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3화 (3/175)

[Episode 01] 집구석 절대자 (3)

운 좋게 켈리칸을 사냥하고, 스킬 레벨업을 하면서 새로운 스킬들을 얻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진라면 순한맛 구입.”

[정말로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지이잉―

상점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머문 곳에는 진라면 순한맛 5개입 한 봉지가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들어 올려 유통기한 날짜를 확인해 봤다.

‘며칠 전에 샀던 거보다 유통기한이 뒤로 밀렸다.’

오늘 아침 다 먹어치운 라면 봉지에 적혀 있는 유통 기한보다 정확히 3일 뒤로 밀려 있었다.

‘역시 유통기한 날짜까지 최신화 돼서 나오는구나.’

새롭게 얻은 스킬 중 가장 유용한 것은 단연코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스킬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상점에 등록하면 마음껏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

사실상 내가 그동안 굶어죽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 스킬 덕분이었다.

‘딱 10개만 등록할 수 있다는 건 좀 아쉽지만···.’

그동안 상점을 이용하며 알아낸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물품 등록은 딱 10개만 가능하다거나, 한 번 등록한 물건은 삭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처음 스캔하는 물건의 상태에 따라서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 까지 말이지.’

예를 들어 처음 상점에 등록할 때, 라면의 유통기한은 3개월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상점에서 구입하는 라면은 죄다 지금 날짜로부터 3개월의 유통기한이 남은 물건이 나왔다.

그러니까 상점에 등록할 당시의 라면과 정확히 똑같은 상태의 물건이 나온다는 소리였다.

‘뭐, 3개월이면 충분히 다 먹고도 남으니까.’

마땅한 반찬도 없고 배달도 불가능한 현 상황에서는 라면이 최고였다.

쪼르르르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 다음 불을 켰다.

따따따닥 화르륵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한 나는 건더기 스프와 분말 스프를 넣고 물이 끓는 것을 기다렸다.

오늘도 내 점심은.

“라면인 건가~ 라면인건가 오~ 라면···.”

노래를 흥얼거리던 나는 그대로 멈추고는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

세상이 망하고 당장 부모님의 생사도 모르는 지금, 집 안에서 호의호식하며 노래나 흥얼거리고 있다니.

그것도 부모님이 전 재산을 투자해서 마련해 준 집에서.

“하아―.”

보글보글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지.

물이 끓는 소리에 면을 집어넣었다.

멍하니 라면을 지켜보다가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적당한 시점에 계란 하나를 까 넣었다.

잠시 후 최적의 타이밍에 그릇에 옮겨 담은 라면은 면발의 쫄깃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 짓도 며칠이나 반복하며 꽤 요령이 생긴 상태였다.

후루룩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맛이었지만, 어딘가 2프로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라면도 맨날 먹으니까 질리는 건가.’

혼자 산지 벌써 3년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연속해서 라면만 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가 집에 찾아왔었으니까.

그냥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해도 엄마는 항상 집을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어 주거나 카레를 해 주었다.

엄마가 왔다 가면 항상 냉장고에는 먹을 거리들로 가득했고, 나는 밥만 하면 됐었다.

반찬들이 상하기 전에 전부 먹어치우기 위해서는 라면을 끓여 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

“···엄마.”

엄마가 해준 반찬을 못 먹은 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그 맛이 그리운 걸까.

군대에서도 이렇게 그립진 않았는데.

뚝.

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나는 멍하니 얼굴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머리가 맛이 가고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라면을 끓이며 노래를 부르더니, 이제는 라면을 입에 넣은 채로 눈물을 흘리다니.

내가 봐도 내 자신의 정신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라면은 반쯤 남아있었지만, 입맛이 없었다.

‘버려야겠군.’

음식물 쓰레기.

원래라면 최대한 나오지 않게 하고, 생긴다면 모아뒀다가 나중에 배출해야 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생겼다.

“창고 오픈.”

창고를 오픈한 나는 라면 그릇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그릇 안에 내용물을 보관해줘. 면이랑 국물이랑 건더기까지 전부.”

[창고에 보관하시겠습니까?]

“응.”

창고에서 나온 빛은 라면 그릇을 비추었고, 그릇 안은 설거지를 한 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졌다.

이런 방법으로 남은 음식물들을 보관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창고 안에서는 음식물이 뒤섞이거나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상태였다.

‘나름 유용하지. 혹시나 먹을 게 다 떨어지면 먹을 수도 있고.’

그렇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그릇을 대충 헹궈 싱크대에 쌓아두었다.

-아들! 설거지는 꼬박꼬박 해야지!

설거지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을 보니 매번 잔소리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라 또 다시 우울해졌다.

“후우. 상점 오픈.”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클래식 논슬립 아령 3kg (16,990 원)

진라면 순한맛 (3,100 원)

제주삼다수, 2L, 12개 (12,400 원)

곰곰 우리쌀 5kg (14,890 원)

곰곰 특란, 10구 (3,950 원)

소화가 잘되는 우유, 930ml, 2개 (6,220 원)

양반 올리브 김 24봉 (9,800 원)

카놀라유, 900ml, 2개 (12,330 원)

반쯤 남은 오뚜기 토마토 케찹, 500g (3,350 원)

귤 껍데기 (300 원)

ᚠ보유 금액 : 1,893,340 원

▶물품 등록

지금 상점에 등록된 물건은 총 10개.

고블린을 잡기 위해 등록했던 아령부터 시작해서, 라면, 물, 쌀, 계란, 우유, 김, 식용유 등 전부 생활필수품 위주로만 등록을 했다.

그러다가 저지른 첫 번째 실수의 흔적이 바로 ‘반쯤 남은 케찹’이었다.

‘상점에 등록하면 그냥 새 상품으로 되는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반쯤 남은’이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릴 줄이야.

시험 삼아 구입해본 케찹은 정말로 내가 등록할 때 상태 그대로 반쯤 남아 있는 중고 케찹이었다.

케찹을 등록하기 이전까지 개봉하지 않은 새 상품을 상점에 등록시킨 게 천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점의 제일 마지막 항목.

귤 껍데기 (300 원)

내가 저것만 보면 혈압이 오른다.

온전치 못한 상태로 케찹이 등록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괜한 실험정신이 발동되어 귤껍질을 등록시켜 보았다.

‘이런 쓰레기도 등록이 될까?’하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저지른 짓이었다.

“병신 같은 놈.”

호기심의 대가는 컸다.

그 직후 샴푸를 등록하려 했을 때, [더 이상 상점에 물품을 등록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알림을 봐야 했으니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행동한 과거의 내가 미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상점 스킬에도 레벨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레벨업 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면 등록 가능한 물품 개수도 올라가겠지.’

절대자의 상점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주제에 겨우 10가지 물품만 등록 가능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차피 샴푸나 린스 같은 것들은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닌데다 개봉도 하지 않은 새 상품들도 있었다.

‘새 상품들을 개봉하기 전에만 레벨업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야 온전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상점창을 노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어?”

ᚠ보유 금액 : 1,893,339 원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보유 금액이 1원 줄어들었다.

“뭐지?”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품위 유지 스킬에도 돈이 들어가는 거였나.’

전기나 가스, 그리고 수도.

이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을 소모해야 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임에도 돈이 빠져나간 것은 아마도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큰일이군.’

이래저래 돈 들어갈 일은 많은데, 돈을 벌 방법은 없었다.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고블린 사냥뿐이었는데, 이젠 그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망할 고블린 새끼들.’

고블린들은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령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몇 마리를 사냥한 그날, 나를 향해 악을 쓰던 것도 잠시 그대로 거처를 옮겨 달아나 버렸다.

덕분에 지난 일주일간 내가 사냥한 고블린들의 숫자는 겨우 13.

그 중에 대부분이 첫째 날 사냥한 것이었다.

고블린들이 거처를 옮겨버린 뒤로는 겨우 2마리밖에 잡질 못했다.

‘너무 비효율적이야.’

첫 날에는 제법 쏠쏠했다.

16,990원인 아령 한 세트를 사서 두 마리의 고블린을 잡으면 약 5천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으니까.

아령을 던지는 족족 고블린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고블린들이 거실 창문 밑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무렇게나 던져도 맞추는 게 가능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열 개를 던져서 한 마리를 잡을까 말까니.’

고블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거진 17만원을 들이는 셈이다.

이런 식이면 운 좋게 켈리칸을 사냥하며 벌어들인 200만원도 금방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그 돈을 다 쓰게 되면 식량은 물론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도 끊길 테니까.

‘젠장. 어디 잡을만한 놈 없나?’

예전에는 아파트 산책로를 내려다보면 꼭 몇 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고블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빈도가 너무 낮았다.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야 겨우 한, 두 무리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아령을 떨어뜨려서 죽일 수 있는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고블린들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저게 있어서 고블린들이 좀 찾아왔었는데.’

고블린들이 버려두고 간 켈리칸의 시체 조각.

저것 때문인지 고블린 무리가 몇 번 찾아오기는 했었다.

하지만 켈리칸의 사체가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멀다보니 창고에서 아령을 소환하는 방식으로는 사냥이 불가능했고, 직접 아령을 던져야 했다.

당연히 정확도가 터무니없이 낮을 수밖에.

‘오늘은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 군.’

더군다나 상황은 더욱 더 나빠지고만 있었다.

고블린 놈들 사이에서 소문이라도 퍼진 것인지 어제와 오늘은 하루 종일 고블린 무리를 못 봤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무언가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켈리칸이 날아와 창문에 부딪힌다거나.’

다시 생각해봐도 그건 정말 천운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천천히 말라죽었겠지.’

스킬 레벨을 올려줄 대량의 경험치가 없었다면 상점과 품위 유지 스킬을 각성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쯤 식량다운 식량은 전부 소모했을 것이다.

아마도 생쌀을 씹어 먹고 있었지 않았을까.

‘아, 어디 멍청한 켈리칸 한 마리 안 지나가나?’

이런 상황에서 태평한 소리일지는 몰라도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 좋다.”

그때였다.

“······?”

시리도록 푸른 하늘 저 편에서 무언가 검은색의 점처럼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그것은 점점 더 커지더니 금세 주먹만 한 크기가 되었다.

‘저건?’

그제서야 그것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일주일쯤 전에 저것과 똑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켈리칸!’

거대한 괴물새, 켈리칸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몇 번이고 상상하던 상황.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아아악! 여기다! 이 괴물아아아―!!”

거실 창문을 열어젖히고 힘차게 팔을 흔들어댔다.

놈이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기까지 했다.

‘제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여기다! 여기―! 망할 괴물 새끼야!”

어그로를 끌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됐다!’

놈과 눈이 마주쳤다.

놈은 정확히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이스!’

흥분한 켈리칸이 이곳을 향해 머리를 박으면 그대로 게임 끝.

그때처럼 기절하며 바닥으로 추락하겠지.

지금은 켈리칸의 숨통을 끊어줄 고블린들이 없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내가 직접 아령으로 마무리하면 되니까.’

켈리칸이 무서운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과는 달리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기대감으로 가슴이 달아오를 뿐이었다.

‘저것만 잡으면 백퍼센트 레벨 업이다.’

심지어 저 놈은 그때 봤던 놈보다 덩치가 더 컸다.

당연히 레벨도 더 높겠지.

그렇다면 경험치도 훨씬 후할 것이고 돈도 더 많이 줄 것이다.

완전 대박이었다.

“덤벼 이 개자식아―!”

혼신의 힘을 다 해 놈을 도발하던 그때였다.

펄럭!

놈이 창문에 부딪히기 직전, 거센 돌풍이 불었다.

“으윽!”

갑자기 몰아친 바람으로 인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어라?”

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대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소름이 돋았다.

‘설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고, 아파트 옥상에 꼿꼿이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켈리칸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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