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0화 (330/344)

권왕(拳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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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북 융중산(隆中山) 제갈세가 본가.

그 제갈세가 본가의 구진문 앞으로 한 무리의 무사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한 무사 중 한 사람이 걸어 나와 번을 서던 제갈가 무사에게 부탁했다.

“모용세가의 가주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안에 연통을 넣어주시겠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안에서 기별이 올 것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다른 이들이 보았으면 다소 기이하게 여겼을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세가 회는 저번에 끝난 상태.

또한 만일 세가 회가 다시 열렸다 해도 남궁가를 찾았어야 했지만, 여기는 제갈세가였으니까 말이다.

모용가가 가주와 함께 이 시기에 이곳을 찾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

하지만 모용세가의 가주는 제갈가를 반드시 찾을 이유가 있었다.

육대세가 네 가문 공동 데릴사위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업적(?)을 세운 남자의 처가들이 만든 회 삼합회(三合會).

오늘 무엇보다 중요한 그 삼합회(三合會)의 첫 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모용세가가 합류하고 열리는 첫 회가 말이다. 

그렇게 안에 연통을 넣어달라 부탁하고 얼마 안 돼.

흰 백발을 휘날리며 구진문 입구로 나타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제갈가의 안주인이자 북해빙궁의 전 빙궁주라는 빙설화.

흰옷을 입은 그녀가 눈발처럼 제갈가 입구에 내려앉자 모용가의 무사들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 저것이 북해빙궁주···.”””

그리고 그런 무사들의 놀란 목소리 틈으로 구진문 앞에 도착한 북해궁주 빙설화의 인사가 들려왔다.

“먼 길 고생하셨어요. 오랜만에 뵈어요. 모용 가주.”

인사하는 북해빙궁주의 묘하게 반질거리는 얼굴.

얼굴에 기름을 바른 것도 아닌데 묘하게 반질거리는 얼굴에 모용가의 가주가 약간 움찔하며 인사했다. 

뭔가 신공절학에 의한 신체 변화인 듯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경지가 또 상승했나?’

“제, 제갈 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른 분들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거리가 제일 멀긴 했지만, 모용가가 이번 회에 제일 늦은 모양.

모용가의 가주는 급하게 사과했다.

“아이쿠. 제가 제일 늦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이거.”

“아닙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워낙 입구에서 맞이한 사람이 거물인지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작 입구에서 자신을 맞아야 할 제갈가의 주인인 가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용 가주.

그가 약간 의구심을 가진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세가에 다른 세가의 가주가 손님으로 찾아오면, 가문의 가주가 직접 맞는 것이 예의였기 때문.

아무리 북해빙궁주를 내보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제갈 가주께서는?”

그러자 앞장서서 걷던 빙설화가 멈칫하며 돌아보고는 어색하게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 조금 병환이 생기셔서. 손님들을 모시고 직접 맞지 못해 죄송하다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예!? 벼, 병환? 어디가 많이 아프시답니까?”

무공을 익힌 자는 어지간하면 잔병치레는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무림인이 아파서 사람을 맞으러 나오지 못할 정도면 큰 병.

모용가의 가주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묻자, 빙설화가 약간 얼굴을 붉혔다.

“아, 아뇨. 조금 무리하셔서. 다, 다리가 떨려 걷기가 힘드시다는데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다행입니다. 무슨 무공을 수련하셨기에···.”

큰 병은 아니고 무리해서 다리가 떨려 조금 걷기 힘들다는 말.

모용 가주는 그 정도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이었다.

하지만 조금 걷다가 머릿속에 드는 위화감.

‘아니지. 잠깐. 제갈가의 가주의 다리가 걷지 못할 정도라? ’

경공도 익히고 보법도 익힌 제갈 가주의 다리가 떨린다니 뭔가 이상했던 것.

하체 단련이 그렇게 된 사람이 대체 뭘 무리했기에 걷기가 힘들 정도로 다리가 떨린다는 것인지 말이다.

자신도 소싯적에 무공을 처음 익힐 때, 하체 단련을 위해 마보(馬步)를 익혔을 때 빼고는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걷다가 그 원인을 알고 입을 가리고 경악했다.

이상하게 반질거리는 북해빙궁주의 피부와 다리가 떨린다는 제갈가의 가주.

두 가지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유가 생각났던 것.

이건 분명 그것 때문일 것이 분명했다.

이십 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다더니 해후가 좀 격렬한(?) 모양이었으니까.

‘팔왕급 무인을 밤마다 상대하려면 그럴 수 있지···. 아니지 잠깐? 그러고 보니 우리 사위님도?’

그리고 그 생각에 끝에 사위님에 대한 걱정이 솟아올랐다.

아직 따님이 경험이 적어 현재는 괜찮겠지만, 따님이 만약 그쪽으로 숙련(?)의 경지에 오른다면 사위님도 저 꼴이 날 것이 뻔했던 것.

아니 더 심각할지도 몰랐다.

사위님은 범인이고 따님은 팔왕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따님은 하체를 쓰는 보법과 경공에 특화된 여인.

이거 생각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던 것.

거기에 다른 세가의 딸들까지?

때문에 모용승겸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되돌아가면 몸에 좋은 약부터 챙겨야겠구나!’

사위님은 꼭 오래오래 살아주어야 했다.

그래야 그 덕을 충분히 볼 테니까 말이다.

*** 

“오늘 이렇게 다들 뵙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위가 구양문충가(歐陽文忠家)에서 열린 해미식경연에 장원을 한 것을 다 같이 축하하기 위함입니다.”

남궁 가주의 설명에 다 같이 기뻐하는 다른 가주들.

“껄껄, 그놈 참···. 가주, 영영이에게 내조를 잘하라고 단단히 이르게.”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 녀석 식탐만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아이고 우리 사위님이 큰일을 하셨군요. 참으로 중원의 군자가 아닙니까? 허허허.”

사위가 요리 경연에 장원을 했다는 이야기에 다들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남궁 가주가 좋은 소식을 알리느라 전달하지 않은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급하게 다른 가주들과 독왕, 그리고 빙설화를 향해 설명했다.

“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인가요? 남궁 가주님.”

갑자기 놀란 음성으로 외치며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남궁가주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빙설화.

그녀의 물음에 남궁 가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사위의 무공 선생 말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남궁 가주, 무공 선생 말입니까?”

“아, 모용 가주는 오늘 처음 들으시겠군요. 그럼 제가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사위에게 무공을 가르치려 했었는데 말입니다···.”

원래 데릴사위에게는 각자 가문의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보통.

하지만 세 가문의 데릴사위였던 청운이에게는 모든 무공을 가르칠 수도 없었고, 또 가르치지 못할 이유도 있었다.

세 가문의 내공이 서로 부딪칠 것을 염려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무공을 전수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청운이의 몸 때문.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몸 안의 기가 미약하게나마 일정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인데, 독왕의 말로는 청운이라는 놈은 그 방향이 거꾸로 되었다는 것.

이상한 것이 몸의 기운은 정상적으로 흐르는데, 머리 그러니까 상단전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상단전의 기만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이 큰 문제였다.

비틀어져 꼬여있다고 해야 하나?

때문에 독왕이 그 사실을 알렸을 때는 다들 얼마나 놀랐던지.

그런 이유로 청운이에게는 내외공에 대한 조예가 깊은 선생이 필요했다.

청운이의 몸 상태를 정확히 확인해 무공을 배울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 몸에 어울리는 입문 무공을 찾아줄 그런 사람이.

그의 조언으로 다른 세가들에서 청운이에게 어울리는 상승 무공을 찾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 이유로 세 가문의 가주가 선택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황보세가(皇甫世家)의 가주.

황보세가의 가주가 세가의 고수 중 내외공에 가장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황보세가의 무공이 범인도 노력하면 일정 경지까지에 오를 수 있는 외가 무공이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때문에 근골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청운이의 희한한 몸과 내공 흐름을 파악해줄 인물로 그가 제일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또 황보세가는 뛰어난 자식에게 집중하는 다른 세가와는 다르게, 하찮은 재능을 가진 자식이라도 질릴 만큼의 단련으로 일정 수준의 고수로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기에 더욱 좋았다.

독왕이 이미 맥을 짚어보았는데 청운이는 무골과는 좀 거리가 멀다고 했으니 잘 어울린다고나 할까?

“······해서 처음에는 황보가의 무공을 가르쳐달라는 줄 알고 거절하기에 그것이 아니고, 황보가의 무공이 아니라. 청운이의 몸을 살피고 입문 무공 하나 추천해 달리고 해서 어렵게 승낙받았었는데,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는 서찰이 도착해서 말입니다.”

“아,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나저나 그 몸은 괜찮은 것입니까? 우리 사위님?”

긴 설명 끝에 모용가의 가주가 사위를 걱정하자 독왕이 직접 설명했다.

“내가 봤는데 별 이상 없었네. 그런 몸은 처음 봤지만 말이야. 황보가 그놈들이라면 알 것으로 생각했더니. 에잉. 그나저나 검왕, 황보가 놈들이 왜 못 해준다고 하던가? 저번에는 해준다고 하더니 갑작스레.”

원래 무공을 익히는데 미쳐있어 다른 부탁은 잘 거들어주지 않는 황보세가이긴 했는데, 약조한 것을 깼다는 말에 독왕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저도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황보세가에서 그런 서찰을 보내와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았더니. 아마도 그분이 나타나신 것 같았습니다.”

“그분? 그럼 설마?”

그분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독왕.

독왕을 향해 남궁 가주가 대답했다.

“예, 권왕(拳王). 그분이 나타나신 모양입니다. 아마 확실한 정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랴부랴 황보 가주가 세가를 비웠다는 것을 보니.”

“권왕이 나타나셨단 말입니까? 남궁가주?”

“권왕이라니!? 그러면 그럴 수 있겠군요.”

권왕(拳王).

무림에 권각(拳脚)술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자.

애초에 황보세가의 가주를 청운이의 선생으로 정한 것도 다 권왕의 영향이 컸다.

그가 내외공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며, 중원에서 직접 시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알려진 벌모세수대법(伐毛洗髓大法)을 익히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몸과 내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시전조차 할 수 없다는 벌모세수를 중원에서 직접 펼칠 수 있는 인물.

때문의 그의 아들인 현 황보 가주 또한 내외공에 뛰어난 지식이 있었고, 그 때문에 청운이의 몸을 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니까.

권왕이 나타났다는 말에 독왕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허허, 집 나간 늙은이가 그럼 집에 들어 온 것이야?”

“아닙니다. 최근에 무한(武漢) 근처에서 누군가가 보았다는 이야기가···.”

독왕의 비아냥에 어색하게 웃는 다른 가주들.

권왕이 황보세가를 나갔다는 것은 중원 무림에 아주 잘 알려진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환골탈태에 실패해 불구의 몸이 되었고, 자신이 창안한 무공이 위험해 가솔들이 배우기를 꺼리자 직접 제자를 찾아 중원을 유람 중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찾는 황보 가주의 이야기는 무척 잘 알려진 이야기였던 것.

“그건 그렇고 그러면 이제 누굴 찾아야 합니까? 내외공에 다 조예가 깊은 사람이 누가 있었던가?”

“내공과 외공을 봐줄 사람을 각각 따로 구해야 하나?” 

“저는 내공의 결이 중원과는 다르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렇게 다들 권왕에 관한 생각을 밀어두고 다른 선생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 그렇지! 이런 바보같이 이 무슨 짓인지.”

“예?”

“바보 같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다른 누군가가 바보 같다고 말했으면 다들 분노했을 사람들이지만, 독왕의 바보 같다는 말에 눈을 깜빡이는 가주들.

가주들을 향해 독왕이 설명했다. 

“우리가 애초에 황보세가의 가주에게 청운이를 부탁한 것은 어째서였나?”

“그야 황보 가주가 내외공에 조예가 뛰어난 사람이기에 그런 것 아닙니까? 어르신.”

“그래, 그 이유지. 그런데 우리는 그때 최선이 아니고 차선을 선택한 것임을 잊었던가?”

“아!”

그렇다.

애초에 황보 가주에게 청운이를 부탁한 것은 권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중원에서 가장 내외공에 조예가 깊은 인물인 것은 알지만 찾을 수가 없으니, 그의 아들인 현 황보 가주를 택했던 것.

그런데 지금 권왕의 족적이 드러났으니, 처음부터 찾으려 했던 권왕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마지막으로 발견되었다는 곳인 무한이라면 제갈가에서 별로 멀지 않은 거리. 

거기에 지금 여기 모인 가주들은 다들 무력대 하나씩은 데려온 상태였으니.

그 사람들만 풀어도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터.

“그놈의 늙은이 제 아들을 피하려 할 테니, 우리가 먼저 빼돌리면 될 일 아닌가? 헤헤.”

독왕의 말에 기뻐하는 다른 가주들과 빙설화.

“그렇군요!”

“제가 직접 찾아 나서겠어요! 어르신”

“제갈 부인, 그냥 저희 모두 찾아 나섭시다! 저희가 나서면 권왕 어르신 하나 못 찾겠습니까?”

그렇게 삼합회의 첫 회는 때아닌 사람 찾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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