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9화 (339/344)

별자리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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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자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하는 청, 미미, 소소, 영영이.

그중 천검자와 이야기를 나눠 볼 정도의 식견을 갖춘 청이가 앞으로 나서 되물었다.

“명운(命運)이라 하심은? 이미 하늘의 큰 섭리에 의해 정해져 있어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일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지. 네가 제갈가의 여식이라 잘 알고 있구나. 그러면 명운이 목숨 명(命)자와 돌 운(運)을 쓰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어르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이미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영영이는 머리가 아픈 상태라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아버렸고, 남은 셋을 향해 천검자의 말이 이어졌다.

“목숨 명 자는 사람의 명을 뜻하는 것임임은 당연히 알겠고, 돌 운자가 어찌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일을 뜻하는 말에 쓰이기 시작했는지 아느냐?”

“소녀 식견이 짧아 거기까지는 알지 못하옵니다.”

청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천검자가 열린 창문 밖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돌 운자는 저 하늘의 별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말이란다.”

“별의 길? 아!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움직임을 뜻하는 말입니까?”

“그래,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모든 별은 자신들이 다니는 길로만 다니느니라. 그것을 별의 길이라 부르지.”

“별을 길···.”

“그래, 그 별들이 반복해서 길을 도는 것을 뜻하는 말이 바로 돌 운자니라.”

“아···. 그런데 어찌 별이 반복해서 길을 도는 것을 뜻하는 말이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까? 별의 길이 마치 사람의 목숨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별이 빛을 잃은 것에 놀란 것도 잠시.

핵심을 찌르는 청이의 물음에 그녀의 뛰어난 오성을 느낀 천검자가, 감탄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말 네 오성(悟性)이 뛰어나구나. 그래, 그러면 이것을 풀어볼 수 있겠느냐? 魂氣歸于天(혼기귀우천) 形魄歸于地(형백귀우지).”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대답하는 청이.

“혼비백산(魂飛魄散)과 같은 말로 혼의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의 형태는 땅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 명석한 대답에 천검자가 감탄하며 설명했다.

“그래, 맞다. 정말 탐이 나는 오성이구나. 그러면 잘 듣거라. 사람의 몸은 영혼육백(靈魂肉魄)이라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육(肉)은 네가 알다시피 사람이 죽으면 썩어버리는 것이고.

영(靈)은 사람이 생각하게 하고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이루는 기운으로, 사람이 죽으면 이것은 두 개로 나뉘게 되느니라.

그것을 혼백(魂魄)이라 부르지.

음(陰)의 기운으로 쇠하고 사그라들고 흩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 본디 고향인 땅으로 돌아가 사라지는 것을 백(魄)으로.

양(陽)의 기운으로 성장하고 상승하며 모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 본디 온 곳인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혼(魂)으로 부르는 것이란다.

그러니···.”

천검자가 자세한 설명을 이으려 할 때였다.

들려오는 청이의 물음.

“그러면 양의 기운인 혼은 아마도 별로부터 온 것이겠군요? 해서 그 본디 고향인 하늘의 별을 찾아가니, 돌 운자가 사람의 명운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이 아닙니까?”

천검자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청이가 대답하자 놀란 눈을 부릅뜬 천검자.

제갈가의 여식에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깨우지 치니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 맞다! 네 말이! 자, 더 들어보거라. 

사람이 본디 어미의 몸에서 수태하는 순간 조화계(造化界)라는 곳에서 온 태청양화(太淸陽和)의 기운이 스며드는데, 이것을 별빛을 뜻하는 태광(台光)이라 하느니라.

조화계의 기운이 이 땅에 내려오는 방법이 별의 빛이기 때문이지.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이 밤하늘에도 밝은 빛을 내는 이유가, 모두 자신이 태청양화의 기운을 내린 사람을 내리비추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 그러면 사람마다 기운을 받는 별이 다르다는 말이군요? 그러니 사람마다 명운의 차이가 있고, 삶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군요?”

“그래, 그 태청양화의 기운들이 쏟아지는 통로가 되는, 하늘에 수없이 떠 있는 별은 모두 다 같은 별이지만, 그 기운과 힘은 같지 않단다.

성하는 별과 쇠하는 별이 있고, 강한 기운을 가진 별과 그렇지 않은 별이 있는 것이지. 해서 사람마다 명운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마치 내력을 흡수하듯 천검자의 말에서 하늘의 섭리를 빨아들이는 제갈가의 여식.

이제는 더 놀랄 힘도 없어 천검자가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아이의 무서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이제부터 하실 말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이야기일 테니. 왜 가련이가 그런 일을 겪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아이를 살릴 방법은 없습니까?”

-꿀꺽.

지금까지는 청이의 말대로 하늘의 일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공부.

하지만 지금부터는 천기의 누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찾아올 신병을 생각하며 천검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넷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혹시라도 들은 것을 여기저기 옮기거나 해서 큰일을 겪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무척이나 중요한 이야기 잘 듣고 명심하도록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잊도록 하거라. 그리고 절대 너희들 말고는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되느니라. 특히 청운이에게는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느니라. 혹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으니.”

청운이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천검자의 말에 움찔하는 넷.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청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다른 셋은 청이와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저는 그러면 듣지 않겠어요. 지금까지도 간신히 알아들었고, 알아듣더라도 은공께 숨겨야 한다니 힘들 것 같아요.

“저도 그냥 안 들을래요. 청아, 중요한 것이면 나중에 이야기해줘.”

“저도 어려운 이야기 같으니 나중에 청이에게 듣겠어요.”

그렇게 셋이 문밖으로 나서자 한참 부담감이 줄어든 천검자.

반년 정도 누워서 정양해야 할지도 모르는 부담이 석 달 정도로 줄어들자, 다소 안심한 표정으로 천검자가 청이를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은 본디 별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 그 별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순리의 삶. 별은 항상 사람의 바른길을 비추지만, 그러나 사람은 어디 그러한가? 

별의 길을 벗어나 잘못된 삶을 살다가 단명하기도 하고, 또 그로 인해 장수하기도 하며, 또 바른길의 반대 되는 길을 걸어 악인이 되기도 선인이 되기도 하는 법. 

모든 것이 별의 길대로 정해져 있어도 그것이 사람에게 반드시 바르다고 할 수 없고, 또 그것을 걷는 자는 사람이니, 명운이 정해져 있다고 한들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 한데···.”

잠깐 뜸을 들인 천검자가 이마에 솟아난 땀을 한번 소매로 훔치고는 말을 이었다.

“별 중 유난히 그 기운과 빛이 강해 사람을 반드시 명운으로 끌어가는 별들이 있느니라.”

“북신(北辰)같은 별말입니까?”

“그래. 북신도 그런 별 중 하나이지. 너희들이 타고난 별 같이···.”

“저희가 타고 태어난 별?”

“그것까지는 알 필요가 없고, 지금 당장은 알아서도 안 되느니라.”

“예, 어르신. 그러면 제가 무엇을 알아두어야겠습니까?” 

욕심을 내지 않는 절제된 모습까지.

천검자는 나중에 몸이 나으면 저 아이에게 하늘의 길을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자신은 세상의 것들을 버리지 못해 도달하지 못한 길에 저 아이는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본디 그 기운과 빛이 강한 그런 대단한 빛을 가진 별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면 좋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다. 기운이 너무 강해 사람을 반드시 자기의 길로 끌어들이지. 그 길이 파멸임에도.

하지만, 그런 별의 기운을 타고 태어나도 명운에서 벗어날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별자리의 주인’.

아무리 강성한 별이라도 그 명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모든 별을 각자의 명운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길로 이끄는 명운을 타고 태어난 자이니라.

저, 유선주나 조조가 그랬고, 항우와 유방이 그랬던 것처럼···.”

-주르륵.

“어, 어르신!”

천검자에 코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

그것을 보고 청이가 놀라 소리치자 천검자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가련이라 했던가? 그 아이가 그런 처지가 된 것은, 자기 명운에서 벗어나 이미 별의 주인의 것이 되었는데도, 별의 주인이 이끄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이겠구나.

그러니 별 주인의 명운은 계속해서 그 아이를 자기의 길로 끌어들이고, 그 아이가 타고 태어난 별의 기운은 그 주인을 벗어나려 하므로, 그렇기에 별자리 주인의 명운이 그 아이를 자기의 자리에 들어 앉히기 위해 일을 만드는 것이란다.

이미 처의 운명으로 정해졌는데, 제자에 머물고 있으니. 그 아이를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 일을 만드는 것이지.

지금 그 아이를 비추던 별이 빛을 잠깐 잃었으니, 지금 이것은 갈림길. 제 자리를 찾아가느냐 아니면 잘못된 자리에 남느냐. 밤하늘의 찬란한 빛을 내는 별이 되느냐 흉성이 되느냐.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니라.”

모든 일이 노공의 처가 되기 위한 하늘의 일이라니.

청이는 믿을 수 없었다.

“그, 그런···.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것이 하늘의 일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이제는 양쪽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천검자가 조금 힘든 얼굴로 설명했다.

“사람의 인연을 가장 확실하게 맺어주는 것이 구명(救命).

하니, 서로가 맞는 자리에 서기까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줄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니라. 그 과정에서 둘 다 불구가 되기도 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럴 수가···.”

노공의 방법이 아닌 가련이를 살릴 다른 방법을 묻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미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가련이를 살려내도 만약 처가 되지 못한다면, 또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그때는 가련이가 아니라 노공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말. 

“아, 아예 내치면 어찌 됩니까?”

청이가 생각해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노공의 것이 되었는데 그것이 처가 아니라 제자이기 때문이라면, 아예 그러면 멀리 보내버리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 물었던 것.

그러자 천검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 그 아이가 흉성이 되어도 너희들이야 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결국은 별자리 주인의 것으로 정해진 것이 하나 빠졌으니, 나, 남은 별자리도 온전하지 못해지니 결국 모두가 파멸에 이를 것이니라.”

처음에는 청이도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이곳을 찾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변해가는 천검자의 모습과 이제는 덜덜 떨며 말을 잊는 모습을 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 신비한 무엇인가가 있긴 있는 듯했으니까.

그렇기에 물었다.

그러면 가련이를 구하고 나서 그 아이를 어찌 제자리에 돌려놓을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미 가련이라면 오해이긴 했지만, 소처로 생각한 적도 한번 있었고 노공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에 겁도 났던 것.

이미 세 번이나 양보했는데, 조금 더 양보하는 것이 노공을 안전하게 하는 일이라면 다른 선택은 없으니까 말이다.

야서(野鼠).

하늘에서 내려준 자신의 짝 야서인데 이런 일로 잃을 수는 없었다.

“그, 그러면 제가, 저희가 어찌해야겠습니까?”

그러자 천검자가 이제는 말을 잊기도 힘든지, 입술을 떨며 대답했다.

“아, 아이의 목숨을 구, 구명하는 것은 벼, 별자리의 주인인 처, 청운이가 알아서 할 것이니라. 

이, 이번 일은 청운이에게 해가 가는 일이 아니니. 너, 너희는 그 아이와 청운이를 학생과···. 선생···. 으로 알려지게만···.”

노공의 방법이 아닌 방법을 물으러 왔는데, 노공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대답.

결국 노공의 방법 외에는 답이 없다는 말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자신들이 마음대로 나섰다가 노공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그나마 그것을 알았다는 사실에 청이는 안도했다.

그리고 천검자는 이제 뭔가를 더 묻고 싶어도 더 이상 물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힘이 드는지 천검자는 침상으로 풀썩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청이는 그의 머리맡에 있던 천에 물을 적셔 그의 코에서 흘러내린 피와 땀을 닦아준 후 밖을 향해 외쳤다.

“어르신이 쓰러졌으니 약왕 어르신을 다시 모셔 와 주시겠습니까?”

“예!? 혀, 형수님 천검자 어르신이 다시 쓰러지셨다고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지, 놀라 뛰어 들어온 장진이 자기 할아버지를 부르러 장의문 한쪽으로 달려 사라지고, 천검자가 쓰러졌다는 말에 몰려든 영영이, 소소, 미미가 다급하게 물었다.

“처, 청아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되었는데?”

“청, 아이를 살릴 길은? 은공의 일은 여쭈어보았습니까?”

“청아, 무슨 이야기는 들었어요? 낭군님의 제자는요?”

그러자 셋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긋하게 바라본 청이가 자신이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함축하여 설명했다.

“아이를 살리는 방법은 노공의 방법 외에는 없답니다. 그러니 그대로 두라 하셨습니다. 다만 그 아이가 부인이 되지 않으면, 노공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답니다.”

“뭐어!?”

“네에!?”

“뭐, 뭐라고요?”

류청운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놀라 눈을 부릅뜬 셋.

실로 간단한 청이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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