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초어(西湖醋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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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참 별난 성격이었다.
중원에 참견충(參見蟲)이라는 고독(蠱毒)이라도 있어 그것이라도 삼킨 것인지 깐족깐족하는 녀석.
녀석이 고독이 발작한 것처럼 나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다리는 좀 더 벌리고 허벅지에 힘을 좀 더 강하게···. 아, 설마 삼류들은 이런 것도 못 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러시네.”
아마도 나 때문에 다른 가문들이 할아버지의 무공 사회 환원에 참여하게 되어서 그런지, 옆에서 깐족거리며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느낌.
물론 저런 것에 내가 기분이 나빠질 리는 없었다.
도발이 유치해서 걸려들고 싶어도 걸려주기가 부끄러운 것.
딱 뭐 도발 수준이 황보 가문답다고 할까?
하지만 그 수준에 넘어갈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황보 공자!”
“아, 아아. 죄송합니다. 독접. 삼류들은 삼류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고 하셨지. 내 이런 실수를.”
“정말! 반점에서 먹는 물도 밥도 편한 마음으로 못 먹게 해드릴까요!?”
“어허···. 무인은 본디 힘으로 말하는 것인데. 당가라 그런지 다짜고짜 독이라니···. 크흠.”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영영이가 황보가의 소가주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리고 펄펄 뛰는 영영이의 목소리 사이로 들려오는 전음.
미미도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낭군님, 끌고 가서 좀 두드려 팰까요? 새어머니나 동생들도 때리니까 말을 잘 듣던데?]
‘응? 새, 새어머니를 팼다고?’
뭔가 패지 말아야 할 사람의 리스트가 지나갔는데, 그걸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영영이는 펄펄 뛰고 미미는 막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친가에 가서 동생들 군기를 잡고 와서 그런지, 사람 패는데 자신감이 붙은 미미가 황보가의 소가주를 끌고 가서 두드려 팰까 물었지만.
저런 힘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놈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는 일이고, 저런 유치한 도발에 말려들어 같이 유치해질 필요도 없는 일.
‘계속해봐. 할아버지 사회 환원만 가속될 테니까. 아예 비연에게 이번에 권왕 어르신이 찾는 사람도 같이 찾아달라고 해버릴까?’
가련이에게 줄 요리도 만들어야 하니, 일단 둘을 붙들어 진정시키며 황보 공자를 향해 말했다.
“자자 영영아 그만하거라. 미미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나저나 황보 공자는 할 일이 없소? 아침이라 배도 고플 텐데 안에 들어가서 식사라도 하지 그러시오? 황보 가주께서도 조식은 하셔야 하지 않겠소?”
영업이 시작되어 막 손님들이 반점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기에, 가서 아가리에 음식 처넣고 입을 막고 있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 크흠. 버, 벌써 조식(早食) 시진인가? 아버님은 조식을 어찌하실지 물어봐야겠구나.”
내가 별 내색을 하지 않고 말을 돌리자 도리어 당황하는 녀석.
그래도 화(火)속성 효자는 아닌지 자기 아버지를 챙긴다고 반점으로 들어가는 황보가의 소가 주였다.
그때였다 분노한 영영이와 미미의 시선을 받으며 반점의 입구로 향하는 황보가의 소가주를 후원으로 날아든 세 여자가 급하게 불러 세웠다.
“용상 오라버니!”
“용상아!”
“할아버지는 찾았더냐?”
아마 황보 공자의 가족들로 보이는 세 여인.
모습은 비연처럼 평평한 아니, 평범한 여인들이었다.
‘평평 아니, 평범한 무림의 여인들이군.’
뭐 딱히 인상적인 게 없는 평평 아니, 평범한 모습.
셋을 향해 달려간 황보가의 소가주가 나이 많은 여인의 손을 붙잡고는 대답했다.
“어머니! 제 표식을 따라오셨군요? 물론 찾았습니다. 안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그래, 어서 가자.”
“가요. 오라버니.”
그렇게 우리는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넷은 허겁지겁 반점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더 짜증이 난다는 영영이의 외침.
“가가, 황보 가문 정말 짜증이 나요!”
“맞아요. 낭군님!”
아무래도 쟤들 저러다가 다 같이 모용가주처럼 지하로 끌려가 큰일 당하지, 싶었다.
***
마보 훈련은 산통이 다 깨져버렸고, 열받은 영이와 미미를 달래기 위해 허벅지에 하나씩 머리를 눕히고 놀다 보니 어느새 한 시진.
이정도면 물고기의 비린내가 어느 정도 빠졌다 싶기에 둘을 데리고 부엌으로 향하자, 부엌에서는 반점을 찾은 손님들을 위한 요리가 한창이었다.
“우육면, 네 그릇입니다. 남궁 부인.”
“알겠어요. 오라버니 제가 면을 자를 테니, 그사이 국물을 준비해 주세요.”
“알겠다. 소소야.”
이제 주방 식구 다된 우리 소소는 제법 능숙하게 주방일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내가 영영이 미미와 함께 안으로 부엌으로 들어서자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공, 잘 쉬다 오셨나요?”
“소소, 미안하오. 나 혼자 쉬다 와서.”
“어머, 아니에요. 은공. 은공은 좀 쉬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열심히 신걸요.”
“고맙소. 소소.”
“은공, 소소는 은공께 받은 은혜를 갚으려면 한참이니,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 이것은 중원의 천사인가?’
우리 소소는 분명 저주받아 중원인의 껍질을 뒤집어쓰게 된 천사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입맞춤 한 번에 쌍코피를 흘리고 저리 순수하지.
말도 예쁘게 하는 우리 소소에 감격하며, 오늘 밤 중원의 입맞춤보다 더 찐한 저 서역의 불란서(佛蘭西)인들이 하는 입 박치기를 선보여주리라 다짐하며 내 전용 조리대 앞에 섰다.
일단 밤의 일은 뒤로 밀어두고 어쨌든 요리는 해야 하니까.
그렇게 조리대 앞에 서자 아직 물통에서 헤엄치고 있는 세 마리의 초어.
한 마리씩 꺼내 먼저 피 빼는 작업을 해주기로 했다.
-퍼덕퍼덕.
퍼덕거리는 녀석을 한 마리 꺼내 일단 제일 먼저 초어의 아가미 옆 부분을 찔러 벌리고 꼬리지느러미가 시작되는 부분에도 칼집을 넣어 피를 빼주기로 했다.
해수어가 아닌 민물고기인지라 피를 제대로 빼주지 않으면 비린내가 많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가미 옆의 심장 부분과 꼬리지느러미가 시작되는 부분에 칼집을 넣어 물통 안으로 다시 넣자 금세 빨갛게 물드는 물통.
물을 한번 갈아주고 나자 물고기 세 마리가 축 늘어져 물 위로 떠 올랐다.
물고기의 피가 충분히 빠졌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비늘을 벗기는 것.
채도를 바로 세워 물고기의 꼬리부터 머리 쪽으로 밀며 비늘을 벗겨주었다.
-촥촥촥촥.
채도가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튀는 은빛 비늘.
곧 주변은 모두 물고기 비늘이 뒤덮었고, 비린내도 물씬 퍼지기 시작했다.
“으. 비린내.”
매일 어전을 다니던 영영이도 민물고기 비린내는 별로인지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
비늘이 다 벗겨지면 다음으로 할 일은 비늘이 벗겨진 물고기의 표피에 남은 색소를 제거하는 일.
끓고 있던 뜨거운 물을 비늘 벗겨진 초어의 껍질에 부은 후, 채도로 살살 긁어내 표피의 검은 색소를 모두 제거했다.
이렇게 물고기의 겉 손질이 끝나면 이제 물고기의 배를 가르고 물고기를 반으로 갈라야 한다.
-촤악.
마치 고등어구이를 할 때처럼 초어를 세로로 갈라 쫙 벌린 후 두 부분으로 나눴다.
고등어구이와 다른 점은 완전히 두 조각으로 나눈다는 것.
한쪽은 뼈 아래 길게 칼을 넣어, 요리가 끝나면 고기가 뼈와 잘 분리되도록 해주고, 남은 한쪽을 반으로 나눠 그 반으로 나눈 초어의 표면에 칼집을 넣어 양념이 쉽게 배어들어 가게 해주었다.
이 요리는 초어를 세로로 나눠 껍질 부분이 위로 향하게 만들어 내놓는데, 한쪽은 반드시 온전하게, 한쪽은 반드시 칼집을 넣고 반으로 잘라 세팅한다.
그렇게 내놓는 이유는 칼집이 들어간 부분이 먼저 소스가 배어들도록 해 먼저 먼저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온전한 쪽은 반대편을 먹는 사이 천천히 소스에 배어들게 하기 위함이다.
“자, 그럼 손질은 끝났고. 웍을 올려야겠군.”
차례대로 세 마리의 초어 손질이 끝나고 깨끗하게 손질한 초어들을 다시 한번 씻어 남은 핏물을 제거해주었다.
그리고 물고기에 으깬 생강과 소금으로 약간의 간을 해 한쪽에 놓아두었다.
생강은 비린내를 한 번 더 잡아주기 위함이고, 소금은 간을 위해서.
그렇게 밑 간을 해두고 화구에 웍을 올려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웍에 뜨거운 물을 부으니 금세 끓어오르는 물.
여기에 편으로 썬 생강, 예쁘게 묶은 쪽파, 쌀로만든 검은 식초인 미초와, 사당, 소흥주 소금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뜨거운 물은 바로 넣은지라 곧바로 끓어오르는 물.
식초를 넣은 시큼한 향이 살살 솟아올랐다.
“가가, 새콤한 향이 나요.”
“그래, 새콤하게 만들어 먹는 요리니까 말이다.”
“맛있을 것 같아요.”
“그래, 잠시 기다리거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웍에 이제 영영이가 사 온 손질한 초어를 바로 넣었다.
-풍. 풍.
그리고 바로 나무로 된 뚜껑을 덮어주었다.
이 요리의 핵심은 초어가 충분히 익되 절대로 껍질이 벗겨져서는 안 되는 것.
그러니 조리 시간은 딱 반각 정도.
초어를 웍에 넣은 후 익기를 잠깐 기다리며 틈틈이 뚜껑을 열어 거품과 불순물을 국자로 건져내었다.
그리고 반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뚜껑을 열어 안을 확인하자 확 하고 피어오르는 민물고기의 진한 향.
잉어과 특유의 흙내와 잡내 그리고 비린내는 어지간히 잡힌 상태.
이제 소스만 준비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이제 소스만 남은 것인가?”
“어르신 손님들 요리는 다 나가서 손이 남는 데 도울까요?”
식모가 도울 것이 없느냐 물어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잔심부름 정도야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아, 그럼 밀가루를 물에 개어서 준비해 주겠소?”
“알겠습니다. 류 대인.”
소스에 쓸 전분 대신 밀가루를 부탁했으니, 웍에서 물고기를 곧바로 건져냈다.
그리고 초어를 각 한 마리씩 접시에 예쁘게 담아냈다.
두 접시는 영영이와 아내들, 부엌 식구들을 위한 것.
그리고 한 접시는 가련이를 위한 것.
고기는 한쪽에 그렇게 두고 물고기를 건져낸 육수를 빠르게 퍼내 소스를 만들 만큼만을 남겼다.
이제 소스를 만들어야 하는 것.
이 요리에 들어가는 소스도 기본적으로 새콤달콤한 탕추(糖醋) 소스.
-촥.
끓어오르는 육수에 미초를 넣고 다음으로 간장을 넣어 색을 냈다.
이 요리의 소스는 진한 갈색 느낌이 나야 하므로 간장과 검은 쌀 식초, 거기에 진한 소흥주가 기본베이스.
송 시대 설탕이 사당으로 달콤함을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된 재료들이 웍안에서 섞이자 솟아오르는 코를 찌르는 향.
중원의 탕추 소스는 물 베이스라도 많은 식초를 넣어 정말 시큼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니, 섞인 재료들이 끓어오르자 목이 따끔거릴 정도의 향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탕추군요?”
“맞소.”
식모도 탕추 소스를 아는지 입맛을 다셨다.
원래 이 새콤하고 달콤한 향을 맡으면 입에서 침이 솟아오르니까 말이다.
내가 소스를 끓게 그대로 두는 것은, 향을 입히기 위해 넣었던 소흥주의 알콜 성분을 날리기 위해서.
전분을 지금 타버리면 알코올이 날아가는데 그냥 끓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
그렇게 잠시 기다렸다가 식모에게 건네받은 밀가루 푼 물을 넣어 소스를 걸쭉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면 이제 소스까지 완성.
접시에 담아두었던 초어가 흠뻑 젖도록 소스를 뿌려주자, 초어가 검붉은 소스에 버무려져 검게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다진 생강을 위에 솔솔 뿌려주면 마무리까지 끝.
“자, 완성이구나.”
요리의 완성을 알리자 어디서 젓가락을 가져왔는지 한 손에 젓가락을 한 손에는 요리를 든 영영이가 나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맛있겠다! 가가, 그런데 이 요리 이름이 뭐예요?”
영영이가 물은 이 초어로 만든 요리의 이름은, 내가 가련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요리.
“그 요리는 서호초어(西湖醋魚)라 한단다.”
서호초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