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와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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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에 휩싸인 싸한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천검자 어르신의 물음이 들려왔다.
“응? 다들 왜 그러는가?”
그러자 그 물음에 청이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어르신. 그러니까. 가련이는 노공의 제자입니다. 노공의 여인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흐음···.”
지금까지 어르신이 천생연분이라고 한 여인은 실제 나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여인들.
그러니 어르신의 점을 보는 능력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 사이를 다 알기라도 하듯 아내들 사이에 끼어있는 너구리 같은 비연을 골라내고, 내 진짜 부인들에게 천생연분이라는 도장을 쾅쾅 찍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은 어르신이 마지막에 가련이를 고름으로서 그 점수를 다 까버렸기 때문이었던 것.
자기가 쌓아 올린 좋은 이미지를 다 조져버린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련이는 누가 뭐래도 ‘제자’니까 말이다.
이 유교 문화상 스승은 곧 어버이나 마찬가지니, 그냥 가련이가 아내들과 비슷한 젊은 여인이라 내 혼례 대상이라고 했으면, 그래도 청이나, 영영이, 소소, 미미가 ‘앗 이거 여난인가?’ 이러면서 ‘설마 가련이도?’ 정도의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유교 탈레반 국가인 송나라에서 제자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해서 곧 부모와 같은 존재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미 제자로 공표되었으니 관계가 발전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내가 가련이를 제자로 공표함으로써 우리 관계는 사회적 제약에 묶인 그런 관계니까.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만약 제자를 처로 들였다고 소문이 난다면, 나는 중원의 모든 사람에게 ‘페도’의 죄를 범한 것으로 낙인찍혀 인간쓰레기 확정이기 때문이었다.
연성공 형님이 대노 하시고, 중원 포돌이가 출동해서 무기징역을 때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는 것.
자식에게 손을 댄 인간 말종이 되기 때문이다.
“뭐, 뭐라!? 제, 제자!?”
“예, 가련이는 가가의 제자예요. 어르신. 비설가의 가련이라고 가가의 제자로 여기 복주에서는 유명해요.”
“아,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 그럴 리가 없다뇨?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 아무렴요.”
그럴 리 없다는 어르신의 당황한 목소리에 얼른 반론했다.
‘그럴 리 없기는 이 사람이!’
가련이가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무서웠기 때문.
이미 아내 티오는 풀 차지.
오마케 해금된 둘 때문에 요즘에도 가끔 힘든데, 앞으로 셋이나 더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련이까지?
이거 노동법 위반으로 신고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니까 말이다.
주 오 일이 자리를 잡은 지가 언제인데 주 육 일?
이건 진짜 곤란했다.
‘나도 이틀은 쉬어야지. 주 육일은 아무래도 중노동이라 할 수 있지. 아무렴.’
그렇게 어르신의 당황한 그럴 리 없다는 말에 내 근무 여건의 혹독함까지 이어지는 생각.
당황한 어르신의 혼잣말이 이어졌다.
“아, 아니 그러면 안 되는데, 그, 그럼 흉성으로 물들려고 하는 이유가···. 궤가 잘못 끼워졌구나···. 별자리가 어긋났으니···. 이걸 대체 어찌 돌려놓누···. 중원이···. 불바다가···. 균형이···.”
별이 어쩌니 흉성이 어쩌니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는 어르신.
그의 당황함에 청이가 미안했는지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아, 재,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죠. 어, 언니들? 우리 모두 천생연분이라고 해서 기분이 참 좋지 않았습니까? 점은 뭐 재미로 보는 거니까···.”
“그럼, 청아. 점은 재미로 보는 거니까요.”
“아, 재미있었다. 아하하···.”
아무래도 무당파 장문인이며 중원의 신선이라는 어르신의 체면을 위해서 분위기를 수습해 주려는 느낌.
그때였다.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어르신이 갑자기 심문하듯 나를 향해 물어오셨다.
“그, 그래 자네 제자면 배사례(拜師禮)는 치렀나?”
“배사례라 하시면?”
“노공, 입문례와 같은 말입니다.”
갑자기 제자로 받아들이는 정식 의식은 치렀냐는 물음.
“아뇨. 그냥 구배의 례를···.”
예전이 가련이를 제자로 받을 때 장소도 그렇고 가련이의 우물 다이빙쇼도 막으려고 약식으로 구배의 례로 절만 한번 하고 만 상태.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어르신이 반색하며 말했다.
“어허, 그러면 제자가 아니지 않은가? 다, 다행이네.”
“예? 다행?”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제자가 아니란 말일세. 생각해보니 나이도 그렇고 제자라 하기에는 그렇지. 인제 보니 제자가 아니라 ‘학생’이 분명하군. 자네와 저 아이의 사이는 ‘선생과 학생’이네.”
뭔가 우리 사이는 반드시 ‘선생과 학생’이어야 한다는. 그런 말.
제자가 곧 학생이라고 알고 있으니 그게 무슨 차이냐 되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둘의 차이는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학생이라면 그게 제자가 아닙니까?”
“어허, 이 사람 제자와 학생이 다른 것도 모른단 말인가? 그런 크흠. 크흠. 아이고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마르군.”
내게 뭔가를 설명하려다가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노인이라 가래가 끼는지 한참 목을 가다듬은 천검자 어르신.
그의 행동에 영영이가 주전자를 들며 물었다.
“차, 한 잔 더 드릴까요. 어르신?”
그러자 천검자 어르신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니, 내 이 친구랑 좀 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으니···. 그 뭐···.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할까?”
“아, 그럼 제가 안주와 술을 곧 준비해 오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차만 한잔 덜렁 대접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만 나누고 있던 상태.
얼른 술과 안주를 준비해 오겠다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어르신 그러면 저희 쪽으로 모실까요?”
갑자기 자기 기루로 가자는 비연.
확실히 우리 반점은 식사 위주니, 그리로 가면 술과 안주가 이쪽보다는 나을 것이긴 했다.
다만 천검자 어르신은 높은 도인이신데 기루를 들락거리실 리가 없···.
“자네 쪽이라면?”
“이 복주에서 가장 유명한 화월루가 저의 기루입니다. 방문해주신다면 기쁘게 맞을 것입니다. 어르신.”
“기, 기루!?”
기루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어르신.
그 말에 다른 아내들이 비연을 나무랐다.
“비연, 어찌 중원의 신선이라 불리시는 천검자 어르신을 기루로 모시겠습니까? 세인들의 눈도 있고 실례입니다.”
“맞아. 비연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천검자 어르신 이잖아?”
“도력이 높으시다는 저 천검자 어르신에게 기루라뇨. 비연 어서 사과드리세요.”
그러자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비연이 움찔하며 사과하려 하자, 얼른 먼저 대답하는 천검자 어르신.
“어허! 이 아이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나 같은 도인이 어찌 도를 알리는데 장소를 가리겠느냐. 비연이라 했는가? 어서 앞장서 보거라 복주에서 가장 유명한 기루라니 그런 곳은 반드시 도가 필요하지. 아무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니까 말이야.”
높은 도인이시라 기루를 들락거리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더니, 그건 우리 생각뿐.
천검자 어르신은 기루라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아주 솔깃해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비연에게 어서 앞장서라 말하는 어르신.
“자자, 어서 가세. 내 저 친구랑 할 이야기가 많으니. 아, 거기는 몇 층짜린가?”
“오 층이에요. 어르신.”
“아, 그러면 자네가 오 층의 주인이니 우리는 사 층으로 가야겠군?”
“어찌 오 층을 마다하시고?”
“내가 자네의 수발을 받기는 좀 그렇지. 아니 그런가?”
“아! 무슨 말씀인 줄 알겠어요. 어르신. 호호.”
뭔가 기루의 시스템을 잘 꿰고 계신 느낌.
‘거참···. 중원의 두 기둥이라는 양반들이.’
중원의 생불이라는 양반은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중원의 신선이라는 양반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 같으니, 중원 꼬락서니 참 잘 돌아간다 싶었다.
***
비연의 화화루 사층.
항상 올 때마다 오 층을 이용했던지라, 사 층은 미지의 공간.
사 층은 룸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는데, 그중 가장 큰방으로 어르신과 내가 안내되었다.
아내들이 동석하지 않은 이유는 어르신이 나와 단둘이 할 말이 있다고도 했고, 여인들이 어찌 기루를 들락거리느냐며 꼰대 같은 소리를 해서 아내들은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게 높은 어르신 접대를 하는 상황이니, 아내들은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비연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며 일단은 보내준 상태였던 것.
“자, 앉으시지요. 어르신.”
“그, 그래. 기루가 아주 훌륭 하구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술과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
“그, 그래. 천천히 하게 천천히.”
그렇게 자리를 잡자마자 어르신은 아까 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하셨다.
“기녀들이 들어오면 우리끼리 이야기하기 힘들어질 테니 먼저 이야기하지.”
“예, 뭐···.”
뭔가 단단히 재미나게 놀아보겠다는 결심이 가득한 얼굴로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자네, 스승 그러니까 사부(師父)와 선생(先生)이 다르고, 학생(學生)과 제자(弟子)가 다르다는 말을 혹시 아는가?”
“아니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네, 그럴 줄 알았네. 그래서 제자라고 한 것이겠지. 잘 들어보게. 본디 스승과 사부는 같은 말이지만 선생은 전혀 다른 의미네.
본디 사부는 도(道)를 가르치는 자로 모름지기 가르침과 삶이 제자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그 몸가짐과 마음이 존경할만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
또 불가나 도가에서만 쓰이는 말이라 할 수 있지. 해서 무를 가르치는 문파에서 사부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 우리도 도에 이르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뭔가 꼰대 같은 설명을 이어가는 천검자 어르신.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으니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래, 그런데 자네가 도에 대해서 가르치거나 제자에게 그 몸가짐과 마음이 존경받을만한 사람인가?”
‘아니, 왜 그런 질문을···.’
쪼끔 슬픈 팩폭.
확실히 나는 가련이에게 기술과 요리에 대한 마음가짐을 가르치긴 하지만 그 몸가짐이라는 부분에서는 좀 애매했다.
아내가 넷이나 있고 이제 다섯 될 텐데 존경받기에는 좀 내가 봐도 부끄러운 것.
또 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저야 요리사니, 존경까지는···.”
“그것 보게! 해서 앞서 걸으며 학문과 지식을 가르치는 자는 선생. 가르치는 자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는 자를 사부 곧 스승이라 하는 것이지.”
“그, 그러면 저는 선생이군요?”
내 결론에 천검자 어르신이 반색하며 대답했다.
“그래, 자네 아주 똑똑하구만. 아주 다행이야. 내 말인 무슨 말인지 이제 알아들었구만. 그러니 세인들에게 스승이고 사부라는 말을 하면 그들이 얼마나 비웃겠나.
그리고 자네가 제자라고 하는 아이. 제자라는 말도 그렇네. 본디 제자란 스승을 본받기 위해서 그 삶과 모든 것을 닮으려 노력하는 자. 그러면 잘 생각해보게 어디 그 아이가 그런가? 내아니 그런가? 내 물음이 틀렸는가?”
“화, 확실히.”
가련이는 나에게 요리와 요리에 대한 마음가짐을 배우는 것이지, 나를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닌 게 확실했으니 천검자 어른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다.
“해서 자네 둘은 스승 그러니까 ‘사부와 제자’가 아니라 ‘학생과 선생’의 사이라는 것이지.”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세인들에게 하마터면 웃음거리가 될뻔했군요?”
“그래, 이 사람아. 내가 딱 발견했기 망정이지 정말 큰일날뻔했어. 하하하.”
뭔가 안심하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천검자.
그런데 다 듣고 보니 이게 그렇게나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아니, 그런데 내가 제자라 부르던 아니면 스승이라 부르던 그게 중요한 일인가?’
이게 이렇게 열을 올릴 일이 맞나 싶었던 것.
“그런데 어르신 이게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그러자 천검자 어른이 정색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중요하지! 중요하고말고! 잘 기억했다가 누군가 물어오면 반드시 둘 사이는 사부와 제자가 아니라 스승과 학생이라고 해야 할 것이야! 내 말 명심하게 알겠나!?”
“예, 뭐 어르신···.”
참 꼰대 아니랄까 봐, 별게 다 중요한 양반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구시렁하고 있는데 천검자 어르신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있던 비연에게 물었다.
“근데 술은 언제 나오나?”
“곧 나올 것이어요. 어르신.”
“크흠. 그 나는 수발들 아이 두 명이면 되네···. 크흠. 자네는 그···. 저 아이 옆에 앉고.”
“어머. 네 명으로 준비하려 했는데.”
“그으래? 하긴 도에 대해 가르칠 아이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크흐흠.”
아무래도 이분은 하루빨리 입선(入禪)하시는 것이 중원 무림이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