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救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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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누님을 동시에 능욕하려는 장진의 음흉한 시도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날카로운 비연에게 곧바로 제압되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저희 기루에서 이 요리를 시켜 이렇게 드신다면 기루출입을 금지하겠어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 흉하게 먹는 법을 가르친다면, 확! 그냥···. 아니···. 아무튼 금지에요!”
“추, 출입을 금한다고! 아, 아니 그저 맛있게 먹는 방법의 하나일 뿐···.”
“교송지! 앞으로 장공자의 출입을···.”
“아, 알겠소! 지, 진정하시오.”
화월루가 없어졌으니 이제 장진이 주로 이용해야 하는 기루는 화화루가 유일했는데, 그러다 보니 출입 금지가 떨어지면 아쉬운 것은 장진뿐.
녀석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비연에게 바로 꼬리를 내렸다.
비연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더니 눈치없는 장진 녀석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
조심스럽게 비연에게 물었다.
“저, 비, 비연. 그럼 마음에 드시오?”
“뭐···. 요리야 항상 마음에 들지요. 요리야···. 에휴···.”
뭔가 한탄하는듯한 목소리.
아마 아까 장진이 눈치 없이 가슴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과 요리를 능욕하려 했던 연유인 것 같지만, 요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었다.
기루의 요리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기루의 분위기에 어울리는지, 그리고 술안주로 훌륭한가가 기루에 어울리는 요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소군압과 귀비계는 아주 훌륭한 요리니까 말이다.
일단 치킨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이고, 오리야 그 사촌이니 말해 무엇하겠나.
거기에 중원 사대 미인 중 둘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요리이니 비연의 화화루는 당분간 손님으로 미어터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 일단 요리는 만들어주었으니, 비연은 조용히 혼자 마음을 다스리게 두고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럼 내 바쁜 일이 있어 이만 되돌아가 보겠소.”
“버, 벌써 돌아가세요?”
“뭐 요리도 만들었고.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이오.”
“그러세요. 뭐 그럼. 치···.”
“진아 너도 따르거라.”
“예? 아직 요리가 남았는데?”
“어허! 지금 그것 먹을 때가 아니다.”
“예? 그럼 무슨?”
일단 비연의 기분은 요리로 대충 풀어줬으니 나머지는 자신이 다스리라 하고, 장진을 좀 교육해야 할 것 같았기에 녀석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녀석을 끌고 나와 혹시 녀석이 비연이 살짝 연심을 품으려 하는 것을 눈치를 챘는지를 확인하기로 했다.
“진아, 너 혹시 요즘도 기루를 자주 들르느냐?”
“아, 아닙니다. 형님. 저 요즘은 열흘에 한 두어 번 정도···.”
‘아, 이런 눈치 없는 녀석. 얼굴을 자주 보여줘야지. 왜 요즘은 그것밖에 안가누.’
눈치를 보며 대답하는 장진.
왜 그렇게 조금 가는지를 되물었다.
평소라면 매일 갈 녀석인데 이상했던 것.
“진아, 어찌 열흘에 한 두어 번 간단 말이냐?”
“예!? 그야 뭐···. 형님의 아우로 부끄럽지 않으려고 좀 줄이고 있다고 할까요···. 형님의 체면도 있고.”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
내 생각에 기루 출입을 줄이고 있다는 대답.
이런 순간에 이런 쓸데없는 생각 곤란했다.
“진아,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구나. 그러지 말고 매일 가도 되니 걱정하지 말고 다니거라. 네가 기루 다니는 것과 내 체면이 무슨 상관이더냐.”
“저, 정말입니까? 매, 매일 가도 됩니까!? 형님?”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녀석에게 비연에게 얼굴이나 자주 보여주라는 의미에서 매일 기루행을 허락하자, 날 듯이 기뻐하는 장진.
직접적으로 비연이 녀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하책. 은근히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상책이니.
서로 어느 정도 진도가 진행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묻자 장진이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래, 그나저나 요즘 기루에 가면 비연과 이야기는 자주 나누느냐?”
“뭐 형님이 안 계시면 저는 사 층에 주로 가니, 다른 기녀들을 앉히고 놀지만···. 아!”
“왜 그러느냐?”
뭔가가 생각난 모양.
녀석의 대답을 기다리자 녀석이 듣고 싶은 대답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 찾아갈 때마다 비연이 저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긴 했습니다.”
“오! 그래? 뭘 물어보더냐?”
“아, 주로 형님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나?”
나에 관해 묻는다는 이야기.
조금 의외긴 했으니 생각해보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긴 했다.
‘설마 공통적인 이야기가 없으니 연결고리인 나를 언급하는 것일까?’
하긴 같이 나눌만한 대화 주제가 나밖에 없다 싶었다.
장진은 기루나 의학 정도가 가진 소양 전부이고, 비연이야 정보와 남자를 후리는 법밖에 모를 테니.
대화 주제로 삼자면 둘의 연결고리인 나를 언급하는 것이 좋을 테니.
‘확실히 비연이군. 공통 주제로 나를 삼다니.’
괜찮은 접근이라 생각하며 더 잘하라는 이야기를 해주려 할 때였다.
“고, 공자님! 공자님!”
“아, 총관 무슨 일인가?”
“지금 약왕 어르신께서 찾으십니다. 천검자 어르신에게 사용할 약재를 긴급히 매입해야 한다고···.”
“그래? 얼른 가봐야겠구나. 형님,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 그래 얼른 가보거라.”
‘뭐 오늘만 날은 아니고. 둘이 잘 안되는 것 같으면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좀 더 비연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장진을 그대로 돌려보내고 간만에 저자를 한 바퀴 돌며 요리에 쓸 재미난 재료가 없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반점으로 되돌아오자 청, 미미, 소소, 영영이가 나를 둘러싸고 심문하듯 물어왔다.
“가가, 어제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말씀해보세요.”
내 몸을 향해 던진 밀가루 반죽마냥 찰싹 달라붙은 영영이의 질문.
움찔하며 되물었다.
“왜 그러느냐 영영아 무, 무섭게?”
“아니, 혼내는 거 아니고 좀 전에 육전 다녀오는 길에 장공자를 만나서 물어봤더니, 천검자 어르신이 신병이 걸렸다고 하잖아요.”
“어, 그래 나도 살짝 그리 들은 것 같은데, 대체 신병이 무엇이더냐? 병신도 아니고.”
내가 점쟁이들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니, 영영이가 좋아하는 원초적 개그를 한 번 치며 나도 궁금하다는 듯 묻자, 영영이가 포복하며 바통을 소소에게 넘겼다.
“꺄르륵. 병신. 가가 재미있어요. 아, 이게 아니지. 소소, 소소가 말해봐.”
“네, 영영. 은공 저희 오라버니가 그러시는데, 천검자 어르신은 평소보다 술에 취하면 좀 더 좋은 점괘를 내려주신다고 했어요. 그리고 천기를 거스를 정도의 대단한 점괘를 내리시면 크게 앓아눕는 경우가 있다고 하셨거든요. 꽤 잘 알려진 이야기래요.”
“그렇소? 나에게는 별말 안 하신 것 같은데?”
나와는 선생이니 학생이 뭐 그런 이야기만 잔뜩 하고, 술자리가 시작되자 여자 끼고 술 먹느라 바쁘셨던 분이기에 잘 모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내 손을 잡아 오며 청이가 다정한 목소리로 다시 물어왔다.
“노공,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리 앓아누우신 것을 보면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빠짐없이 생각나는 대로 말씀해보세요.”
나에게 한 이야기라고는 가련이에 대한 이야기.
아내들에게 어제 나눈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냐 하면 가련이와 나의 사이는 스승 그러니까 사부와 제자가 아니라. 선생과 학생이라고···. 아!”
“가가, 왜요? 뭐 생각나는 게 있어요?”
“낭군님 뭐 떠오르는 게 있으신가요?”
생각해보니 강조한 게 하나 있긴 했다.
“특별히 강조하듯 하신 말씀이 하나 있었소. ‘중요하지! 중요하고말고! 잘 기억했다가 누군가 물어오면 반드시 둘 사이는 사부와 제자가 아니라 선생과 학생이라고 해야 할 것이야! 내 말 명심하게 알겠나!?’ 이리 말씀하셨소.”
그러자 아내들의 시선이 다 같이 부엌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을 내뱉듯 이야기했다.
“이건.”
“그냥”
“듣고”
“넘어가기.”
“힘든”
“이야기군요.”
‘어째서?’
아내들이 내 마지막 말에 예민해진 이유.
나는 청이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 나서야 그 원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사부와 제자에서 나와 가련이의 관계가 학생과 선생이 된다는 것 때문.
그것은 절대 내가 생각한 것만큼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중원에서 사부와 제자가 만약 부부가 된다면 마치 부모와 자식이 부부가 되는 것과 똑같지만, 학생과 선생의 신분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
결국 선생과 학생은 혼례를 치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이런 드립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제 천검자 어르신이 가련이도 부인 중 하나라는 말을 했을 때는, 그냥 천검자 어른이 실수했겠거니 웃으며 생각했지만, 이렇게 선생과 학생이 되면 아내로의 길이 열려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아내들이 저리 예민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아내들이 시선이 싸늘하게 가련이가 일하고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영영이는 청운에 품에 안겨 있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가 자요?”
-푸···.
그러자 대답 대신 들려오는 숨소리.
아마도 잠이 든 것이 확실했다.
그렇기에 영영이는 가가의 품에서 슬쩍 빠져나와 청이의 방으로 향했다.
가가가 잠들면 다 같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미리 말을 나눈 상태였기 때문.
-뿌드득. 뿌득.
그렇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청이의 방.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은공께서 아직 잠이 드시지 않은 걸까요? 영영이가 늦네요.”
“아니, 지금 방 밖에 온 것 같아요.”
영영이의 도착 사실을 알아챈 미미 언니.
영영이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안, 좀 늦었죠? 가가께서 잠이 일찍 안드셔가지고.”
“괜찮습니다. 언니. 저희도 막 모였습니다.”
“그럼 영영이도 도착했으니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청아?”
소소의 말에 청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회(會)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모임은 청이가 의견을 낸 류청운 부인들만의 모임.
아무래도 각각 가문들을 등에 업고 있는 여인들이기도 하고, 청운이 몰래 나눠야 할 이야기도 있을 것 같기에 마련한 회였다.
부모님들도 삼합회라는 회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조율 한다니, 혹시라도 생기는 문제들을 모여서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청이가 소소를 향해 질문했다.
“소소 언니, 알아보셨습니까?”
“네, 오라버니께 아는 대로 다 말해달라 해서 확인했는데, 확실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청이가 소소에게 부탁한 것은 무당파에 친구가 있어 천검자 어르신에 대해서 이것저것 들은 적이 있다는 남궁현에게 사실을 확인한 것.
천검자의 점이나 이야기가 얼마나 믿을만한지에 관한 확인이었다.
하지만 소소를 통해 들려온 대답은 넷이 가장 원치 않는 대답이었다.
그것은 천검자가 한 이야기가 틀림이 없다는 이야기.
가련이가 노공이신 청운님의 여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결론이었다.
소소의 대답에 착 가라앉은 분위기.
그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청이가 다른 셋을 향해 눈빛을 반짝였다.
“다들 걱정스러운 모양인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세분을 거치면서 그동안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응? 뭔데 청아?”
“생각해둔 것?”
“뭔가요?”
청이의 말에 다들 청이를 바라보며 묻자 청이가 약간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제가 어쩌면 이번에는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 막아낼 수 있다고!?”
“막는단 말입니까?”
“정말요?”
“예, 저는 그러니까 노공과 혼례를 올리고 세분을 받아들였던 처지. 해서 그동안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었습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있습니다.”
확실히 청이의 말이 맞았다.
청이는 처음부터 다른 셋도 청운의 부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입장.
이 여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여인일지도?
“뭔데 청아? 빨리 말해봐!”
“그래요. 청, 너무 궁금합니다.”
궁금해 죽겠다는 다른 셋의 보챔에 청이가 그간 자신이 여난을 겪으며 생각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제가 여러분들의 일을 겪으면서 이 일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통점?”””
“예, 그것은 구명(救命). 노공께서 여인들의 목숨이나 그 가족의 목숨을 구하면 반드시 노공의 여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인들.
하지만 그때 미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청, 하지만 저는 아닌데요?”
“확실히 그 말씀을 하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미미 언니는 제 목숨을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구명. 여인들이 노공이나 노공의 혈육을 구하거나 노공이 여인이나 여인의 혈육을 구하는 것. 그것이 아마 이 여난이 생겨나는 원인 같습니다.”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
영영이와 소소가 청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확실히. 나도 아버지를 구하는 가가의 모습에 반했으니까.”
“저도, 오라버니를 구해주는 모습에 그만···.”
그리고 미미가 곧바로 청이에게 물었다.
“그럼 어찌 막아낸다는 것인가요. 청?”
“가련이의 가족인 두 동생은 저희 제갈가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막아내는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위험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잘 돌보라 제가 서찰을 보내두었습니다.”
“아, 그럼 아까 저녁에 사람을 보낸 것이?”
“예.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한데, 이건 모두 같이 해주셔야 합니다.”
“뭔가요?”
“뭔데 청아?”
반짝반짝 기대감 어린 눈동자들.
청이가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가련이가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 노공 대신 저희가 나서 구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가련이는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가진 재주도 혀가 좋은 것뿐이니, 노공께서 위험해진다고 해서 가련이가 노공의 목숨을 구할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허니 아마도 가련이의 목숨이 위험해질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이고, 노공께서 가련이의 목숨을 구하려고 나서려는 그때 저희가 대신 나서 가련이의 목숨을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듯한 계획.
바로 기쁨의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역시 내 동생 제갈청! 똑똑해!”
“청,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역시 제갈가의 여식다워요!”
“내가 살린 우리 청. 몸이 타버릴 때까지 달린 보람이 있었어요!”
늦은 밤 넷이 기뻐하는 목소리에 올빼미 한 마리가 창가로 날아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깃털을 떨구며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