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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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이상한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나타난 두 덩어리.
그중 권왕의 아들 그러니까 황보가의 가주로 보이는 자가 분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가문의 무공을 혈육인 저희가 아닌 저런 빈약한 놈에게 베풀려 하십니까!?”
“맞습니다. 할아버지. 가문의 피붙이도 아니고 딱 보아도 삼류 정도의 자질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하찮은 놈에게 어찌 가문의 법도를 어기고 할아버지의 독문 무공을 전수하려 하십니까?”
‘아니, 저 새끼들이···. 그런데 그게 그렇게 티가 나나?’
삼류를 강조하는 놈들의 말에 살짝 짜증이 나긴 했는데, 가족 간의 일로 뭔가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에 옷을 얼른 갖춰 입고 포권을 하며 끼어들었다.
일단 권왕은 내 무공을 봐주기 위해 온 손님이니 그냥 둘 수는 없었던 것.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렇게 안에 들어가서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려는데 들려오는 외침.
“닥쳐라! 할아버지인 권왕의 무공을 전수받는다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더냐? 감히 가문의 사람도 아닌 너 같은 삼류가 어딜 끼어드느냐! 하찮은 네놈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아니, 저 새끼가 말끝마다 삼류, 삼류.’
내가 뭔가 권왕의 무공을 스틸하려 했다고 오해하는 것 같은데 조금 억울하고 열받았다.
나야 고작 삼재심법도 지금 제대로 못 배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뭘 훔칠 수가 있어야 훔치지···.’
그건 그렇고 황보가의 소가주로 보이는 놈 성깔이 장난 아니었다.
분노한 얼굴로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 멱살을 틀어쥐려는 녀석.
그 순간.
-꾸궁!
나와 녀석 사이에 청이가 시퍼런 안광을 레이져 불빛처럼 흘리며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영화 따위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마치 슈퍼 히어로 랜딩을 하는 모습으로 착지한 청이.
우리 청이는 가주고 나발이고 그건 별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뭐 현 중원 무림 최고의 고수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청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주변을 휘감은 한겨울 같은 냉기.
이글이글 퍼렇게 불타는 눈의 청이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자기 아버지의 손에 멈춰진 소가주로 보이는 녀석을 향해 서릿발 같은 외침으로 일갈했다.
“감히 류가 반점에서 누가 반점의 주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 충격에 날아가는 나를 잽싸게 끌어안는 미미.
“흐아아···. 헉.”
“낭군님, 걱정하지 마세요. 미미가 잡았어요.”
‘아, 이것이 중원 무협식 내조. 역시 내 아내들 든든하구나···.’
아까 새벽에 일어나 무공을 배우러 간다니 구경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권왕이 가르쳐준다고 하니 따라 나오지는 못하고, 아마 오 층에서 내가 무공 수련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녀석이 나에게 달려드니 급하게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큰 소란에 장인, 장모, 처조부께서 뛰어나오신 것은 당연한 일.
놀란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 나온 세분이 우리 상황을 보고 놀라 물으셨다.
“사위!? 이게 무슨 일인가? 응? 화, 황보 가주?”
“청아? 어찌 이른 새벽에 빙공을···. 이 무슨? 화, 황보 가주님?”
“이, 이런 황보 가주가 어찌 알고···. 에잉. 꼬리가 붙었나.”
그런데 그런 당황한 어르신들이 한 말에 황보 가주를 분노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황보 가주가 무척이나 분노했는지 이를 갈며 물었다.
-뿌드드득.
“사, 사위!? 그러면 아버지의 무공을 사위에게 가르치기 위해 아버지를 빼돌렸단 말인가!? 남궁 가주, 이건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 같소만? 다른 가문의 무공을 자기 사위에게 가르치려 하다니!”
‘아, 그것인가?’
뭔가 단단히 오해가 깊어지는 모양이었다.
***
뭔가 심각한 오해로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황보 가주가 분노하긴 했어도 여기에 그의 분노를 조절해줄 분이 많다는 사실.
중원 최고의 분노조절장애 치료사인 팔왕급 무인이 셋, 거기에 청이까지.
즐비하다면 즐비할 수 있는 상황인지라 처조부님이 독왕이 나서 일갈하자 그는 조용히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여기서 그가 뭐 살기를 피우겠나 아니면 기운을 끌어올리겠나?
그랬다가 쥐어 터지는 것이 순서니까 말이다.
“진정하고 일단 따라 들어오게! 어찌 자초지종(自初至終)도 따지지 않고! 황보 가문 성급한 것은 내력인가?”
“크흑···.”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 팔뚝을 들이밀자 오해는 바로 풀려버렸다.
내 상단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황보 가주에게 확인시켜 주자, 권왕 이전의 무공 과외선생으로 내정되었던 사람이 황보가의 가주였던지라 금방 이 상황을 납득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저번에 누군가의 몸을 살피고 어떤 무공이 어울릴지 확인해달라 했던 자가 그럼?”
“그렇소. 황보 가주. 우리 사위가 보다시피 상단전이 열려 거꾸로 돌아가는지라···. 우리가 좀 다급한 마음에 가주가 안 된다니. 가주의 아버지라도 모셔 오자 뭐 그런 이야기가 되어서···. 애타게 찾고 계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르신께서 연락하지 말라 하시니···.”
“죄,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난 또 아버지께서 가문의 법도를 어기고 하찮은 ‘삼류’의 자질로 보이는 이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줄 알고···.
하긴 아버지의 독문 무공은 ‘삼류’의 자질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지. 그나저나 무공의 자질이 저리 빈약한 아이에게 어찌 딸들을···.”
말끝마다 삼류, 삼류 거리며 말을 잊는 황보 가주.
‘거참 삼류 서러워서 살겠나···.’
“무공이 아니더라도 뛰어난 재주가 있으니. 우리 가문들은 저 아이가 마음에 듭니다.”
“그럼요. 청운이만한 사윗감이 없지요.”
두 황보 씨 부자의 팩트 폭행에 조금 마음이 언짢았었는데 장인과 장모의 이야기를 들으니 사르르 풀리는 마음.
예의상이라도 남들 앞에서 저리 말해주니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처조부인 독왕께서도 은밀히 전음으로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셨다.
[청운아, 네가 이해하거라. 황보가는 세가회 내에서도 무를 가장 숭상하는지라. 자질이나 무공이 약한 자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저리 좀 따지는 경향이 있어 저런 것이니.]
하긴 원래 전생에 무협 지식으로 보면 황보 가문이라는 것이 영영이의 외가인 팽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문.
판타지로 치면 바바리안 전사와 바이킹 전사 정도의 차이.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무력이나 뭐 무공으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능지수로 어깨를 나란히 한다, 뭐 그런 이야기다.
무림계를 우열(優劣)반으로 나눈다면 무림 열반에 속하는 가문들이랄까?
다만 팽가가 선천적으로 능지 부족에 시달린다면, 황보가는 후천적 교육의 결과랄까, 뭐 그런 느낌인 것이다.
신력과 외공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황보가인지라,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뇌마저도 근육으로 꽉꽉 채우기에 무공을 익힐수록 지능이 낮아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에서 보면 이런 무례한 행동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긴 했다.
원례 예의와 범절이라는 것이 문명인의 기본 소양이지 저런 무림 야만인 놈들의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 연성공의 아우인 중원 군자인 내가 참자.’
그렇게 처조부인 독왕의 이야기에 마음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릴 때, 황보가의 아들이 나에게 사과를 해왔다.
“대협,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흥분해서. 본가의 무공을 도둑질당하는 줄 알고···. 죄송합니다. 대협!”
그래도 사과까지 하니, 저 정도 사과면 받아주어야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들려오는 뾰족한 소리.
“잘못은 그것뿐이 아니잖아요? 황보 공자?”
“예? 독접, 그게 무슨? 제가 잘못한 것이 또 있습니까?”
영영이와 서로 아는 사이인지 영영이를 별호로 부른 황보가의 공자의 물음에 발끈한 영영이가 빽 소리쳤다.
“가가께 삼류니, 뭐니 했잖아요! 그것도 사과해야지!”
그러나 영영이의 뾰족한 외침에 황보가의 소가주는 눈을 끔뻑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삼류’를 ‘삼류’라고 한 것이 잘못이란 말입니까?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뭐라고욧!? 지금 그걸 말이라곳! 크흡.”
‘영영아 답답하지? 오빠가 너에게 자주 느끼는 감정이야.’
괜히 싸움이 커질 것 같아 영영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대답했다.
“알겠소. 사과는 받을 테니 염두에 두지 마시오.”
“하하, 쟁쟁한 가문들의 여식을 처첩으로 거느리시는 분답게 아주 화통하시군요. 감사합니다. 대협.”
영영이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지만, 뭐 그렇게 나와의 일은 마무리되고 이어진 권왕과 황보 가문 사람들과의 대화.
가문 내부의 일인지라 자리를 피해줄까도 물었지만, 권왕께서 객들이 주인을 무르게 하는 법은 없다며 우리를 자리에서 뜨지 못하게 하셨다.
아마도 우리가 없으면 난처해지시는 느낌.
그렇게 다들 보는 앞에서 황보가 사람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그만 가문으로 돌아가시지요.”
“그렇습니다. 할아버지 그만 가문으로 돌아가시지요.”
권왕에게 그만 가출에서 돌아오라는 간곡한 목소리.
하지만 권왕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그럼 너희들이 전수받겠느냐? 내 무공을 전수받을 사람을 찾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데, 아까 내가 무공을 전수받는지 알고 그렇게 펄펄 뛸 때는 언제고 당황해 머뭇거리는 둘.
“저, 그것이···.”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그러자 권왕의 불호령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찌 욕심을 내는 것이야!? 이 무공은 하늘이 내린 신체를 가진 자만 익힐 수 있는 것! 이 나조차도 익히다 이런 몸이 되었는데,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느니라!”
“하,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께서 창안하셨지만, 그것은 분명 가문의 무공. 어찌 문외불출(門外不出)을 잊고 다른 이에게 전하려 하십니까!?”
“그러면 사장(死藏)시키란 말이더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가문에 비급으로 두면 언제가 후손들이 익히지 않겠습니까? 어찌 그리 급히 생각하십니까?”
“우리 가문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 않았느냐!”
“아버지! 어찌 그리 속단하십니까!?”
‘아, 이거 그러니까? 결국 유산 상속 문제 때문에 그러는구만?’
왜 저리 난리인가 싶었더니, 알고 보니 이건 전부 유산 상속 문제였다.
무림에서 가장 큰 유산이라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바로 무공.
선대에서 남긴 무공은 무엇보다 값진 보배라 할 수 있는데, 아마도 권왕이 창안해 권왕을 권왕이라는 자리에 올려준 무공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해서 권왕은 자기 무공을 전해 받을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고, 권왕이 창안했어도 황보가의 무공이니 아들과 손주는 밖으로 돌리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권왕이 자수성가해서 중원 팔 대 기업의 총수가 되었는데, 자기를 그 자리에 올려준 제품의 레시피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니 이 난리가 일어난 느낌.
‘아버지가 재산 다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하면 저럴 수 있지. 아무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 자식과 손주들의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회에 환원을 결정하셨다면 자식들이 저럴 수 있긴 했다.
자식들 처지에서는 날벼락일 테니까.
그렇게 내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 안타까운 눈으로 황보가의 가주를 바라보자, 그가 권왕에게 물었다.
“그리고 정말 그 무공을 익힐 자가 하늘이 내린 신체를 가진 자라면, 어찌 혼자 힘으로 이 중원을 뒤져 아버지의 무공을 익힐 사람을 찾는단 말입니까! 그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그대로 무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피식 웃으며 대답하는 권왕.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내 저 아이의 무공을 입문시켜주는 조건으로 다른 가문들에서도 내가 원하는 아이를 찾아준다고 했으니.”
“예!? 그게 무슨? 이게 정말입니까. 다른 분들?”
권황의 말에 당황하는 다른 세분.
아마 내 무공을 입문시켜주는 조건으로 권왕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느낌.
“크흠···. 그것이 그렇지 않으면 권왕께서 우리 사위를 봐주지 않겠다고 하셔서···.”
“뭐, 그, 그렇게 되었네.”
황보 가주의 질문에 처조부인 독왕과 장인, 장모님이 어색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가들이 나 때문에 권왕의 무공 사회 환원에 한발 걸치게 된 모양이었다.
***
나 때문에 권왕의 무공 사회 환원 행보에 한발 걸치게 된 모양새가 되어버린 처가들.
삼 층의 룸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기에 아내들에게 눈치를 줘 얼른 밖으로 빠져나왔다.
원래 싸움 중 좆밥 싸움과 유산 상속이 제일 재미있는 싸움이기에 안의 일도 궁금하긴 했는데, 오늘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가련이에게 찾아가는 일.
가련이의 사정을 듣고 그 후로 가련이를 볼 면목이 없어 찾아가지 못했는데, 그래도 내가 선생을 자처했으니, 가련이에게 내일 있을 일 정도는 내가 전달하는 게 맞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 당일 이야기하면 가련이가 돌발 행동을 할 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시키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으로 가련이에게 요리 한 가지를 사식으로 넣어줄 예정이었다.
가련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나는 요리사.
우리는 요리를 가르치고 가르침 받는 사이이니, 요리로 대화를 하는 게 맞으니까.
나는 가련이에게 요리에 이야기를 담아 전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