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5화 (325/344)

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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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중원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문화를 하나 꼽으라고 투표한다면 항상 빠지지 않고 상위 랭크를 차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태극권.

여기야 뭐 진짜 무공이니 정말 대단한 무엇이겠지만, 전생의 태극권이라 하면 중원 도수체조 같은 느낌의 건강 운동.

건강을 위해 뭐 사람들이 하는 운동인데 뭐가 그리 꼴 보기 싫으냐 물을 수도 있고, 그 정도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걸 공원이나 길가에서 아침마다 수십에서 수백 명이 모여서 다 같이 흐느적거리면서 추는 모습을 보면 이게 참···.

뭐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집구석에서 춤을 추든 지랄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외에 나간 중원인들도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노래까지 틀어두고 다 같이 모여서 이 군무를 춰대니 좋게 보이지 않는 것.

해서 전생의 태극권이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는 중원인들의 트레이드마크 정도의 문화인 것이다.

물론 뭐 광장무(廣場舞)라고 태극권 말고 춤을 추기도 하기만 뭐 타국 사람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

그런데 그 도수체조 발명가의 후예가 우리 반점을 찾았다니, 조금 호기심을 가지고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청이를 따라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영영이의 자지러지는 목소리.

“호호, 정말인가요? 정말요? 제가 그렇게 먹을 복을 타고 태어났어요?” 

“허허, 그럼. 당연하지 이 내가 저 땡중 아니, 현원법사 만큼은 아니더라도 관상 하나는 잘 본다니까 그러네.”

“까르륵···. 먹을 복이라니.”

“이 중원에서 자네만큼 먹을 복을 타고 태어난 자는 없을 것이야 아무렴.”

“까르륵···. 깔깔.”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좋아죽는 영영이의 목소리였다.

얼른 계단을 올라 영영이의 자지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자, 창가 자리 한쪽 등판에 태극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은 흰 머리의 노인 뒤통수가 보이고 있었다.

새하얀 백발을 비녀 같은 것으로 질러 꽂은 머리.

그쪽으로 다가가자 이쪽을 보고 있던 미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를 불렀다.

“낭군님! 여기예요.”

“아, 미미.”

“청운님, 오랜만에 뵈어요.”

“아 오랜만이요. 비연, 잘 있었소?”

미미의 부름에 얼른 다가가자 비연까지 놀려고 와 있는 상태.

그녀에게 빠르게 인사하자 등만 보이던 노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인자하게 생긴 얼굴. 

흰 머리와 흰 수염이 인상적인 그야말로 전형적인 동양풍 신선 그림에 등장할법한 얼굴이랄까?

“안녕하십니다. 류가 청운이라 합니다.”

“오오! 자네가!”

벌떡 일어서 달려와 내 손을 꼭 잡는 노인.

그가 나를 훑어보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 무당파의 장문인 태화륜이라 하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외할아버지 느낌의 따듯한 인사.

생각보다 따듯한 인사에 조금 당황하자 청이가 전음으로 나에게 그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노공, 무당파의 장문인은 천검자(天劍子)라고 검의 고수이시고, 현원법사님과 함께 중원의 생불과 신선으로 불리는 분이에요.]

‘그 고기에 미친 늙은이가 부처? 그러면 이 양반도···.’

청이는 나에게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하려는 듯했지만, 청이의 설명을 들은 나는 그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뭔가 사기꾼은 아닌지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기에 환장하는 현원 법사가 부처면, 영영이는 개미만큼 음식을 먹는 소식을 하는 아이이고, 청이는 가냘프고 여려서 숟가락도 못 드는 여인.

거기에 소소는 부엌칼도 못 만지는 겁많은 여인이고, 미미는 남의 물건 한 번도 손 안 대본 순수한 아이가 아닐까?

내가 순애 사랑꾼이라 나를 소개해도 그것은 무죄일 것이 분명했다.

‘아무렴. 현원 법사가 생불이면 나는 순애 사랑꾼이지. 나는 여자 하나밖에 모른다.’ 

그런 이유로 늙은 도사의 첫인상 점수가 조금 하락했고, 그에게 일단 우리 반점을 어찌 찾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혼자 찾아올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의 소개를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이유로 말이다.

‘어느 꽌시가 밀어줬는지 확인해야 나중에 은혜를 갚지.’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 감사합니다. 천검자 어르신 그런데 저희 반점에는 어떻게?”

“아, 이쪽에 일이 있어 들렀다가 제갈가의 사위이자 식룡이라는 별호를 얻은 자네의 반점이 있다기에 맛있는 요리나 좀 먹고 가려고 들렀다네.”

“아하. 그러셨군요. 환영합니다. 어르신.”

“그래. 맛있는 요리 부탁하네.”

그렇게 그와 인사를 끝내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영영이의 목소리.

영영이가 무당의 장문인을 얼른 자리에 다시 앉으라 권했다.

“천검자 어르신, 얼른 다른 사람들도 봐주세요.”

“아, 그렇지. 남은 아이들도 봐줘야지. 그래그래. 알겠다.”

뭔가를 해달라 보채는 영영이의 모습에 대체 뭘 보채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까 계단에 올라오면서 들은 것은 뭐 영영이가 복이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건 복이 아니라 탐(貪)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식탐.

“영영아, 어르신께 대체 뭘 부탁하고 있는 것이냐?”

그러자 영영이가 잘됐다는 얼굴로 달려와 나를 자기 옆에 끌어다 앉혔다.

“가가, 가가도 오세요. 생각해보니 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가를 봤어야 해.”

“아! 그래요 영영 은공을 먼저 보아 드려야 했어요!”

영영이와 소소의 맞장구.

둘의 맞장구에 대체 뭘 보아달라는 것이냐 되물었다.

“본다고? 대체 뭘?”

“뭐긴 뭐에요. 점이죠. 천검자 어르신은 현원 법사님만큼 점을 잘 보세요. 그러니까 그거 확인해봐야겠어.”

“그래? 그런데 그거라면?”

“여난 그거요. 불교에서 보는 것과 도가에서 보는 게 다를 수도 있잖아요?”

‘아, 교차검증을 하자는 것인가?’

불교에서 보는 관점과 도교에서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으니, 여난에 대해 교차검증을 해보자는 영영이의 주장.

영영이 답지 않은 그럴듯한 주장에 다른 아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영영 언니의 말씀이 맞아요. 어르신 이렇게 부탁드릴 테니 저희 말고 저희 노공을 좀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원 법사님께서 노공께 여난이 있다고 하셔서 너무 걱정되어서 말이죠.”

“그으래? 그 땡중이 또 무슨 헛소리를 했기에. 자네 이리 와보게.”

그렇게 내 자리는 영영이 옆에서 다시 천검자 어르신의 옆으로.

잠시 후, 빤히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상황에서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난은 무슨 여난. 아무튼 그 땡중 놈. 걱정하지 말거라. 여난이 아니라 여복이 많은 것뿐이니까.”

“여복이요?”

“그래, 아주 죽을 때까지 여복이 많아 여자 덕에 살 관상이구나.”

뭐 기둥서방의 운명이라고 말하는듯한 현원 법사의 말.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내들은 그 말에 기뻐했다.

“여복! 그렇죠! 그럴 줄 알았어! 가가 봐요. 아무래도 이상했다니깐.”

“난이 아니고 복이라니! 은공 다행이에요.”

말만 살짝 바꾼 것 같은데 이상하게 좋아하는 아내들.

천검자 어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 저기···. 그런데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여복이나 여난이나 여자가 많다는 것은 이게 다르지 않은···.”

그러자 내 질문에 정색하면 나에게 대답하는 천검자.

“그게 무슨 소린가. 복과 난이 어찌 같아. 난은 여자로 인해 고난을 겪게 될 팔자라 할 수 있지만, 복은 그게 아니지. 여자로 인해 복을 얻는 것인데 어찌 같겠나?”

옆에서 영영이와 소소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맞아요. 은공. 어찌 복과 난이 같겠나요.”

“가가, 글씨가 다르잖아요!”

‘아니, 영영아 나도 그건 아는데 그런 말이 아니잖니?’

영영이 다운 설명에 이걸 대체 어찌 설명해주어야 하나 고민할 때 청이의 전음도 날아들었다.

[노공, 제가 들어도 크게 다를 것이 없긴 한데, 저희로 인해 노공께서 난을 겪는 것보다 복을 받는다는 것이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더 좋거든요.]

생각해보니 그제야 아내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들로 인해 내가 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

그때였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비연이 뭔가 이상하다는 목소리로 말한 것은.

“어르신,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복은 쌍으로 안 오고 화는 홀로 안 온다던데···. 그런 의미로 보면 청운님의 말씀도 틀리지 않은 것이···. 복이라면 여럿이 오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죠.”

여러 부인이 나에게 왔으니 그건 복이 아니고 화가 아니겠냐는 물음.

그러자 넷의 눈총이 바로 비연을 향하고, 그 살벌한 눈빛에 비연이 실수한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언니들 무, 무심코. 다, 다른 의미는 없어요. 저, 정말이에요!”

비연으로 촉발된 살벌한 분위기.

영영이가 싸늘한 음성으로 비연에게 경고했다.

“연이가 오랜만에 봤는데 말을 너무 생각 없이 하네. 연아, 좀 있다 나 좀 잠깐 볼까?”

“영영 저도 그 자리에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미미 언니.”

그러자 아무래도 비연이 안돼 보였는지 천검자 어르신이 나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어허, 분위기가 왜 이러누. 그, 그렇지. 내가 그럼 내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 너희 모두 이 아이를 은혜 하는 모양인데, 너희 중 누가 이 아이와 ‘진짜’ 인연인지를 알려주면 어떻겠냐?”

점쟁이라 눈치가 빠른데 내부인들이 다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챈 천검자.

청이 외에는 혼례를 올린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고, 다른 셋에 대한 것은 최대한 비밀로 하고 있으니 아마도 눈치로 때려 맞춘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주에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궁합으로 넘어가는 천검자.

유능한 점쟁이는 점쟁이가 맞는 것 같았다.

전생에도 이거면 여자들이 사족을 못 썼는데, 그의 궁합을 봐준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언제 분위기가 싸늘했었는지 모르게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그냥 사주도 참지 못할 텐데 나와의 궁합을 봐준다니 아내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나?

‘진짜’ 인연이라는 말을 강조하니 다들 누가 진짜 인연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 정말요!?”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예, 얼른 봐주세요!”

“낭군님과의 인연···.”

그러나 넷의 기대감은 빠르게 식어버렸다.

제일 먼저 청이를 바라본 천검자가 미소를 지으며 청이가 진짜라고 해버렸으니까 말이다.

“어허 복스럽다. 남편에게 권력을 쥐게 해줄 복을 타고 태어났느니라. 네 남편과 천생연분이구나. 진짜 참 인연이로다.”

“권력! 그리고 처, 천생연분!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청이는 좋겠다.”

“부러워요. 청.”

“나는 진짜가 아니었어···.”

천검자 어르신의 말에 청이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내게 권력을 쥐여줄 상에 나와 천생연분이라는 말에 기쁨을 참지 못하는 느낌.

하지만 다른 셋은 말은 저리 해도 완전히 실망한 느낌이었는데, 영영이나 소소, 미미는 어두운 표정이 되어 부러운 눈으로 청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렇게 누가 진짜냐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나나 싶었는데, 곧이어 소소를 바라본 천검자 어른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상외의 말을 했다.

“남편에 손에 검을 쥐여줄 상. 남편의 적을 모두 베어낼 상이니 참으로 복되구나. 너도 ‘진짜’ 천생연분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차, 참입니까!? 저, 저도?”

“그럼, 당연하지!”

부인이 둘이 될 수는 없는 문화권에서 당연히 나와 소소도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는 말.

진짜 용한가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소소는 그럴 수 있었다.

‘소소는 그럴 수 있지.’

소소의 소문이야 제서 때문에 흘러나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나 싶었는데,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영영이를 보면서 말이다.

“식복을 타고 태어나 남편의 입에 밥을 넣어줄 상. 너도 당연히 ‘진짜’ 천생연분이니라.”

“헉! 저, 정말요? 정말요?”

“그럼, 그놈 참 여복도 많다. 어찌 부인이 셋이나 되누.”

‘아니, 이거 진짜 용한가?’

이쯤 와서는 진짜 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청이와 나의 사이라면 이미 사람들을 모아두고 혼례를 올렸으니 능히 그럴 수 있고, 소소야 제서 때문에 알려질 수 있다지만, 영영이와 미미에 대한 것은 일단 소문을 최대한 억제한 상태.

그런데 영영이도 진짜라니 이거 진짜 용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나의 놀람은 다시 이어졌다.

미미에게도 천검자 어른이 나와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전낭을 채우는 재복을 타고 태어났으니 이도 ‘진짜’ 천생연분. 너도 진짜니, 걱정 말거라.”

넷을 다 맞춰버린 상황.

이제 진짜 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이 확신으로 기울고 있는데, 비연이 얼른 나서 물었다.

“저, 저는요! 저도 한번 봐주세요!”

그러자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천검자.

“너는 누군가의 부인이 될 운명이 아니구나.”

“네! 왜 저만 아니에요! 저도 혼례 치르고 싶다고요! 아, 아니 언니들 청운님이랑 말고요!”

어둡게 물든 비연의 얼굴.

비연이 아니라는 것까지 맞췄으니 이제 나의 마음의 의문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르신 대, 대단합니다. 제가 잠시 의문을 가졌었으나 어르신의 말씀이 한 치의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허허, 역시 그렇지?”

그렇게 그가 자기 수염을 쓰다듬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릴 때.

계단으로 올라온 가련이가 나에게 뭔가를 물어왔다.

“저기, 스···.”

그러자 들려오는 천검자 어르신의 외침.

“그렇지! 하나 더 있었지! 너도 ‘진짜’니라 모든 복의 중심을 잡아 균형을 잡아주는 복! 이도 천생연분이로다!”

“예?”

“네?”

“뭐라고요?”

우리의 외침에 천검자 어르신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러냐는 얼굴로.

‘이 인간 돌팔이 맞았네. 하마터면 속을 뻔했잖아?’

왜긴 왜겠나 돌팔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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