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4화 (334/344)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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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지만, 관청에 가봐야 했으니 반점의 인원을 재배치했다.

“너희 셋은 일단 오늘 부엌일을 돕거라. 식모는 둘에게 면을 삶을 시간과 건져내 씻는 요령을 가르치시오.”

“예, 알겠습니다. 류 대인.”

“예, 류대인.”

“알겠습니다. 류 대인 어르신. 부엌은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우리 가련이가 어째서···. 그럴 아이가 아닌데···.”

일단 가련이 대신 일을 거들 하인 하나와 나 대신에 일을 거들 둘을 해서 총 세 명의 하인을 부엌에 추가 배치했다.

그리고 형님에게는 주방의 지휘를 맡겼다.

“형님, 부엌을 부탁드립니다.”

“그래, 매부 얼른 가보게.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야. 그 순한 아이가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꼭 꼼꼼하게 확인하게 알겠지?”

“예, 형님.”

“월희는 오늘 셈을 맡거라.”

“알겠습니다. 류대인. 걱정하지 마셔요. 저, 그리고 가련이 잘 부탁드립니다. 친우가 되기로 했는데···.”

“알겠다.”

마지막으로 청이 대신 월희를 카운터에 배치하고, 소식을 전하러 온 아장과 함께 허겁지겁 관청으로 향했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반점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관청으로 뛰며 아장에게 물었다.

“아장, 혹시 형님께서 다른 말은 없으셨소? 대체 그 아이가 왜 사람을 찔렀다는 것이오?”

“류대인 저희도 새벽녘에 사람들에게 붙들려 온 것만을 본지라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합니다. 일단 가보시지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안 되겠소! 미미, 업힙시다.”

“네, 낭군님!”

내 순하고 착한 제자가 가출에 사람을 찌르기까지.

애가 똑똑하진 않아도 순하고 착한 것 빼면 시체였는데, 갑자기 비행(非行) 제자가 되어버린 내 애제자.

사람이 보는 낮이라면 미미의 등에 업히지 않았을 테지만, 마음이 급한 나머지 미미의 등에 업혀 청이와 함께 관청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잠시 후 도착한 관청.

이제는 내 얼굴에 익숙해진 관병들이 형님의 집무실까지 길을 열어주었고, 형님의 집무실로 뛰어 들어가며 형님을 찾자 형님께서 난처한 얼굴로 나를 맞으셨다.

“형님!”

그리고 서로를 향해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물었다.

“동생,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자네 제자가 왜 사람을 찔러···.”

“형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제 제자가 왜 사람을 찔러···.”

찌찌뽕을 외치고 싶은 상황.

우리 둘 다 서로를 바라보고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아마 형님도 눈에 눈곱이 껴 있는 걸 보니, 자던 중에 갑자기 새벽녘에 내 제자인 가련이가 끌려와 당황한 모양이셨다.

귀여운 동생의 제자가 갑자기 비행을 저질러 잡혀 왔으니 말이다.

사고 치는 자식을 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자네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모양이구만?”

“저에게 그만 떠나겠다고 서찰 한 장을 써두고 나간지라···.”

“그 아이가 떠나겠다고 했다고? 이 무슨 일인지···.”

“형님, 가련이가 어찌 잡혀 온 것인지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일단 형님이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듣기 위해 묻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주시는 형님.

“새벽녘 민가의 골목길에서 사람을 찔렀···. 아니, 베었다고 해야 하나? 요리하는 채도로 남자의 등짝을 베었다는구만. 소란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묶어서 관아로 끌고 왔네.”

“설마 주, 죽었습니까?”

이거 피해자가 죽었으면 정말 큰 일인 상황.

이쪽에 합의라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비행 청소년 자식을 둔 부모처럼 합의를 시도해보기 위해 피해자의 상태를 물었다.

그러자 형님이 난처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니, 그게 또 이상한데···.”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이상하다는 대답.

이상하다는 대답이 나온 연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죽었고 살면 산 것이지 이상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대체 뭐가 이상하단 말입니까?”

그런데 정말 들려온 대답이 이상하긴 했다.

“비명과 소란에 놀라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분명 남자가 등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네 제자를 제압하고 보니 없어졌다고 하네.”

“없어져요?”

“그래, 자네 제자가 제압당하자 그사이에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긴 한데···.”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 맞는군요?”

“그래서 자네가 뛰어 들어오자마자 물은 것이야.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지.”

형님의 말씀대로 뭔가 이상스러운 상황.

도망치려면 가련이가 도망쳤어야지 칼을 맞은 놈이 도망간다?

옆에 있던 청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청이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포형님께 질문했다.

“노공, 제가 포형인께 몇 가지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뭐 생각나는 것이 있소? 그리하시오.”

“포형인, 가련이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니, 내 아우의 제자인 것을 아니, 어찌 된 일인지 말을 하라고 해도 입을 꾹 닫고 도대체 말을 안 해서 말이야. 그래 내 아우를 급하게 찾은 것이네.”

“혹시 문초(問招)는?”

“어허! 내 아우의 제자를 어찌 문초부터 하겠나? 몰려온 사람들에게는 의심쩍은 부분이 많아 여러모로 알아보고 공당을 다시 연다고 하고 돌려보냈네.”

보통 죄인이 사람들이나 관병에게 붙잡혀오면 바로 매질하는 문초가 시작되지만, 내 제자임은 생각해서 손을 대지 않았다가는 형님.

역시 우리 형님다운 세심한 배려 역시 형님이셨다.

그리고 여기까지 질문하고 나서 청이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혹시 이 상태로 판결을 하시게 되면 벌은 어찌 됩니까?”

그 질문에 고개를 돌려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짓는 형님.

형님의 푸근한 얼굴이 찌푸려지더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관의 다섯 가지 판결 오형(五刑)에 대해서는 아시나 제갈 제식?”

“예, 태(笞), 장(杖), 도(徒), 유(流), 사(死) 다섯 가지가 아닙니까?”

태는 가는 막대기나 채찍으로 등짝이나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 것을 말하고, 장은 엉덩이나 등짝을 장이라는 굵은 몽둥이로 패는 것.

도는 도형이라 해서 곤장과 감옥에 가두는 구속이 섞인 형벌, 유는 유배형, 사는 사형이었다.

“그래, 그런데···.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려 했으니 사(死)가 아무래도···.”

심해야 도나 장 정도라고 생각했더니 결론은 사형.

놀라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예에!?”

“계집이니 그래도 요참(腰斬)은 아니고, 온전히 몸을 남길 수 있는 교살형(絞殺刑)이 되지 않을지···.”

‘아니, 형님 그게 중요하게 아니잖아요?’

여자라고 그나마 배려 섞인 형벌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미수에 피해자도 도망간 상황인데 사형이라니.

“아니,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놀라 되묻자 형님이 미안한 얼굴로 설명하셨다.

“자네도 알겠지만, 사사로이 사람을 죽여 간을 꺼내 제를 드리거나 은원 관계로 몰래 사람을 죽이는 일이 근래에 자주 일어나, 사람을 죽이려 한 자는 서로 무림인이 아니거나 누가 봐도 이해할만한 이유가 없지 않고서야 무조건 참형이네···.”

송 시대 민간에는 이상한 풍습이 퍼져있는데, 산 사람을 잡아 간을 꺼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주 중원다운 풍습이라 할 수 있는데, 가족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런다는 것, 하오문의 인신매매꾼들은 여인을 잡아다가 기녀로도 팔지만, 미색이 기녀로 쓰기에는 부족한 여자들은 이렇게 제사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끔 간이 없는 여인들의 시체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곤 하기에 사사로이 사람을 죽이려 한 죄에 대해서는 벌이 세다는 설명이었다.

‘형님 또 이거 겁을 주시나 보네. 우리 꽌시끼리 이정도는 해주실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형님이 또 꽌시 파워로 어떻게든 해주실 것이면서 겁을 주시는 느낌.

형님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형님, 뭐 어떻게든 되겠지요? 그렇죠?”

그런데 형님답지 않게 발을 빼시려는 액션.

“아, 아니 나도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데···. 본 사람이 적거나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입을 막고 다른 여 죄인이라도 대신 죽이겠지만, 자네 제자는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져 이거 아주 내가 난처하네. 

사람을 바꿨다가 들키기로도 하는 날에는 내 목도 떨어지니···. 내 자네라면 내 목까지 걸 수도 있지만, 자네 제자는 그게 좀···.”

민가의 일반인들에게 붙들려오는 통에 얼굴이 다 팔렸고, 내 제자라는 신분에 이미 알려질 데로 알려진 얼굴이라 바꿔치기도 못 한다는 설명.

아니 형님 믿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기초를 탄탄히 닦아놨더니 내 제자가···.

“그, 그럼 연성공 형님께는?”

포꽌시가 안된다면 그럼 연성꽌시.

연성공 형님께 어찌 부탁하면 안 되냐 물었지만, 형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그분께 폐를 끼치게 될 것이네, 억울한 죄인 같으면 모르겠으나. 사람을 죽이려 한 죄인을 그분의 이름을 걸고 살려달라는 것은, 그분의 체면에도···.”

확실히 형님 말씀이 맞았다.

포형님이 뒷수작으로 나를 돕는 것이라면, 연성공 형님이 나서게 되면 아무래도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것.

자기 이름을 걸고 황제께 상소라도 올려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그런 이야기면 모르겠지만, 가련이의 죄가 명백하다면 이게 참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형님의 말에 허망한 마음에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청이가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노공, 실망하지 마시고 일단 가련이를 만나보죠. 가련이가 함부로 사람을 해할 아이가 아니니까요. 이야기를 들어보죠. 포형인 가련이를 만나보게는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야 물론 되지 왜 안 되겠소? 여봐라 둘을 옥으로 모셔라.”

“알겠습니다. 지주 어른.”

***

아장의 안내를 따라 향한 뇌옥.

나무로 된 창살과 돌바닥에 깔린 짚.

내 제자가 있으면 안 되는 그런 좋지 않은 환경.

아장을 따라 그 뇌옥의 안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아장이 중간쯤에 멈춰 서며 말했다.

“여깁니다. 어르신.”

아장이 바라보는 뇌옥 안쪽을 바라보자 빛이 들어오지 않는 저 안쪽 뇌옥 구석, 지푸라기 위에서 쪼그리고 앉아 벽을 향해 있는 사람의 형체.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어색하게 쪼그린 녀석은 누구도 아닌 가련이였다.

“가련아! 이 녀석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믿을 수 없는 대형 사고를 친 녀석.

마음속에는 걱정뿐이지만, 녀석의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호통이 터져 나왔다.

이래서 전생에 엄마가 내가 뭔가를 실수하면 등 따귀부터 후려치신 모양.

그렇기에 마음과 다른 호통으로 녀석을 불렀지만, 녀석은 내 목소리에 움찔하더니 가슴 사이에 꿩처럼 머리를 숨겼다.

“가련아? 가련아?”

계속해도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녀석.

보다 못한 청이가 안 되겠는지 아장에게 물었다.

“혹시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러자 다시 구석에서 움찔하는 가련이.

“예? 안에 말입니까? 그건 지주 어른께 여쭤보고 와야 하는데···. 잠시만 기다리십쇼. 제가 물어보고 올 테니.”

아장이 뇌옥 밖으로 사라지고, 그사이 가련이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았다.

“가련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더냐? 서찰은 무엇이고 사람은 찔렀다니 어찌 그런 것이야? 이 녀석아 뭐라 말 좀 해보거라.”

하지만 역시나 아무 말도 없는 가련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이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노공, 아장이 오면 제가 한번 들어가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노공은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무슨 생각이 있소?]

[예, 대충 짐작이 갑니다.]

[정말이오? 알겠소. 그럼 나가 있겠소.]

청이가 같은 여자끼리 이야기를 나눠 보겠다는 느낌.

거기에 뭔가 짐작 가는 것까지 있다니 일단 자리를 피해주기로 했다.

제갈청이는 장인과는 다르게 믿을 만한 지낭(智囊)이니까 말이다.

***

-삐거덕.

뇌옥의 문이 열리자 가련이는 얼른 더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두근두근.

사람을 찌를 때보다 더 뛰는 가슴.

부스럭거리는 풀 소리가 점점 누군가가 가까워져 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스승님과 관병은 나가 있겠다고 했으니, 아마 들려온 다른 목소리의 주인인 사모(師母)인 제갈 부인일 테니까.

그렇게 가까워져 오는 인기척이 바로 뒤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어깨에 올라오는 따듯한 손길.

유난히도 따뜻한 손길에 가련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힉···.”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손길만큼 따듯한 목소리.

“가련, 아마도 부모님의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따듯한 목소리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자세히 말한 적이 없는 가련이의 비밀이었기에 가련이는 놀란 눈을 부릅뜨고 제갈 부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께 지나가듯 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그동안 혼자 참아내느라고 힘들었겠습니다.”

제갈 부인의 특징인 딱딱한 말투지만, 어깨를 쥔 손에서 느껴지는 따듯함과 자신을 걱정하는 표정.

그 말과 표정에 꾹꾹 누르며 참아내고 있던 가련이의 가슴 속 막힌 둑이 단숨에 터져버렸다.

그리고 고여있던 감정들이 장강의 물줄기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흐···. 흑···. 흐아아아아···. 죄, 죄송해요.”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진정된 가련이의 입에서, 꼭꼭 숨겨두었던 비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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