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7화 (337/344)

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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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영영이, 소소, 미미가 형님을 너무 몰아붙이기에 아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셨다.

“엉덩이 열 대 정도인데 너무 소란 아니오? 형님도 많이 신경 쓰신 듯한데?”

전생에 내가 학교에서 맞은 엉덩이를 전부 더 하자면, 열대면 그냥 코웃음 치면서 맞을 수 있을 정도.

하키스틱이나 자른 조정선수의 노, 당구봉, 야구 배트 등 다양한 도구로 맞아본 입장에서 아무렴 죽는 것보다야 엉덩이 열대가 남는 장사니까 말이다.

엉덩이 열대 맞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내 제자라는 타이틀에 형님도 백성들 눈치도 보일 테니 무죄 방면은 어려울 것이 분명했던 것. 

그러니 그 정도면 괜찮은 사법 거래라는 생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자, 아내들이 모두 내 주변에서 한걸음 씩 움찔 물러서며 경악했다.

“노, 노공 열대 정도요!? 지,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죠? 그렇죠?”

“가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세에상에! 한 대라도 안 되는 거예요!”

“은공···. 제가 다 부끄러워요.”

“나, 낭군님? 지,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잘못 말씀하신 거죠?”

이어지는 격렬한 아내들의 반응.

그 반응에 이거 내가 뭔가 말을 잘못 한 듯싶었다.

‘아, 설마 유교 사회라서 여자들 엉덩이 맞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나?’

생각해보니 유교가 뿌리내린 이 중원에서 여자들의 엉덩이라는 것은 예민할 수 있는 부분.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가슴 위를 드러내는 것이 패션이었지만, 유교가 강하게 뿌리내린 이 송 시대는 꽁꽁 싸매는 것이 보통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이거 아무래도 말을 실수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당황하자, 내 표정을 본 청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설마···. 노공, 여인이 장을 맞는 것 한 번도 본 적 없으십니까?”

당연히 이 몸은 복주에서도 한적하게 떨어진 깡촌 복청 류가장 출신이고, 중원을 여행할 때도 관아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본 선함과 바람직함의 표본 같은 인물.

청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소만?”

그러자 다소 안심하는 표정으로 아내들이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휴, 깜짝 놀랐네. 가가, 놀랐잖아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은공이 그러실 리 없지요. 역시.”

“낭군님, 놀랐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곁으로 다시 다가온 아내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단어를 외쳤다.

“““거의수장(去衣受杖).”””

‘거의수장? 옷이 떠나고 지팡이를 받다? 뭔 소리냐 이게?’

문자 그대로 해석했더니 해석이 안 되는 단어.

청이를 바라보며 설명을 해달라는 듯 되물었다.

“거의수장이라면?”

그러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청이가 무척이나 부끄러운 듯 답변했다.

“오, 옷을 벗기고 어, 엉덩이를 치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좋은··· 아니, 그게 아니고. 오, 옷을 벗긴단 말이오!?”

옷을 벗긴다는 말.

알궁둥이를 친다는 말인데, 이게 맞나 싶었다.

전생이라도 알궁둥이는 부모나 공중목욕탕 목욕관리사님들 외에는 보여줄 일이 없는 것인데, 유교의 나라 송. 

그 송 시대에 알궁둥이를 까고 수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곤장을 맞는다고?

그것도 여인이?

청이의 설명에 형님을 정말이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제야 형님이 아까 미안한 얼굴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듯 대답했다.

“크흠. 모든 여인의 옷을 벗기는 것은 아니지만, 간음한 여인이거나, 사람을 죽이려 했거나 하는 등의 큰일에 연관되었을 때는 거의수장이 기, 기본이긴 하지. 무, 물론 홀딱 벗기는 그런 것은 아니고······.”

형님의 설명을 들어보니, 죄를 지은 여인의 경우 간음이나 큰 죄를 지었음에도 감형의 이유가 합당할 때, 신체적 고통과 함께 수치(羞恥)감을 느끼게 하려고 아랫도리를 벗기고 알궁둥이를 때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 끝에 청이가 설명을 조금 더 했다.

“거의수장을 당한 여인들은 거의 대부분 수치감에 곧 자진(自盡)합니다.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기도 하고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어찌 여인으로 목숨을 부지하겠습니까?”

그제야 아까 장을 칠 거면 차라리 그냥 목 졸라 죽이라는 소소의 말이 이해되었다.

어차피 죽기는 매한가지인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죽느니 그냥 죽는 게 나으니까 말이다.

입만 맞춰도 실신하는 소소인데, 엉덩이를 까고 장을 맞으라니.

송 시대 평균보다 더 진심으로 유교녀인 소소의 처지에서 보면, 저건 그냥 사형 선고보다 더 잔인한 형벌이었던 것.

감형인 듯 감형 아닌 감형 같은 장이랄까?

형님에게 되묻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거 정말 꽌시로서 내릴 수 있는 판결이 맞냐고.

‘형, 이거 아니잖아···. 그치? 이건 좀 선 넘잖아···.’

“아니, 형님, 부모님의 복수라 해도 사사로이 사람의 목숨을 끊으려 한 것이 잘못된 것임은 알겠지만, 그래도 거의수장의라뇨. 이것은 그러면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가련이에게 그런 수치를 당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제 제자인데? 아니죠? 그렇죠?” 

그러자 난처한 듯 변명하시는 형님.

“아니, 나도 자네 제자인데 당연히 무죄 방면을 하고 싶지···. 그런데 놈이 도망가버리고 아무런 증좌도 없는 상태에서 그럴 수가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국법이 그리 정해져 있으니···.

그나마 내가 그 아이의 일을 맡았기에 망정이지, 그 아이의 사정을 모르는 자였으면 그대로 교살형이었네.

더군다나 사소한 죄도 아니고 사람을 죽이려 한 죄.

지금 장형만으로도 내가 자네 제자를 살리려고 거짓 판결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혹 대놓고 자네 제자를 살리려고 했다가는 흥분한 백성들이 소란을 벌일 수도 있다네.

사사로이 내가 자네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몇 놈 입을 막으면 될 일이지만, 이런 사람을 죽이려 한 큰일에는 많은 이목이 쏠리는데, 이제 자네가 내 아우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자네 제자를 모르는 이가 드무니···. 자네도 이젠 이복주에서 모르는 자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형님이 말하는 소란이란 폭동을 의미하는 것.

그간 형님이 나의 편의를 봐준 것은 사람의 이목이 많이 쏠리지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입막음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사람을 죽이려 한 일로 공당이 벌어진다는 소문은 빠르게 나니 온 복주의 이목이 쏠릴 대로 쏠려 있다는 설명.

거기다가 내가 형님의 아우인 것과 가련이가 나의 제자인 것은 이미 모두 알려진 사실이기에, 죄인을 잡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국법에 따르지 않고 가련이를 무죄 방면하면, 여론이 납득을 못해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씀이셨다. 

아무리 형님이라도 온 복주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

나도 복주에서 좀 유명해진 상태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좀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할 테니 마냥 봐줄 수도 없다는 결론이었다.

‘중원 판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것인가? 정말 중원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구나.’

“그리고 내가 복주를 다스리는 처지지만, 우매한 백성들을 다스리기가 어디 그리 쉬운 줄 아는가?

그리고 어제부터 사람들이 수시로 몰려와 자네 제자를 왜 벌하지 않냐고 외치다 사라진 것은 못 들었는가?”

저자에 발이 넓은 영영이를 바라보자, 영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며칠 전에 듣긴 했어요. 매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가가의 제자이기에 벌을 미루는 것이냐고 소리친다고···. 일이 잘 풀리면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그놈을 못 잡아들여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원래 ‘빠’가 생기면 ‘까’도 생기는 법.

저자와 항구 쪽 사람들이 나를 열심히 빨아주니, 의외로 까는데 열을 올리는 안티가 많이 생긴 모양.

그들에게는 내 제자가 사람을 죽이려다 잡혀 왔다고 하니, 좋은 씹을 거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러면 남은 것은 연성공 형님.

포형님이 저번에 말씀하시기에 가련이가 명백한 죄인이라면 연성공 형님께 부탁할 수 없지만, 가련이가 억울한 사정이 있다면 괜찮다고 했으니, 이건 한번 청탁을 넣어볼 수 있는 일.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는 것을, 이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 형님이 입증해줄 수 있으니, 이정도면 연성공 형님에게 부탁할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입장도 난처해지지 않고, 억울한 여인을 위해서 특별사면을 조정에 요청할 명분도 있고, 상황이 딱 맞아떨어졌던 것.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연성공 형님의 부탁이라면 백성들이 난리를 치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중원의 정신적 지주의 명이라는데 어느 놈이 깝을 치겠는가?

“그러면 판결까지 말미는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하지만 이 특별사면을 요청하려면 한가지가 필요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

내 물음에 형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하셨다.

“이미 살인죄를 판결해야 하는 말미가 많이 지났네. 당장 백성들이 소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니···. 아우. 당장 이틀 후에라도 판결해야 하네.”

미미를 보낸다 해도 조정의 일이라는 게 뚝딱 진행되는 것이 아니니, 하루 만에 진행될 리가 없었다.

“하아···.”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 

제자가 옷을 벗고 장을 맞아야 한다는 말에 포 형인의 집무실 의자에 앉아 생각에 빠진 청운.

그 청운만큼이나 답답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네 아내.

뒤에서 청운이 아내들인 청, 소소, 미미, 영영이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조용히 이마를 맞댔다.

가련이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 오면 넷이 나서 그녀를 돕기로 했는데, 아무런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 어쩌지 청아? 우리가 대신 살리기로 했는데, 방법이 없으니?]

[청, 방법이 없나요?]

[어찌 그 아이를 대신 살리지요. 청?]

솔직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청이가 생각하기에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시도할 수 없는 방법.

청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가 감히 나설 수 없는 방법입니다.]

[뭐? 뭔데?]

[뭔가요. 청?]

[뭔데요?]

청이의 방법이 있다는 말에 반색하며 되묻는 다른 셋.

하지만 한편으로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말에 의구심을 가지고 물었는데, 청이의 입이 벌어지며 정말 넷은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 흘러나왔다.

[대신 맞아주는 것입니다.]

[뭐어!? 대신 맞아준다고?]

[대신요?]

[아니, 그건 대신 죽으라는 말이잖아요?]

그렇다.

장형이 확정된 사람은 맞는 도중에는 사람을 바꿀 수 없지만, 그의 죄를 대신해 맞아줄 사람이 나설 수 있는 것.

다른 형이면 대신 할 수 없지만, 장형은 대신 맞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아무나 돈을 주고 대신 맞게 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르는데, 피붙이 거나 대신해 맞을만한 납득할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넷은 피붙이는 아니지만 납득할만한 조건은 충분했다.

제자의 잘못이니 사부의 아내인 자신들은 어머니 같은 위치.

그러니 어머니인 자신들이 잘못 가르친 자신들의 잘못이라며 대신 맞아주면 될 일이긴 했지만, 하지만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넷 중 하나가 엉덩이를 드러내고 장형을 대신 맞는 수치를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

자신들도 여인이니 감히 그런 수모를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 청아 그것 말고 방법이 없는 거야?]

[맞아요. 청 그건 아니 될 말이잖아요.]

[아니면 그냥 제가 몰래 들어가서 가련이를 데리고 나올까요? 사람 하나 훔쳐서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닌데?]

그렇게 넷이 떠오르지 않는 방법에 고민할 때 앞에서 박수 소리가 나며 청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짝!

“그렇지! 흑기사! 아니, 그게 아니고. 형님! 그 장형 대신 맞아줄 수는 없는 일입니까? 제자의 잘못은 곧 스승의 잘못. 잘못 가르친 제 죄이니 제가 대신 맞으면 안 되겠습니까?”

그 대답에 넷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장 원치 않는 방법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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