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비계(貴妃鷄)와 소군압(昭君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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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나를 따라 화화루 안으로 따라 들어서는 비연이 물어왔다.
“그런데 뭘 해주시려고요?”
“그야 당연히 기루에 어울리는 요리 아니겠소? 서시설(西施舌) 같은 요리 어떻소? 그러면 우리 정점주님 마음이 풀리시려나?”
내 대답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비연이 다시 획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흥. 제 마음은 ‘너무 작아서’ 그런 것으로 풀리려는지 모르겠네요.”
‘거참 사람···.’
비연은 토라진 것이 좀 오래가는 모양.
일단 그대로 두고 요리나 만들어 내놓기로 했다.
또 요리가 눈앞에 나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미 중원인들에게 농락당해 너덜너덜해지신 초선 누님과 서시 누님께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
다른 두 누님만큼은 같은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껴두었던 비장의 요리.
그 두 가지 요리를 동시에 선보이기로 했다.
‘내 비연 때문에 다른 두 누님 요리를 선보이긴 하지만, 다른 두 누님의 존엄만큼은 반드시 지켜주리라!’
오늘 비연의 화화루에 선물할 두 가지 요리는 그 무엇도 아닌 중원사대미인(中元四大美人) 요리 중 남은 두 가지.
양귀비의 닭 요리 귀비계(貴妃鷄).
왕소군의 오리 요리 소군압(昭君鴨).
원래 각각의 요리이지만, 나는 이것들 한 접시에 플레이팅 해 선보일 예정이었다.
한 접시 위에 오른 두 미녀라는 타이틀로.
한 번에 중원 사대미인 중 하나도 아닌 둘, 왕소군과 양귀비를 맛볼 수 있다?
그 화제성 하나만으로도 현재 선보이고 있는 서시설을 능가할 요리일 것이 분명하지 아니하겠나.
“사람을 시켜 닭과 오리를 준비해 주시겠소?”
“네, 뭐···.”
비연에게 오리와 닭을 한 마리씩 부탁하고, 이젠 자주 와 익숙해진 기루의 주방으로 들어서 제일 먼저 하미(蝦米 말린 새우)를 찾아 물에 불렸다.
그리고 그렇게 새우를 물에 불려둔 후, 다음 재료를 찾으러 이곳저곳을 뒤지자 비연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도울 사람을 하나 불러올까요? 아니면 요리를 배울 사람을 데려올까요?”
“그래 주겠소? 그러면 두 번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화화루가 영업하기에는 이른 시간인지라 아직 부엌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비연이 깨어서 돌아다니는 하인 하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하자, 예전에 채식 요리를 가르쳐줬던 여자 요리사가 졸린 눈을 비비며 허겁지겁 부엌으로 달려 내려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비연님?”
“네, 청운님께서 기루에 어울리는 새로운 요리를 알려주신다니, 일을 거들면서 배우도록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비연님.”
그렇게 도착한 여자에게 재료들을 부탁했다.
익숙해도 내 주방이 아니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 빨리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생강, 총(蔥), 계피, 진피, 팔각 소흥주와 포도주 월계엽(月桂葉)을 준비해 주시겠소? 화구에 불도 올려주시오. 아, 그리고 다른 요리에 쓸 것이니 분조(粉条)도 좀 준비해 주시오.”
“예, 대인.”
하인 둘이 더 달라붙어 화구에 불을 지피고, 불이 솟아오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화구에 웍을 올렸다.
그리고 물에 불린 건새우를 손으로 꼭꼭 짜서 그 웍 안에 던져넣었다.
-치이이.
기름 없는 웍에서 천천히 새우를 볶는 것은 전부 새우의 진한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새우가 모두 다시 노릇하게 볶아지면, 이제 육수를 만들 준비를 해야 할 때.
화화루의 요리사가 가져온 생강을 편으로 잘라 웍에 던져놓고, 계피 한 대와 팔각 두 개. 귤껍질 한 조각과 월계수 잎 두 장을 추가했다.
그리고 여기에 물을 일 리터 정도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이제 육수가 끓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그렇게 육수 준비가 끝나자 닭고기와 오리 고개를 사러 갔던 하인이 닭과 오리를 한 마리씩 손에 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여기 있습니다. 어르신.”
“아, 고맙소.”
넘겨받은 닭 손질부터.
남아있는 닭의 잔털을 제거하고, 다리를 끊어냈다.
그리고 뱃속에 남아있는 피와 잔여 내장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부글부글.
닭 손질을 끝내자마자 아다리가 맞게 들려오는 끓어오른 육수의 경쾌한 소리와 향긋한 향.
그것을 큰 그릇에 담아 옆의 요리사에게 넘겨줬다.
“이걸 찬물에 띄워 식혀주겠소?”
“알겠습니다. 어르신. 차게 식혀야 하는 것이면 얼음을 쓸까요?”
그러자 얼음을 사용해서 차갑게 만드느냐 물어보는 요리사.
그녀의 물음에 반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원래 이 요리는 냉채 요리에 가까운 것이기에 얼음이 있으면 훨씬 더 좋기 때문이었다.
“오 벌써 얼음이 나왔소?”
“아무래도 복주는 빨리 더워지는 편이니 매빙인(卖冰人)이 벌써 얼음을 팔고 있거든요.”
매빙인은 능실(凌室)이라 불리는 국영 냉동고에서 얼음을 사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사람을 말하는데, 얼음덩어리를 팔기도 하지만 얼음물에 띄운 과일에 송 시대 설탕이 사당을 타 파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
아마 내가 경연에 참가하러 갔던 사이 매빙인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요 며칠 좀 덥다 싶었더니 말이다.
“그럼 얼음으로 차갑게 해주시겠소?”
“알겠습니다. 어르신.”
요리사에게 육수를 차갑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화구 하나에 물 채운 냄비를 올려 바로 닭을 삶기로 했다.
내가 먼저 만들고 있는 요리는 귀비계(貴妃鷄).
귀비계(貴妃鷄)는 실제로 역사적인 요리는 아니다.
1900년대 상해의 요리사가 양귀비 주제의 경극을 보고 만들어내 이름 붙인 요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흥주의 향을 듬뿍 먹여 만드는 요리이며, 닭의 피부가 팔각으로 인해 붉은색으로 물들고.
그 모습이 윤기 있고 매끄럽기에 그것이 술 취해 발그레 물든 양귀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귀비계.
먼저 포도주를 닭의 몸 안팎에 꼼꼼하게 바르고, 소금으로 살짝 절였다.
그리고 닭의 배 속에 편으로 자른 생강과 대파를 넣어주었다.
그렇게 포도주의 향이 닭에 충분히 배도록 잠시 그대로 두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자 곧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물.
-부글부글.
요리사가 눈썰미 있게 요리과정을 살피고 있기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마침 물이 끓어오르는구만. 요리사 여길 보시오. 닭은 이렇게 끓는 물에 넣었다가 꺼내 찬물에 식히기를 반복하면서, 그 피부를 탱탱하게 만들어주어야 하오.”
“어째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끓는 물 안에 닭을 넣었다 꺼내기를 반복하면 껍질이 아주 탱탱하게 변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라오.”
“아아···.”
-첨벙. 첨벙.
내 손에 목을 잡힌 닭이 펄펄 끓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옆에 있는 찬물그릇으로 들어가길 반복했다.
그러자 쭈글쭈글하던 닭의 가죽이 팽팽하게 펴지며 닭의 몸이 윤기를 흘려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탱탱해진 닭.
그렇게 표면이 탱탱해진 닭을 그대로 냄비에 넣어 한 식경정도 삶아주기로 했다.
“이제 한식 경 삶아줍시다.”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제 귀비계는 어느 정도 완성되었고, 다음은 소군압(昭君鴨)을 시작할 차례.
하지만 오리에 손대기 전 먼저 한가지 만들 재료가 있었다.
“비연 류가반점에 사람을 보내 면을 만들기 위해 발효해둔 밀가루 반죽 두 덩이만 받아다 주겠소?”
“네. 청운님. 거기 류가반점으로 가 청운님의 명이라고 밀가루 반죽을 두덩이 받아오세요.”
“알겠습니다. 비연님.”
틱틱거릴 줄 알았더니, 이제 맛있는 향도 솟아오르고 내가 뭔가 열심히 만들어주는 모습에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느낌.
약간 표정이 풀린 비연이 류가 반점으로 사람을 보냈다.
그렇게 밀가루 반죽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데 예상외의 사람이 부엌으로 들어섰다.
“스승님, 밀가루 반죽을 부탁하셨다고 해서 제가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스승님께서 만드신 것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어서요.”
가련이가 반죽을 가지고 직접 등장한 것.
그때였다.
평소라면 가련이에게 반갑게 인사했을 비연이 토라진 목소리로 혼자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구시렁하기 시작했다.
[저, 저런 게 뭐가 좋다구!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다양하다지만··· 하필이면!. 저건 내가 어찌해볼 수도 없는데···.]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고 가련이를 보고를 반복하는 비연.
그리고는 갑자기 다시 기분이 나빠졌는지 나에게 쏘아붙이며 물었다.
“아직 멀었나요!? 저 바쁘다구요!”
“알겠소. 빨리하겠소.”
‘오늘 대체 왜 저러누? 오늘 설마 그런 날인가?’
한 달에 한 번 기분이 별로인 날인가 싶어 받아든 반죽으로 바로 필요한 것을 만들기로 했다.
“고맙다 가련아. 반죽 이리 주거라.”
“예, 스승님.”
“흥!”
반죽을 건네주던 가련이가 비연의 코웃음 치는 소리에 움찔해 비연을 바라보았으나, 획 하니 고개를 돌리는 비연.
[신경 쓰지 말거라 오늘 기분이 별로인 듯하니.]
[예, 스승님.]
가련이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한 후, 반죽을 넘겨받아 바로 다음 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스승님?”
가련이의 물음 속 가련이에게 받아든 반죽이 향한 곳은 물통 속.
-첨벙.
물통으로 빠진 반죽에 가련이가 당황했다.
“어, 어째서 그걸? 거기?”
멀쩡한 반죽을 물통에 던져 넣으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만들려면 이런 과정이 필수.
나는 물통에 던져넣은 반죽을 심지어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물통의 물은 우유처럼 변해 뿌옇게 물들었다.
“그, 그러면 반죽이?”
“대, 대인 그걸 왜?”
멀쩡한 반죽을 왜 물에 다 풀어버리니 가련이도 요리사도 당황한 얼굴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을 주물 거린 물통에서 나온 것은 하얀 반죽.
“어? 어째서 아직?”
한참을 물어서 주물렀는데도 반죽이 남아있으니 신기했던지, 가련이와 요리사가 머리를 가까이해 반죽을 구경했다.
매끈매끈 윤기 있는 밀가루 반죽.
정확히는 밀가루 반죽이 아니지만 말이다.
“스승님, 반죽이 이상합니다. 깨끗하게 씻어냈는데, 더 매끈거리고 끈적해 보입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면근(面筋)이라 불리는 것인데, 반죽을 발효하면 반죽에 글루텐이 형성된다.
그 글루텐이 형성된 반죽을 물에 씻으면 밀가루는 다 씻겨나가고, 글루텐만 남는데 면근이 바로 이 글루텐인 것.
식탁 빼고 다 먹는 중원인답게 중원인들은 이 글루텐만을 따로 요리해 먹는데, 소군압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가 바로 이 글루텐인 면근.
씻어낸 반죽 두 개를 합쳐 한 덩어리로 만들고 그것을 요리사에게 주어 쪄달라고 부탁했다.
“이걸 좀 쪄주겠소?”
“알겠습니다. 어르신.”
저 씻어낸 글루텐 덩어리를 쪄내면 스펀지 같은 형태가 되는데, 그것은 소군압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
면근까지 만들어지고 있으니 바로 오리를 손질을 시작했다.
뜨거운 장작불에 오리의 겉을 살짝 그을리고.
-탕! 탕!
오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그것을 웍에 넣은 후 물을 부어 끓였다.
이 과정은 오리의 잡내를 잡아주기 위한 일차과정.
한번 끓여 오리의 기름과 피를 뽑아내 잡내를 빼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게 웍에 오리가 끓어오르게 두고, 곧바로 생강을 잘라 편으로 썰어냈다.
그리고 다른 곳에 웍을 하나 더 걸고 기름을 한 국자 퍼 달구었다.
익숙한 기름이 끓어오르는 향.
편으로 썬 생강과 팔각을 던져넣자 향긋한 생강 내음이 확 치솟아 올랐다.
-치익.
여기에 이제 끓어오르는 오리고기를 건져 바로 볶음.
-추와아아아아아.
오리고기에 팔각과 생강의 기름을 먹여주고, 겉을 익혀 육즙을 가두기 위함이다.
그렇게 오리의 겉이 한번 살짝 익으면 이제 물을 부어주고 두어 시간 끓여주어야 하기에 웍에 물을 부어주고 뚜껑을 덮었다.
-턱.
“자 이제 두 시진 정도 기다립시다.”
그렇게 잠시 쉬며 차나 한잔하려고 할 때였다.
“어!? 형님! 여기 계셨습니까?”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여기 나타나서는 안 될 사람의 목소리.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 진아 네가 어떻게 여길?”
그러자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는 장진 녀석.
“아, 천검자 어르신은 할아버지께서 자세히 진맥하시더니, 열흘은 정양해야 할 것이라고 하셔서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요리입니까? 맛있는 냄새가 나네?”
장진 녀석이 나타나다니.
두 누님이 무참하게 유린 될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