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2화 (2/175)

[Episode 01] 집구석 절대자 (2)

후루룩―

갓 끓인 꼬들꼬들한 면발이 입 안으로 힘차게 빨려 들어왔다.

물을 적게 넣고 끓인 탓인지 라면 스프의 강렬한 맛이 혀를 자극해 왔다.

반숙이 된 계란 노른자를 입에 넣으니 완벽한 조화였다.

면을 깨끗이 비워낸 후 남아 있는 국물에는 방금 한 밥을 양껏 넣어 말아 먹었다.

“후아.”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으니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흐음.”

부모님 걱정에 눈시울을 붉히던 게 바로 아까 전이었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배를 채우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너무 잘 먹었나···.’

배를 채운 나는 설거지 거리들을 물에 담가 놓고 다시 거실 창문 근처로 다가갔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역시 안 되나.’

혹시나 싶어 확인해봤지만, 역시나였다.

‘스킬 레벨이 늘어나긴 했어도 아직은 밖으로 나갈 수 없군.’

그래도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성을 봤다.’

몬스터를 잡는 것으로 스킬 레벨이 오른다는 것.

스킬 레벨이 오르며 새로운 기능을 가진 스킬이 생겨났다는 것.

‘레벨을 올리다 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종류의 스킬이 생겨날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의 내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였다.

‘몬스터를 사냥해서 스킬 레벨을 올리는 것.’

하지만 이것에는 아주 커다란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어떻게 몬스터를 사냥하지?’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하는데, 정작 그 몬스터들은 죄다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구석에 갇혀있는 신세인 내가 몬스터를 사냥할 방법이라고는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방금과 같은 천운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켈리칸이라는 이름의 괴물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운빨이었다.

집구석 선포 스킬 덕분에 놈을 기절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고블린들이 추락한 놈의 숨통을 끊어준 것도 실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또 다시 그런 형편 좋은 일이 발생할 리가 만무했다.

‘고블린들은 잘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딱히 대단한 방법은 아니었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거실 창문 밖으로 조금만 손을 뻗으면 보이지 않는 벽이 내 몸을 막아선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나’만을 밀어낼 뿐이다.

나는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뭉친 휴지를 밖으로 던졌다.

휴지는 내 손바닥이 닿아 있는 옆을 허무하게 지나쳐 바깥으로 떨어졌다.

‘좋아, 된다.’

마침 이곳은 아파트 최상층인 30층이었다.

게다가 켈리칸의 남은 시체가 너무 무거운 탓인지 제법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고블린들은 그것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켈리칸의 사체가 완벽한 미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적당히 무거운 물건이라면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었고, 머리만 맞출 수 있다면 고블린 정도는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거라면 충분하겠지.’

아령 3kg.

조금이라도 운동하는 게 어떻냐고 엄마가 직접 사주신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이것을 사용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 번 들고 말았으니 사용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지.

그런데 그걸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고맙습니다, 엄마.’

문제는 아령의 개수였다.

‘겨우 두 개···.’

잘해봤자 겨우 두 마리의 고블린을 잡는 게 한계였다.

‘할 수 있을까?’

아령을 들고 고민하던 그때, 켈리칸의 남은 사체를 운반하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의 고블린들이 켈리칸의 사체에 들러붙어 있었다.

낑낑대기는 해도 천천히 켈리칸의 사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블린들이 떠나가고 있었다.

‘지금을 놓칠 순 없어!’

지난 며칠간 놈들을 관찰했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가 밀집되어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모두 켈리칸의 시체 덕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맞아라!’

휘익!

창밖을 향해 던진 아령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빠각!

“케엑!”

“켁!”

아령이 명중한 곳에서는 뼈가 박살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망했다.’

그러나 아령이 적중한 곳은 고블린의 머리가 아니었다.

그것이 떨어진 곳은 켈리칸의 머리.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이젠 하나밖에 안 남았어.’

절망적이었다.

던져서 고블린을 잡을만한 물건이야 아직 남아 있긴 했다.

컴퓨터도 있고, TV도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들을 겨우 고블린 잡는 데 사용하기는 너무 아까웠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때 하등 필요 없는 물건들이라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이게 얼마짜린데···.’

이건 감성의 영역이었다.

어쩌면 아직 그렇게까지는 절박하지 않은 것인지도.

‘게다가 내 힘으로 TV나 컴퓨터 본체를 던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기껏해야 창문 밖으로 밀어내는 정도일텐데, 그것만으로는 고블린들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을 것이다.

‘이게 딱인데.’

실제로 아령은 고블린들이 있는 곳 바로 근처까지 날아갔지 않은가.

빗나가긴 했지만.

‘더 없나?’

기도하는 심정으로 집안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아령은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내가 엄마였어도 나 같은 놈에게 아령을 더 사주진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을 사용 안 하는데 뭐하러 사주겠는가.

돈만 버리는 셈인데.

‘그새 고블린 놈들이 떠나지는 않았겠지?’

슬쩍 거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고블린들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데.

고블린들과 눈이 마주쳤다.

‘젠장!’

켈리칸의 머리 위에 올라간 고블린의 한 손에 내가 던진 아령이 들려 있었고, 놈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질 해 대고 있었다.

“케겍!”

“케에에엑!”

고블린들이 나를 가리키며 지랄발광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령을 던진 것이 나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놈들은 켈리칸의 시체를 내버려두고 내가 있는 아파트 안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올라오려는 건가?’

아파트 저층은 이미 진즉에 놈들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애초에 켈리칸의 사체를 아파트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던 것을 보면 아예 아파트 저층을 둥지로 삼은 듯 했다.

“케에엑! 캬아악!”

“케게게겍!”

그 증거로 그곳에서 고블린 수십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고층을 향해 항의라도 하듯 고함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더 많은 고블린들이 몰려 있었다.

‘TV를 던져 볼까? 지금이라면 한 방에 몇 마리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새로운 스킬 기능만 개방되면···. 어?’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

갑자기 전기와 가스가 들어오며 정신이 없어서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스킬이 하나 있었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Lv. 1

-상점에 등록시킨 물품을 정가에 구매할 수 있다.

품위 유지 스킬과 함께 열렸던 상점 스킬.

“상점 오픈.”

명령어를 내뱉은 순간 눈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물건을 등록해 주십시오.)

ᚠ보유 금액 : 2,203,239 원

▶물품 등록

‘보유 금액을 보면 절대자의 지갑 스킬이랑 연동되어 있나 보군.’

아직은 등록된 물품이 없어 텅텅 비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는 아령을 상점창에 갖다 대며 말했다.

“물품 등록.”

[물건을 등록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러자 상점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내가 들고 있는 아령을 스캔했다.

[클래식 논슬립 아령 3kg의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비어있던 상점창에 익숙한 아령의 사진과 함께 새로운 품목이 생겨났다.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클래식 논슬립 아령 3kg (16,990 원)

ᚠ보유 금액 : 2,203,239 원

▶물품 등록

‘쿠퐁에서 구입했던 가격이랑 똑같다.’

아무래도 시세는 세상이 망하기 전과 동일한 것 같았다.

‘쿠퐁에서 산 건 두 개에 한 세트였는데.’

마침 상점창에 나타나 있는 사진에도 아령 두 개가 교차되어 놓여 있었다.

“클래식 논슬립 아령 구입.”

[정말로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아령을 구매 확정한 순간.

짤랑!

동전이 짤랑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상점창이 거실 바닥을 향해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그곳에는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아령 2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됐다!’

손에 들고 있던 아령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새롭게 생겨난 아령을 들어보았다.

‘무게감 좋고.’

손에 잡히는 질감, 무게감 전부 오리지널과 완벽히 똑같았다.

‘좋아.’

망설임 없이 그것을 창문 밖으로 냅다 던졌다.

그리고.

콰직!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3,345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예스!”

바로 밑에 고블린들이 몰려있었던 탓인지 한 방에 명중시킬 수 있었다.

“케에엑!”

“켁켁!!”

“카아아악!”

고블린이 죽자 밑에서는 아주 난리가 나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향해 한 번 더 아령을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아령을 보자마자 고블린들이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콰아아앙!

덕분에 아령은 땅바닥에 쳐박히며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까비.”

빗나갔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클래식 논슬립 아령 3세트 구입.”

지이이잉

이제 아령이라면 얼마든지 수급할 수 있게 됐으니까.

휘익 빠각!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51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렇게 두 마리째 사냥에 성공했을 때였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나이스!’

고블린들의 레벨이 낮아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켈리칸을 잡고 얻은 경험치 덕분이겠지.’

켈리칸의 레벨은 무려 23레벨이었다.

놈을 잡고 얻은 경험치가 레벨업 직전까지 차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곧바로 새롭게 얻은 스킬을 체크했다.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Lv. 1

-물품을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이다.

스킬명을 보는 순간 나는 약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창고인가.’

무슨 종류의 스킬인지는 설명만 보고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창고 오픈.”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나타난 것은 상점창과 비슷한 창이었다.

마침 남아도는 아령 하나를 그곳에 갖다 댔다.

[창고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응.”

지이이잉

상점창에서 쏟아지던 빛과 유사한 빛이 아령을 향해 쏟아졌고, 내 손 안에 들려있던 아령의 무게감이 희미해지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집구석 절대자의 창고】

클래식 논슬립 아령 3kg (1)

창고 안에 아령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허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령 소환.”

지이이잉

창고에서 나온 빛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가 노려보고 있는 허공을 향했고, 곧이어 그곳에서 아령이 나타났다.

툭!

허공에서 생겨난 아령을 낚아챈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된다.’

창고의 물품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소환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다면.’

손에 든 아령을 다시 한 번 창고에 보관한 나는 거실 창문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며 알림창이 생겨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래에 몰려 있는 고블린들의 위치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투명한 벽 너머 3m 정도 떨어진 허공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령 소환.”

지이이잉

창고에서 빛은 정확히 내가 원하는 장소로 쏘아졌고, 아령 하나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허공에서 나타난 아령은 중력에 의해 고속으로 추락했다.

콰직!

아령에 적중당한 고블린 한 마리의 머리가 박살나며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73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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