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4화 (324/344)

중원 도수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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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 좀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구양문충공 댁 경연에 우승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이거 제삿날까지 기다렸다가 제사에 메인요리를 올려야 임무가 끝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아···.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을 못 했네···.’ 

생각해보니 제사에 올릴 요리를 만드는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슬슬 반점의 일이 걱정되고 있었지만, 별수 있나. 

며칠 더 묵어야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사당에 올리는 제사가 이틀 후라는 것. 

덕분에 이틀이나 더 구양 가문의 집에서 묵어야 했다. 

“그래. 오늘은 동파육으로 하지! 내 집에서 몇 번 만들어 먹어봤는데 자네가 만들어준 것만 못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맛이 안 난다니까?” 

“동파육 말입니까?” 

“그래, 내 오랜만에 그걸 먹어보고 싶은데 부탁 좀 하겠네. 아, 그리고 같이 먹을 요리는 그러면 해양등으로 할까? 동파육이 맛있긴 한데 살짝 느끼할 수 있으니, 해양등과 같이 먹으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그, 그러시지요. 어르신.” 

‘이거 뭐 거의 개인 요리사 취급이구만.’ 

그리고 그 이틀 동안 나는 거의 소동파의 개인 요리사가 되어주어야 했다. 

내 요리를 칭찬하며 이것저것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내가 나중에 국공이 되려면 잘 비벼두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나를 국공으로 만들자는 안건이 오르면 조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조정의 지지 세력 중 하나인 소동파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 들어보니 송 시대 공무원들 황제에게 별별 이야기를 다 하는 모양이었으니까. 

그렇게 어제에 이어 요리를 만들러 가려는 찰나 옆에서 소동파를 나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이 사람 각의 조카사위이며 연성공의 의형제라는데 그리 부려 먹으면 되나! 뭐···. 그래도 어제 천하제일 우육면은 정말 맛있었지···. 츄릅.” 

“그렇습니다. 형님. 얼마나 맛있던지···.” 

“그러면 제가 꼭 나서 맛있는 요리를 해야겠군요.” 

“아니, 그래도···. 미안해서···.” 

구양발은 나를 문전박대 한 것이 미안했던지 상당히 저자세가 되어있었고, 그의 형제들도 우리들의 식사에 항상 초대되어 내 인맥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너희들은 내 인맥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살아가는 거야.’ 

연성공이 중원의 정신적 지주라는 포지션이라면, 관에서 날리는 가문 중에 끝판왕이라면 구양문충공. 

이분들에게 나를 알리고 연결고리는 만든 것만 해도 상당한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이쪽은 소동파 이 양반과 연결고리가 이미 있는지라 밀접한 의형제 꽌시 관계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제갈각 숙부님과 의형제인데다가 소동파와도 친구이니 나와 의형제를 맺으면 족보가 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관의 입김이 쎈 구양 가문에 나라는 사람을 알릴 수 있었고, 장원으로 관에 보고가 될 테니 계획했던 목적은 모두 이뤘다 할 수 있었다. 

내가 장원을 한 것은 소동파가 황궁에 직접 보고한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틀 정도 더 구양가에서 묵고 제사의 요리까지 올리고서야 우리는 복주를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삐거덕. 삐걱. 

마차 한 대에 가득 실린 비단 오십 필과 그리고 은자. 

그 위에 놓인 우승을 상징하는 현판(懸板). 

‘구양문충가(歐陽文忠家) 해미식경연장원(蟹美食競演壯元)’이라는 글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는 멋들어진 현판이 이번 경연의 장원 상패였다. 

“가가, 가는데 며칠 더 걸리겠어요. 짐이 늘어서.” 

“그래, 그럴 것 같구나. 그런데···.” 

-벌떡! 

마차 뒤 짐칸에 누운 내 옆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 영영이. 

벌떡 일어선 영영이가 얼른 현판 쪽으로 달라붙었다. 

-슥슥. 

그리고 자기 소매로 현판을 싹싹 닦으며 너무 좋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멋있어.” 

그러자 들여오는 웃음 가득한 청이의 목소리. 

“언니, 그러다 닳아 없어지겠습니다. 아까 먼지 터시고 아직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헤헤, 그런가? 하지만 먼지가 앉는단 말이야.” 

“영영, 천에 싸두면 되지 않겠나요? 자꾸 꺼내서 보니까 먼지가 앉는 것이에요.” 

“미미 언니, 그래도 자꾸만 보고 싶은걸요. 장원이라니.” 

영영이는 출발 후 계속 저 상태. 

장원이라는 게 그렇게나 좋은지 현판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닦는 중이다. 

원래 저 상패는 조정과 구양 가문에서 내린 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제서와 비슷한 두루마리 한 장과 부상으로 비단과 은자가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승했는데, 내 입으로 ‘내가 우승했소’라며 자랑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나를 문전 박대한 것이 미안했던 구양발의 말에 부탁해 급하게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장원은 자네이니 내 뭐든 한 가지 부탁을 들어줌세. 내 좀 미안했던 것도 있고···. 저 친구는 왜 자네가 연성공의 의형제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 발이 경연은 요리실력을 겨루는 곳이니 가문과 출신은 모두 배제하자고 자네가···.” 

“어허! 그것도 가문 나름이지!” 

장원을 했으니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구양발. 

그때 옆에서 식사를 즐기던 아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 

“이제 복주에 돌아가면 가가가 장원한 것 아는 사람에게 모두 자랑해야겠어. 채소가게와 어전 그리고 육전에도 들러서 말이야.” 

“언니, 그렇게 좋으신가요?” 

“그럼! 장원이라고! 내가 장원한 것보다 더 좋아!” 

그 대화에 상장이 떠올랐고, 구양발을 향해 곧바로 부탁한 것이었다. 

“그럼, 현판을 하나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판?” 

“예, 구양문충가(歐陽文忠家) 해미식경연장원(蟹美食競演壯元) 이렇게 써서 제 반점에 걸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장원을 했다는 것을 반점을 찾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저에게는 큰 영광이니까 말이죠.” 

“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해줘야지 당연히 해줘야지. 그럼 글은 놀고먹는 이 친구에게 부탁하지. 그 ‘소동파’가 직접 써서 주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만들어진 현판이 영영이의 소매 질에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은공!” 

“소소, 보고 싶었소!” 

마차를 끌고 가다 보니 스무날도 더 걸린 여정. 

복주의 류가 반점 후원에 도착하자 뒷문으로 소소가 달려 나와 나에게 안겼다. 

“은공, 이야기는 들었어요. 경하드려요. 역시 존경받기 합당하신 우리 은공이에요.” 

늦어지는 여정에 미미를 한번 복주까지 보냈었기에, 장원 소식을 알고 있는 소소가 기쁜 듯 신앙심이 담긴 숭배의 말을 해왔다. 

“그, 그래, 잘 있었소? 반점에는 무슨 일이 없었고?” 

“예, 아무 일도 없었···. 아! 제갈가에서 서찰이 도착해서 챙겨두었습니다. 한 열흘 전에 도착했는데.” 

“제갈가에서 말이오?” 

“예.” 

“그러면 그것 향수행에 가서 몸을 좀 씻고 살펴보아야겠군. 자 들어갑시다.” 

“알겠습니다. 은공.” 

그렇게 긴 여정에서 돌아와 기존 현판 옆에 장원 현판을 걸어두는 현판식도 치르고, 향수행에서 목욕까지 하고 돌아오니 어느새 밤. 

“아이고 집이 제일이구나.” 

침상에 몸을 던지고 뒹굴뒹굴할 때, 탁자 위에 올려진 서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갈가에서 서찰이 도착했다고 했지. 아이쿠야. 까먹지 말고 살펴봐야지.” 

목욕까지 하고 와 노곤한 몸을 일으켜 얼른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삐거덕.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소소가 발그레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오늘은 소소인가? 오래 못 봤으니 아마 소소부터 시작인가 보구나.’ 

“은공.” 

“소소 왔소?” 

나와 같이 자는 순번은 아내들만의 신사 아니, 숙녀 협정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여기에 나는 전혀 어떤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내가 처신을 잘못하면 이거 대 파국이 날 수도 있으니 넷이 알아서 정하게 두는 것. 

그런 이유로 오늘은 아무튼 소소인 느낌. 

소소가 의자에 앉아있는 나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예, 은공. 어찌 일어나 계시는가요? 쉬시지 않고?” 

“아, 제갈가에서 도착한 서찰을 살펴보려고 하는 중이요. 내 금방 서찰을 보고 갈 테니 먼저 누워 계시오.” 

“아, 그렇군요. 알겠어요. 은공.” 

온종일 면 뽑느라 피곤했을 테니 먼저 가서 누워서 쉬고 있으라 했지만, 소소는 침상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듯 내 쪽을 바라보았다. 

빨리 보고 오라는 시선. 

‘빨리 보고 가야겠구나.’ 

나는 얼른 서찰을 뜯어 안에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등잔의 불빛 아래 드러나는 서찰의 내용. 

「사위 잘 있었나 청이는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구만, 내 이렇게 서찰을 보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해서 돈이라든지 아니면 사람이 더 필요하면 언제라도 이야기하시게. 내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 서운해질 지경이야. 

지금이야 여러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지만, 순서로 보아도 우리 제갈이 자네와 인연을 맺은 첫 가문이 아닌가. 

그러니 언제라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시게. 

그리고······.」 

처음에는 의례적인 나와 청이의 안부를 묻는 내용과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같은 나를 챙겨주는 그런 여러 가지 말들이 적혀있었다. 

돈이나 하인이나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만 하라는. 

계속하고 있던 이야기긴 했는데, 오늘따라 좀 서찰이 제발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이야기 좀 하라는 투정 섞인 그런 느낌. 

서운한 느낌도 들고···. 

‘너무 제갈세가 본가의 지원을 받지 않아 그런가? 아니면 제갈가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나눠주는 느낌이라 그럴까?’ 

원래 세 가문의 도움을 팍팍 받기로 했는데, 그간 내가 너무 유능해서 딱히 물질적 지원을 크게는 받지 않은 상태. 

거기에 아마 제갈가 입장에서는 사위를 여기저기 떼어서 나눠주고 있는 처지니 서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서찰의 내용을 읽어 내려갈 때였다. 

“아직 멀었나요. 은공?” 

한 달 가까이 못 본 게 힘들었던지 보채는 소소. 

얼른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거의 다 봤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네, 은공 천천히 하세요.” 

입으로는 천천히 하라지만 이거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대충 내용을 쭉쭉 훑으며 내려갔다. 

뭐 내용 대부분이 그런 투정과 같은 내용이라 읽다 보니 지루해지기도 했고. 

그렇게 서찰을 다 읽어 내려갈 무렵이었다. 

서찰의 말미에 아주 작게 쓰여있는 몇 줄의 문구. 

무심코 지나쳤으면 모를만한 작은 문구로 뭔가가 쓰여있었다. 

‘뭐지? 비밀내용인가?’ 

등잔을 가까이해 의도적으로 작게 쓴 내용을 살피기로 했다. 

그런데 등잔을 가까이해도 빛이 그리 밝은 것도 아니고, 글씨가 깨알만 해 잘 보이지 않는 내용. 

내가 서찰을 가까이했다 멀리했다 하니 소소가 못 기다리겠는지 내 쪽으로 다가와 뒤에서 나를 안으며 물었다. 

“은공, 잘 보이시지 아, 않나요?” 

입술만 맞대어도 실신하는 소소인데, 며칠 못 봤다고 한껏 힘을 낸 느낌. 

몸을 돌려 소소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러자 향긋하게 느껴지는 소소의 체향. 

다리 위로 느껴지는 소소의 말랑함을 느끼며 대답했다. 

“뭔가를 말미에 써서 보내셨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아 말이오.” 

“제가 한번 살펴볼까요?” 

자기가 대신 봐주겠다는 소소. 

소소야 내공이 있어 안력을 끌어올릴 수도 있으니 좋은 제안. 

“그래 주겠소? 대체 멀쩡한 글은 왜 이리 작게 써서 보내셨는지.” 

투덜거리며 소소에게 서찰을 내밀었다. 

‘뭐 비밀내용이라도 와이프에게까지 비밀로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내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소소에게 서찰을 전해주자 소소가 붉은 입술을 열어 서찰의 내용을 나에게 읽어주었다. 

“그러니까 ‘아, 그리고 사위, 좋은 소식이 하나 저 멀리 남쪽에서 올라왔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남만야수궁으로 보낸 그 제안 말이네···. 저쪽에서 아주 흡족해하며 궁의 은인에게 딸을 주게 되어 아주 잘 되었다고···. 추, 축하하네. 혼례는 이쪽 사정도 있다고 해서 나중으로 일단 미루어 두었네. 다시 한번 축하하네! 하하.’라고 쓰 여 있 네 요···.” 

서찰의 내용을 다 읽고 황당해하는 소소. 

나도 황당했다. 

그러고 보니 장인이 친 사고로 혼례 의향을 물으러 사절이 남만야수궁으로 향했다고 했었는데, 그 대답이 이제야 제갈가에 도착했고. 

이 서찰은 그러니까 앞에는 다 잡설이고 그 내용을 알리기 위함이었던 것. 

결국 저쪽에서 아주 흔쾌히 오케이 했다는 이야기. 

‘이 양반이! 같은 잔 대가리 대마왕끼리 사쿠라를···.’ 

같은 제갈의 의지를 이은 자들끼리 이런 기만행위 곤란했다. 

제일 중요한 내용을 보험계약의 책임 회피성 문구마냥 끝에 이런 식으로···. 

아무래도 이거 장모님한테 회생환 몇 알 더 선물로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았다. 

*** 

다음날 분노로 휘갈겨 쓴 서찰과 함께 회생환 세 알이 미미의 친정인 모용세가에서 운영하는 표국을 통해 등기속달 특송으로 제갈가에 쏘아졌다. 

반드시 제갈가의 부인에게 직접 전달하라는 주의사항을 담아서. 

그렇게 점심 브레이크타임에 표국을 통해 표물을 쏘아 보내고 반점에 도착하자 청이가 손님 도착 사실을 전해왔다. 

“노공, 무당파의 장문인께서 근처에 오셨다가 들리셨다고 해요.” 

“무당파?” 

“예.” 

‘무당파라면 중원 도수체조를 만든 문파가 아닌가? 그 장문인이?’ 

청이의 안내를 받아 곧바로 이층으로 향했다. 

거물이 등장한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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