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심법(三才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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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 가문 통합 데릴사위가 되고, 어떤 무공을 배워야 할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결론이 나지 않았었다.
다들 각자의 무공을 가르쳐 좀 더 나에 대한 자기 가문의 지분을 높이려 했기 때문인데, 결국 극적으로 합의 타결된 중재안이 세 가문이 아닌 제삼자를 데려와 무공을 가르치자는 것.
거기에 내가 일반적인 몸이 아니라서, 세 가문 출신이 아니면서 내 몸에 딱 맞는 무공을 찾아줄 괜찮은 무공 스승을 찾아봐 주신다고 하시긴 하셨었는데, 그것이 팔왕 중 일인인 권왕인 모양이었다.
장인 장모 처조부가 팔왕이니 무공 스승도 팔왕.
격세지감(隔世之感) 참 심하게 느껴졌다.
삼류 무사들이 몰려와 객잔을 때려 부수던 것이 일 년 전인데, 이젠 이 류청운의 무공을 봐주러 오는 사람조차도 팔왕.
미물 같은 삼류보다 못한 생활 이젠 안녕이었다.
가련이 때문에 잠시 울적했던 기분.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무공을 배워 무림인이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들 틈에서 그동안 왠지 나만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참으로 옳은 중원이로다.’
권왕의 첫인상은 장애가 있어 보이는 조금 부족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팔왕 중 하나라는 사실을 듣고 나자 도리어 신뢰감이 솟아올랐다.
저런 모습으로 팔왕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면 그건 실력보증수표.
원래 또 무림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 실력이 좋은 법이니까 말이다.
외팔이 검사, 외다리 각법을 쓰는 고수 등, 뭔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내가 읽은 수많은 무협지에서도 주인공의 스승은 전부 정상 아니었지.’
당황했던 것도 잠시 나의 무공을 봐주실 분이라는 말에 얼른 권왕에게 인사했다.
“권왕을 뵙습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 인사가 늦었습니다. 류가 청운이라 합니다.”
“그래, 이리 와 보거라.”
다짜고짜 자기 옆으로 와보라는 권왕.
쭈뼛거리며 그의 옆으로 가자 그가 뭔가를 달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예?”
그 손짓에 잠시 당황하자 딱 한 마디를 던지는 권왕.
“손.”
갑자기 손을 달라는 말에 쭈뼛거리며 손을 내밀자. 내 손이 그의 손에 잡히기도 전에 내 손이 아닌 뭔가가 그의 손에 ‘척’하고 올라갔다.
-헥헥.
그의 손에 ‘척’하고 올라간 것은, 요즘 반점에서 밥만 먹고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는지 잘 보이지 않던 덕구 녀석의 앞발.
‘저 녀석이 또 내 기연을 훔쳐 가려고!’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다가 내가 무공을 좀 익히려 하면 기어나 와서 내 기연을 훔쳐 가는 도둑놈.
덕구를 한쪽 발로 스윽하고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나 밀리다가 버티는 녀석.
주제에 무공 좀 익혔다고 힘주고 버티니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덕구야? 손님 오셨는데 비켜야지? 아하하. 이, 이 개새···. 녀석.”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 때문에 당황하자, 그 모습에 표정 없던 권왕이 씩 웃으며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녀석, 또 먹고 싶었느냐? 자 여기 있다.”
권왕이 품속에서 내민 것은 육포 한 조각.
다행스럽게 이번 덕구의 강탈 대상은 기연 강탈이 아니라 육포였던 모양이었다.
아마 내가 오기 전에 한 번쯤 얻어먹은 듯한데, 덕구에게 기연을 강탈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구나.’
권왕이 품에서 꺼낸 육포를 받아든 덕구는 다시 식탁 아래로 사라졌고 나는 권왕에게 사과하며 얼른 손을 내밀었다.
덕구 녀석이 다시 나타나 앞발을 다시 들이밀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강탈당하면 청이한테 말해서 된장 아니 여기는 중원이니 춘장으로 할까? 아무튼 춘장 바르자고 할뻔했네.’
“하, 하하.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저희 개가 좀 유별나서.”
“응? 아니네. 나도 예전에 집에서 개를 길렀었지. 그건 그렇고 손.”
“예? 아! 예. 여기.”
그렇게 손을 권왕에게 건네자 그가 지그시 눈을 감고는, 내 손목을 잡은 채 뭔가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확실히 이상한 몸이구만.”
“예?”
“좀 더 가까이 와서 가만히 있어보거라.”
이제는 내 몸을 마음대로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는 권왕.
어깨의 골격과 팔, 다리 관절 등.
그의 손길에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청이의 전음이 들려왔다.
[노공, 노공께서 도착하시기 전에 어른들께 들어보니. 권왕 어르신은 맥과 골격을 확인하고 자질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편하게 몸을 맡기시겠습니까?]
‘오호라. 이 양반이 중원 무림의 병아리 감별사로구나?’
권왕 이 사람 뭔가 중원의 병아리 감별사 정도 되는 위치인 느낌.
나 정도면 괜찮은 장 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렇게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멈추는 그의 손길.
아마도 감별이 다 끝난 느낌.
수능점수 발표될 때보다 떨리는 기분으로 권왕의 입에서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그가 내 등짝을 짝하고 후려치며 말했다.
-짝!
“삼류!”
“사, 삼류?”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나는 역천의 상단전을 가진 몸인데 삼류라니.
나 정도면 한우 투쁠 아니, 천무지체(天武肢體)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류 정도는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이정도면 과한 욕심도 아닐 것인데···.
삼류.
갑자기 정신이 어질했다.
삼류라는 것은 그냥 재능 없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러자 옆에서 들려오는 장모님의 위로 소리.
그 위로를 시작으로 다른 어른들의 위로도 쏟아졌다.
“사, 사위님, 원래 육체의 자질은 무공을 시작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이 장모의 말을 믿으세요.”
“그, 그럼, 그렇지. 청운아 무릇 무란 나약한 육체를 깎아 다듬는 것. 자질이야 크게 문제 될 것 없으니, 걱정 말거라. 모든 것은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겠느냐? 에헴.”
“그럼, 그럼. 사위 팔왕인 우리 셋이 보증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충격 속에서도 무공으로 경지에 오르신 팔왕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 왠지 믿음직하게 느껴졌고, 충격에서 빠져나와 세 분에게 되물었다.
“세분도 그러면 삼류의 몸을 깎아 지금이 경지에 도달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세분이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내 눈길을 피하셨다.
아, 이분들 기만자셨던 모양.
정말 삐뚤어지고 싶은 밤이었다.
***
삼류의 자질 그러니까 아무 재능도 없는 것으로 판명 났지만, 그래도 권왕 어르신은 당장 다음날부터 내 무공을 봐주셨다.
모종의 이유로 중원을 여행 중이라 하시기에 여독도 푸실 겸, 또 가련이의 일도 있고 해서 며칠 쉬었다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 했는데, 천검자 어르신을 만나고 온 아내들이 당장 내일 내공부터 개통시키자는 의견을 내었기 때문이었다.
“노공, 가련이의 일은 노공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당장 내일 권왕 어르신께 내공부터 배우기로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장 내공을 익힌다고 그리 큰 도움이 되진 않을지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있으니까 말입니다.”
뭐 내공을 익히면 내구력도 올라가고, 회복력도 좀 좋아진다니, 엉덩이 좀 맞으려면 나쁘지 않은 말이었기에 아내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
그렇게 뭐 가장 자연의 기운이 충만하다는 이른 새벽 후원의 정자에서 어르신과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공은 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더군. 맞느냐?”
“예, 권왕 어르신.”
“그러면 몸에 때려 박아야겠군.”
“예? 때려 박아요?”
뭔가 좀 두려운 단어들이 나오기에 움찔하자 권왕 어르신이 잘 들으라는 듯 설명했다.
“범인들은 그저 무공이나 내공을 익히는 것이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무공을 몰라서 하는 소리. 기경팔맥(奇經八脈)과 음양의 이치, 도가(道家)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것이 무공이니라.
내 너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며 어느 혈도로 기운을 보내라고 한들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
“아, 그렇군요?”
정말 실력 있는 분인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어르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팍팍 되고 있었다.
나는 무공 좀 우습게 봤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로 인체나 혈도에 통달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무공의 이치를 이해하려면 도교적인 지식 또한 필수 과목이었던 것.
‘아니, 잠깐만. 그러면 영영이는 대체 이걸 어찌 배웠지?’
잠깐 영영이에 대한 의혹이 들 때, 권왕 어르신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 해서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내 기운을 너에게 불어넣어. 네 몸 안에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해줄 것이란 말이다.”
‘아, 영영이도 이렇게 배웠겠구나.’
이런 어려운걸 영영이가 어찌 배웠을까 의혹이 잠시 들었었지만, 나 같은 방법으로 배웠을 것이 분명한 느낌.
의혹이 명확하게 풀리자 어르신이 명령하셨다.
“그러면 윗옷을 벗고 눕거라.”
“누우라고요? 어? 앉아서 하는 것 아닙니까?”
원래 무협영화 같은 것을 보면 운기는 보통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것이 국룰.
그러니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냐 물었지만, 피식 웃으며 말씀하시는 어르신.
“훗···.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하는 것은 운기가 가능할 때나 하는 것. 아직 축기도 할 줄 모르는 놈이 어디서 본 것은 있다. 이것인가?”
“아, 그, 그렇습니까?”
괜히 아는 척했다가 팔려버린 쪽.
얼른 옷을 벗고 정자에 발랑 드러누웠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그래, 이제 말하지 말고 눈을 감거라.”
눈을 감자 내 가슴에 닿는 어르신의 손.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자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시작할 테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거라. 내공 수련의 기본은 축기. 그러나 축기를 하려면 기를 느끼는 것부터가 시작이니라. 내 지금 강제로 네가 기를 느끼기 쉽게 할 것이니 한번 기를 느껴보거라.”
어르신의 말과 함께 처음에는 가슴에 마치 독한 술을 한잔 삼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가가 가슴으로 쑥 들어온 느낌이 들더니, 그 뜨거운 것이 천천히 이동해 배꼽 바로 아래 안쪽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배꼽 밑 전칠후삼(前七後三) 배에서 칠할 등에서 삼 할. 이곳이 바로 단전이니라.”
‘오호라. 여기가 단전.’
그렇게 단전과 기라는 걸 처음 느끼게 되었고, 수련 과정은 순조롭게 이어지는 듯했다.
내공심법 한 가지를 알려주시며 그 내공 심법으로 축기(蓄氣) 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는데, 생각보다 족집게 과외 경험이라도 있으신지 너무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셔 이해하기도 쉬웠을뿐더러 뭔가 진도가 쭉쭉 나갔던 것.
그런데 어르신이 한번 축기를 시켜주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한다는 운기(運氣)라는 것을 할 때였다.
“운기란 축기 된 기운을 기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데, 이제 십이정경(十二正經)을 통해 축기 대신 내가 넣어준 기운을 움직여 보자꾸나.
이것이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가슴에서 손끝으로 운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 손끝에서 얼굴로···. 응? 어, 얼굴로···.”
갑자기 당황하는 어르신.
나도 왜 어르신이 당황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손끝에서 얼굴로 기운을 움직이는데 목쯤 온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좁쌀만 한 기운을 열심히 굴리고 있었는데 마치 입 안에 넣은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져 버린 기운.
당연히 운기도 멈췄고 놀란 눈을 뜨고 어르신을 바라보자, 어르신도 당황한 얼굴로 물으셨다.
“기, 기운 어디 갔느냐?”
“저, 저도 잘?”
당황한 어르신이 이번에는 쌀알만 한 기운을 넣어 다시 같은 과정을 해보셨지만 역시나 같은 구간에서 사라져 버린 기운.
“사, 삼재심법(三才心法)이 문제인가? 상단전이 열려서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운기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거늘.”
‘아니, 아무리 내가 무재능이라도 그렇지. 열심히 배우던 게 삼재심법이었냐고···.’
열심히 배우던 심법이 무림 최하위 내공심법이기에 그런가 싶어, 어르신의 도움으로 뭔가 다른 내공 심법대로 다시 기운을 움직여 보았으나 역시나 같은 운기 과정에서 기운 소실.
그렇게 우리 둘 다 어처구니없어할 때였다.
“아버지!”
“할아버지!”
뭔가 근육 덩어리 두 놈이 경공을 펼쳐 후원으로 날아들었고, 그 두 놈을 보자 권왕 어르신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낭패한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런. 잡히고 말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