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화 (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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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세상이 망할 거라는 징조라면 이것저것 있기는 했었다.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거짓말처럼 벌어진 전쟁, 그로인한 경기침체와 식량난 그리고 마침내 벌어졌던 핵전쟁까지.

인류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자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류의 숨통을 끊어낸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었다.

‘전혀 의외의 존재들이었지.’

인류를 종말로 이끈 것은 기후 위기도, 운석도, 핵전쟁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몬스터들.’

싸구려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고블린, 오크, 트롤, 드래곤 등.

그 괴물들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아니지. 아직 완전히 망한 건 아니야. 여기 내가 살아있으니까! 분명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때였다.

카아아악―!

나보다 두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괴물새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씨, 씨발!”

나는 그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 집 거실,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의 거실이었다.

밖이 훤하게 보이는 거실 창문 너머로 괴물새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 놈의 속도와 기세라면 거실창문 정도는 문제없이 부수고 들어와 내 목을 물어뜯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콰아아앙!

기세 좋게 날아오던 괴물새는 창문에 그대로 얼굴을 쳐 박은 뒤, 보기 좋게 튕겨져 나갔다.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것을 보면 정신을 잃은 듯 했다.

그 직후 내 눈앞에 뜨는 알림.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휴우.”

그렇다.

싸구려 소설의 뻔한 도입부 전개처럼 세상이 망하고 나는 상태창과 함께 한 가지 고유 능력을 각성했다.

[집구석 절대자]

집구석 선포 (패시브) Lv. 1

-그 누구도 절대자의 허락 없이는 집구석을 침범할 수 없다.

평소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던 나의 생활패턴 때문일까, 이상한 능력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방금 내 목숨을 구해준 것도 바로 이 능력이었다.

그래, 안다. 고마운 능력이다.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도 전부 이 능력 덕분이었으니까.

“하, 씨발.”

한 가지, 이 능력에 씨발스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망한 지 사흘 째.

나는 여전히 집구석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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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1] 집구석 절대자 (1)

일단 현관문의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것 까지는 가능하다.

하지만 문을 미는 순간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는 듯한 감각과 함께 이러한 문구가 나타난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씨발!”

문고리는 돌아가지만, 문이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도 안다.

지금 시점에 밖으로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걸.

세상이 망하고 사흘.

내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능력덕분이었다.

지금 밖은 위험한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방금 거실 창문에 대가리를 박았던 괴물새 한 마리만 만나도 나 같은 건 한끼 식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밖으로 나가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가족.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사랑하는 가족들이 전부 밖에 있었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아―.”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데에는 나름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이 합쳐진 널따란 공간까지 있는 이 30평짜리 아파트에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이 아파트를 사들인 것은 아버지의 선택으로, 은행 빚 2억과 우리 가족 전 재산 2억을 합쳐서 사들인 물건이었다.

아버지의 도박은 성공했고, 4억에 사들였던 아파트는 겨우 반년 만에 10억을 넘어섰다.

금수저도 아닌 내가 이런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세금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실 거주 2년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팔아야했기 때문에 그동안 내가 집을 지키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뒤로 상황이 좋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코로나와 전쟁의 여파로 무너진 경기는 부동산에도 영향을 주었고, 10억을 넘어섰던 집값은 어느새 7억까지 내려앉았다.

게다가 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까지 치솟고 있었으니 꽤나 위험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이젠 다 부질없는 이야기지.’

세상이 망해버린 이상 은행 빚이 얼마였든, 아파트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팔지도 못하는데.

‘제발 무사하기만 하세요.’

가족들의 무사를 기원하며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 중···]

역시나.

지난 사흘간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는 없었다.

전화는 물론 메시지, 까톡 등을 비롯한 모든 메신저가 먹통이었다.

안 될 것을 알지만, 까톡을 열어 메시지를 입력해 봤다.

-엄마, 괜찮은 거지?

“제발 좀···!”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 엄마, 괜찮은 거지?

재전송 버튼이 등장할 뿐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오류코드: 580, LO) ]

새로운 메시지가 뜨더니 아예 까톡 앱이 꺼져버렸다.

몇 번을 다시 켜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 위쪽 탭을 바라보니 데이터가 끊겼을 때 나타나는 아이콘이 생겨나 있었다.

“······젠장.”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실은 사흘이나 데이터가 터진 것이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구굴이나 네이머와 같은 대형 웹사이트들은 세상이 망한 당일에 먹통이 됐었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어봤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대로 갇혀있다가는 굶어죽는다.’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끊기고 있었다.

수도, 전기, 가스 등.

생활에 필요한 필수요소들이 시시각각 사라지는 중이었다.

‘물은 충분해.’

다행히 쿠퐁에서 시킨 물이 넉넉하게 있었다.

2L짜리 20개와 500ml짜리가 47개가 있었고, 물병이든 컵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 물을 가득 채워 놓은 상태였다.

일일이 정수 물을 뜨기 귀찮아서 시켰던 것인데, 귀차니즘이 나를 살린 셈이다.

‘문제는 먹을 거다.’

어제, 전기가 나가버리며 냉장고 전원이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냉장고 안에 있던 모든 반찬들은 시한부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최대한 문을 열지 않은 것과 냉동실의 냉기로 아직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라면도 몇 개 안 남았다.’

남아 있는 거라곤 겨우 진라면 순한맛 세 봉지.

‘이럴 줄 알았으면 라면도 대량으로 사 놓을 걸···.’

일주일마다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주러 오시는 부모님 덕분에 먹을 것을 쟁여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 남아 있는 식량도 딱 일주일 치였다.

‘아껴먹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바닥나게 돼.’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

사나운 몬스터들로부터 나를 완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이 능력 덕분에 나는 언젠가 굶어 죽게 되고 말 것이다.

식량이 떨어지고 나면, 굶주림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겠지.

‘최악이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거실 창밖으로 손을 뻗어갔다.

나갈 수만 있다면 창문을 통해서라도 나갈 생각으로.

그러나.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씨바아알!”

이제는 지겨워진 그 문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딱딱한 벽과 부딪히는 감각과 함께 주먹이 아려왔다.

‘절대자는 무슨!’

자신의 영역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반푼이가 아닌가.

‘···한심한 새끼.’

세상이 망한 지금도 나는 그대로였다.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며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는 그런 불효자식.

스물여덟이나 먹고는 아직까지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해 부모님께 용돈이나 받아 쳐 먹는 병신 버러지.

세상에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기생충 그 자체.

“···시발.”

그런데 그때였다.

띠링!

“···응?”

지난 사흘간 한 번도 본 적 없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켈리칸(Lv. 23)을 사냥하셨습니다.]

‘켈리칸?’

그 직후.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대량의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문득 거실 창문에 거하게 대가리를 박고 추락했던 괴물새의 존재가 떠올랐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확인했다.

“카아악!”

“캭!”

괴물새의 시체 주변으로 초록색 피부의 작은 괴물들 수십 마리, 고블린들이 몰려들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고층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개미 떼처럼 보였다.

‘저것들이 마무리한 건가?’

괴물새가 정신을 잃고 떨어진 사이 고블린들에게 사냥당한 듯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괴물새를 기절시킨 것은 나였으니, 나에게도 경험치가 들어온 것이고.

덕분에 스킬 레벨이 두 단계나 상승했다.

‘하, 웃기지도 않는군. 집돌이 스킬이 레벨업을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나 그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조건에 충족되는 전리품이 근처에 있습니다.]

[전리품을 정산을 시작합니다.]

“응?”

알 수 없는 알림들이 나타난 직후 변화가 일어났다.

“케에에엑!!”

“뭐, 뭐야?”

갑작스러운 고블린들의 발작에 놀란 나는 급하게 다시 땅을 내려다봤다.

그곳에서는 아까와는 약간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잔치를 벌이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주변에 있던 고블린들은 처절한 절규를 내뱉고 있었다.

‘왜 저래?’

놈들이 발작하는 이유는 괴물새의 사체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사라지고 있다?’

괴물새의 사체 일부가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입장에서는 사냥감의 고기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절규를 내뱉을 수밖에.

[전리품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아래를 확인했다.

‘시체가 삼분의 일은 줄어들었어···.’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203,24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새로 뜬 메시지 항목의 숫자를 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되뇌었다.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이, 이백만원? 갑자기 이백만원이 입금됐다고?’

평소 용돈을 받으며 생활했던 내게 이백만원이라는 돈은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내가 사태를 이해하기도 전에 또 다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번쩍

거실이 조금 밝아졌다.

대낮이었던 탓에 아주 조금 더 밝아진 수준에 그쳤지만, 어쨌든 밝아졌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거실 천장 중앙에 박혀 있는 전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기가 돌아왔어?’

분명 어제 전기가 끊겼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몬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도시 인프라에 치명적인 피해가 생겼을 것이다.

그게 이렇게 빠르게 복구 될 리가 없었다.

‘스킬이다! 아까 분명히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고 그랬어!’

나는 급하게 상태창을 열어 스킬의 변화를 확인해 봤다.

[집구석 절대자]

집구석 선포 (패시브) Lv. 3

-그 누구도 절대자의 허락 없이는 집구석을 침범할 수 없다.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패시브) Lv. 1

-품위 유지를 위한 집구석 전반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복한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Lv. 1

-상점에 등록시킨 물품을 정가에 구매할 수 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 Lv. Max

-보유 금액 : 2,203,240 원

총 세 가지 스킬이 새롭게 추가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전기가 돌아온 것은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라는 스킬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집구석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복한다고?’

곧바로 일어난 나는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우웅

전기가 나가버리며 유사 아이스박스가 되었던 냉장고가 냉매 돌아가는 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꾸욱

나는 냉장고 문을 조심스럽게 붙잡고 조금씩 힘을 주었다.

“!!”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불빛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작동한다! 정말로 전기가 들어왔어!’

냉장고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싱크대에서는 물이 나왔고, 정수기도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가스레인지와 인덕션도 정상적으로 켜졌다.

혹시나 싶어 확인한 핸드폰에서는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있었다.

‘정말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상이 망하기 전으로······!’

전기가 들어오며 TV나 컴퓨터도 전원이 켜졌다.

물론 정상적인 채널이 없어 지지직거리는 화면만 송출하는 TV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었다.

그나마 컴퓨터로는 오프라인 게임이 가능했기 때문에 아예 쓸모 없지는 않은 정도.

‘그래도 멀쩡히 켜지는 모니터를 보니 뭔가 안심이 되네.’

세상이 망하기 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 앞에서 보내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정상적으로 부팅이 된 컴퓨터 화면만 봐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꼭 세상이 망하기 전으로 돌아온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인터넷 연결이 돼 있기는 한데··· 역시나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는 없구나.’

전기가 끊기기 전만 해도 접속할 수 있던 사이트들이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나타난 몬스터나 피해 상황 따위를 속보로 떠들어대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접속 가능한 사이트가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서버가 맛이 간 거겠지.’

전기가 끊기기 전까지 실시간으로 전해지던 서울의 상황은 심각함 그 자체였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들이 건물을 통째로 부수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부산에 살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부산에서는 고층 빌딩만한 거대 괴물은 없었다.

멍하니 컴퓨터를 뒤지던 도중이었다.

‘이건···.’

예전에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찍어뒀던 사진 파일이었다.

당시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산 엄마가 본전을 뽑겠다며 수백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중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셋이서 같이 찍은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사진 속의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는 양옆에서 나를 감싸며 행복한 듯 미소짓고 계셨다.

“···엄마, 아빠.”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엄마 아빠를 구해와야 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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