼굴로 요리에 관해서 설명하기로 했다.
“제가 만든 요리는 해양등(蟹酿橙). 감귤 안에 감귤의 즙과 과육을 더해 볶은 게살을 넣고 푹 쪄낸 요리입니다. 향긋한 감귤의 향과 즙으로 풍미를 끌어올리고 거기에 새콤함과 달콤함을 추가했으니, 혹시라도 비린 것을 못 먹는 사람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게 요리이지요. 비법 재료가 하나 들어가 있지만 말입니다.”
-후르릅.
나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후르륵 거리는 소리.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니 소동파가 참지 못하고 이미 뚜껑을 따, 한 숟가락 한 상태였다.
그리고 소동파의 감동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오! 처음 먹어보는 요리! 감귤의 향과 풍미가 게살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마치 잔치를 벌이는 것 같구나! 맛있군! 맛있어! 정말 맛있어!”
맛있어 삼 연타.
좀 전에는 조금 불안했었지만, 이정도면 약간 안심빵.
이 시대에 만들어진 요리라 그런지 소동파도 맘에 들어 하는 느낌이었다.
-후륵.
-후르륵.
곧이어 구양발과 그의 다른 형제들도 나의 해양등을 맛보고 기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 맛있군. 정말이야.”
“아까 그 튀김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단합니다. 이 진한 풍미! 이리 진한 게의 맛은 처음 느껴봅니다.”
“확실히. 이런 진한 맛은 처음입니다. 마치 게를 여러 마리 눌러 담아낸 것 같은 진한 맛.”
게장에서 느껴지는 눅진한 맛을 느끼고는 다들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다.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여기서 승부에 쐐기를 박기로 했다.
‘지금이군. 설명 한 스푼이 필요할 때겠어.’
앞으로 나서며 다시 설명을 조금 보탰다.
“게는 원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이 가장 맛있는 시기이지요. 때문에 가장 맛있는 게를 먹으려면 역시나 가을. 하지만 그런 가을이라도 게의 모든 부위가 맛있는 것은 아니지요.”
“응? 그래? 나도 스승님처럼 게를 좋아하는데, 내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구만. 어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게.”
내 말에 소동파가 관심을 보이고, 구양발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가 보통 게를 손질할 때 내장을 빼버리는 것은 혹시 비린내가 날까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시지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게는 장이 거의 없습니다.”
“장이 없다?”
“예, 장이 없지요. 있다고 해도 아주 적은 양. 게는 그런 짐승입니다.”
그때였다.
촌연주사라는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우리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말씀들을 나누는 사이에 끼어들어 죄송한데, 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군요. 분명 게를 손질할 때 장이 존재하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게의 장이 없다니···. 그럼 그건 장이 아니고 뭔가요?”
아마 나의 우승 예고에 열을 받아 태클이 들어온 느낌.
하지만 상관없었다.
저건 태클이 아니라 장식품.
‘어허 나의 우승에 장식품이 되어주겠다는 말인가?’
적절한 끼어들기였다.
“어허, 이런 참.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설명해 드릴 테니.”
나를 한층 더 돋보여줄 장식품이 나타난 상황.
원래 회같은 메인요리가 돋보이려면 무채 같은 장식이 있는 것이 좋은 법이니, 미소를 지으며 얼른 내 자리로 달려가, 칼과 도마 그리고 게와 몇 가지 조미료를 가지고 다시 심사위원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대갑게의 등껍질을 두 개 따 손질을 시작했다.
내가 지금 스피디하게 만드는 것은 세수해.
순식간에 껍질을 딴 두 놈을 손질해 살을 짜내고, 한쪽은 장을 제거하고 한쪽은 제거한 장까지 더해, 세수해 그러니까 중원 양념 게 무침을 만들었다.
두 그릇에 각자 올려진 두 종류의 세수해.
소동파와 구양발 사이에 그것을 밀어두고 소동파에게 시식을 권했다.
“어르신 한번 드셔보시지요. 한쪽은 게의 장을 넣은 것. 한쪽은 게의 장이 없는 것. 확연한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만든 세수해가 중원의 흔한 세수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향신료 차이.
좀 더 게장의 풍부한 맛을 즐기라고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 그리고 식초만을 더한 세수해인 것.
내 권유에 소동파가 조심스레 장이 없는 세수해를 맛봤다.
“흐음. 내가 좋아하는 게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세수해 구만. 역시 세수해는 게의 맛을 좀 더 느낄 수 있는 세수해가 최고지. 여러 가지 향료와 조미료를 넣는다면 게의 맛이 죽어버리니까 말이야.”
취향 저격이라며 좋아하는 소동파.
하지만 그는 장이 있는 그릇에서는 잠시 멈칫했다.
아무래도 장이라니 조금 거부감이 드는 모양.
하지만 먹을 것 앞에서 소동파가 물러날 위인인가?
“하지만, 장이 들어갔다니 조금 걱정이군. 아, 장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도 뭐 못 먹을 요리를 권한 것은 아닐 테니···. 어디.”
-후릅.
진득한 게장이 섞인 세수해를 들이키듯 입 안에 넣은 소동파.
곧 그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감탄스러운 외침!
“이, 이것은! 마치 게가 수십 마리 헤엄치고 있는 것같은 맛! 이럴수가!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 맛있는 게의 장을 모두 버리다니!”
통탄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구양발도 참지 못하고 바로 젓가락을 세수해로 가져갔다.
물론 게의 장이 듬뿍 들어있는 쪽으로.
-후륵.
그리고 역시나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이건···.”
여기서 놓치지 않고 바로 설명.
“아마 느끼셨겠지만, 비린내가 아니라 진한 게의 맛을 느끼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게의 장이라 부르는 것은 장이 아니라 간이기 때문입니다.”
“간! 아! 그렇구나! 간이라면 어느 짐승이라도 진한 풍미가 있는 부위! 그래서 이런 맛이!”
간췌장이라는 부위인데 지금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정도 설명이 적당했기에 적당히 바꿔 말하자, 소동파가 대단한 것을 알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기뻐하는 소동파를 향해 아까 하지 못한 설명을 이었다.
“예, 아까 말을 하다 말았는데, 제가 아까 가을이라도 게의 모든 부위가 맛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지.”
“예, 간은 게의 알이 차는 가을이 되면 될수록 맛이 떨어지는 부위. 알이 들어차며 그 기운이 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이 생기지 않았기에, 그 간의 진한 맛을 느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호라!”
“그렇구나!”
내 설명에 구양발과 소동파가 감탄할 때 바로 돌려 까기를 이어갔다.
오늘 컨셉은 오만 이니까.
“본디 요리란 그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것이 어떤 시기에 가장 맛이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요리해야 하는지 알고 요리해야 하는 것이 기본. 그런데 게의 장이 어떤지도 모르고 이 식룡과 경쟁하려 하다니. 크흠···.”
내 돌려 까기에 장식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장이 든 게장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정말 맛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는 모양.
하지만 맛을 본 곧 그 얼굴이 붉게 물들어버렸고, 그 모습에 사람들이 나를 칭송했다.
“허어! 명불허전(名不虛傳)! 식룡이 자신의 장원을 대놓고 주장하기에 광오한 자라 생각했는데, 그 요리의 깊이가 여기 모인 다른 자들과는 전혀 다르지 아니한가!?”
“저런 깊이라니. 어찌 게에 대해 저리 잘 안단 말인가?”
“저것은 진정 요리 일대 종사의 풍모!”
이제 클라이막스.
최대한 뻔뻔하게.
“제 해양등에 사용한 게는 저 태호의 대갑해로. 이틀 동안 소의 기름을 먹여 배를 불리고, 얼마 있지 않은 게의 장을 그 기름으로 깨끗하게 비워냈으며, 그런 게의 간을 비법으로 넣었기에 그리 진한 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효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리 살아생전 효심을 다했다 해도 돌아가시면 아쉬움이 남는 것이 부모.
구양문충공께서 살아계셨다면 꼭 이 녹진한 게의 장을 맛보여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내가 이 요리에 이정도 신경을 썼다.
그런 어필.
그리고 그렇게 효자티를 팍팍 냈으니 효심을 자극하는 한마디까지.
‘나 우승 안주면 넌 불효자식이다.’
그 말에 소동파가 한탄했다.
“게의 집게발이 가장 맛난 부위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생각이 짧았구만! 게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누가 뭐래도 게의 장! 발, 이러면 장원은 누구인지 결정된 것이 아닌가?”
그의 물음에 구양발이 헐레벌떡 일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세, 세인들은 들으시오.
게의 진정한 맛인 진한 게의 장맛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당에, 이 요리를 바치지 아니하면 어떤 요리를 바치겠소. 장원은 식룡 류청운으로 하겠소!”
내 장원이 결정되자, 청, 미미, 영영이와 가련이가 달려 나와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경하드리옵니다. 노공!”
“가가! 축하드려요!”
“낭군님, 감축드려요!”
“스승님, 대단하십니다!.”
식룡 류청운 구양문충공 댁에서 열린 게 요리 경연에 장원 결정이었다.
'해버리고 말았나? 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